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길보드 차트에는 항상 노이즈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당시 ‘너에게 원한 건’ ‘상상 속의 너’ 등 경쾌한 댄스곡으로 여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노이즈. 이들이 11년 만에 앨범을 내고 돌아왔다. 7월 초, 서울 신사동 연습실을 찾았을 때 한상일(37), 홍종호(37)와 새 멤버 권재범(35)이 첫 방송을 앞두고 연습에 한창이었다.
“오랜만에 무대에 오를 생각을 하니 정말 설레요. 은퇴 이후 무대가 그리웠지만 ‘과연 다시 설 수 있을까?’하는 걱정을 많이 했거든요. 음반을 내고 나니 이제 실감이 나네요.”(한상일)
은퇴 후 각자 생활하던 이들이 갑자기 컴백을 결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상일은 망설임 없이 “우리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팬들이 있을 거란 믿음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어떻게 알고 연락을 했는지 지방에서 행사 섭외가 들어왔더라고요. 무대에 서기 직전까지 ‘노이즈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불안했죠.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이 저희 노래를 기억하고 박수를 치며 따라 부르더라고요. 행사 관계자들까지 모두 깜짝 놀랐어요. 돌아오는 길에 ‘그럼 살도 빼고 본격적으로 준비해서 앨범을 내보자’며 다시 뭉치게 됐죠.”
노이즈는 93년 천성일, 홍종구, 한상일, 김혁규 네 사람이 모여 첫 앨범을 냈다. 1집 수록곡 ‘너에게 원한 건’이 큰 인기를 얻어 앨범을 낸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가요 프로그램 1위 후보에 올랐다. 그때를 회상하던 한상일은 “지금 생각해도 대단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당시 헬기를 타고 방송국을 오가던 가수는 몇 없었어요. 한번은 동시간대 생방송으로 진행되던 두 개의 음악 프로그램에서 나란히 1위 후보에 올라 방송사에서 준비한 헬기를 타고 급하게 이동한 적도 있었죠. 지금으로 치면 빅뱅 부럽지 않은 시절이었어요(웃음).”
전국 투어 콘서트를 열면 1만 명 이상이 찾아왔고, 표는 거의 매진됐다고 한다. 군복무로 자연스럽게 빠진 김혁규를 대신해 홍종호를 영입, 3집을 냈고 이후에도 인기 행진은 계속됐다. 그렇게 5년 동안 전성기를 누렸다.
“정신없이 바빴지만 지금 생각하면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어요. 신나게 춤추고, 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젊음을 즐겼죠. 하지만 HOT 등 아이돌 그룹이 나오면서 ‘영원한 인기는 없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멤버들끼리 박수칠 때 떠나자며 각자 갈 길을 갔죠.”(홍종호)
은퇴 이후 11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열정적인 모습을 보인 홍종호·한상일·권재범.(왼쪽부터)
은퇴 후에도 언젠가 다시 무대에 설 거라 생각해
팀의 리더였던 천성일은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경험을 살려 IT업체를 차렸고, 홍종구는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시작했다. 한상일과 홍종호도 각자 레스토랑과 인터넷 게임회사를 운영하며 평범하게 지냈다. 이들 중 유일하게 한상일은 가수에 대한 꿈을 갖고 재기를 노렸다고 한다.
“원래 노이즈는 천성일·홍종구로 이뤄진 듀엣이었어요. 그러다가 프로듀서인 김창환씨가 퍼포먼스가 부족하다는 판단이 들어 클럽으로 새 멤버를 캐스팅하러 갔고, 그곳에서 놀고 있던 제가 눈에 띄어 영입이 된 거죠. 사실 전 춤으로 치면 지금도 젊은 친구들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맛깔스럽게 춘다고 자신해요. 은퇴하고 나서도 늘 음악을 들으며 춤을 췄고 언젠가는 다시 무대에 설 거라고 생각했죠.”
한상일은 컴백을 결심한 뒤 가장 먼저 천성일을 찾아갔다. 다짜고짜 앨범을 내자고 하자 천성일은 거절의 뜻을 내비쳤다고.
“많은 분이 성일 형을 그리워하기 때문에 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형은 가수로 나서기엔 나이도 많고 몸도 예전 같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워낙 뜻이 확고해서 더 설득할 수도 없었죠.”
의견이 맞는 한상일과 홍종호가 주도적으로 재결합을 추진했고, 여기에 권재범이 합류했다. 그는 사실 노이즈 3집부터 함께한 홍종호보다 먼저 캐스팅됐던 이였다.
“김혁규씨가 군입대하고 새 멤버 영입을 추진할 때 상일 형 추천으로 노이즈 멤버가 될 뻔했어요. 그런데 연습실로 나간 첫날 이상하게 군기를 잡더라고요. 강압적인 분위기가 싫어서 ‘안 하겠다’고 말하고 그냥 나왔어요. 저 대신 들어간 홍종호씨가 3집을 낸 이후 많은 인기를 얻는 걸 보고 아쉬웠죠.”
멤버를 정비하고 열심히 준비한 끝에 어렵사리 컴백했지만 원년 멤버를 그리워하는 팬들이 많은 모양이다. 인터넷에 뜬 이들의 컴백 기사 아래 덧글에는 팬들의 아쉬움이 묻어났다.
“인터넷 덧글을 보니 ‘천성일·홍종구 없이 왜 나왔냐?’는 의견이 많더라고요. 좀 서운한 마음도 있지만 열심히 해서 아쉬움을 채워 드리고 싶은 생각이 더 커요.”
이번에 타이틀곡으로 내세운 ‘사랑만가’는 노이즈의 색깔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들은 상쾌한 분위기의 댄스곡으로 인기몰이에 나설 계획이라고. 많게는 20년 가까이 차이 나는 후배들과 한 무대에 서는 부담감도 있을 듯했다. 이들은 10대 위주의 음악시장을 안타까워하며 ‘음악시장의 다양화에 앞장선다는 기분으로 노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 친구들은 젊게 사는 편인데도 요즘 아이돌 가수의 음악은 못 알아듣겠다고 하더라고요. 제 또래가 그런데 어르신들은 어떻겠어요. 동방신기·빅뱅 같은 친구들과 저희 같은 그룹이 골고루 섞여 노래를 해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음악시장이 형성된다고 생각해요. 또 나이가 많아서 그들보다 멋있게 춤추지는 못해도 열정만큼은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한상일)
30대 중반에 접어든 이들은 아직까지 모두 미혼이다. 은퇴 후 각자 바쁘게 사업을 하며 정신없이 살다 보니 결혼할 틈이 없었다고 한다.
“일부러 안 하려고 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 노이즈 멤버 중에서는 원년 멤버인 혁규 형만 유일하게 장가를 갔네요. 이번 앨범이 잘되고 나면 우리도 자리를 잡을 수 있겠죠. 활동 중에 공개 구혼이라도 해야겠어요(웃음).”(홍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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