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아침 공기 냄새가 좋아서 등산을 해요.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예요.” 서울 평창동 자택 근처에서 이른 아침 만난 탤런트 고두심(54)은 자신이 매일 아침 오르내리는 북한산 국립공원 내의 등산로로 안내하며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밤새 보슬비가 내려 돌계단이 깔린 산길도, 양옆에 빽빽이 들어선 나무들도, 안개 자욱한 하늘도 축축하게 젖어 있었지만 그의 발걸음은 뽀송뽀송한 양탄자 위를 걷듯 가뿐해 보였다.
“건강에는 걷는 운동이 최고예요. 특히 등산을 하면 체지방이 빠지고, 몸이 탄탄해져서 좋아요. 운동은 그전부터 꾸준히 해왔어요. 한강변에 살 때는 집 근처 골프연습장에서 하루 세 박스씩 공을 쳤죠. 등산한 지는 8~9년 됐어요. 이리로 이사 와서 줄곧 해왔거든요. 늦잠 자면 화가 나요. 피곤해서 잤는데도 등산을 못하면 막 짜증이 나죠. 산에 오르는 게 삶의 활력소가 돼요. 등산하면 안색이 좋아지고, 에너지가 넘치니까 사람들이 뭐 좋은 거 먹었냐고 묻고 그래요(웃음).”
Health secret ▼ “하루 한 시간 반 정도 등산하고 잡곡밥 먹으며 건강 챙겨요”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는 북한산 등산로에는 설악산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비경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그가 이곳을 등산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왕복 한 시간 반 정도. 일정한 속도로 쉬지 않고 오르던 그는 산 중턱 약수터에서 잠시 숨을 돌리며 땀범벅이 된 얼굴을 얼음처럼 차가운 약수로 씻었다. 그곳에서 다시 가파른 산길을 따라 10여 분을 오르니 이번에는 ‘청담’ 약수터가 나왔다.
“여기 올라오면 약수 한 컵은 기본으로 마셔요. 시중에서 파는 생수도 이 맛을 따라가진 못하죠. 제가 배낭을 메고 올라온 것도 약수를 떠가기 위해서예요. 이 안에 물통 두 개를 넣어가지고 오죠. 여기서 10분 정도 스트레칭 체조도 해요. 팔다리를 쭉쭉 펴주면 아주 시원하거든요.”
등산은 좋은 운동이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무턱대고 산을 오르는 것은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라고 한다. 산에 오를 때는 등산복에 등산화, 모자, 배낭을 착용하는 게 좋은데 무엇보다 등산화가 가장 중요한 필수품이라고. 또 배낭을 메고 오르면 넘어지더라도 충격이 덜해 부상의 위험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고 한다.
“아무것도 메지 않으면 맨송맨송하고 허전해요. 어릴 때부터 등허리에 짐을 많이 짊어져서 그런가봐요. 책보뿐만 아니라 곡식이나 땔감 같은 것들을 짊어지고 다녀 등에 뭐가 있어야 안정감 있게 느껴져요. 산꼭대기 공기가 차가워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모자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얼굴 가리는 게 첫 번째 이유예요. 사람들의 눈에 안 띄려고요. 여기 오는 분들은 제가 걸어가는 모습만 봐도 알아보지만 그래도 습관이 돼 머리에 눌러쓰고 아래만 보고 걷죠. 등산은 꾸준히 하면 더없이 좋은 운동인데 겨울에는 아침에 이불에서 나오기가 정말 싫어요. 그때는 이불을 단박에 박차고 나와야지, 안 그러면 힘들어요(웃음).”
그에게 운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의 일부분이요, 밥 먹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운동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는데 당시에는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가 살던 제주도에는 차가 흔치 않아 30분에서 1시간 거리는 걸어다니는 게 기본이었다고.
“웬만한 거리는 차를 타본 적이 없어요. 서울 와서 제일 힘들었던 게 차 타는 일이었어요. 차만 타면 멀미를 했거든요. 회사에 다닐 때는 그래서 출퇴근이 아주 고역이었어요. 차가 없으면 안되는 시대가 되었지만 어려서는 걸어만 다녔기 때문에 걷는 걸 좋아해요. 어릴 때 많이 했던 것이나 많이 먹었던 음식을 커서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처럼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요. 저는 어릴 때 엄마가 해주셨던 음식이 자꾸 생각나고 먹고 싶고 그래요. 그 당시에는 명절이나 제사 때, 생일 같은 특별한 날에만 하얀 쌀밥을 먹었지 여느 때는 항상 보리에 조, 현미 등이 섞인 잡곡밥을 먹었어요. 지금도 집에서는 항상 이것저것 대여섯 가지 곡물이 들어간 잡곡밥을 먹어요. 잡곡밥이 아니면 맛이 없어서 못 먹겠더라고요. 흰 쌀밥은 잡곡이 떨어졌는데 미처 준비가 안된 날만 먹어요(웃음).”
