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 맞는 집밥 한 끼에 모든 게 순해지고 다 괜찮아질 때가 있다.”
천덕꾸러기 국민 고모로 알려진 배우 양희경(69)이 집밥 에세이 작가로 돌아왔다. 약 70년간 저자가 맛보아온 먹거리와 온몸으로 부딪히며 사랑해온 인생 이야기가 담긴 책 ‘그냥 밥 먹자는 말이 아니었을지도 몰라’다. 경기 파주 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의 한 카페서 그를 만났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언제나 같지요. 1년에 한 편 정도 드라마를 찍고 내레이션도 간간이 해요. 올 초까지는 영화를 찍었어요. 아직 작품 이름을 알려드릴 순 없지만 내년 가을쯤 개봉할 것 같네요. 4월에 에세이도 냈고요.
주제가 음식입니다.
저는 본의 아니게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부엌일을 도맡고 있어요. 고등학생에서 배우로 그리고 부모로 역할이 바뀌는 동안 부엌일은 변하지 않았어요. 부엌은 제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밀접하고 친숙한 공간이에요. 제 삶과 부엌서 나온 음식을 떼놓을 수 없는 이유지요.
일찍이 부엌일을 시작하셨네요.
열일곱 살이 되던 해 집안이 풍비박산 났거든요. 엄마가 보증을 잘못 섰죠. 언니가 돌아가신 아빠를 대신해 가장 역할을 맡아 통기타 가수가 됐고 제가 집안 살림을 도맡아야 했어요. 매일 식구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었어요.
책에서도 삶과 음식을 함께 이야기합니다.
저희 가족은 다 함께 모이면 “이건 네가, 이건 내가” 하면서 부엌일을 분담해요. 음식 각각에 가족과의 에피소드가 얽힌 이유죠. 아들들은 어렸을 때부터 저를 따라 부엌에서 살아서 부엌일을 낯설어하지 않아요. 배가 고프면 제 입맛에 맞게 음식을 만들어 먹을 줄 알죠. 맛도 좋고요(웃음).
“나이 먹어도 줄지 않는 부엌일을 즐겁게 ‘부엌 놀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에게 부엌일은 꼭 ‘놀이’ 같다. 50년 넘게 해온 부엌일이 재미있지만 보상은 없는 게 꼭 놀이와 닮았다고. 그렇게 즐긴 덕인지 그의 에세이에는 레시피가 자유분방하게 실려 있다. 에피소드 하나에 3~4개의 ‘내 맘대로’ 집밥 레시피가 따르는 식이다. 기운이 없는 날엔 시원하고 깔끔한 ‘생대구 맑은탕’을, 마음이 답답한 날엔 차갑고 아삭한 ‘숙주와 미나리 생채’를 추천한다. 속상한 일로 풀이 죽어 있으면 “일단 밥부터 먹고 생각해!”라며 밥 한술 권하는 우리네 엄마 모습이다.
다양한 레시피가 나옵니다.
저는 시간이 부족한 엄마였어요. 한창 바쁠 때는 (아이들에게) 한 번에 다양한 재료를 먹여야 했어요. 2가지 나물을 각각 무칠 시간이 부족하니 합쳐서 ‘일타쌍피’ 메뉴를 개발하는 식으로요. 또 항상 새로운 걸 시도하려 했지요. ‘이 재료와 저 재료가 만나면 무슨 맛을 낼까?’ ‘얜 어떤 재료와 어울릴까?’ 생각하면서 요리했죠. 하나의 음식만 계속 만들면 지루하잖아요. 매일 하던 잡채에 새로운 재료 하나를 넣으면 색다른 메뉴가 탄생해요. 음식 전문가들은 이상하게 볼 수도 있겠네요(웃음).
그래서 ‘캐슈너트 카레’ ‘봄동 느타리 알리오올리오’ 같은 메뉴가 나왔군요.
