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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종의 기원〉 정유정 작가

사이코패스의 심연을 들여다보다

글 · 김지영 기자 | 사진 · 조영철 기자 | 디자인 · 조윤제

2016. 07. 12

또 베스트셀러가 됐다. 다시 사이코패스가 등장한다. 그러나 이번엔 사이코패스를 온전한 1인칭의 ‘나’로 보여준다. 탄탄한 구성과 치밀한 심리 묘사로 독자들을 흥분시키는 이야기꾼, 정유정 작가가 들려준 신작 소설 〈종의 기원〉에 관한 에필로그.

지난 5월 16일 세상에 나온 정유정 작가의 신작 소설 〈종의 기원〉이 메말랐던 서점가에 단비를 뿌리고 있다. 수영 선수 출신의 법조인 지망생 한유진이 자신의 주변 인물들을 살해하는 과정을 통해 사이코패스의 내면을 치밀하게 묘사한 〈종의 기원〉은 출간 한 달 만에 11만 부가 팔렸다. 이 책의 인기에 힘입어 정 작가의 2011년 베스트셀러 〈7년의 밤〉과 2013년 베스트셀러 〈28〉을 찾는 이도 부쩍 늘었다. 출판사에 따르면 6월 16일 현재 〈7년의 밤〉과 〈28〉은 각각 43만 부, 20만 부의 누적 판매고를 기록 중이다.

문학 장르의 인기가 시들해진 지 오래인데도 불구하고 정 작가의 소설이 출간될 때마다 뜨거운 호응을 얻는 이유가 뭘까. 〈7년의 밤〉을 7번 이상  읽었다는 한 중견 연극배우는 정 작가의 흡인력 있는 문체와 탄탄한 구성에서 그 답을 찾았다. “정유정 작가의 소설을 보고 있으면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할 때와 같은 호흡으로 마주하게 된다. 이토록 심장을 뛰게 한 작가는 처음이다.”

정 작가의 소설은 독자를 무한 상상의 세계로 이끌어 책을 읽고 나면 잘 만든 한 편의 영화를 본 느낌이 든다. 까다로운 충무로 감독들이 정 작가의 소설을 계속 영화화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정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내 심장을 쏴라〉는 2014년 개봉했고, 배우 류승룡과 장동건이 주연을 맡은 〈7년의 밤〉은 5월 말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에 들어갔다. 최근 이 영화의 쫑파티에 참석한 정 작가는 그 자리에서 들은 따끈따끈한 소식으로 인터뷰의 서막을 열었다.

“촬영하는 데만 7개월이 걸렸고 CG 작업이 많아서 그게 앞으로 한 7개월 걸린대요. 그러면 내년 이른 봄쯤 개봉하지 않을까 싶어요. 류승룡 씨와 장동건 씨가 각각 최연수, 오영제 역을 맡았어요. 장동건 씨가 연기 변신을 하고 싶어 악역을 맡았대요. 선하고 착한 역할보다 악역을 할 때 연기가 더 좋았는데, 이번에도 인생 역작이 될 만한 연기를 보여줬다고 해요. 그래서 저도 기대가 커요(웃음).”





세 번의 산고 끝에 나온 작품

▼신작이 나오기를 기다린 팬들이 많아요.

감사한 일이죠. 사실 예전에는 호기심에서 제 책을 보는 게 아닐까 했는데 이번에 예약 판매한 〈종의 기원〉의 초도 물량 5만 부가 금세 동이 나는 걸 보고 정말 좋아해서 제 책을 보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돼 울컥했어요.

▼〈7년의 밤〉, 〈28〉, 〈종의 기원〉 가운데 어떤 소설에 가장 애착이 가나요.


〈종의 기원〉이요. 〈내 심장을 쏴라〉 이후 1인칭 소설은 처음이고, 사이코패스의 내면을 보여주기 위해서 저 스스로 지난 3년 동안 한유진이 돼야 했거든요. 그 때문에 힘들기도 했지만 희열을 느낄 때도 있었어요. 현실에서 나쁜 짓을 하면 감옥 가지만, 소설 속에서 나쁜 짓을 하는 건 감옥 갈 일이 아니잖아요. 또 올해 제가 작가 9년 차인데, 중견이라고 할 수 있는 10년 차가 되기 전 신인 작가로서 쓴 마지막 작품이라 더 애착이 가요.

▼ 결과는 어떤가요.


흡족해요. 이 소설은 이야기가 아니라 그 자체가 한유진이에요. 살인을 계속 저지르는 한유진의 사건 기록이 아닌, 오롯이 한유진으로 보이게 하게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어요. 한마디로 사이코패스의 자기 변론서인데, 소설 중간에 이런 대목이 나와요. ‘도덕이란 말이 되는 그림을 그려 보이는 것이다’라는. 그게 이 소설의 핵심이죠.



