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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미스코리아‧특전사‧국가대표 출신 ‘갓생러’ 우희준

윤혜진 객원기자

2024. 05. 29

섭외를 하면서 어떻게 불러야 할지 고민했다. 직업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다. 최근 에세이를 펴낸 우희준 씨는 “항상 현재에 집중해 살고 있다. 오늘은 작가로 불러 달라”며 웃었다. 

1994년생, 올해로 서른 살인 우희준 작가는 공대와 국대(국가대표), 군대를 다 거쳤다. 대학 생활을 하며 인도 전통 스포츠인 카바디 국가대표 선수로 2016년 부산 아시아여자카바디선수권대회 우승, 2018년 아시안게임 5위라는 훌륭한 성적을 거뒀다. 또 대학교 후배들이 장난 삼아 지원한 2019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선으로 뽑혀 그해 ‘미스 어스’ 대회에 한국 대표로 나가 2관왕을 차지했다. 이후 학군사관후보생(ROTC)을 거쳐 현역 장교로 입대해 여군 소위 최초로 특전사 부대에 배치되고 통역장교로 레바논 파병도 다녀온 그는 돌연 지난해 6월 특전사 중위로 전역했다. 카바디 국가대표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하기 위해서였다. 비록 원하던 메달은 목에 걸지 못했지만 실패한 도전은 아니다. 조금 더 단단해지는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 에세이 ‘순간을 산다’를 펴내며 작가라는 새 타이틀을 얻었다.



인터뷰를 위해 만나기로 한 날 그는 아무나 쉽게 소화하기 힘든 ‘청청’ 패션으로 등장했다. 스피드와 근력이 필요한 카바디에 20대를 바친 만큼 첫인상에서부터 건강미가 돋보였다. 그런데 몇 마디 나눈 후 알았다. 진짜 건강한 아름다움은 ‘강철 멘털’에서 나오는 것이란 걸.

내 안의 부족함 채우기 위해 계속 도전

2023년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출전 당시. 카바디는 럭비와 레슬링, 술래잡기를 합친 듯한 팀 스포츠다.

2023년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출전 당시. 카바디는 럭비와 레슬링, 술래잡기를 합친 듯한 팀 스포츠다.

아무리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지만, 어쩜 큰 선택의 기로에 계속 설 수 있나요.
돌이켜보면 다양한 일을 해보고 싶어서라기보단 부족한 점이 많아서, 부족함을 느낄 때마다 더 도전하게 됐던 것 같아요.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간 것도 인지도가 부족한 카바디 종목을 홍보하기 위해서였고, 전역하고 아시안게임에 도전한 것도 유독 아시안게임 메달만 없어서였거든요. 만약 제가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거나 부족함을 알지만 그냥 넘어가려 했다면, 또 아예 부족하다는 걸 모르고 지냈다면 그냥 흘러가는 대로 단조롭게 살았을 거예요.

선택지를 앞에 두고 굉장히 빨리 결정하는 편인데 비결이 있나요.
저는 사실 어떤 기회가 왔을 때 그렇게 길게 고민하지 않아요. 후배들이 저도 모르게 지원한 미스코리아 대회 예선을 통과했다고 연락받았을 때도 하루 고민하고 본선에 나가기로 결정했죠. 이런 저를 혹자는 섣부른 선택을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 선택을 하기 전에 이미 평소 제 부족함을 인지하고 대비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해서 어렸을 때부터 저에 대한 탐구를 많이 했거든요(웃음). 제가 잘하는 것, 못하는 것,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다 알고 있으니까 도전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겠다는 판단이 상대적으로 빨리 서는 거 같아요.



가장 오랫동안 고민한 일은 무엇이었나요.
카바디를 하기로 결심하기까지 한 2주에서 한 달 정도 고민한 거요. 제가 어려서부터 육상과 스턴트 치어리딩 선수를 하긴 했지만 운동선수를 업으로 삼아야겠단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거든요. 그런데 20대 초반 인도 여행 중 우연히 알게 된 카바디는 누구의 권유도 아닌 오로지 제가 선택한 거라 어떻게 보면 제 도전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제 신체적 능력과 잘 맞는 종목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실제로 지금까지 가장 오랫동안 이어오고 있는 도전도 카바디고요.

연고도 없는 부산 대한카바디협회에 직접 찾아갔다니, 추진력이 대단합니다.
제가 원래 궁금한 건 바로 확인해야 하는 성격이에요. 당시 인도 다음 여행지가 정해져 있었는데 비행기 티켓을 취소하고 바로 귀국해 협회를 찾아갔어요. 선수가 되겠다기보다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종목’이라고 생각한 그 예측이 맞았는지를 빨리 확인해보고 싶었어요.