처음엔 ‘된장찌개’ ‘무생채’ ‘콩나물무침’ 같은 단순한 음식만 할 줄 알았어요. 그렇게 시작해서 점점 가짓수가 늘었죠. 결혼 전엔 외할머니와 친정 엄마로부터, 결혼하고 나선 시어머니에게 배운 덕이 커요. 솜씨가 좋은 분들의 음식을 먹으면서 자랐으니 그 맛을 따라 하게 돼요. 하나의 일을 수십 년 하면 베테랑이 되듯, 저도 베테랑까진 아니지만 네 식구 밥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할 수 있는 정도가 됐네요.
주변서 ‘솜씨 좋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을 것 같아요.
입맛은 참 주관적이잖아요. 제 솜씨를 좋고 나쁨으로 한정 짓기 어렵죠. 여럿이 맛있는 음식이라 해도 모든 사람에게 맛있다는 법은 없거든요. 제 가족이나 지인들은 제 음식 먹기를 좋아하니 ‘입에 맞는구나’ 정도로 생각해요.
에세이 곳곳에서 40년째 무대와 촬영장을 오간 베테랑 배우와 엄마를 오간 그의 세월이 묻어난다. 그는 “‘뭐 해 먹지?’ 하는 걱정은 단순히 음식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어찌 살지에 대한 고민이었다”고 말한다. 스스로를 먹이기 위해 차리는 집밥은, 밥이라는 삶의 동력을 본인에게 대접하는 셈이니 ‘나를 위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정신력으로 버티는 건 꼭 그 값을 치른다. 몸의 되갚음을 고스란히 받으며 살아내야 한다. 하지만 끙끙 앓으면서도 무조건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간다. 결국은 나를 위해 하게 되는 ‘부엌 놀이’다.” (‘그냥 밥 먹자는 말이 아니었을지도 몰라’ 중)
순하고 건강한 레시피가 대부분입니다.
자극적인 음식을 잘 못 먹어요. 어릴 때부터 잘 체하고 탈 나는 체질이었죠. 워낙 몸이 약해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제 건강을 걱정할 정도였답니다. 까다롭게 먹지 않았다면 전 이미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어요. 지금은 어릴 때에 비하면 엄청 건강하죠.
특히나 아끼는 식재료가 있다면요.
나물이요. 평소 채소나 해산물을 즐겨 먹어요. 아들들은 이런 제 밑에서 자랐어도 육류를 제일 좋아하더라고요(웃음). 직접 장을 보는 것도 제겐 큰 즐거움이에요. 시장 가는 게 힐링이죠.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보면 만면에 미소가 지어져요. 식재료라면 뭐든지 직접 보고 사요. 남대문시장을 주로 가는데, 옷도 팔지만 식재료 매장도 엄청 많아요. 당연히 단골집도 있죠.
코로나19 팬데믹은 그의 삶에도 영향을 줬다. 이전에 비해 반 이상 줄어든 작품 활동에 매일 동네 산책을 시작한 것. 하루에 대한 크고 작은 감상을 기록하기 위해 SNS에 짧은 글과 사진도 올렸다. 꼬박 2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올리다 무릎이 고장 나버렸다. 아무래도 사진 없는 SNS는 앙꼬 없는 찐빵, 그는 수기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SNS에 매일 일기를 쓰셨습니다.
지금도 써요. 글 쓰는 공간을 핸드폰에서 종이로 옮기니 생각이 예전처럼 잘 떠오르지 않아요. 습관이라는 게 참 무서워요. 그런데도 쓰는 버릇을 들이고 있어요. 매일 그날 생긴 일, 만난 사람, 길에서 마주친 개나 고양이의 모습을 기억해 기록해요. 일기는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대요.
매일 쓴 일기 덕인지 에세이도 편하게 읽힙니다.
주변에서도 입을 모아 그 점을 칭찬해줬어요. ‘다행이다!’ 싶었죠. 학문적이지도 않은 에세이를 어렵게 썼으면 어쩌나 걱정이었거든요. 물론 학문도 깊지 않아 그렇게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하지만요. 제가 쉬운 사람이기도 하고요(웃음).
친언니인 양희은 선생님도 2년 전 책을 출간하셨어요.
