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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column

패션 & 뷰티 업계의 새로운 키워드, 다양성

#Reimagine Diversity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엘 킴벡

2021. 04. 05

프라발 구룽은 자연스러운 
체형의 모델을 런웨이에 세워 
신선한 자극을 선사했다.

프라발 구룽은 자연스러운 체형의 모델을 런웨이에 세워 신선한 자극을 선사했다.

요즘 세상의 변화를 실감하는 순간이 많다. 이 스피디한 변화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지난해 전 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꼽을 수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과학 기술의 발전,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MZ세대를 중심으로 기존에 존재하던 개념들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선과 방식으로 접근해보자는 움직임이 형성되면서 변화에도 속도가 붙었다. 그동안 ‘답은 하나’라고 규정됐던 개념들도 사실 답은 둘 혹은 그 이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열렸다. 세상과 대중은 그 가능성을 ‘다양성’이라는 이름 아래 새로이 고찰하고 있다. 

사회가 당면한 모든 상황에서 결론이 하나가 아닐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시작됐다. 성별과 관련된 다양한 담론은 사회 진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미투(#MeToo) 운동을 필두로 한 젠더 이슈는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며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성의 경계가 모호해진 젠더 뉴트럴(Gender Neutral)은 패션과 뷰티 분야의 중요한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영원불변(永遠不變)할 것만 같았던 미의 기준에 대해 산업 전체가 다시 생각해보려는 노력이 시작되었고 인종, 국적, 연령, 체형, 피부색 등 이제는 고려해야 할 기준이 하나가 아닌 시대에 돌입했다. 

지난 수십 년간 패션 및 뷰티 산업에서는 ‘젊고, 마르고, 섹시한 백인 모델’을 우선적으로 캐스팅해온 것이 사실이다. 물론 끊임없이 비판받은 브랜드들이 나름의 자아 성찰을 거쳐 방안을 제시한 경우도 많지만, ‘이거다’ 하는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지 못한 채로 흐지부지 넘어간 경우가 많다. 

이런 가운데 몇 해 전부터 철옹성과 같았던 미의 기준이 무너질 수 있다는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2017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는 전통적인 미의 기준에 반기를 든 런웨이가 펼쳐졌다. 벨기에 출신 드리스 반 노튼을 필두로 시몬 로샤, 돌체 앤 가바나 등의 디자이너들이 젊은 모델뿐만 아니라 잔 드빌뇌브(당시 70세), 베네디타 바지니(당시 73세), 바바라 마스(당시 67세) 같은 백발을 휘날리는 시니어 모델들을 함께 캐스팅해 런웨이를 걷게 한 것. 또한 뉴욕 패션위크에서 마이클 코어스와 프라발 구룽을 포함한 몇몇 디자이너들은 전형적인 마른 모델들이 아닌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라 불리는 자연스러운 체형을 가진 모델을 기용해 보다 현실적인 패션쇼를 선보였다. 




펜티 뷰티는 다양한 인종의 피부톤에 어울리는 메이크업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펜티 뷰티는 다양한 인종의 피부톤에 어울리는 메이크업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패션쇼뿐만 아니라 광고에서도 변화가 감지됐다. LVMH그룹 산하의 화장품 리테일 스토어 세포라는 2018년 크리스마스 시즌 광고 영상에 다양한 인종의 모델은 물론이고 플러스 사이즈 모델과 시니어 모델까지 내세웠다. 현실과 동떨어진 모델이 아닌 일상에서 친근하게 마주할 수 있는 체형과 나이대의 모델을 대거 기용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렇다면 이런 모델들은 어디서 캐스팅했을까. 브랜드가 직접 길거리에서 캐스팅이라도 하는 걸까. 시대 변화는 모델 에이전시에도 예외 없이 불어닥쳤다. 기존에 런웨이에 오를 수 있었던 젊고 마른 모델 이외 다양한 기준이 반영된 모델까지 갖춰야 할 필요성이 생긴 것. 오히려 변화에 대응하지 않는 모델 에이전시에는 비난이 쏟아지다 보니 다앙한 기준의 모델을 영입하는 것은 에이전시 사업 가운데 중요한 포션으로 자리 잡게 됐다. 

IMG, DNA, NEXT, SOCIETY 등 뉴욕의 거대 모델 에이전시들의 웹사이트만 살펴봐도 이런 추세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우리 모델 에이전시는 다양성과 관련해 이렇게나 오픈되어 있답니다!’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인종, 나이, 종교, 체형, 성별 등 모든 기준을 아우르는 모델 리스트를 웹사이트의 가장 첫 페이지에 마치 전시라도 하듯 공개하고 있다. 이는 1차적으로 업계 관계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크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의식 변화에 앞선 곳이라는 사실을 대중에게 명확히 인식시키는 홍보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다양한 피부색과 체형의 모델을 
등장시킨 가수 리아나의 란제리 브랜드 새비지×펜티(Savage×Fenty)의 광고.

다양한 피부색과 체형의 모델을 등장시킨 가수 리아나의 란제리 브랜드 새비지×펜티(Savage×Fenty)의 광고.

세포라에서 독점 판매 중인 가수 리아나의 펜티 뷰티는 이러한 시대의 변화를 대변하는 코즈메틱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세포라 매장에서도 지난해부터 판매를 시작한 이 브랜드는 모든 피부 타입에 적합한 포뮬러와 다양한 인종의 피부 톤에 어울리는 폭넓은 컬러, 레이어링에 최적화된 텍스처를 구현한 메이크업 제품을 마련했다. 선택의 폭이 넓다는 이유로 론칭 때부터 큰 인기를 누리는 중. 특히 론칭 초기에 40개(현재는 50개로 증가)의 컬러 베리에이션 파운데이션을 발매해 대중으로부터 ‘세상의 모든 피부색을 커버할 수 있다’는 찬사를 받으며 다양성 시대를 대변하는 총아로 떠올랐다. 

리아나가 다양성을 상징하는 브랜드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건 비단 펜티 뷰티가 성공해서만은 아니다. 그녀가 디자인에 참여한 새비지×펜티라는 이름의 란제리 브랜드는 체형에 관한 다양성 존중을 표방한다. 빅토리아 시크릿이 인간계가 아닌 천상계의 몸매를 가진 모델만 기용해 제품을 제작하는 것과는 대비된다. 

오랫동안 묻혀 있던 ‘다양성’이 시대 변화와 함께 패션 및 뷰티 산업 곳곳에서 발현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주로 ‘인종’과 관련된 이슈에 그쳤지만 최근에는 인종을 넘어 세상에 구획 지어진 수많은 경계에 대한 의문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낀다. 세상에 토착화된 편협한 개념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각과 의견으로 확장된 개념이 아름다움의 정의에 질문을 던지자 닫혀 있던 세상에도 비로소 기분 좋은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기네스 팰트로, 미란다 커 등 세기의 뮤즈들과 작업해왔다. 현재 브랜드 컨설팅 및 광고 에이전시 ‘STUDIO HANDSOME’을 이끌고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새비지×펜티 공식 트위터 펜티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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