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속에 꽃이 핀다면
저런 형상으로 필 것이다.
어느 날 신이
내 꿈속의 마을을 방문한다면
바로 저 빛깔의 사리를 입고 올 것이다.
누군가 내 꿈속에서
지상의 별들을
모두 잠재울 노래를 부른다면
그는 바로 저 꽃의 눈빛으로
우리를 적실 것이다.
-‘보순또 바하 꽃이 필 때’ 중
2009년 7월, 곽재구 시인(57)은 벵골어를 배워 평소 흠모하던 시성 타고르의 시를 직접 번역하겠다는 야무진 목표를 세우고 오랫동안 마음속에 담고 있던 인도로 떠났다. 그가 목적지로 정한 곳은 타고르의 고향인 인도 동부에 자리 잡은 산티니케탄. 하지만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벵골어 교재나 교사가 아닌, 모든 1초를 특별하게 만들어준 사람들과 5백40일의 여정이었다.
재생 테이프처럼 몇 번을 되풀이해도 싫증 나지 않을 날들을 경험한 후 시인은 눈이 유난히 맑아져 돌아왔다. 시나 여행기를 쓰려고 갔던 곳이 아닌데, 이역만리에서 온전히 자신을 위해 써본 이 특별한 시간들은 그로 하여금 절로 시를 짓고 글을 쓰게 만들었다.
“스무 살 때였나? 호기심에 하루 24시간이 전부 몇 초인지 계산해본 적이 있습니다. 총 8만6천4백 초더라고요. 그 수많은 초들 중 과연 내가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은 또 몇 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언젠가는 내게 다가오는 모든 1초들을 다 기억하며 살아야지, 하고 다짐했었어요. 어떤 1초는 누구와 술을 마셨고, 어떤 1초는 무엇을 느꼈으며, 또 어떤 1초는 누구 생각을 하며 보냈는지를요. 산티니케탄에서 보낸 5백40일은 제가 원했던 대로 그 모든 1초들을 하나하나 가슴에 새기며 살았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인이 숨을 쉬는 1초 하나하나를 헤아리고 싶었던 스무 살은 대다수의 삶이 척박했던 70년대 중반이었다. 그가 좋아하는 타고르의 시들은 잠시나마 바깥의 차가운 기운을 잊게 했던 달콤한 솜사탕이었다. 시를 읽는 순간만큼은 그에게 다가오는 1초 1초들과 따뜻하게 포옹할 수 있는 작은 천국이었던 것이다.
“격변의 시기에 대학을 다녔던지라 사실 책을 읽고 공부를 하기보다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과 사회 변화를 도모한다고 모여 술을 마시는 일이 더 잦았지요. 대학 졸업 무렵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친구들은 이미 모두 국어 선생님으로 발령을 받은 상태인데 나만 무직자로 변혁을 외치고 있더라고요. 아뿔싸. 하고 싶은 일을 하더라도 내 앞가림 정도는 해놨어야 하는 건데, 하는 후회가 들더군요.”
졸업만 제때 했어도, 대학 공부를 절반만 했어도 교편을 잡을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시인은 대신 글을 썼다. 시대의 절망을 언어로 녹인 시 ‘사평역에서’로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고 첫 시집이 예상치 못했던 ‘대박’을 맞아 문인으로서 탄탄대로가 펼쳐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예술가의 길이 그러하듯, 보통 사람이 누리는 생활의 안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2004년부터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교편을 잡게 되자 시인은 안도했다. 더는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좋아하는 시를 마음껏 쓸 수 있다는 행복감에서였다. 하지만 가슴 한구석에서는, 다양한 시상과 시어를 접할 수 있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꿈이 점점 커져갔다.
2년 전 시인은 안식년을 맞아 시 강의를 잠시 멈추고 이미 다섯 차례나 여행한 적이 있는 산티니케탄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시인은 가슴속에서 훨훨 타오르던 열정을 불사르며 처음 시를 쓰던 시절의 마음과 마주했다. 그렇게, 2010년 12월 말까지 그는 그곳에서 머물며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여행을 했다.
언어가 아니라 사람을 배우다
아이가 주변 사람들을 흉내 내고 모사하며 말을 배우는 것과 달리, 시인의 말 배우기는 인간과 자연을 깨달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어느 날 마음속 짐을 벗고자 현실의 짐을 꾸린 시인에게 벵골어를 알아가는 일은 낯선 언어를 배우는 것 이상이었다.
타고르의 모국어인 벵골어를 익혀 아름다운 그의 시편들을 한국어로 직접 번역하겠다고 찾아온 곳에서 시인은 언어가 아닌, 사람들과 사랑에 빠졌다. 벼룩시장에 종이배를 팔러 나온 아이, 맨발의 소녀 론디니, 말끔하게 차려입고 인력거를 몰며 개와 고양이 그리고 길가의 꽃과 나무 등 모든 생명에게 ‘발로 아첸’(안녕) 인사를 건네는 인력거꾼 수보르는 그의 가슴속에 아름답고 환하게 빛나는 한편의 동화들로 내려앉았다. 이런 동화들을 혼자서만 간직할 수 없었기에, 그는 시를 ‘배신’하고 ‘우리가 사랑한 1초들’(툴 출판사)이라는 산문집을 펴냈다.
