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행자 여사의 삼남 정대선 씨와 아내 노현정 씨.
한국 전통 공예품과 현대 미술품이 어우러진 본태박물관이 2012년 11월 제주도에 개관했다. 설립자는 고 정몽우 전 현대알루미늄 회장의 부인 이행자 여사(68). 개관식에 앞서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의 본태박물관을 찾았다. 행사는 오후 1시부터였지만 일찌감치 모인 사람들은 상차림과 시설 점검으로 분주했다. 이 여사의 세 며느리 구은희 씨와 김선희 본태박물관 관장, 노현정(34) 전 KBS 아나운서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주방 안팎을 오가며 개관식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이날 행사에는 배우 강부자, 작가 김수현 외에도 김한길 전 민주통합당 최고위원과 배우 최명길 부부,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등이 참석해 박물관 개관을 축하했다.
본태박물관은 전통공예품을 전시하는 제1박물관과 현대 미술품을 전시하는 제2박물관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제1박물관은 설립자인 이 여사가 평생에 걸쳐 모은 자료의 집약체. 박물관 벽 전체를 차지하는 소반으로 만든 타워가 인상적이었다. 조선 시대 선비 문화를 보여주는 책장, 서안, 문갑, 연상, 관복장 등 가구 외에도 선비들의 손길이 닿았던 담배함, 재판, 고비 등 일상용품이 단아한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제2박물관은 살바도르 달리, 페르낭 레제, 이브 클라인, 안젤름 키퍼 등 현대 작가들의 미술 작품과 본태박물관을 설계·시공한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건축 세계를 다루고 있었다.
‘본태(本態)’는 본래의 형태·모습이란 의미. ‘본태’라는 이름은 이 여사가 직접 지었다. 그는 ‘본때를 보여주마’라고 할 때 본태가 ‘자기 모습’이라는 뜻이지 않냐”라며 만족스러워했다.
그는 15년간 시부모를 모시면서 전통적 생활 방식을 고수한 시어머니(고 변중석 여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한국 전통미에 관심을 갖게 됐다. 남편을 내조하며 집안 대소사를 관장하느라 자신만의 삶을 돌이켜볼 여유가 없던 그는 우연히 들른 골동품상에서 잊고 있던 꿈을 찾았다. 아들 셋(일선, 문선, 대선)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틈날 때마다 골동품 상점으로 향했다. 전시품 중에는 그가 수집한 물건 외에 실제로 쓰던 물건도 있다. 그는 “집에서 수십 년씩 자리를 지키던 물건이 나가니까 허전한 마음도 있더라”라고 했다.
“처음에는 농이 예쁘고 좋았는데, 모으려니 자리를 많이 차지하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한 게 소반이었어요. 박물관 안에 소반 타워가 있는데 소반만 2백여 점 모았죠. 옛날부터 모은 거라 지금은 보기 드문 물건들이 많아요. 보자기도 모으고 그거랑 어울리는 수예품도 모았죠. 인사동과 장안동 골동품상 가는 게 취미였어요. 한참 구경하다가 그냥 나오기 부끄러워서 한 점 사기도 하고, 추운 겨울에도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보는 게 좋더라고요. 마음 한구석은 시원해요. 서양식 집에서 사는 요즘 아이들은 이런 걸 어디에 썼는지 모를 테니 보여줄 수 있어서 좋죠. 당시에는 여유도 없었고, 민속품에 더 마음이 가서 민속품을 모았지만 지금은 그게 잘한 일 같아요. 비싼 도자기 모았으면 그게 큰 의미가 있었겠어요.”
1 본태박물관 개관식 현장. 2 본태박물관 내부. 3 축배를 드는 설립자 이행자 여사(맨오른쪽).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도 동석했다.
한국의 미와 여인의 인생 담은 박물관
개관식 당일에는 본태박물관을 설계하고 시공한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사인을 받으려고 구름 같은 인파가 몰렸다. 그와 이 여사의 인연이 궁금했다.
“일본통인 친한 선배가 참 좋은 곳이 있다고 해서 배를 타고 일본 가가와 현의 섬 나오시마에 갔어요. 당시에는 한국에 노출 콘크리트를 이용한 건물이 없었는데, 그곳에서 건축물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처음 느꼈어요. 이 건물을 만든 사람 이름 좀 알아보자 했는데 그게 안도 다다오였어요. 막연하게 저런 좋은 건물을 박물관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15년 만에 베네치아에서 만났어요. 이분이 ‘뭐든지 해주겠다’며 적극 도와준 게 인연이 됐죠.”
