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와 넥센 히어로즈의 경기가 벌어진 7월 13일 서울 잠실야구장. 4회 말이 끝나자 LG 트윈스 유니폼을 차려입은 7명의 아이들이 LG 트윈스 치어리더들이 응원하는 단상에 올라왔다. 여덟 살에서 열 살 사이의 어린이들은 음악이 시작되자 절도 있는 동작과 파워풀한 군무로 잠실야구장의 수만 관중을 사로잡았다. 어린이 응원단 레인보우(이하 레인보우). 현장에서 아이들의 어머니인 김지연, 김정옥, 허지훈, 백애자, 김은옥, 김지현 씨로부터 레인보우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했다.
어리지만 실력만큼은 ‘프로’
2008년 8월 창단한 레인보우(단장 김태범)는 6~13세 어린이로 구성돼 있다. 김태범 단장은 안양대학교 응원 단장 출신이다. 레인보우에 들어가면 전직 대학 응원단장 출신들의 지도 아래 치어리딩을 배운다. 이들은 LG 트윈스 전속 키즈 치어리더로 활동하며 ‘키즈데이’마다 응원을 나간다. 기업부터 대학교, 공공기관 행사, 지역 축제까지 수많은 곳에 초청받아 4백50여 회가 넘는 공연을 선보인 베테랑들이다. 현재 40여 명의 단원 중 남학생은 10여 명 정도. 이름이 알려진 만큼이나 실력도 탄탄하다. 6월 9일 ‘제7회 대한민국 청소년 치어리딩 페스티벌’에서 쟁쟁한 팀들을 물리치고 종합우승을 차지해 문화체육부 장관상을 받았다. 그 밖에도 2009년 코엑스댄스대회 1위, 2010년 서울메트로틴틴페스티벌 1위, 하이서울페스티벌 1위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한다.
방송 출연 경험도 풍부하다. 실제 단원들 중에는 CF 모델이나 아역 배우처럼 연예계 활동을 병행하는 아이들이 많다. ‘스타킹’에 출연한 것은 물론 지난해에는 ‘코리아 갓 탤런트’에 출연해 톱40에 들어 세미 파이널 무대까지 진출했다. 코리아 갓 탤런트에서‘질풍가도’ 노래에 맞춰 ‘칼 군무’를 선보인 이들은 심사위원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지역 예선 심사를 맡았던 송윤아는 “작은 체구에서 이렇게 엄청난 에너지가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아마 아이들보다 엄마들이 더 긴장했을 거예요. 예선부터 마지막 생방송까지 올라가는 동안의 경험이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됐죠. 힘들었지만 자신감도 얻었고, 사회성도 좋아졌고요. 엄마들이 정말 많이 울었어요.”(김정옥)
“세미 파이널에 올라가서 떨어지자 실망이 컸어요. 그러면서 느낀 게 ‘우리가 잘하긴 하지만 더 잘해야겠다’는 거였죠. 아이들이 두 시간씩 연습하면 힘들 텐데 울면서도 절대 ‘그만하겠다’라고 하지 않을 만큼 욕심을 내더라고요.”(김은옥)
대부분 온라인에서 영상을 보거나 친구들이 응원단 활동을 하는 모습에 흥미를 느껴 지원한 경우가 많았다. 배우림(8) 양 어머니 김지현(36) 씨는 “아이 친구가 응원단 활동을 하는 걸 1년여 간 지켜보다가 우리 아이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해 지원했다”고 했다.
6~13세 어린이로 구성된 응원단 레인보우.
“처음에는 ‘이런 것도 있구나’ 해서 아이에게 시켰거든요. 막상 하다 보면 힘든 점도 있지만, 지금은 아이가 아주 좋아해서 그만둘 수가 없어요. 자신감도 많이 생겼고요. 아이가 잘할 수 있다면 계속 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죠.”
배우림 양은 연기 공부를 하다가 레인보우 활동을 하던 친구를 따라 오디션을 봤다. 동생도 그를 따라 레인보우에 지원해 단원이 됐다. 배양에게 연기와 치어리딩 중 뭐가 더 재밌느냐고 묻자 “치어리딩이 더 재밌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배양은 “제 꿈이 배우인데 치어리더 활동을 하며 TV에도 나와서 좋다”고 말했다.
