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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KALEIDOSCOPE

A Closet Full of Clothes, Nothing to Wear

옷장이 꽉 찼는데 정작 입을 옷이 없다는 사람들을 위해

글 · 조엘 킴벡 | 사진 · REX

2015. 11. 05

A Closet Full of Clothes, Nothing to Wear
패션 피플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명언이 있다. ‘A Closet Full of Clothes, Nothing to Wear(옷장 안에 옷이 가득한데 정작 입을 것이 하나도 없다).’ 이 명언을 탄생시킨 주인공은 다름 아닌 패션 피플의 바이블이라고 해도 좋을 미드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 ‘캐리 브래드쇼’다. 매 시즌 더 이상 옷장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쇼핑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다음 해 같은 시즌이 오면 정작 입을 옷이 하나도 없는 이 아이러니를 한 번이라도 경험한 적이 있다면, 당신도 이미 패션 피플의 문턱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계절은 매년 똑같이 다가오지만 패션의 트렌드는 그 어느 한 시즌도 똑같이 전개된 적이 없다. 작년에도 언제나처럼 ‘내년에도 입을 거니까 이 정도 금액쯤은 괜찮다’는 주문을 읊조리며 구매했지만, 그 내년이 다가오면 정말 거짓말처럼 다시 꺼내 입을 용기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거센 후회가 밀려오곤 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번 겨울에는 그런 후회들로부터 살짝 자유로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말은 작년에 산 옷들이 올해에도 계속 유행할 거라는 뜻은 아니다. 물론 그중에는 패딩 다운 점퍼처럼 유행과 상관없이 일단 추운 데 장사 없으니 안면몰수하고 꺼내 입어야 하는 아이템들도 있겠지만, 작년 겨울 트렌드가 올해까지 계속 이어지는 행운은 없을 것이다. 트렌드는 패션이라는 하나의 산업과 맞물려 있기에 그것을 지탱하고 지속해나아가야 하는 디자이너나 브랜드들이 절대 그런 일을 용인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이번 겨울에는 옷장 안에 묵혀둔 지난 시즌의 옷들이 다시 한 번 세상의 빛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대답은 ‘결국 유행은 돌고 돈다’이다.

지금 패션계는 마치 1990년대로 회귀한 것처럼, 당시 큰 영향력을 발휘하던 브랜드들이 속속 메인스트림으로 복귀하고 있다. 그 열풍에 힘입어 그 당시 유행하던 패션 브랜드뿐 아니라 아이템들도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작년 겨울의 옷을 꺼내 입을 수는 없겠지만 옷장 속 아주 깊숙한 곳에 묻어두었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왕년의 스타급 아이템들은 다시 꺼내 입을 수 있게 되었다.



정말 모든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이번 겨울의 ‘잇 아이템’으로 밀고 있는 것이 바로 무스탕과 토스카나로 통칭되던 무톤 재킷과 스웨이드 셔링 재킷이다. 다소 나이대가 높게 보인다는 단점도 있었지만 젊은 세대가 입은 무스탕이나 토스카나(사실 외국에서는 절대 통하지 않는 한국식 외래어들이다!)는 어떤 의미로는 1990년대 부의 상징의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랑받았다.

물론 무톤 재킷과 토스카나에도 종류가 상당히 많다 보니, 그 전부가 복귀 무대에 설 수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2015년의 무톤 트렌드는 일단 요 몇 시즌 계속 강세를 보이고 있는 오버사이즈 코트의 변형판으로, 자신의 몸보다 한두 치수 큰 것이 제격이다. 옷장 안 깊숙이 쟁여놓은 자신의 무톤 재킷이 넉넉한 품이 아니라면 아버지나 남편이 입지 않는 무톤 재킷을 노려보는 것도 대안일 수 있다. 단, 품은 크더라도 소매 길이와 어깨선은 어색하지 않도록 손을 봐야겠지만….

A Closet Full of Clothes, Nothing to Wear

올 겨울에는 보머 재킷, 오버올, 루이비통 프티노에 같은 스타일의 복주머니 가방 등 한때 유행을 휩쓸고 지나갔던 아이템들이 다시 트렌드의 중심으로 돌아온다.

두 번째로 이번 시즌의 무톤 재킷에서 눈에 띄는 점은 브라운 스웨이드에 매치된 하얀 양털 셔링의 안감과 스티치로, 이른바 무심하고 투박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아크네, 코치, 발렌시아가, 구찌, 끌로에, 버버리, 골든구스 디럭스 브랜드 등에서 내놓은 무톤 재킷 대부분이 무심함과 투박함 자체의 매력에 포커스를 맞춘, 이른바 에포트리스 시크(Effortless Chic·노력하지 않은 듯 보이지만 엄청나게 시크하고 스타일리시한) 아이템들이다.

