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퍼스트 라이드’는 내일은 없다는 듯 무모함으로 똘똘 뭉쳤던 십대 친구들이 이제는 “나중에”를 남발하는 30대가 돼 함께 떠난 여행기를 그렸다. 끝을 보는 놈 태정(강하늘), 해맑은 놈 도진(김영광), 잘생긴 놈 연민(차은우), 눈 뜨고 자는 놈 금복(강영석), 사랑스러운 놈 옥심(한선화)까지. 다섯 친구는 십대 때 그렇게나 가고 싶어 했던 태국으로 여행을 떠난다.
강하늘이 연기한 태정은 성격 빼고 외모와 집안, 학벌 등이 완벽한 엘리트다. 수능 전국 수석을 차지한 바 있는 태정은 뭐든 한번 꽂히면 끝장을 보는 광기 어린 집착남이다. 극 중 강하늘은 특유의 능청스러운 연기력으로 태정의 매력을 마음껏 쏟아냈다.

인터뷰를 위해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강하늘은 “남대중 감독의 작품이라 출연을 결정한 건 아니다”라며 “감독님이 처음 대본을 주셨을 때 개인적인 감정을 빼고 봤는데, 상상도 하지 못한 기발한 시나리오와 장면에 끌렸다”고 말했다.
평소 사람 좋고 예의 바르기로 소문난 강하늘은 작품의 목표를 ‘손익분기점 넘기기’로 잡았다. 그는 “모두가 애썼는데 우는 사람은 없어야 하지 않나. 손익분기점은 넘어야 많은 사람의 노력이 보상받을 수 있다”며 자못 진지하게 말했다.
“할 수 있는 걸 더 잘 하려고 해요”

영화 ‘퍼스트 라이드’ 포스터.
올해 다 한 건 아니고 3~4년간 쉬엄쉬엄 찍었어요. 작품 공개가 올해 몰려서 본의 아니게 다작 배우가 됐네요. 자칫 이미지가 소진될까 걱정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아요. 사람들의 평가에 일일이 신경 쓰다 보면 마음이 힘들더라고요. 올해는 ‘퍼스트 라이드’가 끝이에요. 이제 더는 없습니다(웃음).
끊임없이 배우로서 선택받을 수 있는 비결이 뭔가요.
감독님이 시키는 걸 다 하거든요. 하하.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알아봐주시는 것 같아요. 또 저의 편안한 느낌을 좋아하시는 것 같기도 해요. 저는 솔직히 눈에 띄는 꽃이 아니에요. 눈을 편안하게 해주는 초록 풀 같은 느낌이죠. 저는 무엇이 부족한지 스스로 너무 잘 알아요. 능숙한 걸 더 잘해내기 위한 에너지도 부족하죠. 그래서 한계가 있는 부분을 극복하는 것보다는, 할 수 있는 걸 더 잘해내려고 애쓰고 있어요.
2023년 관객 216만 명을 동원한 영화 ‘30일’을 함께한 남대중 감독과 재회했어요. 남 감독 코미디물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기발하고 비현실적인 상황을 현실적으로 풀어내는 능력이 아닐까 싶어요. 감독님은 항상 과하지 않게, 편하게 연기하라고 이야기하세요. 사실 편안한 상황을 재미있게 연출하려면 몸짓, 말투 등이 과해져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는 상황 자체가 기발하다 보니 오버하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있는 장면이 연출되더라고요. 덕분에 굉장히 편안하게 촬영했습니다.

(손사래를 치며) 저는 그런 느낌의 배우가 아니에요(웃음). 대본에 충실하고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 하는 스타일이에요. 저는 어릴 때부터 카메라와 편집 기술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인지 촬영장에 가면 촬영 장비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렌즈의 종류나 사이즈, 장비 가격 등 궁금한 것들을 감독님께 많이 여쭤봤어요. 또 현장 편집을 보면서 화면 속 제 모습을 관심 있게 지켜봤고요. 이걸 언젠가는 써먹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정말 순수하게 궁금했거든요. 아마 감독님이 제 이런 모습을 보시곤 그런 표현을 해주신 것 같아요.
연출에도 관심이 있는 건가요.
(단호하게) 아니요. 연기부터 똑바로 하겠습니다(웃음).
태정이라는 캐릭터를 현실감 있게 표현하기 위해 집중했던 부분이 있다면요.
단순히 대본을 따르기보다는 태정의 행동과 말투를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어요. 촬영장에서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보탰고요. 공항에서 옥심이 경찰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보며 태정이 현실적으로 조언하는 장면이 있어요. 사실 대본에는 옥심이 끌려가는 모습을 태정이 그저 바라보는 걸로 적혀 있거든요. 그런데 저는 이 장면이 좀 더 태정다웠으면 좋겠더라고요. 그래서 태정의 T(사고형) 성향을 살려 조언하는 신으로 수정하자고 의견을 냈죠. 감독님께서 제 의견을 흔쾌히 받아들여주셨고요.
차기작은 ‘국제시장2’

