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k 1 ● 김형석 with Friends
‘동그랗고 짜리몽땅’해서 ‘동짜몽’이라는 별명도 있다고 한다. 눈꼬리가 처져 선한 인상, 다소 느린 말투, 나른한 목소리에 동그란(?) 몸매까지… ‘날카롭고 예민한 예술가’라기보다는 ‘인심 좋은 이웃집 아저씨’ 같다. 겉모습부터 편안함과 따뜻함이 배어나오는 사람, 작곡가 겸 프로듀서 김형석(40)이다.
‘사랑이라는 이유로’(김광석)’ ‘그대 내게 다시’(변진섭) ‘아름다운 이별’ ‘첫인상’(김건모) ‘그때 또다시’(임창정) ‘나나나’(유승준) ‘너의 뒤에서’(박진영) ‘I believe’(신승훈) ‘처음처럼’(성시경) ‘Come to me’(보아) 등 셀 수 없이 많은 히트곡을 만들어 ‘미다스의 손’ ‘히트곡 제조기’라고도 불리는 그이지만 성공한 사람 혹은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권위의식이 느껴지지 않는다. 열 살, 스무 살 넘게 나이차가 나는 신인가수들도 그를 ‘선생님’ 아닌, ‘형’ 혹은 ‘오빠’라고 부를 정도.
격식보다 정서적 교감을 중시한다는 김형석의 주변엔 그래서 사람이 끊이질 않는다. 그에겐 음악이라는 끈으로 맺어진 많은 음악친구들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사람이 가수 신승훈. 두 사람은 15년 전 김형석이 신승훈의 2집 앨범작업에 참여하면서 만나 지금까지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자주 만나요. 일주일에 한두 번? 자주 술자리도 갖고, 둘이서 영화도 같이 보러 가고(웃음). 승훈이도 발라드 음악을 하잖아요. 음악에 직접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순화시키고, 추억을 얘기하고… 감성적인 소재들이 비슷하고 취향도 비슷해요. 거기에 또래고, 둘 다 지방 출신이고. 승훈이랑 친한 사람들이 다 저랑 친한 사람들이고요. 서로 위안도 되고, 배울 점도 많고, 안보면 보고 싶고(웃음). 그게 병이에요. 만날 둘이 만나니… 그렇다고 뭐, ‘브로크백 마운틴’ 같은 사이는 아니고요(웃음).”
비단 신승훈뿐이 아니다. 그룹 솔리드 앨범을 프로듀스하면서 알게 된 김조한, 우연히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를 듣고 그가 직접 나서 앨범작업에 참여한 후 ‘그때 또다시’를 통해 인기가수 대열에 오른 임창정, 그에게 음악을 배워 이제는 ‘비’ ‘god’ 등의 프로듀서로 명성을 쌓고 있는 박진영 등은 10년 넘게 관계를 맺고 있는 음악친구들이다.
“음악이 끈이 됐어요. 음악이 있었기 때문에, 음악이라는 놀이터에서 만나게 된 거죠.”
역시 절친한 음악친구이자 제자이기도 한 성시경은 전속금으로 수십억원을 제의하는 기획사를 마다하고 그의 기획사와 계약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실 저는 계약할 생각이 없었어요. 시경이에게 그만한 계약금을 줄 수도 없었고요. 여기저기서 엄청난 계약금을 제시할 때였는데 어느 날 눈이 퉁퉁 부어서 찾아왔더라고요. 그 큰 덩치가 ‘형, 나는 아직 학생인데 사람들이 체감이 안되는 돈을 제시하고, 사람들이 이쪽저쪽에서 서로 비방하는 게 너무 힘들다. 받아달라’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더라고요.”
성시경은 김형석에 대해 “전화통화를 하면 가장 먼저 ‘밥 먹었니’ 하고 묻는 달콤한 작곡가”라고 평한 적 있다. 이에 대해 묻자 그는 한 번 더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인다.
“그냥, 말버릇이에요. 어릴 적 못 먹고 살아서(웃음).”
그의 음악적 능력을 믿고 찾아온 사람들은 그의 인간적 매력에 한 번 더 빠져 진짜 ‘김형석의 사람’이 되는지도 모른다.
track 2 ● 미다스의 손
숱한 히트곡의 비결을 묻자, 김형석은 자신의 능력을 내세우는 대신 노래를 부른 가수의 능력을 높이 산다.