그때 저도 책을 쓰고 있었어요. 어느 날 언니가 본인 원고를 봐달라는 거예요. 그러다 책이 나왔고 베스트셀러가 됐죠. 당시에 저는 원고 작업을 멈췄어요. 같은 때에 발표하는 건 아니다 싶었죠. 형보다 나은 아우 없잖아요. 그래서 2021년 5월쯤 출간하려던 이 책이 올해 4월까지 미뤄졌네요.
다음 에세이를 기대해도 될까요.
아무것도 계획한 바는 없어요. 세상일이 계획한 대로 되는 것도 아니니 저는 항상 ‘무계획’모드로 살아요. 다만 주어진 일이라면 200%, 300%로 최선을 다하는 게 제가 인생을 사는 방법이지요.
양희경의 기록 방법이 일기만 있는 건 아니다. 5년 전 한 예능 프로그램을 계기로 유튜브 채널 ‘양희경의 딴집밥’을 열었다. 집밥 요리를 기록으로 남겨 아이들에게 주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양희경표 집밥 레시피를 모아 올리는 곳으로, 둘째 아들 승현 씨의 도움을 받아 ‘놀멍 쉬멍(놀면서 쉬면서)’ 운영하고 있다. 언제나 강조하는 부담 없고 편한 요리법 덕에 조회수도 많다. 그가 자부하는 밥도둑 ‘고추지름장’ 레시피 조회수는 무려 60만이 넘는다. 그는 “‘직접 해 먹으니 너무 맛있다’는 댓글이 달릴 때 가장 기쁘다”고 말한다.
요리법을 글과 엮어낸 이유가 있다면요.
유튜브와 비슷한 마음으로 썼어요. 에세이를 읽다 ‘한번 만들어봐야겠는데?’ ‘너무 간단한데?’ 싶을 때 바로 따라 하라는 의미에서 글에 어울리는 레시피를 달았어요. 이 책은 양희경의 집밥 에세이잖아요. 흔한 재료, 흔한 요리법으로 이런 집밥을 만들 수 있단 걸 알려주고 싶었죠.
책에는 정확한 계랑법이 적혀 있지 않습니다.
요리는 어렵게 시작하면 안 돼요. 하나의 요리를 적어도 세 번은 해봐야 무엇이 덜 들어가고 더 들어갈지 직접 알게 된다고 생각해요. 조금씩 발전하는 게 요리잖아요. 요리 교실을 다녔다는 지인도 지금 할 수 있는 음식은 1~2가지밖에 없다면서 이 책의 레시피처럼 방법이 간단했으면 이미 요리 베테랑이 됐을 거라 하더라고요. 밥만 있으면 양배추를 쪄서 된장에 찍어 먹기만 해도 요리라 생각해요.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요.
집밥을 잘 못 먹고 다니는 사람에게 권해요. 자주 사 먹고, 시켜 먹는 사람이죠. 팬데믹으로 본의 아니게 배달 음식이 비일비재했으니까. 그렇게 먹어서는 절대 건강을 유지할 수 없어요. 제가 걱정하는 건 그거죠. 아프지 않고 늙어야 하는데 다들 이렇게 먹어서 어떻게 건강을 유지하겠어요. 저도 건강한 음식 덕에 원래 제 수명보다 훨씬 더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건강한 음식은 몸의 병도 고치지만 마음의 병도 고치죠.
오늘 저녁 메뉴는 뭔가요.
딱히 정해두지 않아요. 냉장고를 열어보고 ‘이 재료가 있으니 이걸 해봐야겠다’라고 그때그때 생각해요. 냉장고 털이를 하는 날도 있고, 장을 봐오는 날도 있죠.
6월, 초여름을 위한 추천 메뉴가 있다면요.
제철 식재료가 제일이니 열무김치를 추천해요. 저는 살짝 더워지는 이즈음이 되면 열무가 자연스레 생각나요. 조만간 총각김치와 오이소박이도 담가야겠어요. 산나물이 많이 날 때니 나물을 무치거나 데쳐 먹는 것도 좋겠네요. 밥 지을 때 넣으면 나물밥이 되고요. 일타쌍피지요. 밥도 먹고 나물도 먹고!
