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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1만 개 컨테이너 책임지는 김승주 일등항해사

문영훈 기자

2023. 04. 07

누구나 일상을 떠나 훌쩍 바다로 떠나는 상상을 한다. 끼룩끼룩 갈매기 소리가 들리고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해변에서 칵테일 한잔. 하지만 누군가에겐 그 바다는 일터다. 11만t 규모의 선박 위 유일한 여성 선원, 김승주 일등항해사 이야기다. 

김승주 씨는 육지보다 바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김승주 씨는 육지보다 바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저는 엄마도, 선장도 되고 싶어요.”

일등항해사 김승주(30) 씨의 말이다. 전 세계 125만 명의 선원 중 여성은 2%. 2016년 배를 타기 시작한 김 씨가 8년 차 항해사가 되는 동안 여성 선원을 본 경험은 실습생 1명에 불과하다. 그는 “외로울 때도 있지만 그건 배를 탄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라며 “배에 타면 홀로 여자라는 생각보다 주어진 일을 잘하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이제는 누구보다 책임감 넘치는 시니어 항해사가 됐지만 어린 시절 그의 꿈은 항해사가 아니었다. 부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그는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기를 꿈꿨다. 하지만 대입에서 원하던 성적을 내지 못해 고민이 컸을 때 친오빠가 재학 중인 한국해양대학교를 떠올렸다. 김 씨는 “입학할 땐 단순하게 취직이 보장된다고 해서 해양대 해사수송과학부를 택했다”며 “3학년 실습 시절 처음 배를 타보고 항해사로 꿈을 굳혔다”고 말했다.




어떤 점에 끌렸나요.



스리랑카였어요. 통통배를 타고 가서 실습하는 선박으로 갈아타야 했는데 그 배를 처음 보는 순간을 잊지 못해요. 배라기보다 섬 같았어요. 저 커다란 배를 조그마한 제가 몰 수 있다는 게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제복을 입고 일하는 선배 사관도 멋있었고요. 그 경험으로 ‘나는 배를 타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과 동기들 중에 배를 타지 않는 경우도 많나요.

육지에서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요. 배를 검사하는 선박검사관이나 통제하는 해양교통관제사가 될 수 있죠.

처음 항해사로 배를 탔을 때를 잊을 수 없겠네요.

그렇죠(웃음). 첫 출항부터 실수를 저질렀는데 선장님이 “잘한다고 들었는데 실망”이라고 하셨거든요. 스스로 한심하고 바보 같아서 방에서 처절하게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땐 배가 갑자기 감옥처럼 느껴졌어요. 겪은 일에 대해 같이 얘기할 사람도 없고 배를 떠날 수도 없잖아요. 그래도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남이 가둔 감옥이 아니라 나 스스로 갇힌 감옥이니까요. 저에 대한 선장님의 기대가 낮아졌으니까 이제 다시 올라갈 길밖에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배에서 내릴 때는 인정받았나요.

악착같이 했거든요. 어떻게든 배우려고 하고 잘못된 점을 개선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선장님이 좋게 봐주셨죠.

지구를 서른 바퀴 도는 동안

오후 6시면 회사를 박차고 나올 수 있는 절대다수의 직장인과 달리 항해사는 일터에서 벗어날 수 없다. 11만t 규모의 컨테이너 화물선에 한번 승선하면 6개월이 기본이다. 배 위에서는 주말에도 업무가 계속된다. 그리고 1〜2개월간의 휴가를 갖는다. 김 씨는 항해사의 시간은 다수의 시간과 다르게 흘러간다고 말한다.

“항해사들은 1년 단위로 시간을 세지 않아요. 내가 탄 배의 개수가 시간의 기준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겐 2023년이 두 달 남은 셈이에요. 6월에 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오면 이제 또 한 살 더 먹을 테니까요.”

지금까지 배를 타고 이동한 길이가 얼마나 되나요.

