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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1위 돌봄 플랫폼 ‘맘시터’ 정지예 대표 “세 살까지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건 옛말”

문영훈 기자

2023. 05. 31

‘이건 뭔가 잘못됐다.’ 아픈 아이를 학교에서 데려올 사람이 없어 훌쩍이던 회사 동료를 보고 생각했다. 이를 계기로 정지예 맘편한세상 대표는 워킹맘을 돕는 사업을 시작하기로 마음먹는다. 

정지예(36) 맘편한세상 대표는 소위 ‘잘나가는’ 직장인으로 20대를 보냈다. 대학 졸업 후 원하는 유수의 경영컨설팅 회사에 입사했다. 자정을 넘기면서까지 야근하는 경우도 잦았지만 꿈꿔왔던 일이었기에 몸 바쳐 업무에 충실했다. 일이 손에 익자 미래를 생각하게 됐다.

“저는 커리어도 쌓고 싶고 결혼도 해서 아이도 갖고 싶었어요. 그런데 높은 직책에 올라간 여자 선배들은 미혼이거나 아이가 없더라고요. 워라밸이 비교적 나은 회사로 이직했지만 그곳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어요.”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던 정 대표는 창업을 통해 육아 문제를 직접 해결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특히 시터(육아 도우미) 구인에 어려움을 겪는 워킹맘을 위한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다. 회사 다니면서 짬이 생길 때마다 기사와 논문도 찾아보며 공부했다. 직접 시터를 해보기도 했다. 6개월간의 고민 끝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가입자 119만 명, 연간 거래금액 2400억 원(2022년 기준)에 달하는 육아 돌봄 플랫폼 ‘맘시터’가 만들어진 배경이다. 2016년 서비스를 시작해 8년 차에 접어든 맘시터는 업계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5월 11일 찾은 서울 강남구 맘편한세상 오피스에는 “대한민국 시터 시장을 혁신시키는 지속 가능한 회사가 된다”는 문구가 벽에 붙어 있었다.

창업하기 전부터 부정적인 피드백과 마주했다고요.

‘안 된다’는 이야기만 들었어요(웃음). 창업 당시는 제가 아이가 없을 때라 다들 “네가 어떻게 까다로운 엄마들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냐”고 했죠. 그래도 굴하지 않고 사업을 시작했어요. 고민하다 보면 시간만 흐를 뿐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니까요. 가족이나 남편은 제가 어떻게든 도전할 사람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응원해줬어요.

좋은 의도도 중요하지만 결국 수익이 나야 할 텐데요.

경영컨설팅 분야에서 일한 만큼 저도 비즈니스모델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고객이 기꺼이 돈을 지불할 만큼 불편한 문제를 찾아야 했죠.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려면 가장 힘든 게 대신 돌봐줄 사람을 찾는 거예요. 친정 엄마나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라면 맘 카페나 지인을 통해 정보를 얻어야 했어요. 급한 경우엔 시장가격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하기도 했죠.



맘시터 앱을 만들고 바로 반응이 왔나요.

처음엔 자금이 부족하니까 직접 전단지를 붙이고 구글 폼을 만들어서 시터와 부모가 플랫폼에 가입할 의사가 있는지를 확인했어요. 플랫폼에 어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지도 조사했고요. 창업 후 1년 뒤에는 손익분기점을 넘겼어요. 인건비와 사무실 임대료, 마케팅 비용이 어느 정도 해결되는 걸 보고 투자받아 사업을 계속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생겼죠.

스타트업은 7년 가까이 유지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시터와 부모가 서로 니즈에 맞는 최적의 사람을 찾는 게 아이 돌봄에서 가장 중요한데 그걸 했다고 봐요. 서로가 원하는 조건을 구체적으로 고를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물론 사업하는 동안 매번 잘되고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었죠. 결국 고객이 느끼는 불편을 파악하고 해결 방안을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계속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 같은 거죠.

언제 가장 힘들었나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처럼 예상 불가능한 변수는 없었어요. 감염 이슈가 큰 영향을 미쳤죠. 어린이집 휴원으로 불가피하게 시터 도움을 받아야 하는 고객들의 이용이 늘긴 했지만 신규 고객 유입은 크게 줄었어요. 재무적인 타격도 불가피했지만 코로나19가 장기화하는 동안 전략을 구상하고 결정하는 일이 어려웠어요. 대표는 예상치 못한 외부 요인까지 고려해 사업을 운영해야 한다는 걸 크게 느꼈죠.

