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를 할 때 가족을 빼놓고 설명할 수 있을까. 영화 ‘세자매’(1월 27일 개봉)가 던지는 질문이다. 영화 속에는 언뜻 보기에 이해할 수 없는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소심덩어리 첫째 희숙(김선영), 겉으로는 전혀 문제없어 보이는 가식덩어리 둘째 미연(문소리), 골칫덩어리 셋째 미옥(장윤주)이 그 주인공들이다. 영화는 이들의 퍽퍽한 삶을 담담하게 비추다가 결말에 이르러서야 문제의 근원을 드러내고, 숨어 있던 갈등을 폭발하듯 터트린다. 영화 내내 이해할 수 없었던 세 자매의 삶은, 영화의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흘러나오는 이소라의 노래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를 들을 때야 비로소 마음 속 깊이 들어온다. 작품을 연출한 이승원 감독이 의도한 바다. 그는 “가족 문제를 가볍게 소모하기 보다는 더 깊게 다가가고 싶었다. 누구나 공감하면서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영화 속 자매의 이야기는 탁월한 연기력의 세 배우들 덕분에 한층 힘을 얻는다. 믿고 보는 배우 문소리, 김선영과 함께 6년 전 영화 ‘베테랑’으로 화려하게 배우 신고식을 치렀던 장윤주(41)가 그 주인공이다. 세계가 인정한 톱 모델이자 싱어송라이터, 방송인 등 다양한 삶을 살아온 그는 첫 영화 ‘베테랑’에서 털털한 형사 미스봉 역할을 맡아 호의적인 평가를 이끌어냈지만, 이후 연기 활동을 이어가지 않았다. 때문에 영화 ‘세자매’는 장윤주의 6년만의 복귀작으로도 관심을 더했다. 그가 맡은 미옥은 미스봉 이상 가는 파격적인 인물이다. 3백65일 술에 취해 있고, 직설적이면서 거침없는 말과 행동으로 주변을 당황하게 만드는 민폐 캐릭터. 장윤주는 미옥이 되기 위해 화장기 없는 맨얼굴, 샛노랗게 탈색한 머리, 오색찬란한 촌스러운 패션으로 외형을 바꾸고, 여기에 취해 있는 눈빛과 건들거리는 몸짓까지 더해 미옥의 캐릭터를 완성했다.
‘베테랑’ 이후 작품 선택이나 연기적으로도 고민이 많았다고 들었어요.
신기하게도 모델 데뷔 직후부터 계속 영화 제의가 있었어요. 대학(서울예대)에서는 찍히는 사람이 아닌, 찍는 사람이 되어 다양한 포지션을 알고 싶다는 생각에 영화를 전공했었지요. 손예진, 정우, 한혜진 등이 동기에요. 이들은 너무나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던 터라, ‘윤주는 왜 연기 안하니?’라는 질문을 오랫동안 받았어요. 전 20대 내내 패션에 미쳐 있었죠. 해외 컬렉션에 오가는 것이 제겐 큰 경험이자 즐거움이어서 어떤 역할이 들어와도 아예 생각도 안하고 있다가 30대 중반 ‘베테랑’을 만났어요. 그런데 그 이후로 선뜻 연기를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결혼과 임신으로 2년을 쉬게 됐고 그 이후 고민이 시작됐답니다. ‘베테랑’ 이후 비슷한 캐릭터의 연기를 이어가는 게 맞을지 연기에 대한 확신이 없었어요. 연기에 대한 마음이 있는지, 그냥 들어온 거라 해야 하는 건지요.
영화 ‘세자매’의 어떤 부분에 마음이 끌렸나요.
연기에 대해 진지하고 신중하게 생각하면서도 확신이 없을 때 이 작품을 만났고, 전환점이 됐어요. 저도 딸 셋에 막내인데, ‘세자매’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있어서 더 애착이 갔어요. 또 문소리 배우, 김선영 배우와 함께하니 한 번 잘 해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작품에 합류하게 됐어요.
연기파 배우들과 나란히 주연으로 나서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컸을 것 같아요.
언니들과 연기하면서 워낙 연기에 정평이 나 있는 분들이니 ‘과연 어우러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을 수밖에요. 그건 제 역할인 미옥을 다른 누군가가 해도 그랬을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이런 큰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 ‘두 분과 함께 복귀하는 것에 있어서 부족함이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에 출연을 결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어요. 그때마다 두 분들이 힘이 돼주고 저의 의심과 고민들을 다 들어주셨어요. 영화를 시작하고 나서는 고민하지 않고 앞으로 쭉 나갔고요.
