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르나르 아르노가 세계 최고 부자로 등극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회장이자 CEO로 재임하고 있는 LVMH의 매출 덕분이다. 루이비통(Louis Vuitton)과 모엣샹동(Moet & Chandon), 헤네시(Hennessy)의 머리글자를 딴 LVMH 그룹은 프랑스 증시 시가총액 1위인 동시에 유럽 증시 시가총액 1위 기업이기도 하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명품 패션 하우스와 주류 회사의 합병으로 출발해 현재는 50여 개가 넘는 패션, 뷰티, 주얼리, 시계, 주류 브랜드를 통해 사업을 전개하는 중이다. 그리고 채 한 달이 되지 않은 2023년 1월, 베르나르 아르노의 딸 델핀 아르노가 LVMH 그룹에서 루이비통에 이어 두 번째로 규모가 큰 크리스찬디올 새 CEO로 선임되면서 다시 한번 세계인의 이목이 LVMH 그룹과 아르노 패밀리에게 집중됐다.
타고난 금수저와 잘 훈련된 다크호스 사이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과 함께 패션 행사에 참석한 델핀 아르노.
LVMH의 왕좌를 눈앞에 둔 것처럼 보이는 델핀 아르노. 베르나르 아르노와 어머니 앤 드와브린 사이에서 1975년 태어난 그녀는 런던정치경제대학교(LSE)와 유럽 최고 상경대학으로 꼽히는 에덱비즈니스스쿨(EDHEC)에서 수학한 후 글로벌전략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2년간 컨설턴트로 경험을 쌓은 델핀이 본격적으로 패션업계에 발을 들인 것은 2000년,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가 세운 ‘존 갈리아노 컴퍼니’에 입사하면서부터다. 2001년에는 존 갈리아노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겸하던 크리스찬디올 쿠튀르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으로 LVMH의 울타리 안에서 경험을 쌓았다.
2003년부터 LVMH 이사회에 선임되어 최연소 이사이자 여자로서는 두 번째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구두 공장 같은 생산 라인을 누비며 시작된 그녀의 커리어는 차근차근 발전해 2008년부터 상무이사를 역임하기에 이른다. 당시 디올의 베스트셀링 아이템인 레이디디올, 디오리시모 등의 가죽 제품을 중심으로 전략을 수립하고 커뮤니케이션을 전개하는 역할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5남매 중 유일한 이사회 멤버로 상속 1순위 꼽혀

세계 최고 부자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 가족. 왼쪽부터 프레데릭, 델핀, 앙투안 아르노와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 부부, 알렉상드르 아르노.
8부 능선을 넘은 것은 분명하지만, 델핀이 아직 왕좌를 손에 넣은 것은 아니다. 그녀에게는 총 4명의 남동생이 있는 데다가 그들 역시 그룹 내에서 다양한 역할을 받아 활발하게 수업 중이기 때문. 첫째 딸 델핀의 유일한 동복 남매이자 장남인 앙투안 아르노는 LVMH의 광고와 커뮤니케이션을 거쳐 현재는 그룹 이사회 부회장, 벨루티와 로로피아나의 CEO를 겸하고 있다. 새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세 남동생도 마찬가지다. 알렉상드르 아르노는 주얼리 브랜드 티파니의 제품과 커뮤니케이션 디렉터를, 프레데릭 아르노는 명품 시계 브랜드 태그호이어의 CEO를 맡고 있으며, 막내 장 아르노는 지난해 루이비통 시계 사업부의 제품 개발과 마케팅 디렉터로 임명된 바 있다.
미래를 내다보는 완벽주의자를 꿈꾸다

그렇다면 5명의 자녀 중에서 델핀이 아버지 베르나르의 신뢰를 얻은 이유는 무엇일까? 델핀을 설명하는 가장 대표적인 키워드는 ‘차분함’이다. 차분함은 2014년 언론 인터뷰에서 그녀가 자신을 소개하며 선택한 단어이기도 하다. 경청 능력이 뛰어나고 인재를 보는 눈이 높다는 평판도 지배적이다. 라프 시몬스를 비롯해 2013년부터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는 조나단 앤더슨, 루이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영입을 주도하면서 증명된 역량이다.
하지만 그보다 좀 더 선명한 키워드를 고르자면 ‘미래지향적’에 가까울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커리어의 전반에 걸쳐 젊은 디자이너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여왔다. 2014년 그녀가 주도해 설립한 ‘LVMH 프라이즈’가 상징적인 사례다. ‘지구 최고의 패션 컴페티션’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 경연은 두 시즌 이상 컬렉션을 진행한 40대 미만의 신진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을 만큼 문턱이 낮은 데다가 우승자에게는 30만 유로, 우리돈으로 4억 원에 달하는 상금을 수여하고 1년간은 LVMH에 소속돼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자신의 브랜드를 육성하는 데 필요한 모든 자원을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셈. 심사위원으로 피비 파일로, 캐롤 림, 라프 시몬스, 리카르토 티시 등 LVMH 그룹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이 총출동하고 샤넬의 칼 라거펠트 역시 생전에는 이 상의 심사위원이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자크 뮈스가 이 상을 통해 배출된 대표적인 신진 디자이너다.
그녀의 안목은 스타트업 필드에서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2017년부터 진행 중인 ‘LVMH 혁신 어워드’는 잠재력 있는 스타트업을 발굴해 협업을 이끌어내는 프로젝트로, 이 상 역시 델핀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클래식하고 럭셔리한 상품을 주로 다루지만 시장의 변화는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와인 재벌과 이혼 후 스타트업계 대부와 사실혼 유지

크리스찬디올의 2023 S/S 오트쿠튀르 프런트로에 나란히 앉은 델핀 아르노와 블랙핑크 지수, 태그호이어 CEO 프레데릭 아르노(왼쪽부터).

델핀 아르노는 프랑스 스타트업계의 대부 자비에 니엘과의 사이에서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이처럼 불철주야 사업을 이끌어가고 있는 그녀가 왕좌에 오를 수 있을까? 아버지 베르나르는 여전히 건재한 데다, 얼마 전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 정년을 75세에서 80세까지 연장하기도 했다. 이제 막 경영 일선에 투입된 어린 동생들에게는 작은 성과로도 큰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치열한 승부는 어쩌면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델핀아르노 #LVHM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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