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

레커차 기사로 변신한 ‘탈출’ 주지훈 “선균 형, 평안하길”

두경아 프리랜서 기자

2024. 07. 22

주지훈이 영화 ‘탈출’에서 인생 한 방을 노리는 견인차 기사를 연기한다. 완벽한 슈트 핏을 자랑하던 그는 영화를 위해 옷차림 등 많은 걸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한다. “모델 땐 더한 옷도 입어서, 망가지는 데 두려움이 없어요”

떡진 머리 레커차 기사 된 ‘탈출’ 주지훈

떡진 머리 레커차 기사 된 ‘탈출’ 주지훈

배우 주지훈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배우다. 엘리트 검사, 사이코패스 살인마, 장난기 많은 저승사자 등 일관성 없는 캐릭터들을 아주 영리하게 소화해낸다. 게다가 어떤 역할이든 보는 이로 하여금 팽팽한 긴장감을 유도하며 몰입하도록 만든다. 영화 ‘신과 함께’ ‘공작’ ‘암수살인’,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시리즈, 드라마 ‘하이에나’ 등 흥행작은 많지만 그를 상징할 만한 타이틀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단어로 규정지을 수 없는 배우. 이것이야말로 주지훈에게는 찬사에 가깝다.

그런 기대에 부응하듯, 주지훈은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에서 파격적인 변신을 선보였다. 그는 극 중 인생 한 방을 꿈꾸는 견인차 기사 ‘조박’을 연기한다. 성의 없게 물들인 장발의 헤어스타일, 후줄근한 주유소 점퍼와 해진 청바지까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과거와 현재를 가늠할 수 있는 차림새로 등장한다. 대사 없이도 불쾌한 느낌을 훅 끼치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탈출’은 전형적인 재난 스릴러 영화다. 짙은 안개 속 연쇄추돌사고가 일어나고, 붕괴 위기의 공항대교에 풀려난 통제 불능의 군사용 실험견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극한의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청와대 행정관 정원(이선균)과 그의 딸(김수안), 실험견을 만든 양 박사(김희원) 등이 고군분투하는 와중, 조박은 이들 틈에서 유일하게 계산적인 역할이다. 그러나 마냥 밉지만은 않다. 운전석 옆자리에 늘 반려견을 데리고 다닐 정도로 애틋한 마음을 지녔고, 아수라장 속 슬쩍 훔친 위스키를 위기의 순간 활용하는 기지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조박은 마냥 어둡고 우울한 재난 스릴러 영화에 잠시나마 극의 긴장감을 풀고 재미를 주는 중요한 인물이다.

‘탈출’은 주지훈의 변신 이외에, 주연 배우 고(故) 이선균의 유작 중 하나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끈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그가 스크린 속 삶과 죽음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관객은 묘한 감정을 느낀다. 영화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개봉이 한 차례 미뤄진 뒤, 지난해 5월 칸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돼 기립 박수를 받은 바 있다. 이후 이선균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며 또다시 개봉이 연기됐다가, 7월 12일 개봉해 관객을 만나고 있다.
조박의 헤어스타일과 의상은 주지훈이 직접 제안했다. 어릴 적 길거리에서 많이 봤던 가스 배달부의 이미지를 구체화했다. 그러나 그는 인위적인 변신은 욕심내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망가짐엔 거부감 없다”

주지훈은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러스’에서 레커차 기사 ‘조박’을 연기했다.

주지훈은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러스’에서 레커차 기사 ‘조박’을 연기했다.

망가지는 연기에 거부감이 없어 보여요.
시선의 차이기도 한데, 저는 ‘망가졌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대본을 보고 감독님과 이야기 나누며 구체화하면서 전사를 만들고 대사 톤을 생각해내는 그 과정에서 나온 스타일이에요. 모델 일을 해서 망가짐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없는 것 같아요. 하이패션도 패션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코미디로 보이잖아요.

