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하 넝굴당)은 ‘시월드’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시어머니, 시아버지, 시누이 더 넓게는 시이모, 시고모까지 ‘시’ 자가 들어간 시집 식구가 있는 곳이, 바로 ‘시월드’다.
‘넝굴당’은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서로 악다구니를 써가며 불꽃 튀는 전쟁을 벌이는 대신 한 걸음씩 양보하며 평화를 지켰다는 점에서 고부 관계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채널A가 9월 중순부터 새로 선보이는 토크쇼 ‘웰컴 투 시월드’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들이 출연, 그간 앙금으로 남아 있던 마음 속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자리다.
고부 문제에 관한 한 여자들이 원하는 것은 ‘잘잘못을 따지는 명확한 판결’이 아닌 ‘공감’이다. 어쩌면 이는 시어머니 또한 마찬가지다.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마음속에 삭여두었던 이야기를 이제는 꺼내놓자는 거다. 그러다 보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웰컴 투 시월드’의 MC를 맡은 정찬우, 최은경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시월드’의 상식을 이야기한다
“첫 방송에서 아들 내외가 부부관계를 하는지 안 하는지 알아보려고 시어머니가 아들, 며느리가 벗어놓은 속옷을 살펴본다는 시청자 사연이 소개됐어요. 말도 안 되는 것 아닌가요? 손자를 학수고대하고 있다면 한 번쯤 물어볼 수도 있는 걸까요? 아무리 그래도 방법이 잘못되지 않았나요?”
‘시월드’ 입성 15년 차인 최은경(41)은 며느리지만 시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해 보려는 태도를 보인다.
“정말 궁금하다면 솔직히 터놓고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몰래 속옷을 훔쳐보다니! 밤 12시에 아들 먹일 국을 들고 아들네 집에 몰래 들어온 시어머니도 마찬가지죠. 아이들 깰까봐 조용히 왔다 가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고 봐요. 미리 ‘가겠다’고 말해두면 오죽 좋았겠어요.”
결혼 12년 차 ‘컬투’ 정찬우(44)는 고부간에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사건에 대해 상식과 비상식의 경계에서 명쾌한 해답을 찾아낸다. ‘넝굴당’의 완벽남 방귀남의 역을 정찬우 또한 제대로 해온 모양이다.
이들은 모두 소통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일단 대화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상식적인’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 하지만 어쩌면 고부 갈등이 그 전통을 자랑하는 이유가 ‘상식 선에서는 판단하기 애매한 문제’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 ‘현관 키 번호를 시어머니와 공유해야 하나?’ ‘술주정뱅이 시누이를 계속 데리고 살아야 하나?’ 지난 방송에 소개된 내용이에요.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참 어려운 문제죠. 어쩌면 ‘웰컴 투 시월드’가 고부간의 ‘애정남’ 노릇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정찬우 “고부간의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아들밖에 없어요. 그래서 남자의 역할이 중요하고, 또 그만큼 힘든 거죠. 저는 저희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지금까지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프로그램의 MC가 되면 할 말이 많을 줄 알았는데 막상 진행하다 보니 시어머니나 며느리, 그 누구의 편도 들 수 없겠더라고요. 섣부르게 이렇다, 저렇다 말해 버리면 오히려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질 것 같아요.”
최은경 “친구들끼리 모이면 가끔 시댁 이야기를 하는데 그땐 판단을 해주면 안 돼요. 그냥 무조건 내 편이 돼달라고 털어놓는 거니까요. ‘그래, 네가 고생이 많다’ ‘너희 시어머니 왜 그러신다니?’ 하면서 맞장구 쳐줄 사람이 필요한 거죠.”
채널A 토크쇼 ‘웰컴 투 시월드’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속마음을 솔직하게 터놓는 프로그램이다.
▼ 두 분은 시어머니 혹은 어머니와 현관 키 번호를 공유하나요?
정찬우 “저희 어머니는 저희 집에 거의 안 오세요(웃음).”
최은경 “저희가 오래된 아파트에 살다 보니까 주차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그런지 밑반찬을 만들어다주실 때 들어오시라고 해도 ‘주차 힘들어서 안 들어간다’며 ‘내려와서 반찬 받아가라’고 하셨죠. 지금은 아예 필요할 때 알아서 가져가라고 저희 집 앞으로도 잘 오시지 않아요.”
