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희 삼성물산 패션부문 마케터가 ‘오니쿡’ 인스타그램에 게시한 음식 사진.
회사를 이 정도 다닐 수 있을 거라는 건 알았지만, 내가 요리책을 쓰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오니쿡 요리책’을 출간하고 나서 주변으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회사에 다니면서 어떻게 책까지 낼 수 있냐, 대단하다”는 칭찬이었다. 오늘은 정말 대단하면서도 한없이 평범한 나의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취미 방황을 거쳐 요리에 정착하다
패션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어릴 때부터 패션이나 의류 브랜드에 크게 관심이 있다거나 디자인을 전공하진 않았다. 그저 예쁘고 귀여운 것들을 좋아하고, 이를 시도해보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던 것 같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 시도는 조금 과할 때도, 나와 어울리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다양한 시도 덕분에 내게 맞는 방법과 색깔을 찾을 수 있었다.취미에 있어서도 그랬다. 회사 다니면서도 사내 동호회나 클래스 등을 통해 다양한 활동에 도전했다. 프랑스 자수, 위빙(weaving), 기타 연주, 가죽·금속 공예 등 손으로 하는 일은 뭐든 빠르게 배우는 편이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에 사진 한 장 올리며 자랑할 수준이 되면 빠르게 흥미를 잃었다. 도장 깨기식으로 취미를 만들고 방치하는 오랜 시간 동안 1가지 꾸준히 해온 일이 있다. 요리하고, 친구들을 초대해 먹이는 것이다.
‘오니쿡’ 인스타그램 계정은 그동안 찍은 요리 사진을 정리하기 위해 만들었다. 스마트폰에 쌓여가는 사진을 아카이빙하는 용도였다. 나만의 기록을 저장하는 데서 좀 더 나아가 이왕이면 구체적인 레시피까지 남들에게 전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완성된 음식 사진뿐 아니라 요리 과정도 게시하기 시작했다. 평소 예쁜 것을 선호하기에 플레이팅에도 꽤나 신경 쓰는 편이었는데, SNS에 올린 사진을 남들이 본다고 생각하니 조금 더 신경 써서 요리했다. 그렇게 6개월쯤 기록이 쌓였을 때, 점점 지인이 아닌 팔로어가 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레시피를 기다리고, 음식을 따라 만드는 분들이 생겼다. 마음이 들뜨면서 책임감도 느껴졌다. 그동안 삶에 늘 함께였던 요리를 조금 더 특별하게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요리 부캐 ‘오니쿡’이 일상 속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늘 전날 만들었던 레시피를 정리해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다.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레시피를 기억해뒀다가 온라인 쇼핑몰에서 재료를 주문했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어떤 순서로 재료를 손질하고 요리를 만들지 단계를 머릿속으로 그렸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완성해 즐겁게 먹었다. 미처 주문하지 못한 재료는 직접 구입해 음식을 만들었다. 가장 행복한 순간은 머릿속으로 조합해 만든 음식의 맛이 상상한 대로 나왔을 때다. 이런 기분 좋은 자극이 쌓여 요리를 계속할 수 있었다.
부담을 느끼지는 않았다. 누군가를 위해서 한 일이 아니고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요리는 성취감을 빨리 얻을 수 있고, 매번 다른 결과를 경험할 수 있기에 매력적이었다. 특히 완성된 음식을 사랑하는 이들과 나누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취미 ‘금사식(금방 사랑이 식는 타입)’이었던 내가 3년 넘게 요리 계정을 꾸준히 운영할 수 있는 비결이다.
요리하면서 작은 꿈이 생겼다. 언젠간 내 레시피들을 모아 책으로 만드는 것. 글쓰기에는 소질이 없다고 여겼기에 지금껏 작가라는 꿈은 전혀 생각해볼 수 없었는데, 레시피로 책을 낸다고 상상하니 설렜다. 물론 지금까지 그 꿈은 아주 먼 곳에 있었고, 독립 출판으로 100권만 만들어도 책이겠거니 하는 아주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러던 중 2022년 1월경 출판사 담당자로부터 다이렉트 메시지를 받았다. 인스타그램에 게시된 레시피를 모아 책으로 만들고 싶다는 연락이었다. 퇴근 후 바로 마음이 잘 맞는 그녀와 만나 미팅을 진행했고, 1년간의 이중생활이 시작됐다.
어느새 10년 차 직장인이 되었기에 일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자신감도 붙고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특히나 작년 한 해 내가 담당하는 브랜드가 눈에 띄게 성장해서 뿌듯함을 느끼며 정말 열심히 일했다. 평일엔 조윤희 프로로 성심껏 회사 일을 하고, 주말엔 오니쿡 운영자이자 작가로 글을 쓰는 1년을 보냈다.
그간 만든 음식 레시피를 정리하는 데도 꽤 많은 시간이 들었지만, 책에 실을 레시피 완성 과정 사진도 직접 찍어야 했다. 책 작업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주말 오전은 온전히 책을 위해 투자했다. 주말에 고향에 내려가거나 여행 계획이 있을 때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기 때문에 다른 주말에 더 부지런히 작업을 해두어야만 했다. 생각지 못했던 날씨도 변수였다. 기껏 재료를 다 준비해두었는데 주말 내내 비가 내리는 바람에 날이 흐려 촬영을 못 하게 되는 날도 빈번했다.
책 작업은 물리적으로 일정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 벼락치기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이렇게 숙제처럼 하는 게 맞을까’ 하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주말 오후만은 온전히 쉬는 시간을 갖고 싶어 늦잠도 포기하고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책 만드는 작업을 이어갔다. 그렇게 작년 12월의 끝자락, 총 63개의 레시피를 담아 책을 완성할 수 있었다. 나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기에 ‘오니쿡 요리책’이라는 제목이 붙은 노란 책이 정말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꾸준함이 대단함으로
완성된 책을 손에 넣고 나니 비로소 모든 게 실감이 났다. 칭찬과 응원도 정말 많이 받았다. 그동안 대단하다는 칭찬이 부끄러워 손사래 치며 부정하기도 했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 했을 뿐인데 운 좋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지만 가끔은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그중 하나를 꾸준히 지속해온 내가 대견하게 느껴진다. “대단하다”는 칭찬은 평범한 일을 꾸준히 했기 때문에 들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크든 작든 어떤 일을 실행으로 옮기는 사람은 모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사람 누구나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다.취미를 가지는 일의 또 다른 장점은 회사 업무와 사적인 시간을 완전히 분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회사 일로 스트레스를 받다가도 집에 오면 오니쿡이 돼야 하기에 고민을 잊고 내가 해야 할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마치 직장인과 오니쿡을 끄고 켤 수 있는 스위치가 있다고 해야 할까. 만약 업무나 회사 내 인간관계로부터 스트레스를 겪는 이가 있다면 마음 가는 대로 뭐든 시도하며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길 권한다. 어쩌면 당신만의 ‘오니쿡’을 발견할지도 모르니까.
#오니쿡 #오니쿡요리책 #조윤희 #직장인칼럼 #여성동아
조윤희
삼성물산에서 브랜드 ‘에잇세컨즈(8seconds)’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다. 2022년 12월, 인스타그램 계정 @oneecook을 통해 전해오던 레시피를 담은 ‘오니쿡 요리책’을 출간했다
사진제공 조윤희 책밥
사진출처 인스타그램@oneecook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