#양희경 #그냥밥먹자는말이아니었을지도몰라 #집밥에세이 #여성동아
사진 홍태식
사진제공 달(그림 대니 임)
천덕꾸러기 국민 고모로 알려진 배우 양희경(69)이 집밥 에세이 작가로 돌아왔다. 약 70년간 저자가 맛보아온 먹거리와 온몸으로 부딪히며 사랑해온 인생 이야기가 담긴 책 ‘그냥 밥 먹자는 말이 아니었을지도 몰라’다. 경기 파주 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의 한 카페서 그를 만났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언제나 같지요. 1년에 한 편 정도 드라마를 찍고 내레이션도 간간이 해요. 올 초까지는 영화를 찍었어요. 아직 작품 이름을 알려드릴 순 없지만 내년 가을쯤 개봉할 것 같네요. 4월에 에세이도 냈고요.
주제가 음식입니다.
저는 본의 아니게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부엌일을 도맡고 있어요. 고등학생에서 배우로 그리고 부모로 역할이 바뀌는 동안 부엌일은 변하지 않았어요. 부엌은 제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밀접하고 친숙한 공간이에요. 제 삶과 부엌서 나온 음식을 떼놓을 수 없는 이유지요.
일찍이 부엌일을 시작하셨네요.
열일곱 살이 되던 해 집안이 풍비박산 났거든요. 엄마가 보증을 잘못 섰죠. 언니가 돌아가신 아빠를 대신해 가장 역할을 맡아 통기타 가수가 됐고 제가 집안 살림을 도맡아야 했어요. 매일 식구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었어요.
책에서도 삶과 음식을 함께 이야기합니다.
저희 가족은 다 함께 모이면 “이건 네가, 이건 내가” 하면서 부엌일을 분담해요. 음식 각각에 가족과의 에피소드가 얽힌 이유죠. 아들들은 어렸을 때부터 저를 따라 부엌에서 살아서 부엌일을 낯설어하지 않아요. 배가 고프면 제 입맛에 맞게 음식을 만들어 먹을 줄 알죠. 맛도 좋고요(웃음).
나에게 떠먹이기 위한 놀이
에세이 삽화 중 일부.
그에게 부엌일은 꼭 ‘놀이’ 같다. 50년 넘게 해온 부엌일이 재미있지만 보상은 없는 게 꼭 놀이와 닮았다고. 그렇게 즐긴 덕인지 그의 에세이에는 레시피가 자유분방하게 실려 있다. 에피소드 하나에 3~4개의 ‘내 맘대로’ 집밥 레시피가 따르는 식이다. 기운이 없는 날엔 시원하고 깔끔한 ‘생대구 맑은탕’을, 마음이 답답한 날엔 차갑고 아삭한 ‘숙주와 미나리 생채’를 추천한다. 속상한 일로 풀이 죽어 있으면 “일단 밥부터 먹고 생각해!”라며 밥 한술 권하는 우리네 엄마 모습이다.
다양한 레시피가 나옵니다.
저는 시간이 부족한 엄마였어요. 한창 바쁠 때는 (아이들에게) 한 번에 다양한 재료를 먹여야 했어요. 2가지 나물을 각각 무칠 시간이 부족하니 합쳐서 ‘일타쌍피’ 메뉴를 개발하는 식으로요. 또 항상 새로운 걸 시도하려 했지요. ‘이 재료와 저 재료가 만나면 무슨 맛을 낼까?’ ‘얜 어떤 재료와 어울릴까?’ 생각하면서 요리했죠. 하나의 음식만 계속 만들면 지루하잖아요. 매일 하던 잡채에 새로운 재료 하나를 넣으면 색다른 메뉴가 탄생해요. 음식 전문가들은 이상하게 볼 수도 있겠네요(웃음).
그래서 ‘캐슈너트 카레’ ‘봄동 느타리 알리오올리오’ 같은 메뉴가 나왔군요.