남자 배우들이 많았던 영화 ‘베테랑’에 비해 이번 영화는 여자들의 이야기에요. 두 영화 촬영장 분위기가 많이 달랐을 듯해요.
모든 사람과 다 맞을 수는 없겠지만 평소 성별 가리지 않고 잘 지내고,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베테랑’ 때는 모든 출연자들과 즐겁게 놀면서 촬영했다면 ‘세자매’는 그보다는 좀 더 가족적인 분위기였어요. 두 배우는 물론 스태프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세세한 부분을 함께 나누곤 했지요. 영화 촬영을 진행하고 개봉에 앞서 홍보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디테일하고 섬세하게 함께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작품 속 패션과 헤어스타일이 인상적이었어요.
20대 초반에 탈색을 했었고, 메이크오버(스타일 변신)를 즐겼던 사람으로서 더 흥분됐어요. 탈색을 하니, ‘이제 시작이다. 미옥을 더 깊이 사랑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지요. 아무래도 외형 변화가 주는 ‘레드선!’ 같은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미옥이 되기 위한 과정들은 어땠나요.
미옥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 있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거기에서부터가 변화의 시작이었죠.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미옥이를 사랑하자. 내 자신은 믿지 못하고 어떤 순간 사랑하지 못해도, 그 역할을 맡은 순간에는 미옥이를 믿고 사랑하자’고 마음먹었고요. 또 ‘미옥이라면 어떤 의상을 입고 다닐까’ 고민하면서 직접 쇼핑을 다녔어요. 실제로 노란 점퍼는 남자 사이즈인데, 미옥이에게 어울리겠다고 해서 구입한 거예요. 극중 집에 미리 가서 눕거나 앉아 보기도 하면서 더 미옥이라는 인물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특히 미옥이 작업실에 들어서는 순간 진짜 그녀가 된 것 같았죠. 공간이 주는 힘이 있더라고요.
미옥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화려한 패턴의 옷과 술 등으로 가리는 것 같았어요.
영화 속 모든 인물들이 애처로워요. 첫째 언니는 이런 저런 것들을 초월한 느낌이고, 둘째 언니는 완벽하게 감정을 숨기는데, 미옥은 못난 마음까지도 표출한 사람인 것 같아요. ‘가린다고 가려져?’하는 마음으로요. 막무가내로 있는 그대로를 거침없이 표현하는 인물이죠. 그래도 참 다행인 건 받아주는 남편(현봉식)이 있다는 것 아닐까요. 온전치 못한 아내인데도 퇴근하면서 한방 통닭을 사다주고, 밥도 차려주고, 냉장고에는 과일이 끊이지 않게 쌓아두고요. 그렇기 때문에 더 응석부리듯 표현하는 게 아닌가 해요. 막내이고 싶었고 사랑을 듬뿍 받는 사람이고 싶었고, 작가로서 잘나가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한 인물이라 미옥이 가여웠고 사랑하며 연기했어요. 현장에서도 ‘내 모든 커리어 이미지가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고 그때 감정에 솔직하자, 스스로 필터링을 하기보다 솔직하게 뱉어버리자’라고 생각하며 연기에 임했어요.
두 분 모두 응원하면서 함께 해주셨죠. 실제 세 딸 중 막내지만 어리광 부리는 막내로 살지는 않았는데, 이번에는 선배들이 계셔서 무척 든든했어요. 좋은 배움이 된 촬영장이었지요. 문소리 배우는 공동 프로듀서도 맡았는데 영화에서 디테일하게 필요한 것들을 챙겼어요. 김선영 배우는 파워풀한 에너지가 놀라웠고요. 매 장면 연기가 달랐는데, 본능적으로 나오는 폭발적인 힘이 엄청났어요. 그런 모습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답니다. 두 배우는 인간적으로도 다른 매력을 지녔어요. 문소리 배우는 섬세하고, 김선영 배우는 표현이 서투르지만 따뜻한 분이에요. 작업하는 내내 실제 가족 같았어요. 특히 김선영 배우는 ‘배우라면 그 배역을 사랑해야 한다. 작은 배역이라도 사랑해라’고 일깨워주셨어요.
영화 속 세 자매 중 가장 결혼을 잘한 인물 같아요. 극중 남편 현봉식 배우와의 케미도 좋아보였어요.