▼ 집필 과정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들었어요.

초고를 아들이 유학 간 일본 오사카에서 집필했는데, 내용이 밀도 있게 그려지지 않고 주인공의 실체도 제대로 표현되지 않아 산만한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다 잘라버리고 유진이가 수영 선수 출신이고 약을 먹고 있고 사이코패스인데 자신은 그 사실을 모른다는 뼈대만 남겨 다시 썼어요. 근데 그것도 심심하더라고요. 주인공이 사이코패스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표현된 게 문제였죠. 온전히 사이코패스적으로 사고해야 한다는 것을 세 번째 쓸 때 알았어요.

예를 들어 자신의 기억을 살리기 위해 죽은 엄마 목에 다시 면도칼을 꽂는 장면에서 저는 다섯 번 주저했어요. 엄마를 두 번 죽이는 건데 아무리 악인이어도 이렇게까지 할까 싶어서요. 근데 그건 보통 사람의 사고방식인 거죠. 유진이는 자신의 기억을 살릴 수 있다면 그게 아무렇지도 않은 거예요. 이미 죽었는데, 해결법이 이거밖에 없는데 주저할 이유가 없는 거죠. 이 아이가 처음에 잠깐 주저한 건 엄마를 두 번 죽이는 게 끔찍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죽인 사실을 확신하게 될까 봐 망설인 거예요. 그동안 자신이 영위해왔던 생활이 깨지는 거니까요. 그다음부터는 제가 가지고 있던 세계관과 도덕관을 다 깨부수고 책을 쓸 수 있었어요. 윤리나 타인의 감정에 개의치 않고 가장 쉽고 명백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한유진의 눈과 마음으로요. 그제야 독자들에게 뭔가 보여줄 게 생긴 느낌이었죠.

▼ 특정 대상을 염두에 두고 썼나요.

그렇진 않아요. 한유진은 제 상상력이 만든 인물이에요. 주인공 이름을 한유진으로 한 건 좋아하는 성이 한씨고, 이름은 유진이기 때문이에요. 제가 등단하기 전 쓴 〈마법의 시간〉이라는 소설이 있어요. 거기에도 유진이라는 주인공이 나와요. 중성적인 이름을 좋아해요. 예전에는 야구 선수 이름을 가져다가 한 자씩 바꿔 썼는데, 이번에는 엄마가 수도 없이 부르는 그 이름을 어느 때보다 예쁘게 지어주고 싶었어요. 외모도 훤칠한 훈남으로 표현했고요. 그래야 외모와는 영 딴판인 악인 캐릭터가 더 도드라질 것 같아서요.

▼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사이코패스 테스트라는 게 있어요. 40점 만점에 30점을 넘으면 사이코패스로 보는데, 세계 인구의 2~5%가 사이코패스라고 해요. 나머지 95~98%는 사이코패스 성향이 0~30점 사이에 있는 것이죠. 공감하지 못하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숙고하지 않고, 무책임하고, 자기합리화가 심한 사이코패스의 특징을 우리도 보일 때가 있는 것처럼요. 그래서 이 책이 예방주사였으면 좋겠다고 한 거예요. 사이코패스의 성향은 누구나 조금씩 갖고 있는데 언제 어떻게 발현될지 모르니, 그들의 심연을 들여다보면서 우리 안의 악을 억누르고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그들의 악행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각성하자는 거죠. 아직은 신비의 영역에 있는 악인의 심연을 꿰뚫어보기는 힘들지만 자꾸 주의해서 보고 ‘왜’라는 물음표를 달면 언젠가 그 정체를 알게 되고, 대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하지만 그런 노력 없이 그들을 알아볼 재주는 없죠. 겉모습은 멀쩡하니까. 그들의 심연을 불편하더라도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죠. 문학이 세상을 바꿀 순 없지만 변화를 촉발하는 작은 도화선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책 제목을 다윈이 진화론을 피력한 〈종의 기원〉과 같은 이름으로 붙인 건 사이코패스가 인간의 진화된 모습이라고 봐서인가요.

어떤 심리학 책에서 이런 구절을 본 적이 있어요. ‘호모사피엔스의 다음 인류는 사이코패스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말에 공감하진 않아요. 사이코패스는 다행히 유전적 특징에 의해 오래 살지 못하거나 번식을 많이 하지 못해 지금처럼 인구의 2~5%만 계속 존재할 것 같아요.

‘종의 기원’은 처음부터 정해둔 이름이에요. ‘악의 기원’이라고 하면 너무 무거운 느낌이어서 사이코패스라는 별종의 기원이라는 의미로 ‘종의 기원’이라 붙인 거예요. 그런데 막상 정해놓고 보니 이렇게 스케일이 큰 제목에 맞는 글을 과연 써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기더라고요. 그 무게감으로 더 심혈을 기울인 덕분인지 책이 나왔을 때 부끄럽진 않았어요.