이 여사는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사는 게 제일이더라”라며 “최선을 다했기에 살면서 어려운 일도 이겨낼 수 있었다”고 했다. 재벌가의 며느리로 부족함 없이 살았을 것 같은 그가 “어렵게 살았다”는 말을 하는 것이 의외였다. 하지만 박물관을 열기까지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고. 1990년 남편이 사망한 후 집안 문제가 겹치며 박물관에 대한 꿈을 접어야 할지 고민하던 그에게 힘을 보탠 건 시동생인 정몽준 새누리당 국회위원이었다. “아이들도 모두 결혼시켰으니 제주도에 박물관을 짓고 보살피며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이 여사에게 그는 “왜 망설이느냐, 형수님이 하고 싶으면 하시라”며 도움을 줬다고. 손아래 동서 김영명 여사도 지지해줬다. 이 여사는 “시동생이 혼자 된 형수를 많이 생각해준다”며 웃었다.
이 여사의 3남 정대선 현대 비에스앤씨 대표이사의 아내 노현정 전 아나운서는 “처음에는 어머님의 삶과 관심 분야를 모르니까 박물관을 왜 하고 싶어하시는지 궁금했는데, 워낙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은 분이었다”라며 “청소년 등 젊은 세대를 위해 수집품을 하나둘씩 모으면서 교육적으로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추진하셨다”라고 밝혔다.
김선희 관장은 이 여사의 차남 정문선 현대비앤지스틸 전무의 아내다. 그는 “처음에 어머님댁에서 살 때는 그런 물건들이 집 안에 있는 줄도 몰랐는데, 책을 만들기 위해 꺼내시는 걸 보니 정성이 느껴졌다”고 했다. 이 여사는 “둘째 며느리가 홍대 미술사학과를 나와 이 분야 전문가”라며 “처음에는 물건들을 정리해보라 하다가 책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서 박물관 관련 일을 다 했다”며 치켜세웠다. 그리고는 2백90여 쪽에 달하는 두툼한 박물관 개관 기념 도록을 꺼내서 “사람들이 책을 보고 ‘이 정도면 전통문화 교과서다’라고 할 때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서울에서 이 여사를 다시 만난 건 본태박물관이 개관한 지 한 달여가 지나서였다. 둘째 며느리 김 관장, 셋째 며느리 노씨도 함께였다. 제주도에서 못다 한 박물관 이야기와 며느리이자 시어머니로 살아온 그의 삶을 들을 수 있었다. 개관식에 온 명사들과의 인연이 궁금했다.
“홍라희 관장은 친구라서 격려 목적으로 방문했어요. 강부자 씨와 김수현 작가는 아버님 (살아) 계실 때부터 친했던 사람들이에요. 최명길 씨는 부군과 같이 왔는데, 김한길 씨가 국민당 시절 아버님 공보특보를 하셨거든요.”
이 여사는 “지금 생각하면 젊은 시절부터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것 같다”라며 “여전히 가구 디자인 등에도 관심이 많다”고 했다. 현대호텔 고문을 지낸 그는 요즘도 현대그룹에 들어갈 가구 색상이나 디자인을 살펴본다고. 감각이 있다는 말에는 “그런 것 같다”며 웃었다.
“(저희가) 예쁘게 하고 나타나지 않으면 어머니께서 싫어하세요(웃음). 남편이나 아들도 살이 붙으면 빼라고 하시고요.”(노현정)
“며느리가 아무렇게나 하고 다니면 싫어요. 보기에 안 좋은 건 싫어해요. 그런 성격이 있어요.” (이행자)
평소에 메이크업과 헤어도 직접 한다는 그는 “아침마다 ‘구리프’도 직접 마는데 어때요, 곧잘 하죠”라며 웃었다.
“저는 굉장히 소탈해요. 다른 재벌 며느리들이 자기 마음을 안 드러내고 간접화법을 쓰는 것과는 스타일이 다르죠. 저는 직설법을 써요. 그래서 오해를 받을 때도 있고 제게 상처받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속 시원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나이 먹으니까 이런 직설화법이 인기가 있나 봐요(웃음).”
‘1등 시어머니’ 이행자의 3無 원칙
직설화법을 구사하는 시어머니가 며느리들에겐 부담스럽지 않을까.