처음엔 ‘된장찌개’ ‘무생채’ ‘콩나물무침’ 같은 단순한 음식만 할 줄 알았어요. 그렇게 시작해서 점점 가짓수가 늘었죠. 결혼 전엔 외할머니와 친정 엄마로부터, 결혼하고 나선 시어머니에게 배운 덕이 커요. 솜씨가 좋은 분들의 음식을 먹으면서 자랐으니 그 맛을 따라 하게 돼요. 하나의 일을 수십 년 하면 베테랑이 되듯, 저도 베테랑까진 아니지만 네 식구 밥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할 수 있는 정도가 됐네요.
주변서 ‘솜씨 좋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을 것 같아요.
입맛은 참 주관적이잖아요. 제 솜씨를 좋고 나쁨으로 한정 짓기 어렵죠. 여럿이 맛있는 음식이라 해도 모든 사람에게 맛있다는 법은 없거든요. 제 가족이나 지인들은 제 음식 먹기를 좋아하니 ‘입에 맞는구나’ 정도로 생각해요.
에세이 곳곳에서 40년째 무대와 촬영장을 오간 베테랑 배우와 엄마를 오간 그의 세월이 묻어난다. 그는 “‘뭐 해 먹지?’ 하는 걱정은 단순히 음식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어찌 살지에 대한 고민이었다”고 말한다. 스스로를 먹이기 위해 차리는 집밥은, 밥이라는 삶의 동력을 본인에게 대접하는 셈이니 ‘나를 위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정신력으로 버티는 건 꼭 그 값을 치른다. 몸의 되갚음을 고스란히 받으며 살아내야 한다. 하지만 끙끙 앓으면서도 무조건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간다. 결국은 나를 위해 하게 되는 ‘부엌 놀이’다.” (‘그냥 밥 먹자는 말이 아니었을지도 몰라’ 중)
순하고 건강한 레시피가 대부분입니다.
자극적인 음식을 잘 못 먹어요. 어릴 때부터 잘 체하고 탈 나는 체질이었죠. 워낙 몸이 약해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제 건강을 걱정할 정도였답니다. 까다롭게 먹지 않았다면 전 이미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어요. 지금은 어릴 때에 비하면 엄청 건강하죠.
특히나 아끼는 식재료가 있다면요.
나물이요. 평소 채소나 해산물을 즐겨 먹어요. 아들들은 이런 제 밑에서 자랐어도 육류를 제일 좋아하더라고요(웃음). 직접 장을 보는 것도 제겐 큰 즐거움이에요. 시장 가는 게 힐링이죠.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보면 만면에 미소가 지어져요. 식재료라면 뭐든지 직접 보고 사요. 남대문시장을 주로 가는데, 옷도 팔지만 식재료 매장도 엄청 많아요. 당연히 단골집도 있죠.
쉬운 사람의 쉬운 이야기
일기 쓰기는 양희경의 꾸준한 취미다.
SNS에 매일 일기를 쓰셨습니다.
지금도 써요. 글 쓰는 공간을 핸드폰에서 종이로 옮기니 생각이 예전처럼 잘 떠오르지 않아요. 습관이라는 게 참 무서워요. 그런데도 쓰는 버릇을 들이고 있어요. 매일 그날 생긴 일, 만난 사람, 길에서 마주친 개나 고양이의 모습을 기억해 기록해요. 일기는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대요.
매일 쓴 일기 덕인지 에세이도 편하게 읽힙니다.
주변에서도 입을 모아 그 점을 칭찬해줬어요. ‘다행이다!’ 싶었죠. 학문적이지도 않은 에세이를 어렵게 썼으면 어쩌나 걱정이었거든요. 물론 학문도 깊지 않아 그렇게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하지만요. 제가 쉬운 사람이기도 하고요(웃음).
친언니인 양희은 선생님도 2년 전 책을 출간하셨어요.
그때 저도 책을 쓰고 있었어요. 어느 날 언니가 본인 원고를 봐달라는 거예요. 그러다 책이 나왔고 베스트셀러가 됐죠. 당시에 저는 원고 작업을 멈췄어요. 같은 때에 발표하는 건 아니다 싶었죠. 형보다 나은 아우 없잖아요. 그래서 2021년 5월쯤 출간하려던 이 책이 올해 4월까지 미뤄졌네요.
