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부의 왕’ 개봉을 앞둔 6월 5일, 배우 성동일(45)과 송새벽(33)이 서울 신촌동 연세대학교 캠퍼스에 모습을 나타냈다. 2030세대에게 ‘인생이 편해지는 아부 비법’을 전수하기 위해서였다. 영화에서 송새벽은 고지식한 회사원 오동식 역을, 성동일은 아부의 비법을 전수하는 ‘혀고수’ 역을 맡았다. 환상의 입담을 자랑하는 이 콤비는 인간관계에서 누구나 겪을 법한 고충에 공감하고 조언하는 시간을 보냈다.
아부, 인간의 허상에 꽂히는 ‘열추적 미사일’
“아부란 인생에서 절대적이죠. 진심 없는 칭찬이라고 정의하던데, 절대 세상 혼자서는 못 삽니다. 돈이 많고 나보다 나은 사람에겐 ‘나는 목뼈가 없다, 목뼈가 없다’라는 생각으로 아부하는 거죠(웃음).” (성동일)
“아부라는 단어가 좀 알랑거리는 말이잖아요. 그런데 이게 굉장히 중요하더라고요. (극 중) 사부님도 말씀하셨지만, 좋은 말 같아요.” (송새벽)
이들이 구태여 칭송하지 않더라도 사회생활에서 ‘아부’의 힘을 느끼기란 어렵지 않다. 인생이라는 수레바퀴가 좀 더 수월하게 굴러가도록 돕는 윤활유 노릇을 하는 것이 바로 아부 아니던가.
“저는 일찍이 붓을 꺾었지만, 리처드 스텐걸이라는 사람이 아부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를 했대요. 아부란 인간의 허상에 와서 꽂히는 열추적 미사일 같은 거라고. 누구나 허상이 있기 때문에 듣기 좋은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죠. 일곱 살 먹은 자식한테도 ‘아빠 잘생겼어’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지만 ‘못생겼다’고 하면 ‘이 미친놈아! ’하는 반응이 나오듯(웃음).” (성동일)
그의 말이 끝나자 객석에서 “성동일 씨 잘생겼어요! ”라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유쾌하게 웃던 그는 정색하며 “돈입니다”라고 말해 한마디로 웃음 폭탄을 투하했다. 특히 성동일은 행사 전날 다른 영화를 촬영하다 부상을 당했지만, 약속을 지키려고 관객을 찾아 박수를 받았다.
2010년 영화 ‘방자전’에서 변 사또 역으로 충무로에 미친 존재감을 각인시킨 송새벽. 조연이었음에도 폭발적인 관심을 받은 그에게 ‘아부의 왕’은 이듬해 이시영과 함께 찍은 ‘위험한 상견례’에 이어 두 번째 주연작이다. 송새벽의 눈에 비친 성동일은 어땠을까.
“처음에는 엄청 무섭고 일침도 자주 날릴 것 같은 선배님이었어요. 촬영 들어가고 막걸리 한두 잔 하다 보니 우리가 알던 성동일 선배의 모습에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는구나 느꼈죠. 굉장히 짧은 시간에 선배님께 ‘막걸리 한잔 사주세용~’ 하고 알랑거릴 정도로 가까워졌어요. 호흡도 탁탁 잘 맞았고요.”
영화에서 성동일은 아부 비법을 전수받으러 온 송새벽에게 일명 ‘아부 체조’를 전수한다. 아부를 가장한 막춤으로 “암요~ 그럼요~ 당연하죠~ 별말씀을”이라고 말하며 추는 것이 포인트. 정승구 감독은 영화 제작보고회 당시 “‘아부의 왕’은 코미디 그 이상을 보여줄 수 있는 영화”라고 자신했다. 그는 “성동일 씨가 늘 현장을 재밌게 해준다”고 밝히기도 했다. “연출자로서 같이 작업할 때는 좀 어려운 배우”라는 말도 덧붙였다. 감독의 예상과 다른 특별한 부분을 자주 보여주기 때문. 이번 작품에서도 재미있는 장면의 반 이상은 그의 애드리브로 완성된 것이라고. 성동일은 송새벽에게 아부 체조를 전수해주는 장면에 얽힌 비화를 털어놨다.
“감독님이 처음에 요구한 건 태껸이나 기체조 같은 거였는데, 한겨울에 밖에서 촬영하려니 너무 춥더라고요. 감독님 요구대로 했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서 그냥 막춤을 춰버렸죠. 실제로 저희 둘이 막걸리를 도매업 수준으로 먹는데 술 마시면 이렇게 춰요. 술이 덜 깼을 때 둘이 추는 춤이에요.”
