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EOPLE

Culture People

클리블랜드박물관 선승혜 큐레이터

벽안의 관람객들 ‘한시의 세계’로 초대하다

글·정혜연 기자 사진제공·선승혜

2011. 04. 11

클리블랜드박물관 선승혜 큐레이터


과거 문인들이 수천 년 동안 추구해온 정신적 자유로움이 고스란히 담긴 한시. 그 깊은 정신세계를 오늘날의 후손들이 알기엔 모자람이 많다. 고국에서도 이해하기 까다로운 분야로 꼽히는 한시미술의 세계가 미국 클리블랜드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어 화제다. 전시를 기획한 이는 한국인 최초로 미국 박물관 큐레이터가 된 선승혜씨(41). 지난해 7월부터 일하기 시작한 그는 “한국 미술의 유려한 역사와 그 빼어난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중국 한시에 영향을 받았지만 새롭게 뿌리내려 한국 고유의 미감을 발전시킨 문인들의 시서화는 미국에선 생소한 분야입니다. 이곳에 부임하자마자 곧바로 오랜 염원이었던 동아시아의 문인 전통에 초점을 맞춘 ‘청아한 한시미술의 세계( ~8/28)’를 기획했죠. 이웃 나라인 일본에서 꽃피운 시서화도 전시해 한국 작품들과 비교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클리블랜드 박물관은 보스턴 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프리어 새클러 갤러리와 더불어 미국 4대 아시아 미술 컬렉션으로 유명하다. 그는 학창 시절 동경의 대상이었던 곳에서 일하게 된 것에 대해 “아직까지도 실감 나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니 재미동포 2세쯤으로 짐작했지만 그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토종’이다. 그는 1989년 서울대 미학과에 입학해 93년 졸업 후 곧장 동 대학원에 입학, 석사학위를 받고 동아시아 미술을 좀 더 심도 있게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문부성 장학생으로 선발된 그는 97년 일본 도쿄대 미술사학과에 들어가 13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수료는 2003년에 했지만 학위를 따는 데는 시간이 걸렸어요. 참고로 도쿄대 미술사학과는 지난 10년간 10명에게만 박사학위를 줬을 만큼 까다롭기로 유명한 곳이에요. 그 과정이 너무 힘들어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많이 울었죠. 하지만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동아시아 문화와 예술의 깊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한·일 양국에서의 경력 인정받아 각 전시실 동시에 맡아 운영
일본에서의 경력을 인정받은 선승혜씨는 2002년부터 6년간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일본 미술 담당 큐레이터로 일했다. 그는 매년 특별전을 기획하면서 한국 문화 속에서 아시아를 조망하는 안목을 갖추기 시작했다.
“한국인 최초로 클리블랜드 미술관에서 일할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제가 다양한 경험을 통해 한국과 일본을 망라하는 미술 지식을 축적하고, 양측 미술의 중심을 관통하는 시각을 가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문화의 다양성을 강조하는 미국 사회 풍토 속에서 동아시아의 문화를 소개하는 일이 쉽지 않지만 그럴수록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불혹을 넘긴 나이에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갈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뒤에서 묵묵히 그를 격려하고 지지해주는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다.
“늘 바쁜 엄마 때문에 부족한 점이 많았을 텐데도 불만 없이 씩씩하게 자라준 아들에게 고마운 마음뿐이에요. 요즘도 통화를 할 때면 ‘나는 괜찮아. 엄마 열심히 해’라고 다부지게 말하는 아들 목소리에 힘을 내곤 합니다.”
이번 전시가 끝나면 클리블랜드 박물관은 건축물 리노베이션에 들어간다. 공사가 완료되는 2013년에는 새 건물에 한국실과 일본실이 갖춰진다. 일본실은 원래부터 있었기 때문에 재개관을 하는 것이지만 한국실은 최초로 문을 열게 된다. 선승혜 큐레이터는 “동아시아 문화 교류 속에서 고유한 전통을 갖춘 한국 문화의 정수를 꾸준히 전해 우리 문화를 제대로 알리는 데 앞장서고 싶다”고 말했다.

클리블랜드박물관 선승혜 큐레이터


1 ‘백자 철화 매화 대나무 문양 편병’ 작자미상, 조선시대 17세기 - 보름달을 연상시키는 백자 편병에 시적 운치를 표현한 작품.
2 ‘사계산수도’ 이수문, 조선시대 전기 - 수묵화로 이름 날린 이수문의 작품 중 최고 완성도를 보이는 걸작.
3 ‘미원계회도’ 작자미상, 조선시대 16세기 - 사간원의 관료들이 모임을 가졌을 때 현장에서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