▼ 신혼 초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남자들은 고부 갈등이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을 것 같아요.
최은경 “명절 내내 한복을 입고 있어야 하는 시댁 문화가 낯선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날 아니면 언제 입어보나 싶어서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명절 분위기도 나고 좋았죠. 그런데 이제는 어머니가 서로 불편한 것은 생략하자며 한복도 입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당신이 ‘시월드’에서 힘드셨던 일을 당신의 며느리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으신가 봐요. 그런 점이 감사하죠.”
정찬우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게,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 되는 것’이었어요. 여자들 간에 미묘한 감정이 있더라고요. 제 아이나 조카들이 어렸을 때는 툭하면 싸우고 울곤 했는데, 울린 아이 쪽 엄마는 ‘아직 어리니까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반면 우는 아이 쪽 엄마는 속상하거든요. 그때는 참 어떻게 할 방법이 없더라고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도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더군요.”
▼ 고부간의 문제 때문에 부부싸움을 한 적은 없었나요?
정찬우 “왜 안 싸우겠어요. 그래도 저는 어머니 앞에서는 무조건 어머니 편을 들어요. 행여 어머니가 실수를 하셔도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또 저와 아내는 나중에 집에 와서도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어머니는 우리가 떠나면 집에 덩그러니 혼자 계시잖아요. 제가 아내 편만 들고 집으로 횡 가버리면 ‘자식 낳아봐야 하나도 소용없다’ 는 서운한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 어머니 편만 들면 아내가 서운할 것 같아요.
정찬우 “집에 와서는 달래주고 풀어주죠. 계속 대화를 하면서 서로 간에 이해의 폭을 넓히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최은경 “서로에게 서운하지 않으려면 각자 효녀, 효자가 되는 방법도 좋은 것 같아요. 아무래도 각자의 어머니를 바라보는 온도 차가 있을 수밖에 없거든요. 각자 뜨거운 쪽에 더 많이 신경 쓰고 덜 뜨거운 쪽에는 사랑이 가는 만큼만 신경 쓰면 양쪽 부모님들에게 전달되는 사랑의 합은 똑같아지는 거거든요. 대신 상대방에게 나만큼 신경 쓰길 바라면 안 돼요. 바라는 게 많으면 섭섭한 것이 생기게 마련이거든요.”
▼ 고부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려면 서로 노력해야 할 부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최은경 “‘웰컴 투 시월드’ 홈페이지를 보니 저를 ‘대한민국 대표 날라리 며느리’라고 표현했더라고요. 아이고, 창피해라(웃음). 사실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도 더 자주 못 드리고 자주 찾아뵙지도 못해 죄송해요.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뭔가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에요. 최근 어머니께서 발 수술을 받으셨는데 아침마다 따뜻한 곰국을 보온병에 담아 도시락 과 함께 남편 편에 보냈거든요. 일 때문이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며느리가 지키고 서 있는 게 어머니가 오히려 불편하실 것 같아서요.
정찬우 “결혼한 지 꽤 오래되다 보니 이제는 서로 알아서 잘해주는 것 같아요. 어머니가 좋아하는 게 뭔지 아내도 알게 되고, 아내의 성격도 어머니가 잘 알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편안한 관계가 돼가는 거죠. 특히 어머니는 간섭을 전혀 안 하세요. 사실 고부간 문제는 간섭에서부터 시작되거든요. 어머니는 해드리면 해드리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좋다, 나쁘다 말씀을 안 하시거든요. 아내도 때 되면 조카 아이 생일까지 기념일은 한 번도 빼 놓지 않고요.”
최은경 “저절로 잘 굴러가는 결혼 생활은 없는 것 같아요. 잘 맞는 사람과 만나 결혼했다고 평생을 거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또 나 좋다고 데려왔으니 행복하게 해줘라 하는 것도 말이 안 되고요. 잘 살려면 노력하는 수밖에 없어요. 닦고 기름 치고 조여야 잘 굴러가는 게 결혼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죠. 어떤 때는 삐거덕거리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는데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저절로 바뀌는 것은 없거든요. 결혼 후 아무 노력도 없이 행복한 사람은 못 본 것 같아요. 노력하면 굴러떨어지지는 않으니까요.”