한 가지 하기도 쉽지 않은데 ‘멀티플레이’를 하는 이유가 있나요.
멀티플레이어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연관이 없는 일을 벌인 적은 없어요. 어떤 일을 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걸 찾다 보니 시간과 노력이 더 들더라도 하게 된 거죠. 예를 들어 제가 고등학생 때 치어리딩 선수로 지내면서 영어를 배우기 위해 미국 유학을 다녀온 이유는, 국제 대회에서 영어로 수상 소감을 하지 못해 창피했던 기억이 있어서예요. 실제로 유학을 다녀와 출전했던 국제 대회에서 팀 대표로 통역을 해냈을 때, 이런 자부심이 경기 결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줬죠.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을 찾아 채우려면 평소 시간 활용을 잘해야겠어요.
일의 우선순위를 둘 때 매 순간에 집중하다 보면 답이 나와요. 이번에 낸 책도 한 50페이지 정도 썼을 때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니까 ‘순간’이란 단어가 몇십 번이 나오더라고요. 나라는 사람이 정말 ‘순간’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과거에 했던 잘못에 매여 있거나 미래에 대한 걱정을 사서 하다 보면 지금을 살 수가 없어요. 경기하다 보면 실점도 하고 실책도 합니다. 전반전에 있었던 실수를 계속 생각하면 후반전에 아무리 좋은 기회가 와도 제 기량을 펼치지 못해요.

연예계 진출 기회 대신 힘든 군 생활 택한 이유

우희준 씨를 만난 날은 5월 8일 어버이날이었다. 얘기는 자연스럽게 가족으로 흘렀다. 그의 아버지는 태권도 선수 출신으로 태권도장을 운영하다 형사가 됐다. 성폭행범을 쫓다 칼에 찔린 적도 있지만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아버지를 보며 그도 비슷한 꿈을 키웠다. 미스코리아 당선 후 여러 연예 기획사에서 활동 제의가 들어왔지만 모두 거절한 것도 그 때문이다. 후회는 없다. 오히려 겸직 금지 사유로 마지못해 전역한 게 가장 아쉽다고 한다.
그는 “여군은 대부분 그만두고 싶어지면 아예 퇴역을 하는 편인데, 일부러 예비군 의무가 있는 전역을 택했다”며 “군과의 인연을 끊지 않고 언제라도 군에서 나를 필요로 한다면 나갈 준비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우 씨는 올 1월, 1차 예비군 훈련도 받았다.

이 모든 도전을 다 해보는 동안 부모님이 반대한 적은 없나요.
어머니는 제가 군대 가는 걸 반대하긴 하셨어요. 다칠 수도 있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니까요. 하지만 끝내 제 순간에 집중하기 위해 어머니의 매일매일을 걱정하게 만들었죠. 생각해보면 부모님이 희생해주신 덕분에 제가 제 삶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구나 싶어요. 이제부터라도 부모님이 온전히 자신들만의 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제가 노력해야죠.

아버지는 어떤 분이신가요.
제가 아버지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았어요. 태권도장을 운영하던 아버지는 서른 살쯤, 뒤늦게 형사가 되셨어요. 집에 못 들어오는 날도 많았지만 항상 저에게 “아빠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두 발 뻗고 잘 수 있는 거야”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런 말을 자주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도 어떤 일을 하든지 우리 가족, 우리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어머니도 대단하신 게, 그런 아버지를 뒤에서 묵묵히 지원해주셨어요. 제가 뭔가 도전하려고 할 때 기다려주셨고요. 그래서 더 빨리 판단을 내릴 수 있었고 꼭 성공해야겠다는 동기 부여가 됐어요.

부모님이 공부하란 말씀은 안 하셨나요.
거의 안 하셨어요. 아마 부모님이 공부해라, 뭐 해라 일일이 방향을 정해주셨다면 오히려 삐뚤어졌을 거예요. 하지만 부모님은 한 번도 저에게 정답을 알려준 적이 없어요. 해보고 싶은 걸 해보라고 던져준 뒤 제가 헤매고 있으면 힌트를 주거나 묵묵히 지켜보셨죠. 제가 잘못된 선택을 할 때도 잘못했다고 먼저 말씀하시기보단 제가 직접 경험해보고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셨어요. 가끔 부모님께 혼난 건 예의 없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에요. 올바른 행동과 공손한 표현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니까요.

조금은 남다른 길을 걷는 것에 대해 불안함은 없었나요.
불안하단 감정을 느껴본 적은 딱히 없어요. 다른 사람에게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라서요. 사람들이 간혹 저에게 “그 길이 아니다”란 말을 하더라도 저는 제가 택한 길이 맞단 확신이 있었어요. 오히려 열에 아홉이 저와 다른 선택을 하더라도 저 혼자 그 아홉을 설득하려는 시도를 많이 했죠. 이런 노력이 쌓이니까 타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때도 크게 어렵거나 힘들지 않았어요. 저를 탐구했던 방식 그대로 방향만 전환해서 상대방에게 노력을 쏟아부으면 되니까요.

