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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영광의 주인공

2천만원 고료 제 38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자 이근미

글·이남희 기자 / 사진ㆍ김형우 기자

2006. 02. 10

자신을 ‘돌출형 인간’이라 일컫는 괴짜 소설가가 탄생했다. 15년 넘게 프리랜서 기자 생활을 하며 글쓰기의 기본을 다졌고, 남과는 다른 삶의 행로를 거치며 인생의 참맛을 깨달았다는 제 38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자 이근미씨를 만났다.

2천만원 고료 제 38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자 이근미

이근미씨(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소설가 박완서 선생과 화가 김점선 선생이 소설을 쓰는 데 큰 힘이 돼주었다고 말한다.


우리네 인생이 계획대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그저 최선을 다할 뿐, 인생의 항로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운명이기 때문이다. 제38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자 이근미씨(48·필명 여미마)는 이러한 삶의 깨달음을 그의 작품 ‘17세’에 고스란히 풀어냈다. 당선작 ‘17세’는 가출한 17세의 딸에게, 어머니가 자신의 17세 소녀시절을 회상하며 들려주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 소설은 하응백, 우애령 두 심사위원으로부터 “근래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접수된 작품 중 단연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글쓰기가 어느덧 운명이 돼버렸다는 이근미씨를 1월10일, 서울 광화문 일민미술관의 카페에서 만났다.
“대형 할인점에서 쇼핑을 하던 중 ‘여미마씨가 맞느냐’는 전화를 받고 순간 당황했어요. 15년 넘게 여러 시사잡지에 이근미라는 본명으로 기사를 써온 터라 ‘여미마’라는 필명으로 소설 공모에 도전했는데, 그 필명이 영 익숙하지 않았던 거죠. ‘여미마’는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인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란 뜻을 갖고 있어요. 그 전화가 소설 당선 통보임을 뒤늦게 깨닫고 기쁨을 감출 수 없었죠.”
처음 만난 사람도 10분 안에 친구로 만들 정도의 친화력을 지닌 이근미씨는 자신을 ‘돌출형 인간’이라 일컫는다. 보통사람과는 다른, 독특한 삶의 행로를 거쳐왔기 때문이다. 중학교 시절 울산에서 최상위권의 성적을 기록했던 그는 서울의 명문고에 진학하겠다는 꿈이 무산되자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만다. 이씨의 부모는 장녀인 그를 친척 하나 없는 서울로 보내려 하지 않았던 것. 그러자 이씨는 ‘가고 싶은 학교가 아니라면 굳이 다닐 필요가 없다’며 고교 입학시험조차 치르지 않았다. 세상 물정 모르는 소녀의 용감한 선택은 ‘괴짜 인생’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라면 박스 재놓고 소설 쓰라”는 스승의 꾸짖음에 다시 소설 쓰기 시작해
“2월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놀다가, 8월 즈음 친구를 따라 한 대기업의 입사시험을 치르게 됐어요. 제 고향인 울산은 유명한 공업도시여서 1970년대부터 청소년 아르바이트가 일반화돼 있었거든요. 당시 그 회사는 키가 155cm는 넘어야 입사할 수 있었는데, 제 키는 152cm에 불과했어요. 하지만 제가 입사시험에서 1등을 하는 바람에 결국 사원으로 뽑힐 수 있었죠. 현장에서 일을 하기에는 키가 너무 작아서, 저는 또래 친구들과 달리 실험실에 배치됐어요. 여상을 나온 언니들, 공고 나온 아저씨들과 함께 일했지요. 그곳에서 1년 넘게 근무했는데, 어른들의 세계를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었어요. 그 때의 추억이 소설 ‘17세’의 모티프가 됐죠.”
이후 회사를 그만둔 이씨는 사설학원의 피아노 교사로 변신한다. 어린 시절부터 교회의 반주자가 되기 위해 꾸준히 피아노를 연주해온 덕분이었다. 80년대 초반에는 이웃집 오빠가 검정고시를 치른 후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보고, 음대에 진학하기로 결심한다. 기본기가 탄탄했던 탓에 검정고시는 너끈히 통과할 수 있었지만, 막상 음대 실기시험에서 세 차례나 떨어지는 불운을 겪었다. ‘베토벤 소나타 31번’을 ‘눈감고 발가락으로 연주할 만큼’ 연습했건만 시험장에서는 꼭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기 때문이다.
“무대 체질이 아닌 이상 피나게 연습해도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때 문득 제 눈에 들어온 것이 중앙대 문예창작과 입학공고였지요. 입학시험에 실기가 30% 포함돼 있어 저한테 유리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른 수험생에 비해 공부량이 턱없이 부족하니, 어린 시절 백일장을 휩쓸던 문장력으로 점수를 만회하자는 전략을 세운 거죠. 당시 공부보다 글쓰기에 재능이 많은 학생들이 그 학과에 대거 지원한 것 같아요. 1,2년 후에는 문창과 입시에 실기가 없어졌더라고요. 몇 년 후 시험을 봤더라면 저는 입학에 실패했을지도 몰라요(웃음).”
그는 스물아홉의 나이에 늦깎이 대학생이 됐다. 중앙대 문예창작과 87학번.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쓴 소설가 박민규와 동기다. 그는 대학교 4학년 때인 91년 ‘동아일보’ 중편소설 공모에서 최종심까지 올랐고, 93년 ‘문화일보’ 중편소설 공모에서 ‘낯설게 하기’라는 작품이 당선돼 등단의 꿈을 이뤘다. 하지만 등단하기 전부터 프리랜서 기자로 이름을 알린 그는 소설보다 기사를 쓰는 데 정력을 쏟았다. 각계각층의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 재미난 인생공부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문형 맞춤기사 제작’에 점차 회의가 들 때쯤, 그는 스승의 따끔한 충고를 듣고 소설창작에 몰입하기로 결심한다.