“작곡가가 히트곡이 많다는 건 인복이 많다는 거예요. 잘 표현해주는 가수가 중요하죠.”
노래가 먼저인지 가수가 먼저인지 잘라말하긴 어렵지만, 확실한 것은 많은 가수들이 그의 곡을 통해 인기를 얻어 스타가 됐다는 사실이다. 그는 많은 스타들의 시작을 지켜본 사람이기도 하다. 혹시 ‘될 놈’에겐 처음부터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걸까.
“어느 정도는요. 일단 중요한 건 열정이에요. 노래연습, 혹은 춤 연습, 가수 또는 아티스트가 되기 위한 자기 개발… 재능에 대해 묻는 분이 많은데, 노래를 잘하는 것도 재능이지만 그걸 잘 가꾸고 노력하는 것도 재능이지요. 저는 노력이 60%, 재능이 40%라고 말하는데, 사실은 노력도 재능이에요. 그런 열정이 있는 친구들은 언젠가 사고를 치죠. 꼭 그래왔어요.”
김형석은 특히 기억에 남는 스타로 박진영을 꼽았다. 박진영은 김형석에게 음악을 배우겠다고 찾아와 2,3년간 “거의 같이 살았다”고 한다.
“진영이 인상이 좀 무섭잖아요. 당시 저희 어머니가 ‘왜 그런 아이랑 다니냐’면서 걱정하셨거든요. 그러다 나중에 뜨니까, ‘쟤 될 줄 알았다’고 그러시더군요(웃음). 진영이는 확실히 남달랐어요. 한 예로 보통 음악을 가르쳐주면 멜로디만 만들어오는데 늘 가사까지 붙여왔어요. 항상.”
박진영을 비롯해 많은 가수들에게 ‘음악적인 스승’이라고 불리는 그이지만 정작 본인은 ‘키운다’ ‘가르친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가르치는 게 별게 아니에요. 피아노 코드나 멜로디 쓰는 법 같이 기본적인 것들을 알려주고, 아주 조금만 잡아주는 거죠. ‘이거보단 이 코드가 낫지 않겠니?’ 한마디해주면 다시 연구해서 다시 가져오고… 배워서 표현하는 게 아니라 알고 있는데 표현 방법을 모를 때 그걸 알려줄 뿐이에요.”
그는 자신이 곡을 주고 음반을 프로듀스해주는 가수들에게 ‘기본’을 강조한다고 한다.
“노래 연습하고, 음악 많이 들으라고 하죠. 원론적인 게 역시 가장 중요해요. 가수는 노래 잘하는 게 기본이죠. 춤 잘추고, 말 잘하고 웃기고… 그런 것도 마케팅의 한 방법이겠지만, 가장 중요한 씨앗은 노래를 잘하는 거죠.”
track 3 ● 피아노 세 대가 있던 집
“음악을 안 했다면 뭘 했을 것 같냐”고 묻자 조금의 망설임 없이 “할 게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생각해본 적 없는데요. 잉여인간이 되지 않았을까요. 무용지물 인간이라고 있잖아요. 일 안 하고 집에 있는데, 정말 딱히 잘하는 거 없는 백수, 뭐 그런 거…(웃음).”
김형석은 음악교사인 아버지와 음대 입시생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던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다. 피아노 세 대가 있었다는 그의 집안은 음악적 감수성을 키우는 데 남다른 영향을 줬을 만하다.
“입시반 학생들이 새벽이나 밤에 레슨을 받으러 오니까, 아침에 피아노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서 밤에 피아노 소리를 듣고 잠들었어요. 나도 모르게 음악이란 것을 습득한 것 같아요. 큰 재산이죠. 썩지도 않잖아요. 그런 거는(웃음).”
하지만 그의 부모는 장남이 자신들과 같은 길을 걷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 이후론 피아노를 치는 것도 막았을 정도. 중학교 이후 김형석은 집 대신 교회 성가대에서 피아노를 쳤다고 한다.
“어릴 때 반대가 심하셨죠. 음악을 하는 게 비전이 없다고 생각하셨거든요. 피아노를 치기 위해 교회에 다녔죠(웃음). 그렇다고 ‘난 꼭 음악을 해야 돼’ 했던 건 아니에요. 그냥 피아노 치고 싶은데 못 치게 하니까 교회 나가서 피아노 치고, 또 어떻게 하다 보니 음대(한양대 작곡과)에 가게 됐고, 그러다 가요가 좋아서 이쪽으로 오게 된 거죠. 자연스럽게 슉슉.”
