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리의 집 주변엔 이미 50여 명의 취재진이 모여 있었다. 집 주변에 주차된 차량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내부를 살펴보니 안쪽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그 안에서 경찰과학수사대 감식반 요원들이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현관문 앞에는 아직 개봉하지 않은 종이 박스가 하나 놓여 있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이날 새벽에 배송된 ‘신선식품’이었다. 이날 먹으려고 설리가 주문한 것이 아닌가 싶다.
집 안의 벽에는 그림 몇 점이 걸려 있었고 일부는 바닥에 세워져 있었다. 설리는 그림 그리는 게 취미였다. 그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전문가용 미술 도구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나온다. 완성된 작품도 꽤 수준급이다. 이날 기자의 눈에 띈 그림도 설리가 그린 작품들로 추정된다.
잠시 후, 한 감식반 요원이 유가족을 찾았다. “가족분들, 들어오세요.” 나뭇가지가 시야를 가려 집 안으로 들어가는 유족의 모습을 볼 순 없었는데 나중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설리의 어머니와 오빠가 왔었다고 한다.
오후 8시 40분경, 사설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했다. 그때까지 자택 안에 누워 있던 시신은 그제야 담장을 벗어났다. 설리의 매니저가 자택에 숨져 있는 그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 지 5시간이 지나서다.
공개 연애하며 네티즌 관심 집중돼

하지만 설리는 2015년 팀을 탈퇴하고 연기 활동에 주력했다. 걸 그룹으로 활동할 당시 ‘악플’로 인한 심적 고통을 호소했던 그는 연기자로 전업한 이후 좀 더 자유로운 행보를 보였다. 특히 그가 팬들과의 소통 창구로 여긴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꾸밈없는 일상이 담긴 사진을 꾸준히 올려 화제를 모았다.
가끔은 너무나 자유분방한 언행으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특히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고 찍은 사진이 구설에 올랐는데 당사자인 설리는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설리와 가깝게 지내는 지인들은 바로 이 점을 염려했다.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으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한 척해서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온라인상에선 자유분방하게 보일지 몰라도 설리는 ‘집순이’였다”며 “잘 놀 줄도 모르고, 남에게 큰 소리도 못 내는 마음이 참 여린 친구였다”고 말했다.
설리가 자유분방한 성품을 갖게 된 건, 연인 관계였던 래퍼 최자의 영향이 컸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최자와 사귄 2014년부터 그녀의 표현 방식이 솔직하고 대범해졌다는 것이다. 교제 당시 이들은 SNS상이나 공개적인 자리에서도 서로에 대한 애정 표현을 숨지지 않아 주변의 질투와 부러움을 샀다. 그러다 차츰 설리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2015년 최자가 발표한 ‘먹고하고자고’라는 노래 때문이었다. 이 노래를 접한 설리의 지인들은 최자가 설리를 성적 대상으로 희화화했다고 비난했지만 이 같은 반응이 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을 만큼 두 사람은 뜨겁게 연애하다 2017년 결별했다.
이후에도 소신 있는 행보를 보이며 당당함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설리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네티즌들은 재능 많고 아름다운 그의 짧은 생을 안타까워하며 충격과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일부 팬은 최자를 원망하며 무자비한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하지만 최자 또한 비통하기는 마찬가지. 최자는 10월 16일 인스타그램에 고인을 애도하는 글을 남겼다. ‘우리는 서로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을 함께했다. 이토록 안타깝게 널 보내지만 추억들은 나 눈감는 날까지 고이 간직할게. 무척 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설리는 사랑에 굶주린 아이였다”

‘우울증에 의한 사망설’을 뒷받침하는 가족의 증언도 나왔지만 2016년 11월 사회면을 장식했던 한 사건을 중요한 징후로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당시 언론을 통해 ‘설리가 만취 상태로 한 병원 응급실에 실려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설리가 자살 기도를 했다’는 루머가 돌았다. 이에 설리의 소속사는 공식 입장문을 통해 “설리가 집에서 부주의로 인한 팔 부상이 생겨 새벽에 병원 응급실을 찾아 치료받고 귀가한 상황”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그러나 ‘응급실에 내원할 당시 설리의 손목에 자상(刺傷)이 있었고, 술 냄새가 나지 않았다’는 얘기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떠돌면서 설리를 둘러싼 흉흉한 소문들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갔다. 시간이 지나 설리가 완쾌한 모습을 SNS에 올리면서 소문은 수그러졌지만 설리의 갑작스러운 사망이 그때의 응급실 소동을 다시 떠올리게 하고 있다.
경찰 조사가 끝나지 않았지만 설리의 우울증이 악화된 가장 큰 원인은 악플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설리가 사망 직전까지 ‘악플의 밤’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다는 점도 이 같은 분석에 힘을 싣고 있다. ‘악플의 밤’은 연예인이 자신을 향한 악플을 직접 낭독하며 대처법을 모색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때문에 ‘가학적’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세간에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설리의 가정사는 평범하지 않다. 한 측근은 이런 설리를 두고 “사랑에 굶주린 아이였다”는 말을 했다. 어쩌면 대중을 향한 설리의 자유분방한 언행은, 사랑을 갈구하는 나름의 표현법이었는지도 모른다.
기획 김지영 기자 사진 뉴스1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설리 인스타그램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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