대부분은 검색을 하다가 레인보우의 공연 장면을 보고 치어리딩의 매력에 빠졌다. 김예지(8) 양도 그런 케이스. 일주일에 세 번씩 연습하고, 좀 오래되면 한 번씩 연습하지만 힘든 적은 없었다고. 김양은 “야구장에서 LG 트윈스 응원하는 것도 재밌고, 살도 많이 빠졌다”고 했다. 노래 듣고 춤추는 걸 좋아하는 김채원(7) 양은 좋아하는 춤을 마음껏 춰 힘든 연습도 이겨낼 수 있다며 “레인보우 활동으로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며 배시시 웃었다. 유채은(9) 양은 온라인에서 레인보우의 동영상을 본 아버지의 추천으로 오디션을 봤다.
“예전에는 감기에 자주 걸리고 몸이 약했는데 활동하면서 튼튼해졌어요. 친구들에게 자랑하면 그 친구들이 다른 친구들에게 자랑하니까 레인보우가 많이 알려져서 좋아요.”
방송 출연도 잦고 행사도 다녀야 하는 응원단 활동이 학업에 지장을 주지는 않을까. 차예주빈(9) 양 어머니 김지연(37) 씨는 “아이들이 이걸 한 뒤로는 다른 일도 더 악착같이 한다”고 귀띔했다.
“제가 평소에도 춤을 좋아했는데, 춤 사이트 검색하다가 레인보우를 알게 됐어요. 엄마가 공부도 열심히 하라고 해서 둘 다 열심히 해요. 또래 친구들도 많아요. 평소에 공연 없을 때도 만나서 놀아요. 키도 4cm 정도 컸고요.”(차예주빈)
레인보우 단원 중에는 학급 임원도 있고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도 많다고. 전우영(9) 군 어머니 백애자(32) 씨는 “다른 아이들도 다 하는 태권도나 발레 같은 활동 말고 특별한 걸 시키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군은 이번 학기 기말고사에서 전 과목 1백 점을 받을 정도로 학과 성적이 뛰어나다. 전군은 “금요일마다 연습하기 때문에 공부할 시간은 충분하다”고 했다. 응원단 활동의 장점을 물었더니 “친구도 사귀고, 운동도 되고, 키도 클 수 있어서 좋다”라고. 백애자 씨는 “아이가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라며 “일부러 찾아가기 쉽지 않은 곳까지 공연하러 다니다 보니 가족들이 주말을 즐겁게 보낼 수 있어서 좋고, 체험학습에도 도움이 많이 된다”고 귀띔했다.
레인보우에는 어린이 단장이 따로 없다. 매 곡마다 다른 아이가 ‘센터’에서 군무를 이끈다. 유채은 양 어머니 김은옥(36) 씨는 “처음에는 아이가 워낙 춤을 좋아해서 시켰는데, 나중에는 아이 스스로 찾아 하는 게 많다”라고 말했다.
“아이에게 ‘네가 응원단을 하지만, 학교 숙제도 자신과의 약속이니 해야 한다’라고 하면 새벽에 혼자 일어나 숙제를 해요. 자기가 해야 할 일에 대해 뚜렷한 생각을 갖고 있어서 부모로선 정말 좋죠. 여섯 살 어린 동생이 있는데, 언니 덕에 야구장이나 박물관 등 행사장 구경을 많이 해서 좋아해요.”
하루에 네다섯 차례 잇달아 무대에 설 때도 있다. 김성헌(7) 군 어머니 김정옥(38) 씨는 “어린이들이 정작 어린이날에 못 쉬고 새벽부터 준비해 행사를 나간다”라며 웃었다. 김군은 연습하다 코피를 흘리기도 했지만 “힘들어도 재미있다”며 웃었다. “‘스타킹’에서 치어리딩과 보여주고 춤을 보여줬다”라며 “재밌는 동작을 많이 배울 수 있어 치어리딩이 좋다”고 했다.
춤 실력보다 중요한 건 책임감과 끈기
응원단 활동을 하려면 춤을 잘 춰야 할까. 대답은 아니오. 김지현 씨는 “다들 응원단 하면 춤을 잘 출 거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라고 말했다.