다음 에세이를 기대해도 될까요.
아무것도 계획한 바는 없어요. 세상일이 계획한 대로 되는 것도 아니니 저는 항상 ‘무계획’모드로 살아요. 다만 주어진 일이라면 200%, 300%로 최선을 다하는 게 제가 인생을 사는 방법이지요.
양희경의 기록 방법이 일기만 있는 건 아니다. 5년 전 한 예능 프로그램을 계기로 유튜브 채널 ‘양희경의 딴집밥’을 열었다. 집밥 요리를 기록으로 남겨 아이들에게 주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양희경표 집밥 레시피를 모아 올리는 곳으로, 둘째 아들 승현 씨의 도움을 받아 ‘놀멍 쉬멍(놀면서 쉬면서)’ 운영하고 있다. 언제나 강조하는 부담 없고 편한 요리법 덕에 조회수도 많다. 그가 자부하는 밥도둑 ‘고추지름장’ 레시피 조회수는 무려 60만이 넘는다. 그는 “‘직접 해 먹으니 너무 맛있다’는 댓글이 달릴 때 가장 기쁘다”고 말한다.
“한번 해 먹어봐야겠는데?”
에세이 곳곳에서 40년째 무대와 촬영장을 오간 베테랑 배우와 엄마를 오간 양희경의 세월이 묻어난다.
유튜브와 비슷한 마음으로 썼어요. 에세이를 읽다 ‘한번 만들어봐야겠는데?’ ‘너무 간단한데?’ 싶을 때 바로 따라 하라는 의미에서 글에 어울리는 레시피를 달았어요. 이 책은 양희경의 집밥 에세이잖아요. 흔한 재료, 흔한 요리법으로 이런 집밥을 만들 수 있단 걸 알려주고 싶었죠.
책에는 정확한 계랑법이 적혀 있지 않습니다.
요리는 어렵게 시작하면 안 돼요. 하나의 요리를 적어도 세 번은 해봐야 무엇이 덜 들어가고 더 들어갈지 직접 알게 된다고 생각해요. 조금씩 발전하는 게 요리잖아요. 요리 교실을 다녔다는 지인도 지금 할 수 있는 음식은 1~2가지밖에 없다면서 이 책의 레시피처럼 방법이 간단했으면 이미 요리 베테랑이 됐을 거라 하더라고요. 밥만 있으면 양배추를 쪄서 된장에 찍어 먹기만 해도 요리라 생각해요.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요.
집밥을 잘 못 먹고 다니는 사람에게 권해요. 자주 사 먹고, 시켜 먹는 사람이죠. 팬데믹으로 본의 아니게 배달 음식이 비일비재했으니까. 그렇게 먹어서는 절대 건강을 유지할 수 없어요. 제가 걱정하는 건 그거죠. 아프지 않고 늙어야 하는데 다들 이렇게 먹어서 어떻게 건강을 유지하겠어요. 저도 건강한 음식 덕에 원래 제 수명보다 훨씬 더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건강한 음식은 몸의 병도 고치지만 마음의 병도 고치죠.
오늘 저녁 메뉴는 뭔가요.
딱히 정해두지 않아요. 냉장고를 열어보고 ‘이 재료가 있으니 이걸 해봐야겠다’라고 그때그때 생각해요. 냉장고 털이를 하는 날도 있고, 장을 봐오는 날도 있죠.
6월, 초여름을 위한 추천 메뉴가 있다면요.
제철 식재료가 제일이니 열무김치를 추천해요. 저는 살짝 더워지는 이즈음이 되면 열무가 자연스레 생각나요. 조만간 총각김치와 오이소박이도 담가야겠어요. 산나물이 많이 날 때니 나물을 무치거나 데쳐 먹는 것도 좋겠네요. 밥 지을 때 넣으면 나물밥이 되고요. 일타쌍피지요. 밥도 먹고 나물도 먹고!
#양희경 #그냥밥먹자는말이아니었을지도몰라 #집밥에세이 #여성동아
사진 홍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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