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임식 날 블루 컬러 재킷에 진주 목걸이와 귀걸이를 매치한 다카이치 총리.
일본의 유리천장이 마침내 깨졌다. 지난 10월 21일, 다카이치 사나에(64)가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로 취임했다. 1885년 내각제 도입 이후 140년, 104번째 만에 등장한 정계의 첫 여성 리더다. 일본 사회는 ‘여성 총리’의 행보 하나하나에 시선을 집중했고, 옷차림도 단숨에 뉴스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취임식 당일 다카이치는 선명한 블루 컬러 재킷과 블랙 스커트 차림에 13mm 크기의 담수 진주 목걸이, 귀걸이를 더했다. 그녀가 손에 든 하마노 피혁공예의 ‘그레이스 딜라이트 토트백’은 하루 만에 품절을 기록했다. 왕실 납품으로도 유명한 장인의 브랜드로, 13만6400엔(약 128만 원)에 달하는 이 가방은 ‘총리 백’이라 불리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제작사는 “총리가 가방을 든 지 이틀 만에 한 달 생산량이 완판됐다. 내년 2월까지 예약이 꽉 찼다”고 밝혔다.

‘블루 컬러+진주’는 대처 전 영국 총리가 즐겨 한 조합이기도 하다.
이날의 ‘블루+진주’ 조합은 다카이치 총리의 정치적 지향점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그녀는 자민당 총재 선출 당시(10월 4일)에도 같은 색의 슈트를 착용했다. 10월 20일 일본유신회와의 연립 정권 합의 자리에서도 푸른색 계열 재킷을 입었다. 블루는 영국 보수당의 상징색이자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가 즐기던 색이다. 대처는 1979년부터 1990년까지 11년간 총리직을 수행하면서 3차례나 영국 총선을 보수당의 승리로 이끈 인물. 그녀는 남성 중심 정치 세계 속에서 네이비 슈트와 진주 목걸이로 ‘부드러움 속의 강단’을 시각화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대학 시절부터 대처를 존경해왔다. 고베대 경영학부 재학 중 “대처의 리더십을 닮고 싶다”고 언급했고, 정계 입문 이후에는 스스로를 ‘일본의 대처’로 포지셔닝해왔다. 영국 매체 BBC는 그녀의 취임 직후 ‘Japan’s Iron Lady(일본의 철의 여인)’라는 제목의 기사로 이를 조명했다. 일본 패션 매체인 ‘패션 스냅(Fashion Snap)’ 역시 “다카이치의 복장은 대처 전 총리에 대한 경의이자, 보수 이념의 시각적 계승”이라고 분석했다.
귀를 드러내는 헤어스타일은 경청 의지 담은 것

취임식 날 든 일본 장인 브랜드의 검정색 핸드백은 완판됐다.
1961년 나라현 출생의 다카이치는 대학 졸업 후 명문 정치학교인 마쓰시타정경숙을 거쳐 아사히TV 기자로 일하다 보수 성향의 후지TV 앵커로 활동하며 정치적 색채를 분명히 했다. 1993년 중의원 당선 이후 10선에 성공하며 자민당의 대표적인 보수파로 자리 잡았다.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한 적이 있으며, 한 극우단체 강연에서 그는 한국과 중국을 겨냥해 “우리가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중간에 그만두는 등 어정쩡하게 하니까 상대가 기어오르는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최근에는 대만 유사시 일본이 집단 자위권을 행사해 개입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중일 갈등을 고조시켰다.
내각에서 총무상, 경제안전보장상, 통상산업상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아베 신조의 후계자’로 불려왔다. 아베 전 총리 또한 푸른색 슈트를 즐겨 입었다. 이에 따라 다카이치의 블루는 보수 이념의 연속성과 충성의 상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일본 복식문화 연구자 나카노 가오리는 한 칼럼에서 “일본 문화에서 푸른 옷은 구원의 색, 영웅의 색으로 기능해왔다”며 “일본 축구팀의 상징색이 파란색이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도 ‘(황폐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푸른 옷을 입은 자가 황금 들판에 내려온다’는 대사가 나온다. 이런 문화적 맥락 속에서 다카이치의 블루 슈트는 영웅적 서사를 덧입는다”고 분석했다.

다양한 스타일의 진주 목걸이를 착용한 다카이치 총리. 모친의 고향인 우와지마는 일본 대표 진주 산지로 유명하다.
진주 역시 그녀의 정치적·개인적 서사를 담고 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취임식 당시 다카이치 총리가 착용한 담수 진주 목걸이는 일본 브랜드 미키모토 제품으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일 가능성이 높다. 경찰관이었던 어머니는 다카이치에게 강인함과 규율을 가르친 인물이다. 그녀의 부모 고향인 에히메현 우와지마는 진주 산지로 유명하다. 다카이치 총리는 공식 석상에서 진주 트위스트 초커, 흑진주 목걸이, 두 줄 진주 목걸이, 진주 이어링 등을 번갈아 착용하며 일본을 대표하는 보석인 진주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일본 국민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총리로서의 품격과 자국의 정체성이 느껴진다”는 평을 하고 있다.
그녀의 스타일은 세밀하게 계산된 것이다. 슈트는 주로 일본 디자이너 브랜드 아시다 준을 선호하고, 가방은 하마노 외에도 자라부터 롱샴, 디올에 이르기까지 중저가와 명품을 아우른다. 부드러운 눈썹과 내추럴한 립 메이크업으로 친근한 이미지를 연출하며, 헤어는 단정하고 세련된 커트 스타일을 수년째 유지하고 있다. 그녀의 헤어스타일리스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귀를 드러내는 ‘사나에 커트’는 타인의 말을 경청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블루 컬러와 진주, 단정한 커트는 모두 ‘보수’ ‘정체성’ ‘경청’이라는 그녀의 세계관을 시각화한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의 브로치나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의 스카프처럼, 다카이치 총리의 스타일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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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게티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