머리를 탈색하던 날 현봉식 배우가 옆에 있었어요. 알뜰살뜰히 많이 챙겨줬죠. 염색한 날도 사실은 만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일부러 찾아와서 미안했어요. 그런데 현 배우가 “미옥이는 남편에게는 다 해도 된다. 기다리게 해도 되고, 뭐든지 네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도 된다. 그러니 탈색이 오래 걸려도 마음 편하게 하라”고 했어요. 지금 다시 생각해도 너무 감동적이고 고맙네요. 캐릭터 준비를 함께해주는 것은 물론 촬영 내내 힘이 되어주고 격려도 많이 해줬어요.
‘세자매’가 관객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나요.
잊을 수 없는 베스트 영화 중 하나로 손꼽히면 좋겠지요. 제게 이창동 감독님의 ‘시’와 ‘밀양’, 봉준호 감독님의 ‘마더’가 그랬던 것처럼요. 그런 영화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조금이라도 관객에게 위로가 됐으면 좋겠어요.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는 가족인데, 장윤주 배우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큰 울타리고 힘이고 버팀목이에요. 가정은 제게 늘 1순위고 사랑이 꽃피는 현장이지요. 가장 많이 의지하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극중 굉장히 쿨한 엄마로 나오는데 실제로는 어떤가요.
쿨한 엄마는 아닌 것 같아요. 같이 있을 때 딸 리사를 웃게 해주는 엄마에요. 리사를 친구 대하듯 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좋은 친구로 지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리사는 엄마 냄새만 맡아도 너무 행복해 해요. ‘엄마 냄새가 제일 좋아’라는 말을 많이 하고요.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길지 않지만 주말에는 24시간 함께 지내며 맛있는 음식을 해주려고 노력해요. 하지만 엄마가 마냥 같이 있어준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그에 따른 훈육도 필요하고 순간순간 지혜도 필요해요. 저도 엄마가 어려워요.
현실 속에선 언니들과의 사이가 어떤가요.
저희도 세 자매가 다 달라요.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싶을 정도로요. 주변을 보면 굉장히 친하게 지내는 자매들도 있던데 저희는 가족 모임 외에는 따로 만나지 않아요. 지난 시간에 대해 모두 다르게 기억하고, 그것에 대해 다른 방법으로 표출하겠지만 우리 언니들하고도 그런 것 같아요.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별로 없었던 듯해요. 서로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사과하지 못한 부분이 분명히 있을 텐데요. 더 늦게 전에 이야기를 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영화를 찍으면서 했어요.
앞으로의 계획은요.
‘나는 이런 배우가 되겠어’ 보다는 지금 감사하게도 주어진 작품들이 있으니 그 속에서 진심을 다해서 배역을 사랑하고 잘 해 나가는 게 제 계획이에요.
사진제공 리틀빅픽처스 에스팀엔터테인먼트
영화 속 자매의 이야기는 탁월한 연기력의 세 배우들 덕분에 한층 힘을 얻는다. 믿고 보는 배우 문소리, 김선영과 함께 6년 전 영화 ‘베테랑’으로 화려하게 배우 신고식을 치렀던 장윤주(41)가 그 주인공이다. 세계가 인정한 톱 모델이자 싱어송라이터, 방송인 등 다양한 삶을 살아온 그는 첫 영화 ‘베테랑’에서 털털한 형사 미스봉 역할을 맡아 호의적인 평가를 이끌어냈지만, 이후 연기 활동을 이어가지 않았다. 때문에 영화 ‘세자매’는 장윤주의 6년만의 복귀작으로도 관심을 더했다. 그가 맡은 미옥은 미스봉 이상 가는 파격적인 인물이다. 3백65일 술에 취해 있고, 직설적이면서 거침없는 말과 행동으로 주변을 당황하게 만드는 민폐 캐릭터. 장윤주는 미옥이 되기 위해 화장기 없는 맨얼굴, 샛노랗게 탈색한 머리, 오색찬란한 촌스러운 패션으로 외형을 바꾸고, 여기에 취해 있는 눈빛과 건들거리는 몸짓까지 더해 미옥의 캐릭터를 완성했다.
‘베테랑’ 이후 작품 선택이나 연기적으로도 고민이 많았다고 들었어요.