만약 예전에 구입했던 무톤 재킷이 브라운 스웨이드에 하얀 양털로 안감이 마무리된 아이템이라면, 이번 겨울은 그야말로 운수 대통임이 틀림없다.

무톤 재킷이 너무 부해 보여 싫다거나, 동물 애호자라면 1990년대 밀리터리 아이템을 권한다. 특히 이번 겨울에는 항공 점퍼가 아주 핫한 아이템이다. 요즘 패션 대세로 불리는 카니예 웨스트와 리한나도 즐겨 입고 파파라치 사진에 출몰하는 항공 점퍼는 톰 크루즈를 톱스타의 반열에 올려준 영화, ‘탑건’에 나오는 공군들이 입는 보머 재킷을 말한다.

대신 이 항공 점퍼도 무톤 재킷과 똑같이 오버사이즈는 필수다. 마치 남자친구의 그것을 빌려 입은 것처럼 한 치수가 아닌 적어도 두세 치수는 커 보이는 항공 점퍼를 무심히 걸쳐 입는 것이 포인트다. 함께 연출할 옷은 무엇이어도 상관없다. 티셔츠에 청바지든, 블라우스에 롱 맥시 드레스든. 단지 항공 점퍼 밑에 밀리터리 룩만 아니면 된다. 그저 노력하지 않았지만 스타일리시하게 보이는, 에포트리스 시크라는 슬로건에 따르면 되는 것이다.

옷에 무관심한 듯 시크하게 연출하는 것이 포인트

아직 한겨울이 되기에는 시간이 좀 남았으니 가을을 만끽하고자 한다면, 오버올을 꺼내서 입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스텔라 매카트니, 메종 마르지엘라, MSGM, 포에버21, H·M 등이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 소녀들의 잇 아이템이었던 ‘멜빵바지’를 다시 유행으로 불러냈다. 이번 시즌 오버올은 다양한 소재와 디자인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뭐니 뭐니해도 가장 인기와 주목도가 높은 것은 데님 소재의 ‘오버올 진’이기에, 과감하게 묵혀두었던 멜빵바지를 꺼내 입어 보는 것도 좋을 듯. 물론 여기에서도 에포트리스 시크라는 슬로건은 잊지 마시길.

가방도 1990년대에 유행했던 루이비통의 모노그램과 에피 시리즈 복주머니 형태 백, 통칭 버킷 백이라 불리는 스타일이 올해의 트렌드다. 만약 너무 오래되어서 들고 다니기 부끄럽다고 옷장 안에 처박아둔 루이비통의 프티 노에(Petit Noe)를 찾게 된다면, 얼른 세상의 빛을 보게 해야 할 것이다. 단, 복주머니처럼 끈으로 가방 입구를 꽁꽁 싸매 놓지 말고 위가 열리는 오픈 톱 백처럼 그대로 끈을 풀어서 늘어뜨려 메고 다닌다면, 이 또한 이번 겨울에 최고의 아이템이 될 것이다. 큰 듯한 무톤 재킷에 버킷 백을 크로스를 메고 거리에 나간다면 당신은 이미 이번 시즌의 트렌드세터.

그리고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마지막 한 가지. 겨울 코트를 매번 바꿔 입고 다니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기에 한 가지 아이템으로 여러 스타일을 연출하는, 이른바 돌려 입기를 실행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는 패션 상급자들만 실행할 수 있는 것이라 지레 겁을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어 매번 다른 옷을 입기보다 무톤 재킷이면 무톤 재킷, 항공 점퍼면 항공 점퍼 이렇게 하나의 구심점이 되어주는 옷을 갖추고 이를 활용하는 것이 좀 더 쉬운 코디 방법이다.

어쩌면 당신이 가장 빛난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풍요롭고 노력만 하면 미래가 장밋빛으로 물들 것만 같았던 1990년대의 패션이 2015년 다시 돌아왔다. 오늘, 오랜 시간 열지 않고 닫아두기만 했던 옷장 속 깊은 곳을 다시 찬찬히 살펴보며 죽은 패션 아이템에 심폐소생술을 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지 않을지….

A Closet Full of Clothes, Nothing to Wear
Joel Kimbeck뉴욕에서 활동하는 광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젤리나 졸리, 기네스 팰트로, 줄리아 로버츠, 아만다 사이프리드, 미란다 커 등 세기의 뮤즈들과 함께 작업해왔다. 현재 ‘pertwo’를 이끌며 패션 광고를 만들고 있다. ‘레드 카펫’을 번역하고 ‘패션 뮤즈’를 펴냈으며 한국과 일본의 미디어에 칼럼을 기고한다.

디자인 · 최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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