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벗하며 여행을 떠나고, 시간과 돈의 굴레에서 벗어나 현재를 즐겨야 해요”
“요즘 사는 게 재미있느냐”고 물었을 때,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성인 중 25%가 우울증 환자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여기 인생의 목표가 재미있게 사는 것이며, 나아가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자신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그는 개그맨도, 유머 전문가도 아니다. 바로 한양대학교 국제관광대학원 최고엔터테인먼트 과정의 손대현 원장(60)이다.
손 원장은 20년 넘게 관광학과 교수로 지내다 지난 2001년 가을 국내 대학원에 처음으로 최고엔터테인먼트 과정을 만들었다. 대부분의 최고경영자 과정에서는 주로 경영학이나 리더십 등을 가르치지만 이곳에서는 그저 재밌고 즐겁고 신나는 일들이 무엇일까를 연구한다고.
“CEO가 재밌고 즐거워야 직원들이 재밌고 즐겁고, 직원들이 재밌고 즐거워야 고객과 사회가 재밌고 즐겁죠.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에 재미와 즐거움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이 과정을 개설했어요.”
그래서 이 과정의 수업은 무겁고 진지한 이론보다는 분야별 최고 전문가들과의 만남과 재미있는 현장 체험으로 이뤄진다고 한다. 이수만 SM기획 이사의 한류 마케팅, 붉은악마 신동민 고문이 말하는 월드컵과 붉은악마 이야기, 일본 가고시마의 심수관 도예체험 등이 그간 주요 수업 내용이었다고. 매달 셋째 주 목요일 아침에는 저자를 직접 초청해 책과 관련된 강의를 듣고 조찬을 함께하기도 한다. 또한 흥미로운 것은 매달 한 번은 ‘동반초청학습’으로 배우자 등 가족과 함께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점. 대개 최고경영자 과정은 공부보다는 네트워킹을 위해 참석하는 경우가 많아 수업에는 참석하지 않고 뒤풀이 회식에 더 비중을 두는 곳이 많은 데 비해, 이곳에서는 이처럼 수업이 재미있고 흥미롭게 진행되기 때문에 출석률이 꽤 높다고 한다. 손원장은 요즘 방학인데도 11기 수강생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제게 물어요. 왜 관광학을 하던 사람이 재미론에 관심을 갖게 됐냐고요. 사람들은 관광과 재미를 별개의 것으로 보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사실, 관광과 재미는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죠. 아니, 같은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네요. 관광을 하는 이유가 재미를 추구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관광학을 공부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인생의 재미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에게 재미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재미는 한마디로 인생의 묘약”이라고 말한다. 재미는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우울·권태·무기력 등을 극복하게 만드는 묘약이라는 것. 즉 재미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라고 한다.
“미국 경제공황 때 수많은 사람들이 실의에 빠져 있었죠. 그 무렵 영화 ‘오즈의 마법사’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나왔어요. 그리고 우리나라가 IMF 외환위기에 처했을 때 영화 ‘쉬리’가 나왔죠. 이는 어려울 때일수록 재미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재미는, 어렵지만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니까요.”
그는 인간은 재미를 추구하는 본능이 있다고 말한다. 한 카드 CF에서도 이렇게 노래한다.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그런데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생을 재미있게, 즐겁게 살 줄 몰라서 문제라고 한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열심히 일하는 개미를 본받아야 하고, 일하지 않고 노는 베짱이는 경계해야 한다고 배웠어요. 그렇다보니 자연 노는 것, 즉 인생을 즐기는 것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자리 잡았죠. 하지만 인생을 즐기는 것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요즘은 오히려 베짱이를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손대현 원장은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해주는 동시에 재미를 줄 수 있는 놀이로 독서를 꼽는다.
하루 이틀간 사람·신문·라디오·TV와 단절되면 여유와 유머 찾을 수 있어
그러면 어떻게 해야 재미있게 살 수 있을까. 그는 먼저 고독을 즐기라고 말한다.
“전 평소에는 분주하게 활동하다가 방학엔 한 달간 홀연히 행방불명이 되곤 해요. 대학교수가 좋은 점은 삶의 리듬을 깨며 홀로 골방에 앉아 내부수리를 할 수 있는 긴 방학이 있다는 거죠. 한 달간의 입산수도에 저와 동행하는 다섯 벗(五友)이 있는데, 바로 책과 음악, 시집, 와인, 촛불이죠.”
그는 학기 중에도 주중 하루 이틀 정도는 사람·신문·라디오·TV 등과 완전히 단절돼 지내는 연습을 한다. 고독 속에서 사람다움을 찾는 여유와 유머가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독을 통해 닫힌 세상에서의 재미를 맛보았다면, 이제 그는 열린 세상으로 나아가 또 다른 재미를 맛보라고 권한다. 그것은 바로 여행이다. 여행을 통해 얻는 재미 중에 으뜸은 역시 사는 곳을 떠나는 재미, 곧 일상에서 벗어나는 재미라고 한다.
“저는 가끔 계획 없이 기차를 타요. 그러고는 무작정 어느 조그만 간이역에서 내리는 거예요.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서 시골 사람들과 술 한 잔을 나누며 진솔한 대화도 나누죠. 그때 저는 손 박사도, 손 교수도 아닌 그저 한 인간일 뿐이에요.”
익명으로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것을 보고 듣는 것이 또한 여행의 재미라고 한다. 그는 인터뷰 다음 날에도 재미를 찾아 며칠 떠돌다 올 것이라고 귀띔한다.