김형석은 그렇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음악을 해왔다. 그리고 그 사이 20대 청년도 마흔의 중년이 됐다. 여전히 “20대 후반의 느낌을 가지고 산다”고 말하는 그이지만, 나이와 함께 달라진 것 역시 많다.
“마흔을 ‘불혹’,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고 하잖아요. 저도 마흔을 기점으로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무엇보다 96년에 시작했던 음악 관련 사업을 그만뒀죠. 저한테 유혹은 음악 외적인 것들이라고 생각해요. 하면 안되는 거였는데 그나마 젊을 때 해봐서 다행이에요. 이젠 그 시간에 음악을 더 하죠.”
track 4 ● ‘사랑이라는 이유로’의 기억
89년 인순이의 ‘이별연습’을 작곡하면서 작곡가로 데뷔한 김형석은 지난 17년 동안 6백여 곡을 작곡했다. 편곡을 포함하면 8백여 곡이 넘는데 일주일에 한 곡 정도를 만든 셈이다.
“거절을 못해서 그래요. 음악을 만드는 건 습관 같은 거예요. 음악을 만들 땐 따로 시간을 내 집중하죠. 물론 천재들은 길 가다가 악상이 떠오를 수도 있겠지만 전 천재가 아니니까요(웃음).”
하지만 아무리 습관이 됐다 한들 창조에는 고통이 따른다. 수백 곡을 써온 그 역시 여전히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감성은 저축이 안돼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시험에 합격하는 게 아니라, 바보처럼 있다가 순간적으로 오고 순간적으로 휙 지나가는 거죠. 항상 불안해요. (음악적 영감이) 더 이상 안 오면 어떡하지, 그분이 다시 오셔야 하는데…(웃음).”
수많은 곡들이 그런 불안의 고비를 넘기며 태어났다. 그렇다면 그 곡들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은 뭘까. 특정곡이 아닌, ‘지금 작업하고 있거나 최근에 작업한 곡’이라는 의외의 답이 돌아온다.
“지금 작업하고 있는 곡들에 가장 관심이 가죠. 그 곡들은 계속 다듬고 있고, 다듬어야 하니까요. 써놓은 곡들은 빨리 잊어야 해요. 만들어진 곡들은 스스로 알아서 살아가요. 누가 부르든, 누가 리메이크를 하든… 제 갈 길을 가는 거죠.”
아닌게아니라 최근 그의 초창기 곡들을 모아 동료 음악인들이 리메이크해 만든 앨범 ‘김형석 with Friends’를 듣다 보면 그 말을 이해할 것 같다. 김건모의 ‘아름다운 이별’을 발라드와 댄스 버전으로 옥주현과 싸이가 각각 부르는 한편, 임창정의 ‘그때 또다시’는 나윤권이, 신승훈의 ‘I believe’는 성시경이 불렀고, 박진영의 ‘너의 뒤에서’를 부른 건 god의 김태우다. 곡은 같지만 느낌이 색다르다. 정말 ‘모든 곡은 제 갈 길을 간다’.
가요 외에 뮤지컬 음악, 영화음악 작업과 외국의 가수들의 음반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는 김형석은 쉴 틈이 없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음악을 할 수 있어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막 신인 작곡가로 데뷔했을 때인데, 신촌에 있는 술집에 간 적이 있어요. 옆 테이블에 앉은 한 무리가 술을 마시다가 자기들끼리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가) 제가 당시 만들었던 ‘사랑이라는 이유로’였어요. 그거 들었을 때 정말 행복한 거 있잖아요. 그 기억을 잊지 못해요. 그리고 지금도 그럴 때가 많아요. 곡 준 가수가 녹음을 끝낸 뒤, 믹싱해서 노래 하나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는 건 여전히 재미있어요. 돈 세고 그런 거랑 비교가 안되죠.”
인터뷰의 끝자락, 예전에 비해 음악이 ‘액세서리’가 되는 것 같다며 아쉬워하는 김형석에게 자신이 만든 음악이 어떤 역할을 하길 바라는지 물었다.