신기하게도 모델 데뷔 직후부터 계속 영화 제의가 있었어요. 대학(서울예대)에서는 찍히는 사람이 아닌, 찍는 사람이 되어 다양한 포지션을 알고 싶다는 생각에 영화를 전공했었지요. 손예진, 정우, 한혜진 등이 동기에요. 이들은 너무나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던 터라, ‘윤주는 왜 연기 안하니?’라는 질문을 오랫동안 받았어요. 전 20대 내내 패션에 미쳐 있었죠. 해외 컬렉션에 오가는 것이 제겐 큰 경험이자 즐거움이어서 어떤 역할이 들어와도 아예 생각도 안하고 있다가 30대 중반 ‘베테랑’을 만났어요. 그런데 그 이후로 선뜻 연기를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결혼과 임신으로 2년을 쉬게 됐고 그 이후 고민이 시작됐답니다. ‘베테랑’ 이후 비슷한 캐릭터의 연기를 이어가는 게 맞을지 연기에 대한 확신이 없었어요. 연기에 대한 마음이 있는지, 그냥 들어온 거라 해야 하는 건지요.
영화 ‘세자매’의 어떤 부분에 마음이 끌렸나요.
연기에 대해 진지하고 신중하게 생각하면서도 확신이 없을 때 이 작품을 만났고, 전환점이 됐어요. 저도 딸 셋에 막내인데, ‘세자매’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있어서 더 애착이 갔어요. 또 문소리 배우, 김선영 배우와 함께하니 한 번 잘 해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작품에 합류하게 됐어요.
연기파 배우들과 나란히 주연으로 나서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컸을 것 같아요.
언니들과 연기하면서 워낙 연기에 정평이 나 있는 분들이니 ‘과연 어우러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을 수밖에요. 그건 제 역할인 미옥을 다른 누군가가 해도 그랬을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이런 큰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 ‘두 분과 함께 복귀하는 것에 있어서 부족함이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에 출연을 결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어요. 그때마다 두 분들이 힘이 돼주고 저의 의심과 고민들을 다 들어주셨어요. 영화를 시작하고 나서는 고민하지 않고 앞으로 쭉 나갔고요.
남자 배우들이 많았던 영화 ‘베테랑’에 비해 이번 영화는 여자들의 이야기에요. 두 영화 촬영장 분위기가 많이 달랐을 듯해요.
모든 사람과 다 맞을 수는 없겠지만 평소 성별 가리지 않고 잘 지내고,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베테랑’ 때는 모든 출연자들과 즐겁게 놀면서 촬영했다면 ‘세자매’는 그보다는 좀 더 가족적인 분위기였어요. 두 배우는 물론 스태프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세세한 부분을 함께 나누곤 했지요. 영화 촬영을 진행하고 개봉에 앞서 홍보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디테일하고 섬세하게 함께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작품 속 패션과 헤어스타일이 인상적이었어요.
20대 초반에 탈색을 했었고, 메이크오버(스타일 변신)를 즐겼던 사람으로서 더 흥분됐어요. 탈색을 하니, ‘이제 시작이다. 미옥을 더 깊이 사랑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지요. 아무래도 외형 변화가 주는 ‘레드선!’ 같은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미옥이 되기 위한 과정들은 어땠나요.
미옥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 있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거기에서부터가 변화의 시작이었죠.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미옥이를 사랑하자. 내 자신은 믿지 못하고 어떤 순간 사랑하지 못해도, 그 역할을 맡은 순간에는 미옥이를 믿고 사랑하자’고 마음먹었고요. 또 ‘미옥이라면 어떤 의상을 입고 다닐까’ 고민하면서 직접 쇼핑을 다녔어요. 실제로 노란 점퍼는 남자 사이즈인데, 미옥이에게 어울리겠다고 해서 구입한 거예요. 극중 집에 미리 가서 눕거나 앉아 보기도 하면서 더 미옥이라는 인물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특히 미옥이 작업실에 들어서는 순간 진짜 그녀가 된 것 같았죠. 공간이 주는 힘이 있더라고요.
미옥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화려한 패턴의 옷과 술 등으로 가리는 것 같았어요.
영화 속 모든 인물들이 애처로워요. 첫째 언니는 이런 저런 것들을 초월한 느낌이고, 둘째 언니는 완벽하게 감정을 숨기는데, 미옥은 못난 마음까지도 표출한 사람인 것 같아요. ‘가린다고 가려져?’하는 마음으로요. 막무가내로 있는 그대로를 거침없이 표현하는 인물이죠. 그래도 참 다행인 건 받아주는 남편(현봉식)이 있다는 것 아닐까요. 온전치 못한 아내인데도 퇴근하면서 한방 통닭을 사다주고, 밥도 차려주고, 냉장고에는 과일이 끊이지 않게 쌓아두고요. 그렇기 때문에 더 응석부리듯 표현하는 게 아닌가 해요. 막내이고 싶었고 사랑을 듬뿍 받는 사람이고 싶었고, 작가로서 잘나가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한 인물이라 미옥이 가여웠고 사랑하며 연기했어요. 현장에서도 ‘내 모든 커리어 이미지가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고 그때 감정에 솔직하자, 스스로 필터링을 하기보다 솔직하게 뱉어버리자’라고 생각하며 연기에 임했어요.
