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완(51)은 재주가 많은 사람이다. 그의 음악적 재능은 지난 77년 록그룹 ‘산울림’의 리더로 대중 앞에 등장했을 때 이미 증명됐고, 85년 드라마 ‘바다의 노래’로 시작된 연기 경력도 어느새 20년에 이른다. 2000년 가을부터는 SBS 라디오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를 진행하며 DJ로서 또 다른 재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자전적 산문집으로 대중 앞에 섰다.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추억과 어린 시절 이야기 등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개인사를 담은 ‘이제야 보이네’를 펴낸 것. 도대체 못하는 건 뭔지, 왜 그렇게 바쁘게 사는지 물으려는데 그가 불쑥 지난해 10월 세상을 떠난 미국의 솔 가수 레이 찰스 이야기를 꺼냈다.
“레이 찰스가 죽을 때 나이가 74세였거든요. 그전까지는 그에 대해 잘 몰랐는데, 죽음을 계기로 이런저런 자료들을 찾다가 그가 죽기 석 달 전까지 후배 가수들과 앨범 녹음작업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신선한 충격을 받았죠. ‘누군가는 목숨이 다할 때까지 작업에 매달리는데 나는 훨씬 어린 나이에 이렇게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죄스럽더라고요.”
산문집 ‘이제야 보이네’를 낸 건 레이 찰스의 죽음을 계기로 좀 더 부지런하게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지런하게 살기’ 계획 아래 그는 지난 봄, 8년 만에 ‘산울림’ 콘서트를 열었고, 이번에 책을 냈고, 곧 음반 ‘산울림 다시 듣기 - 청춘, 위로, 추억’도 발표할 계획이다.
“어머니, 아버지, 아내, 아들은 인생의 바다에서 내 엉성한 그물로 건져올린 물고기들”
김창완은 산문집 ‘이제야 보이네’ 머리글에서 “인생의 바다에서 엉성하기 짝이 없는 내 그물로 건져올린 물고기가 있다면 그것은 어머니, 아버지, 아내 그리고 아들, 친구와 술과 노래 아닐까?”라는 자문을 던진다. 이 산문집은 그가 건져올린 이 ‘물고기’들에 대한 이야기다.
결혼 한 달 만에 터진 6·25전쟁으로 전장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며 매운 시집살이를 해야 했던 어머니, 여자문제로 어지간히 어머니 속을 태우다 46세 때 중풍으로 쓰러진 뒤 27년간 병석에 누워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 피란길에 태어나 아버지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형 등 김창완이 지금껏 밝히지 않았던 가족사들이 그의 문장을 통해 하나 둘 세상 앞에 펼쳐진다.
특히 책 군데군데서 드러나는 ‘키 150cm도 채 되지 않은 작은 몸으로 갖은 어려움을 헤쳐온’ 어머니 장은성씨(76)에 대한 그의 애틋한 마음은 읽는 이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영화 ‘칭기즈 칸’에 보면 칭기즈 칸이 독화살을 맞고 죽어갈 때 어머니가 황급히 찾아온 작은아들에게 자신의 오줌을 섞어 약을 지어주며 이렇게 이른다. ‘이 약을 전하면서 형한테 말해라. 어미가 살아 있는 한 자식은 죽지 않는다고’. 그 장면이 계속 떠올랐다. 어머니의 가호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김창완의 어머니는 지난 5월29일 ‘산울림’이 8년 만에 콘서트를 하게 되자 일기장에 “오늘은 3형제가 처음 데뷔할 때만큼 마음이 무겁고 근심스럽고 걱정되고 조바심도 나고 어쨌든 나의 일생의 큰 숙제를 안고 있는 느낌이다. … 이 감정을 언제까지 느낄 수 있고 내가 몇 살까지 아들들을 지킬 수 있을지…. 나는 이제 나이 먹는 것, 죽음은 두렵지 않으나 우리 자식들 나이 먹는 것은 너무 안타깝다”는 글을 남겼을 만큼 자식을 위해 평생을 살아온 전형적인 ‘어머니’라고 한다.
김창완은 이런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외국에서 사는 동생들의 빈자리에 외로움을 느낄까봐 늘 가슴앓이를 한다.