“군무를 춰야 하니 개인의 춤 실력보다도 책임감과 끈기, 체력이 있으면 잘할 수 있어요. 저희 아이도 그런 걸요.” (김채원 양 어머니 허지훈·32)
“우리 우영이도 춤을 못 추던 상태에서 들어와 많이 늘었죠.”(백애자)
“서로 도와주고 안무도 체크해주면서 단결력도 생겼어요.”(김은옥)
“치어리딩은 한 명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요.”(김지연)
활동하는 데 애로 사항은 없는지 묻자 김정옥 씨가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말을 꺼냈다. 어머니들이 “맞아, 맞아”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레인보우 치어리더들이 무대에 오르기 전 의상을 점검하고 안무를 맞춰보는 모습.
“야구 경기는 오후 6시 30분에 시작하는데, 저희는 그전부터 리허설을 하고, 입장해서도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기다려야 하니까 이게 인내심이 많아야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어리고 혼자 뭔가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서, 공연이 있으면 온 가족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게 단점이에요. 생활 자체가 아이에게 초점이 맞춰지죠. 동생이 둘인데 걔네들도 새벽에 같이 눈을 떠야 하니까요.”(허지훈)
그래도 활동을 통해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다고 한다. 특히 커리큘럼에 ‘키 성장 프로그램’도 있어 매주 스트레칭하고 점프하다 보면 키가 안 자랄 수가 없다고. 김정옥 씨는 “2년 전인 여섯 살 때부터 아이가 활동했는데, 작년에 재보니 어느새 키가 6cm나 컸다”고 말했다.
“채은이는 기관지가 안 좋아서 감기를 달고 살았어요. 치어리더 활동을 하면서 건강도 좋아지고 매사에 자신감이 생겼죠. 보통 행사 일정은 오후나 저녁, 주말에 많이 있어서 학교 수업에는 크게 지장이 없어요.”(김은옥)
“동생들도 친구들이 많이 생겨서 좋아요. 동생이 여럿인 단원들이 있어서 언니나 오빠 기다리면서 수다 떨고 경기 보고. 학교에서도 많이 달라졌어요. 교장 선생님이 학교 대표로 공연해달라고도 하고, 교육청 행사, 학예발표회에 참가하니 자연히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백애자)
“각 지역 어머니들이 모여 있어 아이들 기다리면서 학업이나 교육 관련 정보를 교환하고, 경기 시작하면 같이 경기 보며 놀죠. 수다의 장이에요.”(허지훈)
“아이가 어릴 때부터 춤을 좋아해서 치어리더를 시작했는데, 좋아하는 걸 하려면 다른 일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배운 점이 가장 좋아요.”(김지연)
욕심 버리면 아이 행복이 보여
매니저 노릇을 부모가 도맡아야 하기 때문에 품이 많이 드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 그러나 어머니들은 “욕심을 버리고, 아이의 행복을 생각하라”라고 조언했다.
“직장 생활을 하기 때문에 이런 활동을 지원하지 못할거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텐데, 평생 부모가 아이 뒷바라지만 할 순 없잖아요. 아이에게 자립심을 키워주는 게 중요해요. 아빠 엄마가 협동하면 아이에게 행복도 주고, 부모도 아이를 통해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요. 큰아이 덕에 작은아이도 나들이 가니까 즐겁고, 직장 생활로 피곤하지만 주말에 아이를 따라 나와 여유를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더라고요.”(김은옥)
“엄마들이 욕심을 조금만 버리면 돼요. 엄마들 눈에는 우리 아이가 제일 잘나 보이겠지만, 똑같이 시작했다고 모든 멤버들이 공연 무대에 오르는 건 아니거든요. 연습부터 찬찬히 참여하다 보면 다 함께 성장하는 게 눈에 보일 거예요.”(김정옥)
“우영이가 여섯 살 때부터 4년째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만둘 생각이 전혀 없대요.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이 짧지만, 여기서는 원하는 걸 하면서 친구들도 만나니 마음이 잘 맞나 봐요. 이게 하면 할수록 매력이 있거든요. 엄마들이 모르는 아이들만의 세계가 있는 것 같아요.”(백애자)
레인보우는 9월 2012 세계치어리딩대회 오픈 챔피언십에 주니어팀 한국 대표로 출전해 국위선양에도 한몫하게 된다. 김지현 씨는 “레인보우가 방송을 많이 타면서 치어리딩에 대한 인식을 드높인 게 참작됐다”라며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을 처음 했다’는 자부심을 아이들이 느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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