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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column

패션에도 윤리가 필요해! 발렌시아가 ‘아동 포르노’ 광고 논란

간호섭 패션디렉터·의상학박사

2022. 12. 27

11월 발렌시아가의 광고 사진이 공개되자 ‘아동 포르노’ 논란이 일었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패션계에서 벌어진 ‘선 넘은 패션’의 순간들을 짚어봤다.

세드릭 샤버프 발렌시아가 최고경영자(왼쪽)은 테디 베어 모양의 가방(오른쪽) 광고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사과 성명문을 발표했다.

세드릭 샤버프 발렌시아가 최고경영자(왼쪽)은 테디 베어 모양의 가방(오른쪽) 광고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사과 성명문을 발표했다.

누군가 정해진 범위나 한계를 넘을 때 우리는 “선 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일종의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죠. 하지만 그 선의 기준이란 것이 참으로 애매합니다. 선한 의미로 한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경우도 있고, 반면 아예 처음부터 관심을 끌고자 논란을 만들어낸 경우도 있죠.

새 시대를 여는 선 넘기

1920년대 유행한 플래퍼 스타일(왼쪽)과 1960년대 분 미니스커트 열풍.

1920년대 유행한 플래퍼 스타일(왼쪽)과 1960년대 분 미니스커트 열풍.

패션계에서는 늘 이런 논란거리들이 존재해왔습니다. 새로운 트렌드와 문화를 전파하는 것이 곧 패션 브랜드의 성장과 존폐로 이어지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윤리적으로 패션 브랜드가 제안하는 의상이나 광고가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에 용인되지 않을 경우, 큰 지탄을 받기도 합니다.

현대 패션이 등장하기 시작한 초창기에는 의상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 가해졌습니다. 1920~30년대, 모던한 아르데코(art deco) 시대가 열리자 여성들은 사회 활동에 어울리는 단발머리와 짧은 원피스를 입는 플래퍼 스타일(flapper style)을 선호하기 시작했습니다. 온몸을 감싸는 글래머러스한 드레스와 코르셋에서 벗어나게 된 거죠. 지금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엔 파격적인 시도였고,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향후 플래퍼 스타일은 여성을 바라보는 기존의 시선 또한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이후 1960년대에는 미니스커트 열풍이 불었습니다. 종아리가 아닌 허벅지까지 드러낸 신체 노출은 당대 큰 저항을 받았지만, 영 제너레이션의 미니스커트에 대한 사랑은 멈출 수 없었습니다. 어찌 보면 두 변화는 당대 대중에게 받아들여지기까지 저항을 맞았으나,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였기에 자연스러운 ‘선 넘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광고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패션계의 선 넘기는 의상에서 광고의 영역으로 옮아 붙었습니다. 1982년부터 2000년까지 18년간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베네통(Benetton) 아트디렉터로 활동한 올리비에로 토스카니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신부와 수녀가 키스하는 1992년 베네통 광고는 ‘사랑은 조직과 제복을 초월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종교계에서는 큰 비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옷을 판매하는 사진 이상의 것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던 토스카니는 광고 사진을 통해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가령 천사 모습을 한 백인 꼬마와 악마 뿔 모양의 머리를 한 흑인 아이가 안고 있는 광고(1982)를 통해 흑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비판했고, 백인 여성과 흑인 여성이 함께 안고 있는 동양인 아기 광고(1991) 사진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제시했습니다. 광고가 게재된 당시에는 큰 논란이 됐지만 토스카니의 사진은 계속 회자되며 광고 문법의 새로운 사례로 자리 잡았습니다.

시대에 역행하는 선 넘기

세간에 충격을 던진 베네통 광고. 모두 올리비에로 토스카니의 작품이다(왼쪽).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직을 
맡았던 존 갈리아노.

세간에 충격을 던진 베네통 광고. 모두 올리비에로 토스카니의 작품이다(왼쪽).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직을 맡았던 존 갈리아노.

물론 반박의 여지가 없는 사례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크리스찬 디올(디올)의 디렉터 직을 맡았던 존 갈리아노의 인종차별 발언입니다. 2000년대 이후 글로벌 패션 브랜드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주도권을 쥐기 시작하자 디렉터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졌습니다. 갈리아노는 2011년 프랑스 파리 마레 지구의 한 카페에서 유대인과 동양인 손님에게 입에 담기 힘든 폭언을 했습니다. 이 사건은 일파만파 퍼졌습니다. 당시 디올 향수 광고 모델이었던 유대인 출신 배우 나탈리 포트만의 비난 성명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결국 그는 10년 넘게 헌신해온 디올의 디렉터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지금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시대입니다. SNS만으로 적게는 수만 명, 많게는 수천만 명이 동시에 광고를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패션 브랜드의 책임감이 커졌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발렌시아가 광고 논란을 되짚어보겠습니다. 2022년 11월 16일 발렌시아가는 기프트 콜렉션 광고를 공개합니다. 천진난만한 어린이와 테디 베어 인형(정확히는 plush bear bag)이 등장한 사진입니다. 어린이와 테디 베어의 조합은 그야말로 찰떡궁합입니다. 문제는 차별성의 함정에 빠져 귀여운 테디 베어 인형을 ‘BDSM(가학적 성적 행위)’을 연상시키는 망사와 가죽 벨트 그리고 자물쇠로 장식했다는 점입니다. 어린이 모델 앞에는 빈 술잔과 장신구들이 펼쳐져 있었죠. 5일 뒤, 발렌시아가와 아디다스가 협업한 2023년 봄 시즌 컬렉션 광고 일부에서는 소아 성애 관련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문이 모델 주위에 널려있던 것으로 알려지며 아동을 성적 대상화했다는 혐의가 짙어졌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즉각 발렌시아가는 도가 지나쳤다는 점을 인정하고 재빠르게 광고를 중단했습니다. 발렌시아가 글로벌 앰배서더인 킴 카다시안 또한 “네 아이의 엄마로서 이번 광고를 보고 큰 동요가 있었고, 앞으로 브랜드와의 관계를 재정립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현재 1433만 명의 팔로어를 가진 발렌시아가 공식 인스타그램에는 최고경영자 세드릭 샤비트 이름으로 된 사과 성명서 한 건만 게시돼 있습니다.

이처럼 패션계의 선 넘기는 외줄 타기처럼 참으로 아슬아슬합니다.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혹은 시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해결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선을 넘나들더라도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오해를 받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동시에 인종차별, 아동 성적 대상화 등을 배척하는 윤리적인 접근이 필수인 시대가 됐습니다.

#발렌시아가 #패션의윤리학 #간호섭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뉴시스 
사진제공 발렌시아가 베네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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