“저는 음악이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게 하는 윤활유라고 생각해요. 음악을 듣고 미워했던 사람을 용서하거나, 추억을 회상하며 그 사람을 그리워한다거나, 좋은 것, 애틋한 거를 떠올리게 하는 것, 그게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제 음악 역시 그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동그랗고 짜리몽땅’해서 ‘동짜몽’이라는 별명도 있다고 한다. 눈꼬리가 처져 선한 인상, 다소 느린 말투, 나른한 목소리에 동그란(?) 몸매까지… ‘날카롭고 예민한 예술가’라기보다는 ‘인심 좋은 이웃집 아저씨’ 같다. 겉모습부터 편안함과 따뜻함이 배어나오는 사람, 작곡가 겸 프로듀서 김형석(40)이다.
‘사랑이라는 이유로’(김광석)’ ‘그대 내게 다시’(변진섭) ‘아름다운 이별’ ‘첫인상’(김건모) ‘그때 또다시’(임창정) ‘나나나’(유승준) ‘너의 뒤에서’(박진영) ‘I believe’(신승훈) ‘처음처럼’(성시경) ‘Come to me’(보아) 등 셀 수 없이 많은 히트곡을 만들어 ‘미다스의 손’ ‘히트곡 제조기’라고도 불리는 그이지만 성공한 사람 혹은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권위의식이 느껴지지 않는다. 열 살, 스무 살 넘게 나이차가 나는 신인가수들도 그를 ‘선생님’ 아닌, ‘형’ 혹은 ‘오빠’라고 부를 정도.
격식보다 정서적 교감을 중시한다는 김형석의 주변엔 그래서 사람이 끊이질 않는다. 그에겐 음악이라는 끈으로 맺어진 많은 음악친구들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사람이 가수 신승훈. 두 사람은 15년 전 김형석이 신승훈의 2집 앨범작업에 참여하면서 만나 지금까지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자주 만나요. 일주일에 한두 번? 자주 술자리도 갖고, 둘이서 영화도 같이 보러 가고(웃음). 승훈이도 발라드 음악을 하잖아요. 음악에 직접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순화시키고, 추억을 얘기하고… 감성적인 소재들이 비슷하고 취향도 비슷해요. 거기에 또래고, 둘 다 지방 출신이고. 승훈이랑 친한 사람들이 다 저랑 친한 사람들이고요. 서로 위안도 되고, 배울 점도 많고, 안보면 보고 싶고(웃음). 그게 병이에요. 만날 둘이 만나니… 그렇다고 뭐, ‘브로크백 마운틴’ 같은 사이는 아니고요(웃음).”
비단 신승훈뿐이 아니다. 그룹 솔리드 앨범을 프로듀스하면서 알게 된 김조한, 우연히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를 듣고 그가 직접 나서 앨범작업에 참여한 후 ‘그때 또다시’를 통해 인기가수 대열에 오른 임창정, 그에게 음악을 배워 이제는 ‘비’ ‘god’ 등의 프로듀서로 명성을 쌓고 있는 박진영 등은 10년 넘게 관계를 맺고 있는 음악친구들이다.
“음악이 끈이 됐어요. 음악이 있었기 때문에, 음악이라는 놀이터에서 만나게 된 거죠.”
역시 절친한 음악친구이자 제자이기도 한 성시경은 전속금으로 수십억원을 제의하는 기획사를 마다하고 그의 기획사와 계약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실 저는 계약할 생각이 없었어요. 시경이에게 그만한 계약금을 줄 수도 없었고요. 여기저기서 엄청난 계약금을 제시할 때였는데 어느 날 눈이 퉁퉁 부어서 찾아왔더라고요. 그 큰 덩치가 ‘형, 나는 아직 학생인데 사람들이 체감이 안되는 돈을 제시하고, 사람들이 이쪽저쪽에서 서로 비방하는 게 너무 힘들다. 받아달라’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더라고요.”
성시경은 김형석에 대해 “전화통화를 하면 가장 먼저 ‘밥 먹었니’ 하고 묻는 달콤한 작곡가”라고 평한 적 있다. 이에 대해 묻자 그는 한 번 더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인다.
“그냥, 말버릇이에요. 어릴 적 못 먹고 살아서(웃음).”
그의 음악적 능력을 믿고 찾아온 사람들은 그의 인간적 매력에 한 번 더 빠져 진짜 ‘김형석의 사람’이 되는지도 모른다.
track 2 ● 미다스의 손
숱한 히트곡의 비결을 묻자, 김형석은 자신의 능력을 내세우는 대신 노래를 부른 가수의 능력을 높이 산다.
“작곡가가 히트곡이 많다는 건 인복이 많다는 거예요. 잘 표현해주는 가수가 중요하죠.”
