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의 아내, 2남1녀의 엄마이자, 7세·3세 두 손주의 할머니인 이해원씨(본명 이숙자·64)는 어릴 적 문학소녀였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꿈에서 멀어졌다가 뒤늦게 다시 문학 공부를 시작해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그는 “당선 소식을 듣고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어머니 이야기를 가장 먼저 꺼냈다. 이씨는 경북 봉화 시골 마을에서 7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농사일로 바쁜 중에도 장에 다녀올 때마다 서점에 들러 책을 사와서는 호롱불 아래서 밤이 이슥하도록 읽곤 했다. 이런 부모 덕분에 집에는 ‘춘향뎐’ ‘장화홍련뎐’ ‘한양 5백년가’ 같은 이야기책이 넘쳐 났고 그의 형제들은 자연스럽게 책과 가까워졌다.
어릴 적 동시를 곧잘 쓰고 공부도 잘했던 그는 교사나 작가를 꿈꿨지만 여자는 한글만 깨치면 된다는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교장 선생님이 아버지를 찾아와 설득한 덕분에 겨우 중학교까지는 마쳤지만, 고등학교까지 보내달라는 말은 꺼낼 수조차 없었다. 그 대신 대구의 한 직물 회사에 다니며 야학으로 공부를 계속했다. 돌이켜보면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마디마다 늘 문학이 있었다. 결혼도 그랬다. 1971년 정부기관이 주최한 글쓰기 공모전에서 1등을 했고, 그것이 각종 매체에 실린 것이 천생연분을 만나는 계기가 됐다.
“방송 인터뷰도 하고, 대중 잡지 ‘선데이서울’에도 내 글과 기사가 나갔어요. 그때 영화배우 문희 결혼 소식과 함께 내 기사가 나갔다니까요(웃음). 초등학교 동창인 시동생이 군대에서 그걸 보고 연락을 해와 남편과 인연이 닿았죠.”
1974년 결혼 후에는 평범한 주부로 살았다. 아이들을 유치원과 학원에 보내지 않고 산과 들로 뛰어다니며 놀게 하고 함께 책을 읽었다. ‘그 집 아이들은 만날 노는데 공부도 잘하고 상도 많이 타느냐’는 부러움 섞인 칭찬이 덤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키운 아이들은 이제 맏딸(38)은 교사로, 두 아들(34, 30)은 대기업에 다니며 사회에서 제 몫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 이씨가 다시 문학을 공부하게 된 것은 1998년 서울 강서구에 있는 ‘서울시민대학 강서분교’에 다니면서부터다.
“딸이 ‘그동안 우리 키우느라고 고생 많았으니까 이제 엄마의 인생을 찾아보라’며 시민대학 학생 모집 광고를 가져왔더라고요. 거기에 등록해 수필을 배우기 시작했죠.”
인생의 고비마다 힘이 돼준 문학
주머니 속의 송곳은 언젠가는 옷감을 뚫고 나오는 법. 그간 숨겨뒀던 열정과 켜켜이 쌓인 세상살이 내공이 어우러져 글로 엮여 나왔고, 그는 1년 만에 문예지에 수필로 등단했다. 2005년부터는 대학생들과 함께 ‘시사랑’이라는 모임에서 시 공부를 시작했다.
“아들 또래 젊은이들과 공부하면서 괜히 할머니가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닐까 조심스럽기도 하고, 교수님들께 구닥다리 시를 쓴다고 호되게 야단을 맞기도 했죠. 때로는 오기가 생기기도 하고, 작은 칭찬에 용기도 얻으면서 지금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그가 보여준 시집 날개 뒷면에는 시어들에 관한 메모가 빼곡했다. 중학교 학력이 전부인 그가 문학 작품 가운데서도 고도로 정제된 언어를 사용하는 시를 공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짐작되고도 남는다. 본격적으로 시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는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일도 많았다. 그렇게 시를 사랑하는 날들이 계속됐고, 시 공부를 시작한 지 2~3년 만에 여러 차례 신춘문예 최종심에 올랐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곳에서 위기가 찾아왔다. 2007년 지인에게 사기를 당해 수억원의 투자금을 고스란히 날린 것이다. 돈도 돈이지만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생각에 더욱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고 한다. 마음의 병이 몸으로 번져 그는 지난 두 해 동안 크게 앓고 두 차례 수술을 받았다. 두 번째 수술을 받을 때는 몸무게가 41kg까지 떨어질 정도로 쇠약해졌다.
그의 신춘문예 당선작 ‘역을 놓치다’는 그 일을 겪은 후 쓴 시다. 당시 그 때문에 밤잠을 설쳤던 남편이 그 다음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5호선에서 깜빡 잠이 들어 종점인 김포공항역까지 갔다가 되돌아온 일이 모티프가 된 것이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서민들이 많이 힘들잖아요. 하지만 생활이 팍팍하고 고달파도 가정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단란함, 포근함이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제가 지인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 남편은 저를 타박하기는커녕 위로해줬고, 결혼 후 분가해 살던 딸도 제 건강을 염려해 집으로 들어와 함께 살고 있어요. 아들은 편안하게 글 쓰라고 42인치 TV에 컴퓨터를 연결해줬죠. 컴퓨터를 수리하러 온 기사가 이걸 보더니 저더러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작가라고 하더군요(웃음).”
이 말을 전하는 그의 목소리가 소녀처럼 떨린다. 자신의 당선이 늦게 시작한 이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앞서, 젊은 문학도의 앞길을 가로막은 것 같아 미안한 생각부터 들었다는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첫발을 뗐으니 이제 시작이죠. 뽑아주신 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좋은 작품을 쓰고 싶어요. 그리고 요즘 시들이 워낙 난해해서 독자보다 시인이 더 많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쉬운 시로도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그걸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요.”
역을 놓치다
실꾸리처럼 풀려버린 퇴근길/ 오늘도 졸다가 역을 놓친 아빠는/ 목동역에서 얼마나 멀리 지나가며
헐거운 하루를 꾸벅꾸벅 박음질하고 있을까/ 된장찌개 두부가 한껏 부풀었다가/ 주저앉은 시간/
텔레비전은 뉴스로 하루를 마감하고 있다/ 핸드폰을 걸고 문자를 보내도/ 매듭 같은 지하철역
어느 난청 지역을 통과하고 있는지 연락이 안 된다/ 하루의 긴장이 빠져나간 자리에/ 졸음이 한 올 한 올
비집고들어가 실타래처럼 엉켰나/ 기다리다 잠든 동생의 이불을 덮어주고/ 다시 미싱 앞에 앉은 엄마/
헝클어진 하루를 북에 감으며 하품을 한다/ 밤의 적막이 골목에서 귀를 세울 때/ 내 선잠 속으로/
한 땀 한 땀 계단을 감고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 현관문 앞에서 뚝 끊긴다/ 안 잤나/ 졸다가 김포공항까지
갔다 왔다/ 늘어진 아빠의 목소리가/ 오늘은 유난히 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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