더할 나위 없이 좋았죠. 저희는 늘 회의를 한 것 같아요. 매 장면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을까?” 하면서요. 서로 솔직하게 의견을 주고받았죠. 개인적으론 각자 한 장면에서 튀어야 하는 총량이 있다고 생각해요. 한 명이 많은 비율을 가져가면 나머지 친구들은 가만히 있거나 서포트를 해줘야 하죠. 저희는 그 부분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또 친한 사람들이 모여서 찍은 작품이라 촬영장 분위기가 더욱 왁자지껄했던 것 같아요. 정말 재미있었어요. 해외 촬영이 70~80%였는데, 동료들과 해외에서 예능을 찍는 기분이었어요.
유명한 집돌이로 알려졌는데, 장기 해외 촬영이 괜찮았나 봐요.
아니요. 정말 집에 가고 싶었습니다(웃음). 한 달 정도 해외에 있었던 건 처음이었는데, 집이 정말 너무 그리웠어요. 매일 밤 ‘집에 가서 내 침대에 눕고 싶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나라가 문제가 아니라, 제 집에 가고 싶었어요.
군 복무 중인 차은우 씨와 함께 홍보를 하지 못해 아쉬울 것 같아요.
사실 첫 촬영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에요. 어쩔 수 없죠. 촬영하면서도 “우리가 열심히 홍보할게. 군대 잘 다녀와”라고 말했어요. 사실 은우와 처음 만날 때, ‘내가 그분을 만나도 될까’라는 생각부터 했어요(웃음). 너무 멋있잖아요. 대화를 해보니 소탈하고 성격도 좋더라고요. “형님 안녕하세요”라고 친근하게 먼저 인사를 하는데 마음이 확 열렸어요. 처음 만난 날부터 친해졌죠. 함께 지내보니 엄청 재미있더라고요.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났어요.
스태프 모습을 영상에 담아 전달할 정도로 팀워크가 끈끈했다고요.
배우는 물론 스태프와도 많이 친해졌어요. 쫑파티를 태국에서 한 번, 한국에서 또 한 번 할 정도였죠. 특히 태국에서 진행한 쫑파티가 재미있었어요. 현지에서 도움을 준 스태프가 정말 순수했거든요. 태국 촬영을 마치고 헤어질 때는 눈물이 나더라고요. 좋은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게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쉬는 날 스태프가 놀고 있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보내드렸죠. 연예인이 아니고서야 누군가가 자신을 찍은 영상을 보는 건 쉽지 않잖아요.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았어요. 다행히 다들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퍼스트 라이드’는 10대 때 만난 친구들이 30대가 된 후 함께 떠나는 좌충우돌 여행기를 그렸다.
제일 많이 고민했던 부분이에요. 이와 같은 독특한 설정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오래 생각했고요. 결론은 ‘기세로 밀고 나가자’였습니다. 개인적으로 태정은 관객을 대변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태정이 공항에서 연민의 인형을 들고 등장하는 도진을 보곤 별말 없이 수긍해버리면 관객들은 몹시 황당해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대본에 없는 액팅을 많이 넣었어요. 인형을 향한 부정적인 느낌을 더 추가하려고 했죠. 관객들이 이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일진 잘 모르겠어요.
실제 친구들을 만나면 어떤 모습인가요.
저는 태정과 비슷한 성격이에요. MBTI가 I(내향형)라 텐션은 낮지만 놀 때는 태정처럼 확실히 놀거든요. 사실 일을 하거나 친구들과 모여 있을 때 발언권이 많진 않아요. 친구들의 대화가 과열될 때 중지시키는 역할 정도죠. 성인이 된 뒤 금복과 오랜만에 만나 어색해하는 모습을 촬영하면서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바쁘다는 핑계로 친구들에게 연락을 잘 못 했거든요. 스스로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물’ ‘퍼스트 라이드’ 등 청춘을 그린 작품에 출연했어요. 하늘 씨의 청춘은 현재 진행형인가요.
아직도 청춘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저는 그저 하루하루 재미있게 살고 있어요. 걱정 하나 없이 산다는 건 거짓말이지만, 걱정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근심, 실수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그저 매일매일 즐겁게 보내려 애쓰고 있어요.
20~30년 후에도 배우를 하고 있을까요.
평생 연기를 하진 못할 것 같아요. 배우라는 직업이 누군가가 찾지 않으면 끝나는 거잖아요. 그 시기는 분명 올 거고요.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나는 과연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있어요. 그런데 우울하지 않더라고요. 다른 일도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저는 스스로를 믿어요. 무슨 일이든 재미있게 할 자신이 있어요. 물론 누군가가 찾아주는 한 계속 배우를 하고 있을 거고요.
차기작은 정해졌나요.
영화 ‘국제시장2’를 준비 중입니다. 아직 촬영이 시작되진 않았어요. 그 전까지 짧은 휴식을 갖다가 ‘퍼스트 라이드’ 홍보 일정이 끝나면 어딘가로 사라질 예정입니다(웃음). 요즘 차에서 가수 거미의 ‘날 그만 잊어요’를 계속 틀어놓고 있어요. 하하.
#퍼스트라이드 #강하늘 #여성동아
사진제공 ㈜쇼박스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