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꽃잎으로 만든 스키아파렐리의 코트를 입은 제니퍼 로페즈.
“제니퍼 로페즈가 몹 와이프 스타일(mob wife style·마피아 보스 아내 스타일)로 파리에 나타났다.”
더할 나위 없이 럭셔리한 모피 코트에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파리패션위크에 등장한 제니퍼 로페즈를 향해 외신들은 이런 제목의 뉴스를 쏟아냈다. 이 뉴스는 최근 몇 년간 패션계를 주름잡은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 시대가 저물고 ‘몹 와이프’라는 새로운 트렌드가 등장했음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다.
모피와 선글라스로 럭셔리한 스타일을 완성했다.
조상 대대로 부자였을 법한 사람들이 즐겨 입어 ‘올드 머니 룩(old money look)’이라고도 불리는 조용한 럭셔리는 고급스러운 소재에 차분한 컬러와 실루엣, 로고가 드러나지 않는 미니멀한 스타일이 중심을 이루는데, 귀족적이긴 하지만 새롭다거나 “와 멋있다” 같은 감탄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조용한 럭셔리의 득세로 중요한 패션 요소 중 하나인 화려한 볼거리가 사라지고 지루해지던 찰나에 등장한 것이 바로 몹 와이프 스타일이다. 마피아에서는 돈이 곧 권력이고, 강해 보이려면 스스로를 비싸고 화려하게 포장해야 한다. 우리말로 하면 ‘조폭 마누라 패션’쯤으로 표현될 몹 와이프 스타일은 거대한 모피나 광택 나는 가죽, 애니멀 프린트, 볼드한 액세서리, 굵은 웨이브 헤어, 화려한 매니큐어, 가죽 부츠 등 사치스러운 요소들을 모두 ‘때려 넣어’ 최대한 세고 부유해 보이도록 연출하는 것이 특징이다.
발렌티노 드레스로 연출한 1960년대 할리우드 배우 스타일.
몹 와이프 스타일의 인기는 1999년 미국 HBO에서 방영된 ‘소프라노스’와 관련 있다. ‘소프라노스’는 미국 뉴저지 마피아 중간 보스 토니 소프라노를 중심으로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 미국 TV 시리즈 걸작이다. 이탈리아 명품을 휘감은 듯한 토니의 아내 카멜라와 딸 메도우의 패션은 이 드라마의 또 다른 볼거리였다.
HBO가 지난 1월 ‘소프라노스’ 방영 25주년을 맞아 드라마 요약본을 틱톡 계정에 제공하자 방송 당시에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여성 캐릭터의 현란한 스타일에 매료되었고, 이 여성이 착용한 애니멀 프린트와 볼드한 금 귀걸이 등의 패션 소품 검색량이 급증했다. 이에 마피아 영화의 대명사 ‘대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대부’에서 케이 아담스 역을 맡았던 배우 다이앤 키튼이 진주 귀걸이를 한 사진을 올리며 “마피아 와이프의 미학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는 게시 글을 싣기도 했다.
최대한 강하고 비싸 보이게… 마피아 아내 스타일의 귀환
2000년 그래미상에서 화제가 됐던 베르사체의 정글드레스 (오른쪽)와 20년 후 오마주 버전.
제니퍼 로페즈는 2024 F/W 파리패션위크 기간 동안 몹 와이프 스타일의 끝판왕을 보여주었다. 파리 거리에서 작정하고 센 언니 스타일을 시전한 것이다. 스키아파렐리 쇼에서는 니트 터틀넥 셔츠와 볼륨감 있는 화이트 코트, 블랙 레깅스에 블랙 컬러 벨벳 하이힐을 신고 구조적인 스타일의 황금색 선글라스로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이 룩의 압권은 마피아 조직원들이 장미 꽃잎을 한 장 한 장 따서 이어 붙인 듯한 화이트 코트다. 스키아파렐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다니엘 로즈베리가 디자인한 이 코트는 실제 7000개의 꽃잎을 붙여 만든 것으로, 벌새의 꿀로 꽃잎을 코팅해 생화 같은 싱그러움과 볼륨감을 살렸다.
발렌티노 오트쿠튀르 쇼엔 1960년대 할리우드 영화에서 봤음 직한 여배우 스타일로 등장했다. 어깨에서 소매까지 실버 컷아웃이 돋보이는 발렌티노 드레스에 블랙 벨벳 보를 착용하고 다이아몬드 이어링, 샹들리에 네클리스, 마하앤마하 사만다 더블 보 핸드백으로 세련된 룩을 완성했다. 디자이너 엘리 사브의 런웨이 프레젠테이션에선 그린 컬러 드레스에 수백 송이 라벤더와 초록색 꽃으로 디자인한 화려한 코트로 무대를 압도했다. 이 외에도 파리패션위크 기간 동안 브라운과 블랙 컬러의 고급스러운 모피 코트에 보테가베네타와 에르메스 백 등을 매치한 글래머러스한 스트리트 패션을 보여주었다.
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
1969년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출신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히스패닉계 미국인 제니퍼 로페즈는 열일곱 살 때 ‘나의 작은 소녀’라는 영화를 통해 은막에 데뷔했으며, 1990년 폭스TV가 주최한 댄스 경연 대회에서 우승하며 스타로 떠올랐다. 그 뒤 ‘머니 트레인’ ‘아나콘다’ ‘웨딩 플래너’ 등 영화에 잇달아 출연하는 한편 1999년 가수로도 데뷔하며 만능 엔터테이너로 자리 잡았다. 특히 볼륨감 넘치는 몸매의 소유자인 그녀는 글래머러스하면서 스포티한 룩을 즐겨 입어 복근이 드러나는 크롭트 톱, 핑크 트레이닝복 등의 유행을 주도하기도 했다.
엘리 샤브 컬렉션에서의 제니퍼 로페즈.
그녀가 패션 레전드로 자리매김한 계기는 2000년 그래미상 시상식에 가슴 선이 깊게 파인 파격적인 노출의 베르사체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것이다. 그린 컬러 열대우림 프린트 덕분에 ‘정글 드레스’라는 별칭이 붙은 이 드레스는 구글이 이미지 검색 기능을 만드는 데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드레스가 역대 레드카펫 베스트 드레스로 끊임없이 회자되자 그녀와 베르사체는 밀라노에서 열린 베르사체 2020 S/S 컬렉션에서 오마주 버전을 다시 한번 선보이며 런웨이의 추억을 소환했다.
제니퍼 로페즈 하면 배우 벤 애플렉과의 러브 스토리를 빼놓을 수 없다. 앞서 두 번의 이혼 전력이 있는 로페즈는 2002년 벤 애플렉과 약혼했으나 이듬해 돌연 파혼하고 2004년 배우 마크 앤서니와 재혼했다. 마크 앤서니와의 결혼 생활 동안 쌍둥이 남매를 출산했으나 2014년 이혼하고 2022년 끊임없이 재결합설이 나돌던 벤 애플렉과 드디어 결혼했다. 애플렉은 전 부인인 배우 제니퍼 가너와의 사이에 3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무대에서 과감한 패션을 즐기는 그녀는 평소에는 스포티한 트레이닝복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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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게티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