“표현만 셀 뿐 마음은 여려요. 친한 프로 골퍼가 저더러 ‘대한민국 1등 시어머니’라고 하는 거예요. 속으로 깜짝 놀랐어요. ‘아니, 나 스스로 1등 시어머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았지’ 싶었거든요(웃음). 어디 나가서 손주 자랑이나 가족 이야기를 잘 안 하는데 궁금해서 물어봤죠. 그 친구 말이 며느리 오라 가라 안 하고, 잔소리 안 하고, 아들네 방문을 안 해서 1등 시어머니라는 거예요. 그저 며느리들이 예쁘게만 하고 오면 ‘응 예쁘다~’ 하고, 너희끼리 잘살면 그게 효도라고 생각하니까 아들네 집에 잘 안 가요. 다른 집은 며느리더러 오라 가라 하나 봐요?”(이행자)
“어머니께선 참 편하게 해주세요. 집안에 제사가 있을 때에는 잘하기를 원하시죠. 평소에는 자유롭게 지낼 수 있도록 해주시고, 딸은 아니지만 딸처럼 대해주세요.”(김선희)
“보통 시어머니가 며느리 처지에서 생각하기가 쉽지 않은데 어머님이 그런 분이세요. 편하게 생각하고 의지할 부분도 많지만 배울 점도 많은 분이에요.” (노현정)
하지만 시어머니로서 며느리가 잘못하면 혼낼 일도 있는 법이다.
“저는 아이들에게 음식을 매번 싸서 보내는데, 그러면서 며느리에게 ‘너 잘 먹어라’ 하지 ‘남편도 먹이고’ 이런 소리 한 번 하지 않아요. 일일이 그런 말 하는 게 얼마나 촌스러워요. 그렇게 안 해도 자기 남편인데 알아서 잘 먹이겠죠. 저는 그런 게 싫어요. 어떨 때는 아들들이 아내와 다투고 나서 제게 이를 때가 있어요. 그러면 네 일은 알아서 하라고 말하죠. 네가 라면을 얻어먹든 굶든 다 네 능력이라고요. 그런 면에서는 며느리들이 편하지 않을까요(웃음).”(이행자)
1 남편 김한길 민주당 최고위원과 고 정주영 회장과의 인연으로 개관식을 찾은 탤런트 최명길. 2 홍라희 관장과 이행자 여사가 건배하고 있다. 3 박물관을 설계한 건축가 안도 다다오와 설립자 이행자 여사.
4 겨울맞이 김장에 나선 이행자 여사와 며느리들. 5 본태박물관 설립자 이행자 여사의 개관식 준비를 도운 세 며느리. 왼쪽부터 첫째 며느리 구은희 씨, 이행자 여사, 둘째 며느리 김선희 씨, 셋째 며느리 노현정 씨.
“다른 집 친구들이 들으면 부러워해요. 어머니께서 워낙 자신에게 엄격하시니까 알아서 조심하게 되죠. 혼내기 전에 제가 먼저 ‘이렇게 하면 안 될 것 같다’라고 생각하죠. 어머니는 혼낼 때도 짧고 굵게, 임팩트 있게 하시고 뒤끝이 없어요. 아이들과 며느리 먼저 챙겨주시고, 음식 보내면서도 ‘이거 대선이가 좋아하는 거다’ 이 정도만 하시죠.”(노현정)
“저는 그런 게 체질에 안 맞아요. 그런 말 일일이 하는 거 자존심 상하잖아요.”(이행자)
“그 강한 자존심이 일하는 모든 것의 바탕이 되는 것 같아요.”(노현정)
“맞아요. 하루에도 집안일을 비롯해 백 가지 일을 하시는데 저는 일이 처음이니까, 존경심이 먼저 앞서요. 항상 친정어머니처럼 먼저 챙겨주시고요.”(김선희)
“사돈어른들이 저보다 아이들을 훨씬 잘 키웠다고 생각해요. 다들 가정교육 잘 받고 시집온 아이들인데, 남의 집 귀한 딸인데, 그런 생각을 하죠.”(이행자)
오랜 시집살이가 몸에 밴 이 여사는 “지금도 잠 안 자기 내기하면 나를 이길 수 없을 것”이라며 “잘 걷지도 않고 운동할 여유도 없지만 걷기 대회 나가면 1등 한다”고 했다.
“저는 아직도 할 일이 많은 것 같아요. 늘어지게 뭔가를 할 여유가 없어요. 그러다 보니 걸음도 빠르고, 친구들과 전화 통화할 때도 용건만 간단히 하고 끊어요. 그런 자세가 몸에 배어 있거든요.”(이행자)
“제가 공항에서 뛰어가도 어머님을 못 따라가겠더라고요.”(노현정)
“뛰어도 안 돼(웃음).”(이행자)
노현정은 하나 말하면 열 알아듣는 며느리
이 여사는 앞으로도 묵묵히 박물관 살림을 맡을 뿐 전면에 나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박물관 개관식에서도 인사말을 해달라는 요청을 한사코 거절해 결국 둘째 며느리 김 관장이 대신했다.