“잘해드리지는 못해요. 어머니 생각나면 방송 중에라도 불쑥 전화하고 김치 담가주시면 꼭 맛있다고 얘기하는 정도죠. 가끔씩 밖에서 모시고 식사할 때도 워낙 무뚝뚝하게 대해서 죄송스럽고요.”
어머니가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애틋함과 죄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대상이라면, 아내는 그에게 든든함과 자랑스러움을 주는 ‘물고기’다.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을 하나만 꼽으라면 주저 없이 아내 강귀빈씨(51)를 얻은 것이라고 말할 정도.
“대학 2학년 때 만나 5년 연애하고 결혼했어요. 아내가 제 첫사랑이죠. 우리는 서로 구속하지 않고 살아요. 아내는 저한테 멋진 부인이고 엄마로도 훌륭한 사람이에요.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될 때부터 일을 줄이고 하루에 다섯 시간 이상씩 함께 보냈거든요. 그 덕에 아이가 잘 큰 것 같아요. 모든 것이 고맙기만 하죠.”
보건소에 근무하는 의사인 아내가 사랑과 관심으로 아들 신화씨(26)를 돌보는 동안 김창완은 ‘방해하지 않는 아버지’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에게 발자국 없는 눈밭을 선물하고 싶었어요. 저의 지저분한 가치관이나 욕심으로 하얀 눈밭에 미리 발자국을 찍어놓지는 말자고 생각했죠. 그 덕분인지 신화는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가진 자신감 있는 어른으로 자랐어요. 그러니 저도 좋은 아버지 아닐까요(웃음).”
김창완의 아내와 아들은 이번 책을 내는 데도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아내는 그가 지난 90년 무렵부터 신문, 잡지 등에 기고한 글을 모두 모아둬 유용한 자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줬고, 아들은 그가 지칠 때마다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이런 가족들이 있어 김창완은 지금껏 살아온 자신의 삶에 평점을 매긴다면 ‘수’를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세상을 벗어나는 자유를 누리기보다는,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법 찾으려 노력”
후회스러운 것은 학창 시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일. 어려서부터 ‘천재’ 소리를 듣고 자란 그는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취미로 과학책을 읽을 만큼 수학, 과학을 좋아하는 그는 가끔씩 “만약 한눈팔지 않고 공부만 했다면 ‘아니 벌써’ 대신 세계적인 수학 공식을 하나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에 호기심이 가득한 김창완이 공부에만 매달리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 그의 취미만 봐도 그렇다. 그는 요즘 50이 넘는 중년 ‘아저씨’의 취미라고 보기 어려운 산악자전거에 ‘미쳐 있다’. 폐활량을 늘리기 위해 하루 한 갑 이상씩 피우던 담배를 끊었을 정도. 아침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도로 정체를 피하기 위해 타기 시작한 자전거에 빠진 이후 그에게 날씨는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날씨와 자전거를 탈 수 없는 ‘거지 같은 날씨’ 두 가지로 나뉘게 됐다. 화창한 날이면 자전거 동호회 친구들과 함께 훌쩍 길을 떠나는 것이 최고의 즐거움이라고. 올 1월에 오토바이 면허를 따서 요새는 종종 할리 데이비슨을 몰며 ‘두렵지만 황홀한 체험’을 즐기기도 한다.
그의 이런 자유로움, 영원히 늙지 않을 듯한 천진난만함은 대중들이 그를 선망하게 만드는 힘이다. 하지만 김창완은 “나는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자유의 과잉은 사람을 망가뜨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부턴가 세상을 벗어나는 자유를 누리기보다는, 힘든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중국 소설가 위화의 ‘살아간다는 것’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와요. ‘가난하거나 슬픈 것은 인생에서 중요한 게 아니다.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다’. 제가 이 책을 쓰며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바로 이거예요. 삶이 고달프더라도 사랑하고 기뻐하며 살아가자는 거죠.”
“당신이 지금 어디에 있든 사랑하라. 그리고 기뻐하라. 삶은 고달프지만 아직 더 먹을 나이가 있다. 그때까지 기다려라. 비록 임종일지라도.” 김창완이 미리 써둔 유언장의 마지막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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