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주부들의 가장 큰 고민은 뭘까. 아마도 자녀 교육, 내 집 마련, 남편 출세, 가족 건강 등 일상적인 고민이 주를 이룰 듯하다. 여기에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랑. 누구의 아내, 엄마, 며느리가 아닌 한 여자로서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있기 마련이다. 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이유 또한 이러한 주부들의 로망을 대변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최근 방영되고 있는 JTBC ‘아내의 자격’ 또한 가정주부의 불륜을 다룬다. 물론 그 이면에는 이기적인 남편, 속물 근성 다분한 시댁 식구들과의 갈등이 깔려 있다. 자칫 불륜을 미화하는 드라마로 비칠 수 있지만 드라마가 인생의 고통을 다루는 것이라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잘못된 사랑’ 역시 인생의 고통의 한 단면으로 볼 수 있다. 중요한 건 얼마나 시청자들로부터 공감대를 이끌어내느냐다. 그 열쇠를 쥐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주부들의 ‘워너비’ 김희애(45).
‘아내의 자격’은 아이 건강하게 키우고 시부모 공경하고 남편 내조 잘하는 것이 아내의 자격인 줄로만 알다가 사교육의 메카, 서울 강남구 대치동으로 입성한 서래(김희애)가 어느 날 갑자기 치과 의사 태오(이성재)와 격정적인 사랑에 빠지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는 내용이다. 전체적인 맥락만 보면 기존의 불륜 드라마와 다를 바 없지만 강남의 사교육 열풍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극 중 서래는 어려서부터 잔병치레가 많았던 아들을 위해 공부보다 건강이 먼저라는 생각으로 아이를 키워왔다. 하지만 대치동에 사는 시누이가 자신의 딸을 국제중학교에 입학시키자 그동안 전적으로 서래의 교육관에 따라왔던 남편이 갑자기 돌변해 ‘갑과 을 논리’를 펼치며 서래에게 치맛바람을 강요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갑과 을의 관계로 나누어져 있어. 난 내 아이가 ‘갑’이길 원해.” 남편의 이 말에 서래는 허탈함을 느끼고, 결국 자신을 한심한 이상주의자로 치부하는 시댁 식구들 등쌀에 떠밀려 대치동에 입성한다. 드라마 첫 회에서는 이런 사교육 열풍의 심각성과 가족 구성원들 간의 보이지 않는 정치적 면모가 현실감 있게 묘사됐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사교육 현장에서 아무런 정보 없이 혼자 쩔쩔매는 서래의 모습은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만난 치과 의사 태오는 서래의 순수하고 꾸밈없는 모습에 호감을 갖기 시작하고, 요양원에 있는 서래의 엄마 치과 치료를 위해 서래와 단둘이 섬으로 떠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여행 중 격정적인 사랑에 휩싸인다.
김희애 연기의 가장 큰 장점은 비록 불륜이지만 시청자들로부터 왠지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는 것이다. “이 여자 저 여자 모두 바람을 펴도 저 여자는 안 필 것 같은, 바람 폈을 때 충격이 훨씬 클 것 같은 사람으로 김희애가 제격이라 생각했다”는 안판석 PD의 말처럼 김희애는 서래가 처한 상황과 심정을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잘 표현해 내고 있다. 그가 ‘내 남자의 여자’ 이후 5년 만에 또다시 불륜 연기에 도전한 이유 역시 캐릭터가 품고 있는 매력 때문이다.
“대본을 보면 볼수록 양파 껍질 벗기는 느낌이 들어요. 대본이 워낙 진솔하고 부풀려지지 않은 현실감 있는 내용이라 서래라는 인물에 동화되기 쉬운 것 같아요. 작품 할 때마다 무엇에 주안점을 두는지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저는 한 가지밖에 없어요. 인물에 공감하기 위해서는 대본을 열심히 보는 것, 오직 그거 하나예요(웃음). 불륜이라는 소재에 대해 편견을 갖지 않고 서래라는 여자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모험을 펼쳐가는 과정에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열성 배우지만 극성 엄마는 못 돼
‘내 남자의 여자’에서는 도발적인 파마머리로 팜파탈을 연기했던 김희애는 이번엔 그와 반대로 수수한 옷차림새와 메이크업을 고수한다. 김희애는 서래의 패션 코드를 묻는 질문에 “프렌치 시크?”라며 수줍게 웃었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 ‘서래는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아주 세련된 옷은 오히려 촌스러워 보일 것 같아서 오래 입은 듯한, 따뜻한 느낌이 나는 옷을 주로 입어요. 이번에는 빤짝빤짝하고 예쁜 소품들도 멀리하고 있어요. 대본 자체가 실생활을 그대로 그리기 때문에 저 역시 최대한 서래로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죠. 그런데 드라마 첫 회를 봤더니 너무 펑퍼짐해 보이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더라고요(웃음). 드라마 후반부에는 일하는 여성의 느낌이 나도록 ‘뉴욕 스타일’로 변신할 생각이에요.”
드라마가 사교육 열풍의 씁쓸한 현실을 꼬집고 있는 만큼 두 아이의 엄마인 김희애의 실제 교육관도 궁금하다. 대치동은 아니지만 김희애 역시 교육열 높은 강남에 거주하고 있다.
“엄마라면 자식을 위해 어떤 게 가장 좋은 선택인지 늘 고민하기 마련인 것 같아요. 저 역시 아직 무엇이 정답인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처럼 억지로 되지 않는 게 자식이라고 하잖아요. 저는 아이들의 의견을 많이 존중해주는 편이에요. 물론 아이들이 학원에 다니고 있긴 하지만 제가 억지로 강요한 건 아니고, 아이들이 원해서 다니고 있어요. 얼마 전 둘째가 ‘20년 후의 나의 모습’이라는 주제로 글짓기를 했다며 보여줬는데, 자신이 횟집 주인이 됐다는 내용으로 글을 썼더라고요(웃음). 형과 함께 횟집을 경영하고 있고, 다행히 장사가 잘돼서 확장공사 중이라는 거예요. 다른 사람도 아닌 형과 함께 사업을 한다니 형제애가 느껴져서 좋았어요(웃음).”
‘아내의 자격’에서 서래(김희애)와 태오(이성재)가 처음 만나는 장면.
중학교 1, 2학년 연년생 두 아들을 둔 그는 얼마 전 학부모 모임에 나갔다가 엄마들의 대화를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고 한다. 김희애는 “드라마 대본에 ‘예체능 in 서울은 하늘의 별 따기’란 대사가 있는데 엄마들이 그 대사와 똑같이 말하는 걸 듣고 놀랐다”며 웃었다.
“그동안은 아이들이 어리고 저 역시 공부에 목매는 편이 아니어서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가끔 엄마들과 만나면 요즘 현실이 어떤지 실감하곤 해요. 하지만 아이들 사교육을 마치 유행 따라 하듯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아이들마다 따라오는 속도가 다르고 부모가 처한 상황도 다 다르잖아요. 실제로 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자신의 전공과 무관한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고요. 저는 아이들에게 하루하루 성실하게 사는 게 중요하다고 얘기해주는 편이에요.”
한편 김희애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동안 외모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군살 하나 없는 날씬한 몸매와 투명한 피부는 여자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하다. 역시 자기관리가 철저하기로 소문난 김희애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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