▼ 왜 사이코패스에 그토록 관심을 갖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작가는 다 자기만의 테마가 있어요. 헤밍웨이는 죽음에 대해서, 찰스 디킨스는 가족이나 아버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변주를 했어요. 스티븐 킹은 인간 심연의 숨겨진 공포에 대해서 끊임없이 변주를 했고요. 저는 인간 본성 중 어두운 심연이 변주 테마인 거죠. 하지만 제가 사이코패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책을 쓴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다른 책에서는 악인이 주요 인물이나 주변 인물 수준이었죠.

▼ 인간의 어두운 심연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어릴 때부터 상처를 잘 받는 성격이에요. 제게 무심코 던진 말이나 행동에 상처 받고, 사랑 앞에서 뒤로 물러나는 일이 많았어요. 20대가 다 되도록 그런 상처를 수도 없이 받다 보니 인간은 왜 남에게 상처를 주고 남을 이용해먹을까 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저 역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남의 상처를 보며 ‘쌤통이다!’ 한 적이 있거든요. 상처를 잘 받는 예민한 성격이고, 전직이 간호사니까 일선에서 얼마나 많은 상처의 현장을 봤겠어요. 그래서 인간의 심리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하고, 공부도 하고, 많은 관심을 갖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무엇보다 저는 대중이 원하는 방향이 제시된 가치에 대해선 도전할 마음이 들지 않아요. 해피 엔딩의 감동 스토리 같은 거요. 그런 소설은 저보다 잘 쓰는 분이 많잖아요(웃음).



성공에 연연하지 말고 정말 좋아하는 일 해야 

▼ 언급하신 사이코패스 테스트 결과 사이코패스의 비율이 미국은 인구의 4%, 태국은 0.01%라고 해요. 문명이 발달한 나라일수록 왜 더 높게 나오는 걸까요.

자본주의, 경제와 관련이 있나 보더라고요. 우리나라도 1990년대 중반에야 사이코패스가 사회 표면으로 돌출됐어요. ‘패륜아’ 박한상이 바로 그죠. 강남 오렌지족에 미국 유학파인 박한상은 유산을 노리고 1백억원대 자산가인 부모를 수십 차례 칼로 찔러 죽인 후 불을 질렀죠. 경제가 고도로 발달하면서 이런 사이코패스의 악행이 잦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지금이 중세 시대나 근대사회보다 더 위험하냐 하면 그건 아니에요. 그때는 왕의 말이 곧 법이어서 마녀사냥을 일삼고 잔혹하게 마구 죽이는 것이 예사였지만 지금은 그보다 안전한 법의 테두리 안에 있잖아요. 문명과 경제가 발달할수록 사회를 지배하는 법규범이 더 엄격하게 적용되다 보니 사이코패스 범죄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게 아닌가 싶어요.  

▼ 사이코패스의 정의가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달라진다고 할 수 있을까요.


과학적으로는 달라질 수 있겠죠. 그냥 봐서는 알 수 없지만 요즘은 MRI로 사이코패스인지 아닌지를 가릴 수 있거든요. 뇌 모양을 보고 아는 게 아니라, 급박한 위기 상황을 만들어놓고 뇌 MRI를 찍으면 보통 사람은 뇌 전두엽이 활성화돼 빨갛게 불이 들어오는데 사이코패스는 달라요.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심박수가 절반으로 떨어지고 집중력이 높아지죠. 자기 생각만 하는 사이코패스에겐 위기 상황이 아니니까요. 피부 변화로도 가릴 수 있어요. 다른 사람은 숨이 차오르고 손에 땀이 나는 상황에서도 사이코패스는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대요.

흔히 사이코패스들은 결단력과, 두려움을 모르는 추진력, 그리고 냉철한 판단력을 갖고 있다고 하는데 이것만 놓고 보면 현대 사회에서 요구하는 리더십 덕목과 같잖아요.

그건 긍정적인 면이죠.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서 사회와 인류에 공헌하는 이들도 있으니까요. 이런 사람을 이른바 소시오패스(비범죄형 사이코패스)라고 하는데, 우리 사회에 큰 공헌을 한 위인 가운데 이런 소시오패스가 의외로 많대요. 그런 소시오패스의 성향을 칭송하는 자기 계발서와 사회 분위기에 자꾸 빠져들다 보면 사이코패스 수는 늘지 않더라도 첨예한 경쟁과 갈등이 점점 심화돼 우리 사회가 더 각박하고 냉혹해질 것 같아요.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는 세태가 안타까워요.