캐릭터 스타일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나요.
어릴 때 주유소에서 숙식하며 가스 배달하는 형들 모습에서 착안했어요. 얼룩덜룩한 머리카락은 미용실 갈 돈이 없어서 과산화수소 용액이나 맥주로 감은 설정이고요. 장발도 아마 귀찮아서 길렀을 거예요. 10대 땐 이런 방식으로 자아를 표출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꽤 있었거든요. 의상도 따로 있었는데 제가 주유소 점퍼를 입자고 했죠.

떡진 머리도 디테일인가요.
일부러 그렇게 만든 건 아니에요. 세트장에 폭우도 내리고 바닥도 깊어서 뛰다 보면 머리가 떡질 수밖에 없어요. 그럴 때마다 헤어 담당 스태프가 중간중간 손을 보려고 하면 “놔둬야 해. 그게 내 캐릭터야”라고 만류하긴 했죠.

그래서인지 조박이 처음 등장할 때 뭔가 일을 벌일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해요.
배우는 등장하는 순간, 정확히 뭔지는 모르지만 무언가 할 것 같다는 느낌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걸 보면 어떤 감정들이 바로 나와야 한다고 여기는 거죠. 이 영화 안에서 맡은 역할, 갈등이 예상 정도는 되게끔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비주얼 변신 외에도 어떤 노력을 했나요.
촬영할 때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평소보다 한 톤 높인 목소리도 시도해봤어요. 그런데 편집본을 봤더니 재난 영화의 톤&매너와 달리 널뛰고 있더라고요. 제 캐릭터를 놓지 않으면서도 재난물의 진중한 분위기를 고려해 후시녹음으로 톤을 다시 맞췄어요. 다행히 이번 영화는 100% 후시녹음을 해서 캐럭터와 상황에 충실할 수 있었어요.

영화 ‘젠틀맨’에 이어 강아지와 호흡을 맞췄습니다. 노하우가 생겼나요.
예전에는 될 때까지 찍었다면 지금은 기술적인 부분으로 커버할 수 있어요. 앵글을 쪼개서 찍거나 컴퓨터 그래픽도 가능하고요. 이번 영화에서는 70% 정도를 진짜같이 생긴 인형을 사용했어요. 강아지를 클로즈업하는 부분 이외에 제가 안고 달리고 가방에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은 인형이에요. 안고 뛰다 보면 다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말하기도 전에 현장에 이미 준비돼 있더라고요. 실제 강아지와의 노하우라고 한다면, 밀어붙이면 안 돼요. 쉬게 해주고 먹을 것도 주면서 같이 연기해야 해요.

“선균이 형, 침울하기보다 즐겁기를 바랄 듯”

‘탈출: 프로젝트 사일러스’는 고(故) 이선균의 유작이다.

‘탈출: 프로젝트 사일러스’는 고(故) 이선균의 유작이다.

‘탈출’은 주지훈이 이선균과 함께 작업한 첫 영화다. 두 사람은 작품에서 주된 연기 호흡을 맞춰야 해 많은 논의 과정을 거쳤다. 영화의 주연인 이선균이라는 배우에 대해 동료 배우에게 질문하지 않기란 어렵다. 주지훈은 어쩌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선균’에 관한 질문을 흔쾌히 받았고, 담백하게 답했다.

칸영화제에서 영화를 공개했을 당시 두 번 울었다고 했는데, 시사회 때는 어땠나요.‌
사실 언론 배급 시사회 땐 영화를 안 봤어요. ‘다시 봐야 할까?’ 하는 마음도 있었고요. 감독님에게 여쭤봤더니 지난해 완성본에서 6분 정도가 편집됐고, 속도감이 좀 더 빨라진 정도로 바뀌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솔직히 배우들 입장에서 언론 배급 시사회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혹시 칸영화제 때와 달리 함께했던 배우가 없어서 그런 건 아닐까요.
그건 아니에요. 이런 상상도 해봤어요. ‘혹시 나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봤는데, 저라면 동료 모두가 침울하기보다는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물론 형 이야기가 나오면 제게도 일렁이는 감정이 생겨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인터뷰에서 즐겁게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고요. 형도 그걸 바랄 거예요. 저는 진심으로 형의 평안을 빌어요.