노래가 먼저인지 가수가 먼저인지 잘라말하긴 어렵지만, 확실한 것은 많은 가수들이 그의 곡을 통해 인기를 얻어 스타가 됐다는 사실이다. 그는 많은 스타들의 시작을 지켜본 사람이기도 하다. 혹시 ‘될 놈’에겐 처음부터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걸까.
“어느 정도는요. 일단 중요한 건 열정이에요. 노래연습, 혹은 춤 연습, 가수 또는 아티스트가 되기 위한 자기 개발… 재능에 대해 묻는 분이 많은데, 노래를 잘하는 것도 재능이지만 그걸 잘 가꾸고 노력하는 것도 재능이지요. 저는 노력이 60%, 재능이 40%라고 말하는데, 사실은 노력도 재능이에요. 그런 열정이 있는 친구들은 언젠가 사고를 치죠. 꼭 그래왔어요.”
김형석은 특히 기억에 남는 스타로 박진영을 꼽았다. 박진영은 김형석에게 음악을 배우겠다고 찾아와 2,3년간 “거의 같이 살았다”고 한다.
“진영이 인상이 좀 무섭잖아요. 당시 저희 어머니가 ‘왜 그런 아이랑 다니냐’면서 걱정하셨거든요. 그러다 나중에 뜨니까, ‘쟤 될 줄 알았다’고 그러시더군요(웃음). 진영이는 확실히 남달랐어요. 한 예로 보통 음악을 가르쳐주면 멜로디만 만들어오는데 늘 가사까지 붙여왔어요. 항상.”
박진영을 비롯해 많은 가수들에게 ‘음악적인 스승’이라고 불리는 그이지만 정작 본인은 ‘키운다’ ‘가르친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가르치는 게 별게 아니에요. 피아노 코드나 멜로디 쓰는 법 같이 기본적인 것들을 알려주고, 아주 조금만 잡아주는 거죠. ‘이거보단 이 코드가 낫지 않겠니?’ 한마디해주면 다시 연구해서 다시 가져오고… 배워서 표현하는 게 아니라 알고 있는데 표현 방법을 모를 때 그걸 알려줄 뿐이에요.”
그는 자신이 곡을 주고 음반을 프로듀스해주는 가수들에게 ‘기본’을 강조한다고 한다.
“노래 연습하고, 음악 많이 들으라고 하죠. 원론적인 게 역시 가장 중요해요. 가수는 노래 잘하는 게 기본이죠. 춤 잘추고, 말 잘하고 웃기고… 그런 것도 마케팅의 한 방법이겠지만, 가장 중요한 씨앗은 노래를 잘하는 거죠.”
track 3 ● 피아노 세 대가 있던 집
“음악을 안 했다면 뭘 했을 것 같냐”고 묻자 조금의 망설임 없이 “할 게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생각해본 적 없는데요. 잉여인간이 되지 않았을까요. 무용지물 인간이라고 있잖아요. 일 안 하고 집에 있는데, 정말 딱히 잘하는 거 없는 백수, 뭐 그런 거…(웃음).”
김형석은 음악교사인 아버지와 음대 입시생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던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다. 피아노 세 대가 있었다는 그의 집안은 음악적 감수성을 키우는 데 남다른 영향을 줬을 만하다.
“입시반 학생들이 새벽이나 밤에 레슨을 받으러 오니까, 아침에 피아노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서 밤에 피아노 소리를 듣고 잠들었어요. 나도 모르게 음악이란 것을 습득한 것 같아요. 큰 재산이죠. 썩지도 않잖아요. 그런 거는(웃음).”
하지만 그의 부모는 장남이 자신들과 같은 길을 걷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 이후론 피아노를 치는 것도 막았을 정도. 중학교 이후 김형석은 집 대신 교회 성가대에서 피아노를 쳤다고 한다.
김형석이 오디션을 통해 발굴한 신인가수 서예나와 함께.
“어릴 때 반대가 심하셨죠. 음악을 하는 게 비전이 없다고 생각하셨거든요. 피아노를 치기 위해 교회에 다녔죠(웃음). 그렇다고 ‘난 꼭 음악을 해야 돼’ 했던 건 아니에요. 그냥 피아노 치고 싶은데 못 치게 하니까 교회 나가서 피아노 치고, 또 어떻게 하다 보니 음대(한양대 작곡과)에 가게 됐고, 그러다 가요가 좋아서 이쪽으로 오게 된 거죠. 자연스럽게 슉슉.”