2천만원 고료 제 38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자 이근미

이근미씨는 ”이제 기사가 아니라 조흔 소설로 독자를 찾아가고 싶다”고 밝혔다.


“2003년 가을학기에 모교 대학원에 들어갔어요. 저보다 열 살, 스무 살 어린 후배들과 함께 공부했었죠. 어느 날인가, 수업 중간에 이승하 선생님께서 ‘왜 한 달 지나면 없어질 기사에 온갖 힘을 기울이면서 소설은 안 쓰냐’며 저를 꾸짖으셨어요. 저는 창피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먹고살아야 되니까요’라고 항변했지요. 그러자 선생님은 ‘라면 박스 재놓고 소설 쓰란 말이야!’ 하고 일갈하셨죠. 선생님의 호통이 제가 소설에 몰두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그에게 힘이 되어준 또 다른 인물은 바로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로 등단한 소설가 박완서 선생이다. 이씨가 박 선생의 댁을 찾아가 “소설을 잘 쓸 수 있도록 기를 불어넣어주세요” 하고 부탁하자, 박 선생이 ‘소설 잘 쓰기를 바라며’라는 격문을 써주었다는 것. 그 밑에는 화가 김점선 선생이 힘차게 달리는 말 그림을 그려주었다고. 두 분께 특별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이씨는 “제가 가장 존경하는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이 등단하신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돼 더욱 영광스럽다”고 덧붙였다.
이근미씨는 아직 결혼을 ‘한 번’도 안 했다. 서른세 살에 대학을 졸업하고, 일하는 데 빠져 연애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못했다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나이는 마흔을 넘어섰고, 주변에 좋은 사람이 별로 눈에 띄지 않더라는 것. 그러나 언제든 운명의 상대가 나타나면 멋진 연애를 해볼 작정이라고 했다.
“이제는 기사가 아니라 좋은 소설로 독자를 찾아가고 싶다”는 이근미씨의 모습에서는 청년 같은 에너지가 느껴졌다. 앞으로 그의 열정적인 창작 활동을 기대해본다.