“마이크 잡고 하는 일을 잘 못해요. 외모는 꾸미는 편이지만 허례허식은 싫어하죠. 그래서 슬쩍 관장인 아이(김선희 관장)한테 인사말을 시킨 거예요. 얘는 물 흘러가듯 은근히 자연스러운 면이 있어요. 저는 어렵게 생활해서 ‘예스’ ‘노’가 분명한 편인데, 얘는 순순하게 나가서 얘기해라 그러면 하고(웃음).”(이행자)
셋째 며느리 노현정 씨는 시어머니의 매니저를 자처하며 일정 관리와 홍보를 도맡아 한다. 이 여사에게 연예인 며느리를 얻은 소감을 묻자 “예능 프로그램을 별로 안 좋아해서 처음에는 노현정이 누군지도 몰랐다”고 했다. 노씨가 KBS 간판 아나운서로 활동할 때였다. 옆에서 노씨가 “어머님은 MBC 뉴스 보셨대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하루는 대선이가 방에 들어오더니 KBS를 틀더라고요. ‘왜 그래’ 하니까 ‘저 친구 좀 보세요’라며 어떤지 물어보더라고요. 하하하. 처음에는 우리 집에서 그렇게 결혼한 사례가 없어서 걱정했죠. 그랬더니 선도 안 보겠다며 버티더라고요. 마음에 들고 성격이 맞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나요. 제가 강부자 씨랑 친하거든요. 상담했더니 ‘어머, 그 아이가 요즘 대세야’ 하더니 괜찮다며 칭찬하셨죠. 정몽준 의원에게도 털어놨더니 ‘형수님, 요즘 아나운서가 얼마나 똑똑하고 되기 어려운지 아세요. 자기들끼리 좋다면 얼른 결혼시켜요’ 하더라고요.”
셋째 며느리의 첫인상은 “눈이 동그랗고 착해 보였다”고. 이 여사는 짐짓 모르는 체 아들에게 “현정이가 왜 좋니” 하고 물었다. 아들의 대답은 “한마디를 하면 열 마디를 알아듣는 여자”라는 것. 그렇게 결혼 발표를 하고 노씨는 외부와 연락을 끊고 신부수업에 열중했다. 바뀐 생활에 적응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터. 노씨는 “제가 좀 단순하다”라며 “워낙에 남편을 좋아해서 그랬는지 시키는 대로 다 했다”고 했다.
그런데 “아들이 아내 될 여자에게 현대가 룰을 가르치면서 저보다 더 혹독하게 미리 시집살이 시키는 것을 보며 내 심장이 다 떨렸다”는 이 여사의 말이 뜻밖이다. 이 대목에서 셋째 며느리가 부연 설명을 했다.
“저는 살림을 남편에게 배웠어요. 시집오기 전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몰랐거든요. 초기에는 워낙 바쁘게 바깥일만 하면서 살았잖아요. 아무래도 결혼 초에 추측성 기사가 나온 것도 있고, 저를 빨리 현대가에 적응시키려고 강하게 가르친 것 같아요. 부엌 살림부터 이불 정리, 조심스럽게 운전하는 법까지 많은 걸 배웠죠. 단기간 속성으로(웃음). 그게 결국엔 옳은 방향이었고 가정의 화목을 지키는 좋은 방법이었어요. 한 살 차밖에 안 나지만 남편을 존경해요.”(노현정)
아나운서 시절은 물론이고 결혼 후에도 세간의 관심을 받아온 노현정 씨에게 방송 복귀 의사는 없을까. 그는 “진행하기 어려운 프로그램을 볼 때면 ‘잘한다, 나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을 하곤 하지만 아나운서로 활동하며 여러 가지를 많이 해볼 수 있어서 감사할 뿐이다”라고 했다.
이 여사는 옛것에 대한 애착과 후손들에게 이런 아름다움을 알려주려는 마음으로 박물관을 설립했을 뿐 ‘현대가에서 박물관 사업을 벌인다’고 확대 해석하지는 않기를 당부했다. 그는 “전통문화 보존과 교육에 대한 생각으로 소소한 전통 민속품을 모아왔다는 자부심이 있다”라며 “세계 어떤 사람들이 와서 봐도 손색없는 박물관으로 키워나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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