김형석은 그렇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음악을 해왔다. 그리고 그 사이 20대 청년도 마흔의 중년이 됐다. 여전히 “20대 후반의 느낌을 가지고 산다”고 말하는 그이지만, 나이와 함께 달라진 것 역시 많다.
“마흔을 ‘불혹’,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고 하잖아요. 저도 마흔을 기점으로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무엇보다 96년에 시작했던 음악 관련 사업을 그만뒀죠. 저한테 유혹은 음악 외적인 것들이라고 생각해요. 하면 안되는 거였는데 그나마 젊을 때 해봐서 다행이에요. 이젠 그 시간에 음악을 더 하죠.”
track 4 ● ‘사랑이라는 이유로’의 기억
89년 인순이의 ‘이별연습’을 작곡하면서 작곡가로 데뷔한 김형석은 지난 17년 동안 6백여 곡을 작곡했다. 편곡을 포함하면 8백여 곡이 넘는데 일주일에 한 곡 정도를 만든 셈이다.
“거절을 못해서 그래요. 음악을 만드는 건 습관 같은 거예요. 음악을 만들 땐 따로 시간을 내 집중하죠. 물론 천재들은 길 가다가 악상이 떠오를 수도 있겠지만 전 천재가 아니니까요(웃음).”
하지만 아무리 습관이 됐다 한들 창조에는 고통이 따른다. 수백 곡을 써온 그 역시 여전히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감성은 저축이 안돼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시험에 합격하는 게 아니라, 바보처럼 있다가 순간적으로 오고 순간적으로 휙 지나가는 거죠. 항상 불안해요. (음악적 영감이) 더 이상 안 오면 어떡하지, 그분이 다시 오셔야 하는데…(웃음).”
수많은 곡들이 그런 불안의 고비를 넘기며 태어났다. 그렇다면 그 곡들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은 뭘까. 특정곡이 아닌, ‘지금 작업하고 있거나 최근에 작업한 곡’이라는 의외의 답이 돌아온다.
“지금 작업하고 있는 곡들에 가장 관심이 가죠. 그 곡들은 계속 다듬고 있고, 다듬어야 하니까요. 써놓은 곡들은 빨리 잊어야 해요. 만들어진 곡들은 스스로 알아서 살아가요. 누가 부르든, 누가 리메이크를 하든… 제 갈 길을 가는 거죠.”
아닌게아니라 최근 그의 초창기 곡들을 모아 동료 음악인들이 리메이크해 만든 앨범 ‘김형석 with Friends’를 듣다 보면 그 말을 이해할 것 같다. 김건모의 ‘아름다운 이별’을 발라드와 댄스 버전으로 옥주현과 싸이가 각각 부르는 한편, 임창정의 ‘그때 또다시’는 나윤권이, 신승훈의 ‘I believe’는 성시경이 불렀고, 박진영의 ‘너의 뒤에서’를 부른 건 god의 김태우다. 곡은 같지만 느낌이 색다르다. 정말 ‘모든 곡은 제 갈 길을 간다’.
가요 외에 뮤지컬 음악, 영화음악 작업과 외국의 가수들의 음반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는 김형석은 쉴 틈이 없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음악을 할 수 있어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막 신인 작곡가로 데뷔했을 때인데, 신촌에 있는 술집에 간 적이 있어요. 옆 테이블에 앉은 한 무리가 술을 마시다가 자기들끼리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가) 제가 당시 만들었던 ‘사랑이라는 이유로’였어요. 그거 들었을 때 정말 행복한 거 있잖아요. 그 기억을 잊지 못해요. 그리고 지금도 그럴 때가 많아요. 곡 준 가수가 녹음을 끝낸 뒤, 믹싱해서 노래 하나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는 건 여전히 재미있어요. 돈 세고 그런 거랑 비교가 안되죠.”
인터뷰의 끝자락, 예전에 비해 음악이 ‘액세서리’가 되는 것 같다며 아쉬워하는 김형석에게 자신이 만든 음악이 어떤 역할을 하길 바라는지 물었다.
“저는 음악이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게 하는 윤활유라고 생각해요. 음악을 듣고 미워했던 사람을 용서하거나, 추억을 회상하며 그 사람을 그리워한다거나, 좋은 것, 애틋한 거를 떠올리게 하는 것, 그게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제 음악 역시 그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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