[여성동아 장편소설 심사평]
2천만원 고료 제 38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자 이근미

본심 심사를 맡은 문학평론가 하응백씨(왼쪽)와 소설가 우애령씨.


“참신성과 시의적절한 주제의식 돋보여요”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김조숙씨의 ‘열두 칸의 기차’, 신해수씨의 ‘푸르디푸른 피댓줄’, 김명재씨의 ‘치유될 수 없는 생’, 이근미씨의 ‘17세’ 등 네 편이었다. 이 작품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상당한 문장력과 구성력, 그리고 확실한 주제를 갖고 있어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심사가 진행됐다.
‘치유될 수 없는 생’은 정신대에 끌려갔던 한 여인의 기구한 삶을 통해 우리 현대사의 질곡과 한 여성의 핍진한 삶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가족과 국가가 그 여인에 대한 가해자일 것이고, 또 이것이 당연히 문학의 소재임에는 틀림없지만, 이 소설은 과욕을 부리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즉 이 소설의 주요 모티프는 일제의 침략(정신대), 한국전쟁(양공주), 광주민중항쟁 등인데 한 사람의 삶에 역사의 부하를 너무 많이 걸리게 하여 소설을 진행시켰다는 점이 아쉬웠다. 다른 말로 하면 체험의 곡진함보다는 역사적 사건의 공부를 통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현대사의 비극적 장면들을 굴비두름처럼 꿰어놓았다는 것이 이 소설의 약점이다.
‘열두 칸의 기차’는 삶의 의미를 찾아나서는 일종의 구도(求道) 소설이자 기행 소설이다. 주인공이 제대를 하고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가 없어졌다는 신선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그동안 주인공이 아버지라고 알고 있던 사람이 생부(生父)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사라진 어머니를 찾기 위해 아들이 길을 떠나는 것이 이 소설의 대략적인 얼개다. 이 소설은 대단히 진지하며 참된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것을 묻고 있다. 사색의 공력이 느껴지는 것이 장점이지만, 반대로 바로 그 장점이 소설의 단점도 될 수 있다. 추상적이며, 현실감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이야기와 철학(사상)을 어떻게 접목시키느냐 하는 문제인데, 이 소설은 철학 쪽이 승리함으로써 소설 쪽에서 양보를 해야만 했다.
‘푸르디푸른 피댓줄’은 거제도를 배경으로 하여 여분이라는 한 여인의 일생을 질펀하게 풀어놓은 뛰어난 소설이다. 특히 문장의 안정된 구사와 사라져가는 우리말의 복구, 그리고 경상도 방언의 적절한 채용을 보며 신해수씨의 공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소설은 기성 문인들의 작품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긴 하지만 또한, 예컨대 한승원의 소설들이나 이경자의 ‘정은 늙지도 않아’와 같은 소설에서 익히 보았던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신인 소설가에 대한 독자들의 기대치는 새로움일 것이다.
‘17세’는 가출한 17세의 딸에게 어머니가 보내는 이메일과 현실 속에서 어머니의 서술이 교직돼 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 메일에는 과거 어머니의 소녀시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즉 가출한 딸에게 자신의 가출을 보여줌으로써 딸과의 화해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액자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소설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담담하고 정확한 문장, 흥분하지 않는 서술 태도, 적절한 종결 등을 통해 가족해체의 세태에서 있음직한 테마를 그럴듯하게 그려내고 있다. 다만 이 소설에서 딸의 가출 동기는 좀 설득력이 약한 것으로 보이는데, 앞으로 이근미씨는 소설의 주인공에 대해 좀 더 잔인해야 할 것 같다.
‘푸르디푸른 피댓줄’과 ‘17세’ 두 편을 최종적으로 골라 놓고, 우리 두 사람은 ‘17세’를 당선작으로 확정했다. 참신성과 시의적절한 테마를 높이 샀기 때문이다. 낙선자에게는 위로를,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보내지만, 사실 그 위로와 축하는 반대로 보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가는 대개 그리 행복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응백(문학평론가·전 경희대 교수), 우애령(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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