책에는 시인이 한적한 시골마을에 머물며 타고르가 사랑한 사람과 땅과 별, 꽃을 느끼며 경험한 1초 1초의 행복과 소소한 일상의 기록이 그가 직접 촬영한 아름다운 사진들과 함께 담겨 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가 좋아했던 챔파꽃 향기가 솔솔 풍겨온다.
“그곳에서는 누구를 꼭 만나야지 계획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걸었어요.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제 이름이 비로소 중요한 의미를 띠게 되는 순간이었지요. 자전거 택시인 릭샤를 모는 사람들을 그곳에선 ‘릭샤왈라’라 부르는데, 한번은 그곳에 있는 모든 릭샤왈라들의 이름을 한 번씩 다 불러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처음 보는 릭샤왈라에게는 꼭 이름을 물었어요. 금세 산티니케탄 시내에 그 소문이 퍼졌고 어느 순간 릭샤왈라들이 먼저 다가와 자기 이름을 말해주더라고요. ‘저는 다보스예요’ ‘수보르예요’ ‘란짓이라고 해요’… 하고.”
마음속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 소중한 인연들
시인은 타지의 낯선 사람들과 허물없이 이름을 주고받으며 친해지는 과정을 통해 이름 모를 꽃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면서 희열을 맛보았다. 낯선 이라면 일단 경계부터 하고 보는 한국에서라면 꿈도 꿀 수 없는 경험이었다.
한번은 그곳 벼룩시장의 어린 소녀에게 10루피를 주고 종이배를 샀다. 어린 소녀가 물건을 팔려고 시장에 나와 있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인데, 자그마한 보자기를 들고 있기에 대체 저 보자기 속에는 뭐가 들었나 했단다. 놀랍게도 소녀의 손에 들린 것은, 시장에서 팔 만한 물건이라고는 도통 생각되지 않는 평범한 종이배였다.
10루피면 2백50원 정도로, 인도 물가를 고려하면 꽤 비싼 편이었지만 시인은 타고르의 시 ‘종이배’를 떠올리고는 소녀를 타고르가 보낸 선물이라고 믿었다. 흐뭇하게 종이배를 사 가지고 와서 동네사람에게 “오늘 시장에서 내가 무얼 샀는지 볼래요?” 하고 자랑까지 했단다. 마침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한 아가씨가 그에게 타고르의 시 ‘황금빛 배’를 읽어보라고 권했고, 시인은 그날 느낀 소회를 담아 이 시를 정성스레 번역했다.
자전거 바구니에 챔파꽃을 싣고 있는 산티니케탄의 소녀. 곽재구 시인이 직접 찍은 사진이다.
먹구름 울고 비가 쏟아집니다.
슬프고 외롭게 나는 강둑에 앉아 있습니다.
추수는 끝나고 볏단들은 비에 젖습니다.
강물이 쿨럭쿨럭 흐릅니다.
벼를 베며 나는 비에 젖습니다.
… (중략) …
배가 너무 작아 태울 곳이 없다고
당신은 말하는군요.
내 모든 황금빛 영혼을 다 실은 탓입니다.
먹구름 쿨럭이는 하늘
텅 빈 벼논 가에 나 혼자 서 있습니다.
황금빛 배는 가고 빗속에서
나 혼자 서 있습니다.
-타고르의 ‘황금빛 배’ 중
이 밖에도 아버지가 타고르 시인의 주방장이었다는 찻집 주인 칼루다, 타고르 문학을 영역하며 책으로 펴낸 브라만 계급의 영문학 강사 투툴, 달빛 냄새가 난다는 ‘조전건다’ 나무를 가르쳐준 암리타 등은 시인의 마음속으로 성큼 들어온 소중한 인연들이다.
이렇듯 신분과 나이, 빈부와 국적을 초월한 어울림의 시간들을 시인은 “별과 별 사이의 여행”이라고 말한다. 그 여행을 통해 그는 모든 이들에게 불린 하나의 이름을 안고 돌아왔다.
‘쫌빠다다’(챔파 아저씨). 산티니케탄 사람들은 유난히 챔파꽃을 좋아하던 시인을 그렇게 불렀다.
곽재구 시인이 만난 풍경과 사람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산티니케탄은 우리 시골동네처럼 친근하게 느껴지고 마시(도우미), 다다(아저씨)와 같은 말과 암리타, 수보르 같은 이름들이 다정하게 다가온다. 밤하늘의 별을 세듯 1초 1초를 만지는 동안 시인이 산티니케탄에서 만난 것은 누구라도 매혹되지 않을 수 없었을 나긋한 평온함과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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