창업하려는 이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요.

우선 내가 풀고 싶은 문제를 명확히 찾아야 해요. 여기에 더해 어떻게 돈을 벌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봐야 하고요. 요즘 투자 생태계가 보수적으로 변했어요. 예전에는 돈은 안 벌어도 괜찮으니 사람만 모으면 된다는 분위기였다가 이제는 어떻게 수익을 낼 건지 명확한 논리와 계획이 있는 팀이 투자를 받을 수 있어요. 정말 힘들지만 그만큼 의미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좌절을 계속 경험하며 가치관의 혼란도 생기죠. 그러면서 인생도 돌아보고 압축적으로 성장할 수 있어요.

‘사고’ 없냐고요? 규모의 선순환

돌봄 매칭 플래폼 ‘맘시터’ 앱 사용 화면.

돌봄 매칭 플래폼 ‘맘시터’ 앱 사용 화면.

맘시터는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변수를 겪었지만 2021년 100억 원 규모의 시리즈 B 투자를 유치하고, 2022년 2월 기준 누적 회원 100만 명을 돌파했다. 4월 기준 부모 39만 명과 시터 80만 명, 도합 119만 명의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돌봄은 일상 공간을 공유해야 하는 예민한 일인데 어떻게 고객에게 신뢰감을 줬나요.

쌍방향 후기 시스템이 활성화돼 있습니다. 부모가 시터를 평가하고, 시터도 부모를 평가해요. 회원 정책이 엄격한 편이라 잘못이 있으면 최대 5년까지 서비스 이용을 금지하는 강경한 조항도 있어요. 맘시터 규모가 작을 때는 다른 곳에서 일을 구할 수 있었겠지만,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계속 좋은 일자리를 구하려면 잘못된 일을 저지르기 힘든 구조입니다. 좋은 시터를 구하고 싶은 부모도 마찬가지고요. 플랫폼을 만들 때 규모가 커질수록 선순환구조가 잘 굴러갈 수 있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그게 효과를 발휘한다고 보고 있어요.

어떤 피드백이 가장 기억에 남나요.

시터 중에는 보육교사 자격증이 있는 분이 많아요. 한 분은 어린이집에서 10년 정도 일하셨어요. 아이를 돌보는 건 너무 좋아하는데 행정 업무나 원장 선생님 눈치 보느라 힘이 들어 일을 그만두셨죠. 맘시터를 통해 아이들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돼서 좋아하세요. 어린이집에서 계속 오라고 하는데 자기는 갈 생각이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본인의 특기와 경쟁력을 살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드린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저 역시도 맘시터의 헤비 유저입니다. 덕분에 6세 아이를 잘 키우고 있어요. 맘시터를 통해 만난 시터분이 없었다면 남편이나 저나 이렇게 일에 집중하면서 아이까지 잘 키우지 못했을 거예요.

어떤 분들이 시터에 적합한가요.

비중도 높고 인기도 많은 연령대는 45~65세 중장년 여성입니다.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을 겪었다가 이젠 아이들이 성장해 여유가 생긴 분들이죠. 집 가까운 곳에서 돌봄을 하며 한 달에 60만~100만 원 정도를 벌고 계세요. 자격증이 있는지 여부보다 중요한 건 얼마나 아이를 좋아하는지입니다. 단순히 돈벌이로만 접근하면 힘들어요. 아이와 상호 작용할 때 아이의 반응을 예뻐하시는 분들이 이 일을 가장 잘할 수 있죠.

2030 시터도 있나요.

아이의 연령마다 달라요. 아이가 어릴 땐 중장년분을 선호하지만 5세 이후엔 숙제를 도와줄 수 있는 대학생분을 찾기도 하죠. 원하는 돌봄의 유형이 다르다고 보시면 됩니다.

2년 전, B2B로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부모가 육아 고민을 덜려면 회사 역할도 중요해요. 지금까지는 그 방식이 직장 어린이집밖에 없었죠. 하지만 이는 규모가 큰 기업만 만들 수 있어요. 직장 어린이집이 있다고 해도 모든 구성원이 혜택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고요. 기업 처지에서도 육아 고충을 해결하면 직원들의 업무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걸 알고 있지만 대안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기업이 직원들에게 맘시터를 통해 육아 관련 복지를 제공할 수 있도록 상품을 개발했습니다.