무뚝뚝한 남자 정찬우, 애교 많은 여자 최은경
엄밀히 따지자면 고부 갈등은 수많은 부부싸움의 원인 중 한 가지에 불과하다. 단지 그 싸움이 원인이 돼 이혼하는 커플이 전체 이혼 커플의 22%를 넘어서기 때문에 그 문제의 심각성이 부각되는 것일 테다. 결국 부부간에 사랑의 연대가 얼마나 견고하냐에 따라 수많은 부부싸움의 원인을 극복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된다. 해결책은 아내로서, 남편으로서, 엄마로서, 아빠로서, 또 며느리로서 사위로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할 때 비로소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무뚝뚝한 남자 정찬우 부부와, 애교 많은 여자 최은경 부부의 사는 모습이 말해주듯이 말이다.
▼ 방송에서는 두 분 모두 재미있고 자상한 스타일일 것 같은데, 실제로는 어떤 편인가요.
최은경 “제가 남편한테 쉴 새 없이 이야기할 것 같다고들 하던데, 오히려 밖에서 말을 많이 해서 그런지 남편이 하는 이야기를 주로 듣는 편이에요. 비교를 해보자면 저보다도 남편이 훨씬 애교가 많아요. 남편은 밖에서 누구를 만나, 뭘 먹었고, 뭘 했는지 시시콜콜하게 말하는 편이고요. 아파도 약을 잘 챙겨 먹는 편이 아니라서 매일 비타민이나 영양제도 챙겨주는 자상한 남편이죠. 그러다가 다투기라도 하면 딱 그걸 빼먹더라고요(웃음).”
정찬우 “저는 한마디로 무뚝뚝한 남자죠. 밖에서 있었던 일을 거의 얘기하지 않는 편이고요. 아내도 전혀 간섭하지 않습니다. 그게 편해요. 제가 라디오에, TV에, 공연에, 또 사업까지 하고 있잖아요. 너무 바쁘니까 저는 가장으로서 해야 할 몫을 하고, 아내는 가정과 아이들 교육을 책임져줬으면 하는 거죠. 대신 아내에게 아이들의 일과를 듣고 의논하는 시간이 행복해요.”
▼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이 적어서 아쉬울 때가 많을 것 같아요.
정찬우 “성적이 떨어져서 의기소침해 있다거나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는 날이면 아무리 늦은 밤이어도 깨워서 대화를 나눠요. 엄마가 물론 잘하고 있지만 분명 아빠가 해야 할 몫은 따로 있거든요. 큰아이가 중학교 1학년인데 얼마 전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다고 해요. ‘아빠 이야기를 안 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며 아이 칭찬을 하셨다하더라고요. 방송에서처럼 재미있는 아빠는 아니지만 아들이 마음을 털어놓고 기대 울 수 있는 아빠라는 게 고맙고 뿌듯하죠. 아직도 제가 아침마다 뽀뽀 해달라고 하는데 어린 시절부터 스킨십을 많이 해서 그런지 어색해하지 않거든요. 매일 일정한 시간에 전화 통화도 하고요. 그런 시간을 가지니까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해도 친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최은경 “아들이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인데요. 1학년 중반까지는 딱 달라붙어서 모든 것을 챙겨주는 엄마였죠(웃음). 그런데 지금은 공부를 잠시 놓았는데, 너무 놓았나 봐요. 다시 시작해야겠어요(웃음). 드라마 출연이나 ‘댄싱 위드 더 스타’처럼 하루 종일 매어 있어야 할 프로그램을 하지 않을 때는 비교적 많은 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내는 편이에요. 아이가 학교 간 틈을 타 할 일을 하고 학교로 마중을 나가거든요. 직장맘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아이를 보살피는 와중에 잠시 짬을 내서 후딱 일을 처리하죠. 다들 그러지 않나요?”
두 MC는 ‘웰컴 투 시월드’를 통해 며느리이자, 시어머니이자, 올케이자, 시누이인 이 시대의 여성들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힐링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한다. 평온한 가정, 평온한 시월드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다들 비슷비슷한 고민을 하고 난관을 얼마나 지혜롭게 헤쳐 나가느냐가 중요한 것이라고, 그리고 자신의 고민을 혼자 끌어안고 끙끙거리지 말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는 듯하다. 시어머니도 며느리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려면 조금 더 힘을 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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