두 배우의 연기 접근법이 달랐다고요.
형은 좀 더 학문적이에요. 저는 현장에서 주는 순간의 선물 같은 것들에 의지하고 그걸 좋아하는 타입이라면, 선균이 형은 정확히 이해해야 하고 디테일을 많이 짚는 스타일이죠. 저는 맥락상 이해가 되면 도전해보려 하는 편이고요. 이를테면 저는 순간순간 현장에서 받는 느낌을 즐기는 타입이에요. 만일 차를 뛰어넘는 연기를 한다면, 떨어질 때 ‘쿵’ 하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요. 누군가는 그때 발목에 저릿한 통증이 없다는 듯 뛸 수도 있고, 저릿한 느낌을 생생하게 표현할 수도 있고요. 잘 짜여 나온 장면도 있지만 직접 경험하면서 만들어지는 장면도 생기죠.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은 없었나요.
대본을 보고 예상되는 데미지가 존재하기에 연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30대 때만 해도 이리 구르고 저리 넘어져도 어딘가 막 아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확실히 현장에서 제가 나이 들었다는 걸 느껴요. 예를 들어 낮은 포복 자세로 기어가는 연기를 한다면 예전에는 몇 시간을 해도 괜찮았는데 요즘은 관절 마디가 아파오더라고요. 이번 영화에서도 그랬고요. 그래서 액션 장면이 있을 때마다 관절 보호대를 잘 착용했어요(웃음). 연기를 오래 하려면 되도록 크게 다치는 일이 적어야 하니까요.

배우로서 돋보이는 역할에 욕심이 생길 텐데, 조박처럼 기능적인 역할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취향이 없는 사람이에요. 어릴 때부터 다양한 영화를 보면서 자랐어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 느껴지는 깊이감, 끈적함, 유쾌함 등 모든 걸 좋아하다 보니 어떤 캐릭터든 거부감은 없어요. 캐릭터를 크게 재지 않아요. 기본적으로 저는 최고를 목표로 하지 않고요.

욕심이 없다는 말인가요.
최고가 되기보다는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할 수 있는 데까지 잘됐으면 좋겠고요.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지만, 작품의 흥행에 대해서 부담을 많이 느끼는 편이에요. 그래서 언론 시사회 때 작품을 못 보기도 해요. 날 선 평가를 받지 않을까 해서요. 물론 흥행은 전적으로 관객들의 평가에 달려 있고 제 의지로 그 결과를 바꿀 방법은 없죠. 그렇다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적어도 관객들이 제 연기를 보고 실망하지 않도록 하고, 또 배우로서 열심히 작품을 알리는 거죠. 그래서 이렇게 인터뷰도 아주 열심히 하고(웃음), 홍보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원래 낙천적인 성격인가요.
그런 편이지만 배우 생활하면서 여러 일을 겪었어요. 다행히 30대 이후에 좋은 선배님들을 만나 참 많이 배웠고 그러면서 40대가 됐어요. 돌아보니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그렇게 목을 맬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평가에 너무 몰입해서 병으로 고생하는 분들도 많이 봤어요. 물론 열심히 안 해놓고 좋은 평가를 바라는 건 욕심이죠.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일단 최선을 다하는 데 집중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좋은 영화에 나왔다고 다 좋은 배우가 아니고, 한번 혹평을 받았다고 나쁜 배우가 아니거든요. 이렇게 말하면 해탈한 사람 같지만, 저 사실 주변에 짜증 엄청 냅니다(웃음).

