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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축제에 어울리는 몰리두커 ‘카니발 오브 러브’

이찬주 무용평론가

2024. 05. 10

무심코 바라본 와인 라벨 속 춤. 전 세계 와인과 그에 얽힌 춤 이야기를 연재한다.

카니발 오브 러브

카니발 오브 러브

생명력이 넘치는 5월은 가정의 달이자 축제의 달로 불린다. 호주 와이너리 중 하나인 몰리두커(Mollydooker)의 ‘카니발 오브 러브(Carnival of Love)’는 라벨 전체가 온통 축제 무드다. 와인 이름처럼 사랑이 넘쳐난다. 1980년대 팝 그룹 유리스믹스(Eurythmics)의 멤버 데이비드 스튜어트가 무척 좋아하는 와인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놀랍게도 스튜어트는 몰리두커와 함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시라즈는 호주를 대표하는 레드와인 품종으로, 전 세계 시라즈 생산량 1위 국가도 호주다. ‘카니발 오브 러브’는 남호주 와인산업의 발상지인 맥라렌 베일 게이트웨이 포도원에서 생산된 시라즈로만 만든다.

라벨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한 손에 장미꽃을 들고 가면을 쓴 남성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 곁에 가면을 쓴 남성과 마주한 아름다운 여성이 보이고 마술과 저글링을 선보이는 2명의 광대도 있다. 흰 드레스에 화관을 쓰고 경쾌하게 바이올린을 켜는 여성, 서커스 단원처럼 보이는 건장한 남성도 눈길을 끈다. 병을 돌리면 라벨에 몰리두커 와이너리 경영자인 사라와 스파키의 사인이 나온다.

라벨에서 계속 눈길이 가는 건 빨간 모자를 쓴 광대다. 광대에는 클라운(clown)과 피에로(pierrot)가 있다. 분장으로 둘을 구분할 수 있는데, 클라운은 화려한 색상의 의상을 입는 반면 피에로는 무채색 의상을 입고 눈 아래 부위에 눈물 모양을 그려 우울한 표정을 만드는 게 특징이다. 발레 작품 ‘백조의 호수’에서 궁정 광대 제스터는 왕과 권력자들 앞에서 재주를 선보이면서도 권력자에게 첨언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익살스러운 시종 아를레키노에서 유래된 ‘호두까기 인형’의 할리퀸(어릿광대)은 구체관절인형처럼 관절을 꺾으며 춤을 추고, ‘인형요정’의 피에로는 광대의 유쾌하고 활발한 이미지와 반대로 슬픈 광대 페드롤리노를 품고 있다. 이중적 의미의 희극과 고도로 발전된 기예 사이에서 춤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춤을 추고, 가랑이를 쭉 벌려 점프하는 광대들은 그들의 화려한 의상만큼이나 환상적인 몸짓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화가들에게도 광대는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다. 워싱턴 국립미술관에 있는 폴 세잔의 ‘어릿광대’(1888~1890)는 다이아몬드 무늬의 붉은색 복장에 긴 칼을 차고 있지만 내리깐 시선이 쓸쓸해 보인다. 피카소도 광대를 캔버스에 담았다. ‘앉아 있는 어릿광대’(1901)와 ‘라팽 아질에서’(1905), ‘어릿광대’(1923) 등이 있다. 특히 피카소는 광대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여 그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배경은 파리 몽마르트르 선술집 ‘라팽 아질’. 광대 곁에 모자를 쓴 여인이 앉아 있다. 이 여인은 제르맹 피쇼로 피카소의 절친한 친구 카를로스의 옛 연인이다. 카를로스는 제르맹 피쇼에게 구혼했다 거절당하자 목숨을 끊었다. ‘라팽 아질에서’는 이 비극적인 사건을 그린 그림이다.

피카소의 ‘라팽 아질에서’(1905),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피카소의 ‘라팽 아질에서’(1905),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독일 화가 막스 베크만이 그린 ‘카니발’(1920)은 축제를 색다르게 해석했다. 파티 의상을 입고 무표정하게 서 있는 두 사람, 원숭이 가면을 쓴 채 누워서 발로 트럼펫을 돌리는 남자는 힘겨워 보인다. 카니발의 이면을 그로테스크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폴 세잔의 ‘어릿광대’.  (1888~1890), 미국 워싱턴.

폴 세잔의 ‘어릿광대’. (1888~1890), 미국 워싱턴.



검고 굵은 선으로 엄숙한 분위기를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한 프랑스 화가 조르주앙리 루오의 ‘광대’(1935)도 있다. 그는 1904년 이후 광대를 주 소재로 삼아 그림을 그렸는데, 소외되고 비루한 계층인 광대에게서 성스러움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로자리오 데 벨라스코의 ‘카니발’(1936),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로자리오 데 벨라스코의 ‘카니발’(1936),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보았던 스페인 화가 로자리오 데 벨라스코의 ‘카니발’(1936)에도 광대 페드롤리노와 같은 하얀 옷을 입은 남성과 붉은 드레스에 흰색 스카프를 머리에 두른 여성이 나팔을 불고 있는 즐거운 축제의 한 장면이 담겼다.

관객에게 웃음을 주는 광대는 아이러니하게도 여러 예술가의 작품에서는 웃음 뒤 슬픔을 가리고 있는 쓸쓸한 존재로 다뤄져왔다. 슬퍼도 웃고, 아파도 춤을 추며 관객을 웃겨야 하는 광대의 숙명이 어쩐지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것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면 광대는 기꺼이 제 몸을 바쳐서라도 웃음을 선사할 것이다. ‘카니발 오브 러브’의 라벨에 그려진 광대는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을까. 부디 그 역시 사랑 가득한 축제를 즐기고 있길 바란다.


#와인 #카니발오브러브 #광대 #여성동아

사진 이찬주 
사진출처 Mollydooker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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