성공은 그 자체가 성과일 뿐이지 목표가 돼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런 얘기를 하면 “넌 작가로서 어느 정도 성과를 이뤘으니 그렇게 말하지!’라고 반응하는 이도 있겠지만, 저도 무명일 때 실패를 수도 없이 맛봤어요. 공모전에서 11번이나 떨어졌으니까요. 패배주의에 젖을 때마다 ‘내가 택한 인생이니까 실패해도 받아들여야지’ 하고 생각하면 힘들어도 버틸 수 있더라고요. 제가 만약 성공만을 목적으로 했다면 그 긴 세월을 못 견뎠겠지요. 목적지에 더디 가더라도 자유의지로 정말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작가님을 보면 참 일관된 면이 있어요. 예나 지금이나 소탈한 모습으로 다니고, 서울에서 광주를 오갈 때마다 KTX를 타고, 대형 출판사에서 제시하는 거액의 계약금을 마다하고 늘 같은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계시잖아요.


그냥 저의 가치를 맨 처음 알아줬던 곳에서 책을 내는 게 편해서요. 제가 쓰는 소설의 핵심을 꿰뚫어보는 편집자가 있는 것도 좋고요. 돈에는 큰 욕심이 없는 편이에요. 〈7년의 밤〉을 출간한 후 CF 출연 제의를 두 번 받았을 때도 다 거절했어요. 작가가 책 외에 다른 걸 손에 들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있거든요.


몸과 마음의 충전제, 수영과 캔맥주

▼ 지금도 복싱으로 건강관리를 하나요.

3년 전부터 수영으로 갈아탔어요. 물을 좋아하고 수영 선수로 활약했던 한유진의 생각을 읽으려고 수영을 배웠는데 그 덕분에 물이 몸과 어우러지는 느낌을 알게 됐죠. 수영이 건강에 참 좋아요. 몸이 유연해지고, 복싱으로 근육질이 됐던 부분이 수영하면서 매끈하게 다 빠졌어요.

▼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나름의 방법이 있나요.

운동하고 나서 캔 맥주 하나 먹고 자요. 쭉 벋어서 자고 나면 몸도 머리도 개운해지거든요. 그럴 때 글을 쓰면 집중이 잘돼요. 책 쓸 때는 사람도 안 만나요. 사람 만나면 글을 쓰는 리듬이 깨지니까 그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더라고요.  

▼ 요즘 최대 관심사는 뭔가요.

다음 소설이죠. 그걸 쓰기 위해 어떤 공부를 하는 게 좋을지 생각 중인데, 그 전에 어디를 좀 다녀오고 싶어요. 에베레스트를 다녀오고 싶은데 남편의 반대가 심해서 어려울 것 같아요. 거기서 최근 지진이 나 걱정하더라고요. 사막을 다녀올까, 실크로드를 좀 길게 다녀올까,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고심 중이에요. 몸을 한 달 이상 혹사할 수 있는 트레킹을 하고 싶거든요. 그러고 나면 다음 소설을 집중해서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 자신의 작가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가나 책이 있나요.

인생의 책은 켄 키지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고, 스승은 스티븐 킹이죠. 인간 심연의 공포를 드러내는 방식을 그 사람에게 배웠어요. 독자에게 이를테면 ‘저 문 뒤에 도끼를 든 살인마가 있다’는 위태로운 상황을 다 알려주고 그걸 주인공만 모르게 하면 독자는 계속 긴장감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그게 서스펜스예요. 독자도 모르게 어느 순간 문을 열어 놀라게 하면 그건 서스펜스가 아니라 서프라이즈죠. 스티븐 킹의 책을 보면서 서스펜스의 구조와 인간 심연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주는 방법, 심리 표현의 방식을 깨달았죠. 무엇보다 그 작가는 재미있게 써서 좋아요.

▼ 제2의 정유정을 꿈꾸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두려움과 타협하지 말란 말을 해주고 싶어요. 문단에 들어오면 문단 눈치 보고 상업주의 작가라는 오명 쓸까 봐 두려워하거든요. 작가는 자신이 쓰고 싶은 이야기를 독자가 좋아하게끔 쓰면 된다고 생각해요. 독자가 좋아할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이 끓는 이야기를 독자가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게 쓰라는 것이죠. 그런 이야기를 쓰는 젊은 작가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어요. 문단이 원하는 문학성에 매달리지 말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생각으로 책을 쓰는 작가들이 늘어나면 우리 문학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거라고 생각해요.  

▼ 또 사이코패스 이야기를 쓸 건가요.

악인이 등장하긴 하겠지만 사이코패스 이야기를 더 쓸 것 같진 않아요. 악인이 영웅처럼 그려지는 것도 원하지 않고요. 다음 작품은 재난 이야기가 될 거예요. 스케일이 클 테니 다음에도 원고를 몇 번 엎고 다시 쓰는 과정을 감수해야겠지만, 전작들과는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책을 읽는 독자들도, 이야기를 쓰는 저 역시도(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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