Beauty knowhow ▼ “과식 하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철저히 세안해요”
지난해말 드라마 ‘한강수타령’과 ‘꽃보다 아름다워’로 MBC와 KBS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동시에 대상을 받은 고두심(위). 그가 헌신적인 엄마로 열연한 KBS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 한 장면.
그는 운동 외에 몸매 관리를 위한 다이어트는 따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적당량을 먹었다 싶으면 바로 수저를 놓을 만큼 과식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40대에서 50대로 넘어가니까 식사량이 줄더군요. 입맛이 좀 떨어지고, 뭐를 먹어도 그다지 맛이 없어요. 요즘 들어 입맛이 좋아져 다시 잘 먹는데 나이 드니 확실히 모든 신체 기능이 약해지는 것 같아요.”
그는 평소 인스턴트식품이나 탄산음료는 삼가고 물과 건강차를 자주 마신다. 다만 물 종류는 주로 따뜻하게 마신다.
“차가운 물을 좋아하지 않아요. 약수터에 가서 먹는 물도 한 잔 정도만 마셔요. 보리차, 매실차, 오미자차, 녹차 같은 건강차도 끓여 마셔요.”
그는 등산할 때뿐 아니라 촬영이 없는 날에는 메이크업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로부터 메이크업 좀 하고 다니라는 핀잔을 듣기도 하지만 “쉬는 날에는 피부도 숨을 쉬게 해주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화장보다는 세안에 신경을 많이 쓴다는 그는 평소 아침저녁으로 이중세안을 하고, 촬영이 끝나면 바로 메이크업부터 말끔히 지운다.
“나이 들수록 피부에 신경이 쓰여요. TV에 나오는 사람으로서 염치가 없을 정도로 피부 관리에 소홀해요. 목욕탕에 가서 반나절, 한나절씩 휴식을 취하는 건 괜찮은데 잠깐 누워 마사지 받으려고 피부관리실 같은 데 가는 건 내키지 않아요. 피부 관리에는 수분공급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아요. 나이 먹을수록 피부가 건조해져 자꾸 땅기는데 잠자는 방 안의 습도를 적절히 유지시키면 화장품을 따로 많이 바르지 않아도 땅김 현상이 줄더라고요.”
대중목욕탕 가운데서도 불가마 한증탕을 즐겨 찾는 그는 “물이든 음식이든 뜨거운 것이 좋다”면서 “손발이 차가워 여기저기 자주 저린데 뜨거운 물에 담그고 있으면 혈액순환이 잘되고 몸이 개운해진다”고 말했다.
“체질 개선에 운동이 많은 도움이 돼요. 운동은 나이 들어 갑자기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고, 젊을 때부터 생활화하는 게 좋아요.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걷는 운동에 단련이 돼서 지금도 걷는 게 좋아요. 어디든 두 발로 자유롭게 갈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그는 또래에 비해 흰머리가 많지 않은 편이다. “40대가 되면서 흰머리를 처음 발견했을 때 마음이 짠했다”는 그는 “속에는 많은데 겉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실토한다.
“바람 부는 날에는 너무 흉해서 헤나로 염색해요. 헤나는 인도에서 나오는 자연염색제인데 일반 염색제처럼 흰머리를 까맣게 만들지는 않아요. 검은 머리는 붉게, 흰머리는 갈색빛으로 만들죠.”
As a actress ▼ “공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배우되고 싶다는 아들 말리기도 했어요”
평소 아침 6시면 눈이 떠진다는 그의 하루 일과는 비교적 규칙적이다. 한집에 사는 막냇동생과 함께 아침 준비를 하고, 6시20분쯤 집을 나와 북한산에 오르는 것. 등산을 하고 나서는 바로 아침식사를 한 뒤 쉬는데 그때는 집안에서 빈둥거리기도 하고, 마당에 앉아 꽃에 물도 주고 풀도 뽑는다고 한다.
“진돗개 한 마리를 키우는데 그 녀석과 장난치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종종 해먹어요. 마음먹고 요리하면 먹을 만하게는 만들거든요. 살림이나 요리는 막냇동생이 도와주고 있어요. 저의 집에서 동생 내외와 조카들이 함께 살고 있죠.”
그는 “특별히 가리는 음식은 없지만 양식은 잘 먹지 않는다”면서 “특히 엄마가 차려준 것 같은 옛날식 밥상을 좋아한다”고 밝힌다.