출산율 저하가 국가적 문제로 언급된 지도 오래다. 인구가 유지되는 대체출산율 2.1명은 고사하고 2018년 0점대를 기록한 이후 줄곧 하향세다. 정부는 2월 ‘아이돌봄서비스 고도화 방안’을 발표했다. 출퇴근 시간대 돌봄 서비스를 강화하고, 돌봄 인력에 대한 국가자격제도를 도입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워킹맘, 모든 걸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

2022년 11월 9일 정지예 맘편한세상 대표는 자랑스러운 여성벤처인 표창 수여식에서 한국여성벤처협회장 표창을 받았다(왼쪽). 2022 소비자브랜드대상 상장과 트로피.

2022년 11월 9일 정지예 맘편한세상 대표는 자랑스러운 여성벤처인 표창 수여식에서 한국여성벤처협회장 표창을 받았다(왼쪽). 2022 소비자브랜드대상 상장과 트로피.

공공 영역에서도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공공서비스는 비용 부담이 적지만 대기시간이 길어요. 돌봄은 적시성이 중요한데 사실상 원할 때 이용이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정부에서도 이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아요. 민간 영역은 원할 때 바로 이용이 가능한 만큼 많은 분이 돌봄 서비스를 받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비용 부담이 큽니다. 이를 줄일 수 있도록 기업에서 돌봄비를 지원하거나, 아이 돌봄 비용에 대한 특별 세액공제 등의 정책이 필요합니다. 민간과 공공이 각각 잘할 수 있는 분야가 다르니 함께 협력하면 돌봄 공백 문제를 더 빠르게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간 돌봄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나요.

이젠 엄마 인생도 중요하다는 인식이 커졌어요. 창업할 때만 해도 ‘세 살까지는 엄마가 키워야 해’ 같은 시각이 많았어요. 부모가 아이를 맡기고 일에 집중하거나, 가끔 데이트를 할 만큼 시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어요. 남성이 육아를 전담하기도 하고요.


남성의 육아 참여가 늘고는 있지만 여성의 육아 분담률은 여전히 남성의 2배(‘2021년 양성평등 실태조사’)다. ‘생존’이 가장 중요한 화두인 스타트업 업계에서 여성 대표 수는 두드러지게 적다. ‘한국일보’ 조사에 따르면 2022년 시리즈 A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216개 중 여성 단독 대표가 있는 곳은 15개(6.9%), 여성과 남성이 공동대표인 곳을 합쳐도 20개(9.2%)에 불과했다.

이제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 없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저도 20대까지는 큰 차별을 느끼지 못했어요. 남자가 대부분인 공대에 다녀서 오히려 군대에 가야 하는 동기들이 안쓰러웠죠. 30대가 돼서 출산과 육아가 여성에게 큰 부담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저는 출산 후에 거의 바로 복귀했죠. 제가 회사 대표인데 쉴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아이 키우면서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대표는 정말 적어요. 물론 좋은 점도 있습니다. 희소성이 있으니 어느 자리에서든 항상 불리고 기억해주시죠.

정 대표는 “제게 여성 차별과 관련된 질문을 많이들 하시는데, 이에 관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항상 어렵다”고 덧붙였다.

“아직 20대인 여성들은 제게 어떻게 아이를 키우며 일까지 하느냐고 묻곤 해요. 차별이 있다고 하면 기를 꺾는 것 같고, 차별이 없다고 하기엔 아직도 여성에게 커리어와 출산, 육아의 영역에서 다양한 부담이 주어지는 건 사실이니까요.”

아이 키우기 좋은 세상을 위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요.

차별과 편견이 아직 존재하지만 그 때문에 뭔가를 포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결국 내가 행복한 일을 찾고 도전하는 게 중요하죠. 특히 워킹맘에게는 모든 걸 다 잘하려는 부담을 내려놓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그게 어느 쪽이든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하면 되는 거죠. 그게 아이를 위한 길이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목표가 있나요.

아이 키우기 좋은 세상을 만들자는 생각이 창업의 시작이었어요. 그러려면 부모가 아닌 사람이 아이를 키워도 된다 혹은 더 잘 돌볼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해야 하죠. 이는 ‘맘시터’뿐 아니라 기업, 정부의 도움이 함께 필요한 일이기도 해요. 언제나 ‘맘 편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도울 예정입니다. 회사 성장에 국한해 본다면 육아 환경이 가장 까다롭다는 우리나라에서 만든 솔루션으로 해외에 진출해 글로벌기업이 되는 게 목표입니다.

#맘시터 #정지예 #파워우먼 #돌봄 #여성동아

사진 홍태식 사진제공 맘시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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