영화 ‘세자매’
문소리, 김선영 두 분과의 작업은 어땠나요.두 분 모두 응원하면서 함께 해주셨죠. 실제 세 딸 중 막내지만 어리광 부리는 막내로 살지는 않았는데, 이번에는 선배들이 계셔서 무척 든든했어요. 좋은 배움이 된 촬영장이었지요. 문소리 배우는 공동 프로듀서도 맡았는데 영화에서 디테일하게 필요한 것들을 챙겼어요. 김선영 배우는 파워풀한 에너지가 놀라웠고요. 매 장면 연기가 달랐는데, 본능적으로 나오는 폭발적인 힘이 엄청났어요. 그런 모습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답니다. 두 배우는 인간적으로도 다른 매력을 지녔어요. 문소리 배우는 섬세하고, 김선영 배우는 표현이 서투르지만 따뜻한 분이에요. 작업하는 내내 실제 가족 같았어요. 특히 김선영 배우는 ‘배우라면 그 배역을 사랑해야 한다. 작은 배역이라도 사랑해라’고 일깨워주셨어요.
영화 속 세 자매 중 가장 결혼을 잘한 인물 같아요. 극중 남편 현봉식 배우와의 케미도 좋아보였어요.
머리를 탈색하던 날 현봉식 배우가 옆에 있었어요. 알뜰살뜰히 많이 챙겨줬죠. 염색한 날도 사실은 만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일부러 찾아와서 미안했어요. 그런데 현 배우가 “미옥이는 남편에게는 다 해도 된다. 기다리게 해도 되고, 뭐든지 네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도 된다. 그러니 탈색이 오래 걸려도 마음 편하게 하라”고 했어요. 지금 다시 생각해도 너무 감동적이고 고맙네요. 캐릭터 준비를 함께해주는 것은 물론 촬영 내내 힘이 되어주고 격려도 많이 해줬어요.
‘세자매’가 관객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나요.
잊을 수 없는 베스트 영화 중 하나로 손꼽히면 좋겠지요. 제게 이창동 감독님의 ‘시’와 ‘밀양’, 봉준호 감독님의 ‘마더’가 그랬던 것처럼요. 그런 영화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조금이라도 관객에게 위로가 됐으면 좋겠어요.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는 가족인데, 장윤주 배우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큰 울타리고 힘이고 버팀목이에요. 가정은 제게 늘 1순위고 사랑이 꽃피는 현장이지요. 가장 많이 의지하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극중 굉장히 쿨한 엄마로 나오는데 실제로는 어떤가요.
쿨한 엄마는 아닌 것 같아요. 같이 있을 때 딸 리사를 웃게 해주는 엄마에요. 리사를 친구 대하듯 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좋은 친구로 지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리사는 엄마 냄새만 맡아도 너무 행복해 해요. ‘엄마 냄새가 제일 좋아’라는 말을 많이 하고요.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길지 않지만 주말에는 24시간 함께 지내며 맛있는 음식을 해주려고 노력해요. 하지만 엄마가 마냥 같이 있어준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그에 따른 훈육도 필요하고 순간순간 지혜도 필요해요. 저도 엄마가 어려워요.
현실 속에선 언니들과의 사이가 어떤가요.
저희도 세 자매가 다 달라요.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싶을 정도로요. 주변을 보면 굉장히 친하게 지내는 자매들도 있던데 저희는 가족 모임 외에는 따로 만나지 않아요. 지난 시간에 대해 모두 다르게 기억하고, 그것에 대해 다른 방법으로 표출하겠지만 우리 언니들하고도 그런 것 같아요.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별로 없었던 듯해요. 서로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사과하지 못한 부분이 분명히 있을 텐데요. 더 늦게 전에 이야기를 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영화를 찍으면서 했어요.
앞으로의 계획은요.
‘나는 이런 배우가 되겠어’ 보다는 지금 감사하게도 주어진 작품들이 있으니 그 속에서 진심을 다해서 배역을 사랑하고 잘 해 나가는 게 제 계획이에요.
사진제공 리틀빅픽처스 에스팀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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