그래도 돌이켜보니 아쉬운 순간이 있다면요.
아무래도 군대가 가장 아쉬워요. 제가 군이 싫어서 그만뒀다면 아쉽진 않을 거예요. 전역 지원서를 썼을 때가 중위 2년 차인데, 원래는 장기 복무를 지원하려고 했었어요. 우연히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코로나19로 연기돼 다음 해에 열린다는 뉴스를 접하고 생각해봤죠.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4년 후인데, 제가 대위로 진급해 더 많은 사람을 통솔하고 지휘할 때인 거예요. 제 꿈을 위해 많은 부대원을 내버려두고 나가는 것이야말로 정말 무책임하잖아요. 고민 끝에 선수로서의 종지부를 찍어보자는 마음에서 결국 아시안게임을 택했지만, 겸직이 허락됐다면 전역하지 않고 했을 거예요. 여전히 아쉽죠.

다시 군으로 돌아갈 생각도 있는 건가요.
제가 알기로는 전역을 한 시점부터 3년 안에는 재임용이 가능해요. 올해는 작가라는 새로운 직업에도 도전했고, 강연을 통해 제 스토리를 궁금해하는 분들의 순간에 들어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릴 수 있는 한 해를 보내려 해요. 그런 도전을 지속하다가도 군에 대한 갈망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선택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빨리 도전해서 실패도 빨리해보는 게 나아요”

2019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때 모습(왼쪽). 파병 기간에 한국군 최초 베스트 솔저상, 국방부 장관 해외파병 유공 표창 등을 받았다.

2019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때 모습(왼쪽). 파병 기간에 한국군 최초 베스트 솔저상, 국방부 장관 해외파병 유공 표창 등을 받았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도전을 한 삶의 방식이 어떻게 보면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한 걸로 오해를 살 수도 있잖아요.
흔히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추려면 10년 이상을 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10년을 못 채우고 다른 길을 가면 끈기가 없다는 말을 하는 분들이 있는데, 저도 그런 얘길 들어봤어요. 그런데 시간 투자에서 오는 전문성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고민만 할 때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 도전할 수 있는 면이 저만의 전문성이라고 생각해요. 끈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제 부족함을 채우는 도전을 통해 더 전문성을 갖춰나가는 중이에요.

연애 중인가요. 바빠서 연애 포기했다는 사람들도 많죠.
지금은 잠시 쉬고 있어요. 연애도 어떻게 보면 굉장히 유의미한 도전 아닌가요(웃음). 아무리 호감 가는 이성이 나타나도 용기 내 고백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사람도 저와 비슷한 감정을 가져야 이룰 수 있는 결과물이니까요. 연애도 제 인생에서 많은 교훈을 주는 도전 중 하나였어요. 그래서 지금은 좀 더 준비하고 도전을 이어가려 합니다. 안 할 이유가 없잖아요. 하하.

그럼 시간 여유가 있을 때 주로 무얼 하나요.
혼자 운동하러 가거나 집에서 잠을 자요. 조용한 카페에 앉아서 사람 구경도 하고요. 사실 요즘 쉬는 날이 별로 없어요.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강의하고, 격주로 국방FM 라디오 프로그램과 아리랑TV 영어 뉴스를 진행하러 갑니다. 그 외 학군단 홍보대사를 맡고 있어서 거의 매주 한 번은 KTX를 타요. 아, 공부하러 대전에도 매주 갑니다.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이것만큼은 꼭 원하는 순간이 있나요.
매 순간이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나중에 뭔가 이루면 좋겠다’는 바람이 없어요. 물론 당장 내일 해야 할 일은 있겠지만, 제가 오늘 집에 가서 어떤 부족함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고 또 어떤 새로운 일을 하게 될지 모르죠. 1년 뒤, 10년 뒤를 정해놓지 않고 사는 게 더 다이내믹한 삶으로 이끌지 않을까요. 도전은 해봐야 알아요. 알지만 그래도 한 걸음 내딛는 게 너무나 어렵다면 성취에 대한 접근을 다르게 해보세요. 예를 들어 허들을 넘어야 하는데 못 넘었다고 칩시다. 못 넘은 걸 누군가는 실패라고 볼 수 있겠지만 이 경험을 통해 도약을 더 빨리해야 하는지, 애초에 너무 무리한 높이에 도전했는지 알 수 있어요. 이렇게 알아낸 것도 실패를 통한 성취라고 생각해요.

우희준 씨는 올해 경민대학교 겸임교수로 임용됐다. 주중에는 군인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군사법, 국방체육 등을 가르치고 주말에는 대전에 있는 카이스트 지식재산대학원 석사과정 학생으로 돌아간다. 올 하반기가 되기 전에는, 매년 진행되는 카바디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여할지 말지 또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을 것이다. 어떤 길을 택할지는 지금은 모른다. 그 순간의 그가 결정할 일이고, 지금은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다. ‘갓생러’가 사는 법이다.

#우희준 #카바디 #국가대표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사진제공 우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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