단순 계산으로 한 번 배를 탈 때 13만㎞ 정도를 이동해요. 지금까지 배를 열 번 탔으니 130만㎞ 정도 될 것 같아요. 지구 둘레가 4만㎞이니 지구를 서른 바퀴쯤 돌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11만t 선박의 크기가 잘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종합운동장 4개 크기입니다. 컨테이너 1만 개를 실을 수 있는 규모인데요. 길이는 350m, 폭은 45m, 높이가 65m 정도 되는데 배를 길게 세운다고 생각하면 프랑스 파리에 있는 에펠탑보다 높은 거죠. 건물로 치면 100층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선체 장비를 챙길 때 주의해야 합니다. 엉뚱한 걸 가져오면 30분 다시 걷는 건 예삿일입니다(웃음).

배에서의 일과는 주로 어떤가요.

새벽 4시부터 오전 8시까지 항해 당직을 섭니다. 그리고 오전 8시 갑판 정비조와 배에 정비가 필요한 부분을 회의를 통해서 정해요. 그다음 서류 업무 등을 하고 점심을 먹어요. 오후 회의 후에 갑판 순찰을 하고 일 진행 상황을 체크합니다. 저녁을 먹고 나면 이제 자유 시간이 주어지는 거죠.

휴식 시간은 어떻게 보내나요.


선원들과 탁구를 치거나 함께 영화를 보기도 합니다. 배에서 먹을 음식은 뉴욕과 이집트 항구 두 군데서 실어요. 이때 최신 자료가 담긴 외장하드를 함께 배로 올려줘요. 그걸 배에 있는 네트워크와 공유하면 모든 선원이 볼 수 있어요. 최근 항해에서는 ‘재벌집 막내아들’을 재밌게 봤습니다(웃음).

11만t의 배에는 몇 명이 타나요.

20명 정도 됩니다. 크게 선장님 아래 갑판부, 사주부(조리부), 기관부로 나뉘어요. 갑판부는 선체를 정비·운항하는 역할이고, 사주부는 선원 식사를 담당해요. 기관부는 엔진, 보일러, 조수기, 발전기 등 선내 장비를 관리하죠. 저는 갑판부 장을 맡고 있습니다.

황홀한 고래의 순간

일등항해사 김승주 씨의 꿈은 행복한 엄마 선장이 되는 것이다.

일등항해사 김승주 씨의 꿈은 행복한 엄마 선장이 되는 것이다.

2016년 삼등항해사로 처음 배를 타기 시작해 이등항해사를 거쳐 2020년 일등항해사가 됐습니다. 업무는 어떻게 달라졌나요.

교대로 당직을 서는 업무는 동일하지만 각자 맡은 역할이 달라요. 삼등항해사는 배가 입출항 할 때 수속 업무를 담당해요. 구명정이나 소화 시설 같은 선내 안전 업무를 삼항사가 담당하고 있고요. 이등항해사는 항로와 통신기기를 담당해요. 일등항해사에 오르면 주니어에서 시니어가 되는 겁니다. 선원들의 질서를 잡거나 기강 확립도 하고 화물이나 선체 정비 업무를 맡습니다.

승진 개념이네요.

그렇죠. 경력이 쌓이면 시험을 보고 면허가 발급됩니다. 선사마다 조금씩 맡는 업무가 다르기도 하지만 큰 틀은 유사합니다.

똑같은 선원들과 6개월을 함께 보내면 갈등도 있겠어요.

그렇죠(웃음).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하선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누군가는 그걸 지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6개월만 지나면 된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괜찮아요. 또 승하선 시점이 항상 같은 게 아니기 때문에 3개월만 지나면 선원이 바뀌기도 하고요. 그래도 갈등을 줄이기 위해 그간 관계를 쌓는 노하우가 많이 생겼어요. 배에 타자마자 동료들에게 제 소개를 하는 시간을 한 시간 정도 가져요.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고, 꼭 지켜야 할 점도 서로 공유하죠. 서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이니 룰을 만드는 거예요.

바다를 보면서 위로를 받기도 하나요.