이날 성동일과 송새벽은 고민 해결사로 변신했다. 첫 번째는 ‘직장 상사에게 하는 아부를 배우고 싶다’는 한 여성의 고민. 성동일은 “조직사회에서는 당연히 아부해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연세대학교 캠퍼스에서 관객들에게 ‘아부 비법’을 전수한 성동일(왼쪽)과 송새벽.
융통성 제로의 순수남 동식(송새벽)은 ‘아부비책’의 저자 혀고수(성동일)를 만나 아부계의 새싹으로 거듭난다.
“어떤 자료를 보니까 직장 상사에게 아부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64%더라고요. 내가 돈이 많거나, 아내가 돈이 많으면 안 해도 되죠. 어떨 때는 집에서 똥 기저귀 갈 때가 편해요. 왜? 아이는 나한테 개기지 않으니까. 똥을 쌌어도 ‘조금 있어, 아빠 담배 피우고 와서 갈아줄게’ 이게 되는데, 직장 상사는 그게 안 돼요. 싸기 전에 휴지를 들고 있어야 좋아합니다.”
객석에서 공감 어린 웃음이 터졌다. 옆에서 듣고 있던 송새벽이 “정말 귀에 쏙쏙 들어오시죠?”라며 추임새를 넣었다. 두 번째 사연은 ‘딱딱한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풀만한 아부나 대화의 팁을 알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송새벽이 마이크를 잡았다.
“일단 저는 막걸리를 추천해드리고 싶고요. 사실 저도 성격이 활달한 편이 아닙니다. 꽁한 편에 가까운데요. 남들한테 그런 이야기도 잘 못하고요. 성동일 선배님이나 다른 배우 선배님들께 좋게 알랑거릴 수 있는 거는 술자리에서 취중 진담 하면서 그러는 거죠. 막걸리가 다음날 속도 편하고, 그래서 막걸리를 추천합니다.”
귀염 터지는 송새벽, 능청 대마왕 성동일
서로 아부를 주고받는 훈훈한 시간도 마련됐다. 관객이 포스트잇에 배우에게 아부를 적어서 보내면 그걸 읽고 배우가 화답했다. 성동일에게 건네는 아부 쪽지에는 ‘능청스럽게 최고의 연기를 선보이는 모습이 부럽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어…, 가정 환경이 절 그렇게 만든 것 같아요. 허허. 자랄 때부터 의지대로 해본 게 없고 가져본 게 없었어요. 그래서 이 자리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뻔뻔함을 배운 것 같아요. 타고났다고요? 맞아요. 그거는 부모님께 되게 감사드려요. 지금 앉아 있는 이 자리도 사실 여러분과 제가 주고받는 말싸움 내지는 기싸움이 될 수도 있는데 지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커요. 연기자는 앞에 있는 사람을 하나하나 씹어 먹을 정도의 자신감과 뻔뻔함을 가져야 해요. 안 그러면 무대를 빨리 떠나야죠. 그러니까 막가는 거야(웃음). 사실 새벽 씨와 술 마시면 항상 ‘선배는 참 단순하다’고 그래요. 내 힘으로 해결 안 되는 건 길게 고민하지 않아요. 단순하게 생각하죠. 오늘 술을 먹을까 말까가 고민이지, 술 마시면 내일이 어떻고 오늘 뭐가 어떻고 그런 게 없어요. 술을 먹자? 먹자. 저게 사고 싶다? 사자. 못 사? 아 돈이 없구나. 그런 식으로 저는 쉽게 생각해요.”
송새벽은 “눈에 확 들어오더라”며 ‘송새벽 씨, 귀염 터져! ’라고 쓴 포스트잇을 뽑아 들었다. 포스트잇을 쓴 여성 팬과 서로 “귀엽다”며 칭찬하자 성동일은 예의 시큰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어진 질문 시간. 송새벽은 말 더듬는 게 실제인지 연기인지 묻는 말에 더듬거리며 말을 이어가다가 “제가 말을 더듬나요?”라는 물음을 던져 좌중을 웃겼다.
“제가 근데 말을 더듬습니까? 진짜 여쭤보고 싶어요. 아…, 혹시 그 ‘방자전’이라는 영화 때문에? 관심 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말 더듬, 더듬지? 아… 이게 더듬는 거구나. 또박또박 잘하겠습니다. 이게 본인 말툽니다. 제가 아이돌이나 아나운서도 아니고 무슨 설정이며 캐릭터며 (없고)…, 이게 접니다. 예쁘게 봐주세요.”
성동일에게는 입담의 비결을 전수해달라는 질문이 쏟아졌다.