자타 공인 다작 배우의 비결

주지훈은 성실하다. 모델 일을 할 때도 ‘모델계의 공무원’으로 불릴 만큼 열심이었다. 배우가 되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2018년에는 한꺼번에 3개의 작품이 개봉되기도 했다. ‘배우계의 공무원’은 현재진행 중인 작품도, 앞으로 선보일 작품도 많다. 이 중 하반기 방영이 예정된 드라마 ‘사랑은 외나무다리에서’는 그가 오랜만에 선보이는 로맨틱 코미디다.

오랜만에 출연하는 로맨틱 코미디라 기대가 큽니다.
드라마를 촬영하면서 ‘현장이 왜 이렇게 편하지?’ ‘내가 연기를 열심히 하지 않나?’ 하는 마음이 드는 거예요. 생각해보니 학교에서 일어나는 로맨틱 코미디이자 첫 일상 연기였어요. 학교 이사장을 연기하는데, 일어나는 갈등이나 이야기가 일상적이었어요. 그렇다 보니 마음이 편안했어요. 전문 용어도 크게 없고요. 귀여운 드라마 찍으면서 몽글몽글하고 귀여운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 작품의 셀링 포인트는 ‘퇴근하고 집에 와서 맥주 한 잔 마시며 편안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예요.

최근, 드라마 ‘궁’ 리메이크 소식이 들리면서 2006년 데뷔작 영상이 다시 회자되더라고요.
3년 전만 해도 그때 영상을 못 봤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나이가 들면서 이제는 3인칭으로 보게 되더라고요. 당시 연기를 잘했고 못했고를 떠나서 지금 보면 아들 같아요. 거의 20년이 다 돼가잖아요. 저랑 아버지랑 나이 차이가 22세인데, 아버지가 저를 보는 느낌이 그랬을까요. 그러면서 깨달은 건데, 많은 분이 ‘궁’의 이신을 푸릇푸릇함이 있어서 사랑해주셨던 것 같아요. 저도 길 가다가 아이들을 보면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비슷한 거 아닐까요.

20년 전과 외모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자기 관리는 어떻게 하고 하나요.
아니에요. 그때보다 18kg이 늘었는걸요. 모델 때와 비교하면 거의 30kg 차이가 나고요. 운동은 계속해요. 조각 같은 몸을 만드는 걸 의식하기보다는 배역에 맞는 상태를 빨리 만들 수 있는 몸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복근이 갈라져 있는 몸이 필요한 역할이면 빨리 그 상태를 만들어야 하고, 120kg 이상 살을 찌워야 하는 역할이면 거기에도 빨리 맞출 수 있어야죠. 저는 헬스나 복싱 같은 고강도 운동을 꾸준하게 하면서 일정 수준의 몸을 유지하고 있어요. 한번 운동할 때 거의 토하기 직전까지 세게 하는 편이에요.

다작의 비결이 뭔가요.
제작자나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과 격의 없이 어울려 이야기하는 걸 즐겨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작품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요. 보통 작품 진행이 늦어지는 것은 배우의 출연 결정 때문인데, 저는 수시로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서로의 사정을 다 알아서 조율하기 편해요. 그러다 보니 준비 기간이 짧다고 느낄 수 있지만, 이전부터 캐릭터가 쌓여 있어서 가능한 것 같아요.

연출에 대한 욕심은 없나요.
이미 하고 있는데 아직 공개는 안 했어요. 대본 작업은 했고, 플랫폼에 돌리고 투자 배급사에 보여줄 수준이 된 것이 두 작품 정도 돼요. 계획상으로는 내년쯤이면 촬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나는 오컬트 장르고 또 하나는 역사 액션 드라마입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나요.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지 않아요. 어떤 타이틀이 정확히 생기는 것도 물론 영광스러운 일이겠죠. 저도 분명 그런 타이틀로 사랑하는 배우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진정으로 원하는 건, 흘러가는 배우가 되면 좋겠어요. 조박이면 조박으로, 이사장이면 이사장으로요. 일을 하다 보니까, 배우는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의 모습에 스며들어 있더라고요.


#주지훈 #이선균 #탈출 #여성동아

사진제공 CJ ENM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