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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궁금한 여성 CEO

취임 5주년 맞은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CEO로서의 일상과 그간의 맘고생, 이상적인 사윗감…”

정리·김명희 기자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08. 11. 18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취임 5주년을 맞아 그룹 사보에 경영인으로서의 애환, 맏딸 정지이씨의 결혼에 대한 생각, 취미 등을 털어놓아 눈길을 끈다. 그의 솔직한 속내를 따라가봤다.

취임 5주년 맞은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지난 2003년 남편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갑작스럽게 타계한 뒤 그룹을 이끌어온 현정은 회장(53)이 취임 5주년을 맞았다. 현 회장은 경영자로 변신한 후 그간 뒤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바쁘게 살아왔다고 한다. 마치 전쟁터에 내놓인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으며 스트레스로 어금니가 빠질 정도였다고.

▼ 취임 5주년을 맞은 감회가 남다를 듯합니다.
“벌써 5년이 됐나 싶어요. 특히 북한과의 경협사업과 관련해 여러 가지 힘든 일을 겪다 보니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죠. 그 때문인지 항상 마음이 바쁩니다. 하지만 그룹이 앞으로 해야 할 일, 나아갈 길 등을 생각해보면 좀 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할 것 같아요.”
▼ 기업을 이끌면서 중압감에 시달리기도 할 텐데, 자신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나요.
“취임 초에는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어금니가 다 빠지더군요. 딱히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불안감에 저도 모르게 자다가도 깨서 이를 꽉 물었나봐요. 이러다간 몸까지 망가질 것 같아서 저녁에 시간을 내 아이들과 학교 운동장을 걷기도 하죠. 스트레스는 결국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 같아요. 저는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정몽헌 회장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하고 가만히 상상해봅니다. 자기가 가장 믿고 의지하는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긴장감도 누그러지는 것 같아요. 그렇게 보면 회장님을 기억하는 것이 저 나름대로의 스트레스 해소법인가봐요.”
▼ 슬하의 1남2녀 가운데 맏딸인 정지이씨(31·현대유엔아이 전무)가 결혼 적령기인데 이상적인 사윗감의 조건은 무엇인가요.
“현대가는 다른 기업가 집안에 비해 연애결혼이 많아요. 저 역시 사윗감으로 특별히 원하는 조건은 없고 당사자들이 서로 좋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심성이 착하면 좋겠고, 두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이 비슷했으면 합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생각이나 행동하는 방식이 비슷한 것은 여러모로 좋은 점이 많은 것 같더군요. 본인이 알아서 잘 고를 것이라고 믿고 기다리는 중인데, 사실 이제는 나이가 차서 걱정이 돼요.”
▼ 젊은 시절 꿈은 무엇이었나요
“대학과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미국에 유학하면서 교수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어요. 선생님들께서도 저를 모범생으로 봐주셔서 졸업 후 강사를 해보라는 연락을 받기도 했죠. 하지만 제가 앉아서 공부하기보다 활동적인 걸 좋아해서 교수직은 적성이 맞지 않았어요. 당시 직업테스트를 한 적이 있는데 가장 적성에 맞는 직업이 기자, 안 맞는 직업이 비서였죠.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걸 싫어한다고 설문에 대답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CEO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만, 사업가셨던 아버지(고 현영원 현대상선 회장) 곁에서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경영을 접했고 남편 옆에서는 CEO가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자리인지를 보고 느꼈습니다. 그러한 환경과 활동적이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를 좋아하는 제 성향이 이 자리에 있게 한 힘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취임 5주년 맞은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현정은 회장은 밸런타인데이에 직원들에게 초콜릿을 돌리고 그 가족들에게는 삼계탕·목도리 등을 선물로 보내는 감성 경영으로 화제를 모았다. 평소 여느 주부들처럼 TV 드라마도 즐겨 보고 음식 칼로리에도 신경을 쓴다는 그는 “경영을 해보니까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좀 더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보고 많은 여성이 CEO의 꿈을 품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바쁘실 텐데,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이 있나요.
“한 프로를 정해놓고 보지는 않고, 주로 이동 중 차에 설치된 TV를 보거나 주말에 휴식을 취하면서 봅니다. 뉴스 외에 드라마도 보는데, 얼마 전에 종영한 ‘엄마가 뿔났다’도 가끔 봤고, 요즘 방영되고 있는 ‘베토벤 바이러스’도 보고 있죠.”
▼ ‘엄마가 뿔났다’를 보면 ‘회장님’들은 집에서도 격식 있는 양식을 먹던데요.
“드라마에 나오는 회장님이나 사모님처럼 집에서 나이프를 잡고 스테이크 써는 식사는 안 해봤어요.”

시간 나면 영화·드라마 즐겨 보고
자녀들과 운동하며 스트레스 풀어
▼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궁금합니다.
“원래는 이탈리아 음식 같은 양식을 좋아했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토속적인 음식이 좋아지더군요. 또 회사에 앉아 보내는 시간이 늘고 이런저런 외부 약속이 많은 만큼 칼로리에도 신경이 쓰이다 보니 정갈하고 깔끔한 한식이나 담백한 일식을 찾게 돼요.”
▼ 평소 좋아하는 외국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가 있나요. 어린 시절부터 우상으로 삼았던 스타가 있을 것 같은데.
“어린 시절에는 록 허드슨이나 나탈리 우드 같은 외국 영화배우들을 좋아해 그들이 등장하는 영화를 찾아 관람했어요. 요즘 젊은 스타들은 워낙 개성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특별히 한 사람만 정해놓고 좋아하지는 않고, 나이 든 배우 가운데는 메릴 스트립을 좋아해요. 최근에 그가 출연한 영화 ‘맘마미아’를 재미있게 봤습니다.”
▼ 취임 1주년 때 주량이 와인 한 잔이라고 했는데, 그간 주량이 좀 늘었나요.
“주량은 전혀 안 늘어서 여전히 와인 한 잔이에요. 술 한두 모금만 해도 얼굴이 붉어지죠. 음식 알레르기 테스트를 했더니 레드 와인이나 막걸리, 맥주, 샴페인 등의 술은 제게 안 맞고 화이트 와인, 위스키, 소주 등이 오히려 괜찮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종류를 불문하고 술은 여전히 잘 못해서, 와인 석 잔을 마셨다가 아주 혼이 난 적이 있어요. 그 후로는 겁이 나서 술과 더욱 친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버님도 술을 잘 못하셨던 것으로 봐서 집안 내력인 듯해요.”
▼ 독서의 계절을 맞아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사실 많은 분이 좋은 책을 추천해주시는데, 대부분 내용이 딱딱한 경영서적들로, 회사 운영에 도움이 되려니 하고 정성들여 읽으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잠시 여유가 생겼을 때 손이 가는 책들은 사진이나 그림 종류가 담긴 내용이 부드러운 책들이고 기왕이면 글씨가 커 읽기도 편한 책인 것 같아요. 최근 읽은 책 중엔 히스이 고타로의 ‘3초 만에 행복해지는 명언 테라피’가 와 닿았어요. 우리 주변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방법들을 알려주는 짤막한 이야기와 삽화를 담은 책인데 단순히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꿈으로써 세상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재미있게 보여주더군요.”
▼ 앞으로의 바람은 무엇인가요.
“최근 회사를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로 힘이 듭니다. 하지만 저와 임직원들이 한마음으로 노력하면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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