“권태는 상상력의 결핍에서 비롯되는 거예요. 그런데 여행은 그 상상력을 키워주죠. 그러니까 삶이 권태롭고 재미없으면 여행을 하세요.”
그는 여행과 함께 놀이(레저)를 즐기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국민 최대의 놀이는 셋이 모이면 고스톱, 둘이 모이면 술, 혼자 있으면 잠이죠. 또 우리나라 성인 남녀의 가장 보편적인 놀이는 TV 시청이랍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제대로 놀 줄 모른다는 거예요.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그는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해주는 동시에 재미를 줄 수 있는 놀이로 글쓰기·독서·운동·공원 산책·그림 그리기·악기 연주·춤강습 받기 등을 권한다.
그의 연구실 시계는 특이하게도 시계바늘이 없다. 그는 “시간은 원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시간은 모든 일이 동시다발로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자 약속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시간은 충분하고 영원한 것이기에 시간에 쫓길 필요가 없다고. 그래서 그는 시간 속에 갇혀 있지 않기 위해 시계바늘을 모두 없앴다고 한다.
“사람들은 흔히 시간이 없어서 못 놀고, 시간이 없어서 여행을 못 간다고들 해요. 하지만 그것은 핑계죠. 그것은 재미가 돈이나 일, 성공과 같은 ‘다른 것’보다 덜 중요하다는 잠재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거예요. 시간이 나면 즐길 거라고 하지 말고 지금 당장 즐겨야 해요. 인생을 재밌게 사는 방법 중 하나는 현재를 즐기는 겁니다. 현재를 즐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즐길 수 없어요.”
그는 시간뿐만 아니라 돈과 물질에도 얽매이지 말라고 충고한다. 주위의 돈 많은 사람들을 보면 돈의 노예가 돼 오히려 재미있게 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돈이 많을수록 ‘더 많은’ 돈을 원하게 되고, 그러면서 점점 더 돈에 지배당하는 것. 돈은 인생에서 편리함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런데 수단이어야 할 돈이 목적이 됐다며, 그는 주객이 전도된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이’라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임종의 순간에 ‘일을 좀 더 해서 돈을 더 많이 벌었으면 좋았을걸’ 하고 말하는 사람은 없어요. 아까운 인생을 축내고 죽을 때가 돼서야 그동안 제대로 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이미 그때는 늦어요. 세계적인 가수 마이클 잭슨은 한 인터뷰에서 그동안 자신은 돈은 많이 벌었지만 자신의 인생을 살아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노라고 고백한 적이 있어요. 돈을 버느라 인생의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죠.”
손대현 원장은 한양대 최고엔터테인먼트 과정 수강생들과 번개모임을 하며 즉흥적인 재미를 맛본다고 한다.
사소한 것에서 재미 찾으려면 어린아이의 순수함과 나눌 줄 아는 마음 필요
그는 재미를 얻기 위해서는 계획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여행을 가거나 이벤트를 할 때 계획을 짜는 것이라고. 그런데 계획된 재미와 달리 즉흥적인 재미도 맛보라고 권한다.
“즉흥적이라는 것은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과 통해요. 예를 들어, 평소 잘 다니지 않던 길로 집에 간다든지, 안 가본 식당이나 술집에 간다든지 하는 거죠. 저는 가끔 무작정 서울 시내로 나가곤 해요. 거리를 걷다가 처음 본 포장마차에 들어가 홀로 소주잔을 기울이고, 그러다가 처음 만나는 사람과 함께 소주잔을 부딪치기도 하죠. 그리고 거리로 나가 걸인과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흔히 번개팅이라고 하는 만남도 즉흥적 재미를 맛볼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
“언젠가 비가 오는 날 최고엔터테인먼트 과정 수강생들과 번개모임을 한 적이 있어요. 비가 오니까 모이자 했더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더라고요. 다들 심심했던 거죠(웃음). 그날 우리는 ‘사랑은 비를 타고’라는 뮤지컬을 보고 술도 좀 하고 그랬어요.”
이 외에도 그는 재미있게 살기 위해서 맛있는 것을 먹고, 매일 8시간 이상 잘 자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라고 제안한다.
“어릴 적 마음이 순수했을 때는 아주 작은 것에도 재밌어했어요. 그런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우리는 재미에 인색해지지 않았나 싶어요. 작고 사소한 것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찾는 게 필요해요.”
그런데 그는 재미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건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건강은 재미의 필수조건이라는 것. 그리고 건강하기 위해서는 웃어야 한다고 당부한다.
“세계 최장수자였던 프랑스의 잔 칼망 여사는 자신이 오래 산 비결로 첫손에 웃음을 꼽았어요. 미국 인디애나주 볼 메모리얼 병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15초 웃으면 이틀 더 오래 산대요. 하루에 여러 번 호탕하게 웃는 것은 하루 16km씩 조깅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해요. 그러니까 재밌지 않아도, 즐겁지 않아도 그냥 웃어보세요. 웃으면 건강해지니까요. 그리고 이상하게도 웃다보면 재밌고 즐거워집니다.”
세상에 노력 없이 거저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재미도 마찬가지로 노력을 해야 얻을 수 있다고. 그는 노력을 해서 재미를 얻었으면, 그 다음에는 재미를 다른 사람과 나눠 가지라고 말한다. 나누는 재미야말로 ‘참재미’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 단 한 사람에게라도 좋으니 그가 ‘기뻐할 만한’ 무슨 일을 할 수 없을까를 생각하라”고 한 니체의 말을 이렇게 바꿨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 단 한 사람에게라도 좋으니 그가 ‘재미있어 할 만한’ 무슨 일을 할 수 없을까를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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