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가정부’ 박복녀가 등장하며 어수선했던 집은 정리되지만 반대로 가족 내부의 어두운 그림자는 부각된다.
SBS 월화드라마 ‘수상한 가정부’는 엄마의 장례식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세상에 남겨진 어린 4남매와 젊은 아빠에게, 엄마는 죽은 뒤에야 가정 안에서 그의 역할이 얼마나 절대적이었는지 증명한다. 장례식 이후 엉망으로 흐트러진 집 안 구석구석은 엄마의 부재가 빚어낸 황폐한 가족의 풍경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 위기의 가족 앞에 무표정한 얼굴, 감정 없는 태도, 베일에 가려진 과거를 가진 가사 도우미가 등장한다. 여러모로 수상쩍기 그지없지만 업무 능력만큼은 만능. 박복녀(최지우)라는 이름의 그녀는 은상철(이성재)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의 노동을 완벽하게 대체한다. 엄마의 레시피로 음식 맛을 똑같이 재현하는 것은 물론이고 학부모 면담까지 훌륭하게 수행해낸다.
엄마와의 결정적 차이라면 복녀는 시간당 1만5천원의 수당을 받는다는 것. 즉, 이 드라마에서 복녀의 등장이 불러온 첫 번째 효과는 이제껏 비가시적 영역에 놓여 있던 엄마들의 가사 노동 가치를 구체적인 수치로 드러내 보인다는 점이다. 복녀와 달리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점까지 감안하면 그 가치는 훨씬 높아진다. 그렇게 겉으로 평온해 보이는 가정은 사실 한 사람의 희생 위에 세워져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두 번째 효과는 엄마들의 감정 노동에 대한 인식을 끌어냈다는 점이다. 복녀가 등장하면서 어수선했던 집의 외양은 깔끔하게 정돈되지만, 반대로 가족 내부의 어두운 그림자는 수면 위로 어지럽게 떠오른다. 그 중심에는 그동안 철저히 감춰져 있던 엄마의 슬픔과 상처가 놓여 있다. 가족들은 엄마에게 의존하기만 할 뿐 엄마의 감정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온 가족이 매일 접하는 냉장고 문 위에 붙어 있었으나, 아무도 쳐다보지 않은 채 방치돼 있던 엄마의 유서는 그녀의 희미했던 생전의 존재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엄마의 유서를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도 복녀였다. 유서가 개봉되면서 밝혀지는 것은 엄마의 깊은 상처다. 은상철은 가족 몰래 회사 동료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고, 자녀들이 생전의 엄마에게 건넨 마지막 말은 “싫고 성가시다”였다. 또 사고로 알려진 엄마의 죽음은 그 슬픔을 혼자 삭이다가 택한 자살이었음이 밝혀진다.
결국 가족에 대한 엄마의 헌신과 애정은 누구에게도 보답받지 못한 감정 노동이었던 셈이다. 혼란에 빠진 가족 구성원이 고민과 속내를 토로할 때마다 아무런 공감의 의사도 표현하지 않는 복녀는 감정 노동을 철저히 거부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엄마가 해온 감정 노동의 가치를 깨닫게 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엄마의 죽음 이후 홀연히 등장해 그의 소중한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복녀는 어쩌면 무시당하고 폄하돼온 모든 엄마들의 유령일지도 모른다.
‘수상한 가정부’에서 그려내는 가족의 위기, 그 핵심은 여성에게 절대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가부장제의 모순에 있다. ‘가족이 힐링이다’라는 제목의 프로젝트를 추진하던 은상철이 오히려 불륜으로 가정의 파국을 불러오는 모습은 그러한 모순을 잘 나타낸다. 그러나 이러한 모순의 결과는 여성에게만 미치지 않는다. 은상철의 외도에는 스스로 ‘송금 기계’ 같다는 인식 아래 가장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이 주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심리적 배경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작품은 정상 가족처럼 봉합돼 있던 한 콩가루 집안의 적나라한 실상을 통해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되는 가족제도의 불편한 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엄마가 없는 가정’만 돌아다니며 비밀을 들춰내는 박복녀는 그 모순의 시작이 여성의 존재를 부재 상태로 만드는 가부장제에 있음을 고발한다. 수상한 것은 그녀가 아니라 현 가족제도다.
김선영 씨는…
‘텐아시아’ ‘경향신문’ ‘한겨레21’ 등의 매체에 칼럼을 기고 하고 있으며, MBC· KBS·SBS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에서 드라마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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