사실 매 순간 바다만 보면 황홀해요. 해가 떠서 하늘 중앙에 솟았다가 저무는 걸 그 무엇의 방해도 받지 않고 볼 수 있어요. 그동안 바다도 시시각각 달라지고요. 커피 한잔하며 당직을 서고 그 광경을 바라보는 게 항해사라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이라고 생각하죠. 그래도 한순간만 꼽으라면 고래를 봤을 때였어요.
고래요.

당직을 서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연기가 솟았어요. 자세히 봤더니 고래가 물을 뿜고 있었죠. 그러고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는데 양 갈래로 나뉜 꼬리가 보였어요. 정말 황홀했죠. 돌고래를 보는 순간은 흔하지만 가끔 돌고래끼리 배와 경주를 하는 순간이 기억에 남아요. 서로 경주하듯 돌고래 무리가 배를 앞질러 달리다가 지친 돌고래가 하나씩 탈락하고 한 마리가 남기도 해요. 배를 상대로 장난을 거는 것 같죠(웃음).

바다가 항상 평화롭지는 않잖아요.

스케줄상 날씨가 좋지 않은 구간을 피해가지 못할 때가 있어요. 7m 넘는 높이의 파도가 치면 어딘가를 붙잡고 있지 않으면 튕겨 나갈 정도가 됩니다. 방의 물건이 전부 쏟아지고요. 지진을 경험해보진 않았지만 분명 진도 8 이상일 겁니다(웃음).

편견을 깨는 항해사

일등항해사 김승주 씨가 컨테이너 화물선에서 일하는 모습.

일등항해사 김승주 씨가 컨테이너 화물선에서 일하는 모습.

그는 변화무쌍한 바다 위에서 열 번의 항해를 하는 동안 새로운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바다가 선사한 천국과 지옥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러한 김 씨의 경험은 두 권의 책이 돼 나왔다. ‘나는 스물일곱, 2등 항해사입니다’(2019)와 ‘오진다 오력’(2023)이다. 그는 바다 위에서 계속 글을 쓰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글을 쓰면 살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바다가 가끔은 다이내믹함을 선사하지만, 대개는 특별한 일이 없거든요. 웃을 일도 울 일도 많이 없어요. 그러면 사람이 좀 삭막해지는데 글을 쓰면서 내 감정을 되돌아보며 희로애락 같은 감정에 대해 다시 알게 되죠.”

배 위에선 사색에 빠질 시간이 많겠어요.

모든 항해사가 자신의 삶에 대해서 되돌아보는 시간은 한 번씩은 가졌을 것 같아요.

퇴근하고 치맥 하는 삶이 부럽지는 않았나요.

처음엔 정말 부러웠어요. 화물을 싣고 내리기 위해 항구에 도착해서 친구 SNS에 올라온 게시글을 보면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제가 휴가 기간에 그 삶을 지켜보는 입장이 되면 생각했던 것만큼 낭만으로 가득한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돼요. 항해사는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확실하게 놀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두 번째 책을 냈습니다.

바다 위의 기억을 담은 첫 책을 내고 많은 질문을 받았어요. “항해사가 되려면 어떤 능력이 필요한가요”라는 거죠. 항해사 후배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쓰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이게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여겨졌어요. ‘인생은 항해’라는 말도 있잖아요(웃음). 그래서 자기개발서로 써보자고 생각했어요.

항해사를 준비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바다에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 들이닥치곤 해요. 그러면 내가 여기서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같은 고민이 파도처럼 몰려오죠. 분명히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언젠가 햇살이 내리쫴요. 그 생각을 하면서 힘든 시기를 잘 넘겼으면 좋겠어요.

10년 뒤 목표가 있나요.

‘엄마 선장’을 꿈꿉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도 하고 싶고 아이도 많이 낳고 싶어요. 아직 바다는 여성에게 금단의 구역으로 여겨져요. 그래서인지 여성 항해사가 정말 적어요. 결혼과 육아의 어려움이 크겠지만, 저는 선장으로 일하면서도 아이를 잘 기르고 행복하게 살아가며 그 편견을 깨고 싶어요.

#김승주 #항해사 #오진다오력 #여성선장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사진제공 김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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