“간단해요. 다양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만나고 대화하는 게 입담의 비결이죠. 저는 같은 직업군하고는 술 마신 적이 거의 없어요. 다양한 사람들의 말을 듣고 생각하고, 편하게 고민 얘기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세요. ‘추노’에서의 캐릭터도 실제 그런 말투를 쓰는 분이 있었고, ‘국가대표’의 방 코치도 제가 실제로 유도 코치를 했었고, ‘은실이’도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어서 연기했고요. 제가 연기한 모든 작품 속 캐릭터는 제 주변 사람이에요. 제가 공부해서 만들어낸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공부해서 연기한다면 하버드나 서울대 나온 사람이 연기를 잘해야죠. 하지만 제 생각에는 고학력일수록 연기 잘하는 사람이 별로 없더라고요. 가끔은 이런 전화도 받아요. ‘너 인마, 술 한잔 사! ’ ‘왜요?’ ‘너 지금 내 흉내 내고 있잖아’ 이런 식으로. 일단 가족부터 시작해서 많이 만나세요. 그리고 후배들에겐 그런 이야기를 꼭 해요. 시간 나면 술 먹자는 사람은 입을 찢어버리라고(웃음). 술은 시간을 ‘내서’ 먹는 거지, 시간 나서는 죽을 때까지 못 먹어요. 정말 좋은 사람이 있고 사랑할 만한 사람이 있으면 꼭 시간을 내서 먼저 찾아가는 게 입담의 비결이에요.”
6년여간 MBC에서 아침 토크쇼를 진행한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일주일에 5명씩, 정치하는 사람부터 톱 연기자, 전과자까지 다양한 사람을 만난 것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술 먹으면 싸우는 이유가 내가 저놈 말 듣기 싫거든. 내 목소리가 높아야 하니깐. 그래서 저는 술 먹으면 재미있는 이야기 외에 상대방이 기분 나쁠 이야기는 절대 안 하죠. 괜히 술값 내고 병신 소리 듣거든. 항상 남의 이야기를 먼저 듣는 거죠. 아부도 그런 거예요. 상대방의 눈을 보고 약간 다가가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당신 이야기를 내가 경청하고 있습니다’라는 표현이거든.”
아부, 인생, 입담의 비결은 ‘사람’
이날 ‘술’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왔다. 송새벽의 주량은 막걸리 3병. 옆에서 성동일이 “안주 나오기 전까지”라고 덧붙였다. 송새벽은 “보통 4~5병은 마시지 않느냐”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평소에도 술잔을 자주 기울인다는 이들은 앞선 영화 제작보고회에서도 “술자리에서 서로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스킨십도 하는 사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성동일은 예쁜 후배 송새벽에게 밥도 “어마어마하게 산다”고. 함께 영화를 촬영한 배우 김성령은 “성동일 씨가 송새벽 씨를 너무 사랑하는 게 보였다”며 “왜 저렇게 송새벽 씨를 아낄까 질투 날 정도로 호흡이 좋았다”고 평했다.
정승구 감독은 6월 11일 언론과 VIP 대상으로 열린 시사회에서 “이 영화는 ‘아부의 왕’이라는 제목을 가졌지만 역설적으로 아부하며 사는 게 맞는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고 말했다. 그는 “관객이 ‘아부’를 통해 최선과 순정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올여름, 찰떡 호흡의 성동일. 송새벽 콤비가 그려낼 아부의 세계가 궁금해진다.
성동일에게 아부란…
저는 연애하면서 아부까지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냥 내가 마음에 들면 살자 정도. 여자에게는 아부보다 사랑이 필요하죠.
제가 아부하고 싶은 사람은 돈 많은 사람이에요. 돈이 많아야 아부하고 싶잖아요. 보통 있는 집안 자식들은 아버지를 부를 때 아버님이라는 존칭을 쓰잖아요. 며느리도 어머님이라고 하고요.
아부 받고 싶은 사람은 없어요. 돈이 들어가니까요. 며칠 전 후배들에게 ‘너희가 나를 잘 따르는 건 정말 좋은데, 술값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 했어요. 이제는 진심으로 다가오면 나도 진심으로 가는 게 낫지, 아부하는 동생들 챙기다 보면 어찌나 뒤통수를 치고 가는지 차라리 아부 못하는 동생이 나아요.
송새벽에게 아부란…
제가 아부하고 싶은 사람은 봉준호 감독님이에요. 영화(영화 ‘마더’의 세팍타크로 형사)를 처음 할 수 있게 만들어준 분이거든요. 그런데 대기실에서 ‘아부의 왕 2’가 나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정승구 감독(‘아부의 왕’ 연출)님으로 할게요.
아부 받고 싶은 사람은 제 매니저인데요, 이 친구는 너무 묵묵하게 자기 일만 하는 사람이라서 저도 모르게 확 생각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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