“김치와 된장국을 제일 잘 먹어요. 무나 배추, 감자 등을 넣은 된장국을 가장 좋아하죠. 된장국은 1년 열두 달 내내 먹어도 물리지 않아요. 된장이 건강에도 아주 좋은 발효식품이잖아요. 살아 있는 동안에는 누구나 건강하려고 노력해야 해요. 그것이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폐 끼치지 않는 길이에요.”
지난해 말부터 드라마 ‘한강수타령’과 영화 ‘엄마’ 등에 연이어 출연하며 바쁜 나날을 보낸 그는 요즘 모처럼 휴식을 취하고 있다. 두 작품에서 모두 엄마 역할을 맡았던 그는 “두 엄마가 내면만 조금 다를 뿐 거의 비슷한 캐릭터인데다 촬영이 계속 맞물려 힘들었다”면서 “몸도 마음도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일부러 쉬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건강을 재정비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고 나서 한결 건강해진 모습으로 활동을 재개할 생각이에요. 근데 요즘 계속 놀았더니 꾀가 나는 것 같아요. 가을부터 추위에 떨면서 일할 생각을 하니 겁이 나네요(웃음).”
그는 지난 5월 말 한 달 가까이 미국에 다녀왔다. 미국 유학 중인 아들의 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하고, 현지 회사에 취직한 딸의 이사를 도와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고교 졸업과 동시에 대학에 입학한 아들은 배우를 꿈꾸며 영상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사실 전 아들이 배우가 되는 게 싫어요. 잘하는 거, 좋아하는 거 하라고 말려봤는데 안 들어요. 남자아이라 얼굴에 분칠하는 직업만은 갖지 않기를 바랐는데, 굳이 하겠다는 아이를 무슨 수로 막겠어요. 나중에 진로 방해했다가 그 원망을 어떻게 다 들으려고요.”
배우가 요즘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고,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사는 직업이라는 것을 그도 알고 있지만 배우가 되고 싶다는 아들을 말린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배우는 시쳇말로 얼굴 파는 직업인데, 얼굴이 알려진 공인의 삶이 그리 만만치 않거든요. 본의 아니게 비난 받을 때도 있고, 피치 못할 상황에 처했을 때 날아와 꽂히는 화살은 얼마나 따갑고 무서운데요. 무대에서 박수 받을 것만 생각하고 덤볐다가는 큰코다치기 십상이죠. 더구나 정상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숨은 노력과 피땀 어린 정성이 축적되어야 하는데요. 거기다 경쟁률이 보통이냐고요. 진짜 주목받는 사람은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예요. 그래서 아들아이가 좀 더 신중하게 진로를 결정했으면 하는 거예요.”
그동안 그는 아이들을 늘 옆에서 챙겨주는 엄마나 살림하는 주부로 살지 못했음에도 극중에서 그가 보여주는 가슴 뭉클한 엄마의 모습은 소름이 돋을 만큼 실감난다. 이에 대해 그는 “촬영 전에 어떻게 연기하겠다고 선을 정해두는데 찍고 나서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짓거리를 할 때가 있다”면서 “가슴에서 펌프질한 신기와 광기가 나 자신도 모르게 발동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저도 화면을 보면서 놀라곤 해요. 잘했다, 못했다 차원이 아니라 미리 계산하지 않았던 연기를 하고 있으니까요. 근데 그게 절묘하게 극중인물의 캐릭터와 맞아떨어진 적이 많아요. 배우가 될 팔자를 타고났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동안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후덕한 성품을 지닌 어머니 역으로 단골 출연해온 그는 “실제로는 두 아이에게 굉장히 무서운 엄마”라면서 “마음으로는 아이들이 다가와 옆에서 막 재잘거려주길 원하는데 정작 아이들은 나를 멀리한다”며 서운함을 토로했다.
“제가 자초했는지도 몰라요.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꼭꼭 존댓말을 쓰게 하고, 엄하게 대해 지금도 제 표정이 굳어지면 감히 다가오지 못하죠. 앞으로는 아이들한테 애교 내지는 연약함을 보여야 할 것 같아요. 항상 강한 모습만 보이면 굳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도 잘 살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Mind control ▼ “스트레스를 잠으로 풀고 좋은 생각 많이 하려 노력해요”
어느덧 그의 나이도 쉰넷. 등산로의 내리막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던 그는 문득 “어머니들이 이 길을 내려가면 다리가 후들거린다고들 하기에 내려갈 때가 더 가뿐하고 좋지 무슨 말씀인가 했는데 그 말이 맞다”면서 “언제부터인가 내려갈 때 더 힘이 들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느끼면서 나도 나이를 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또 “40대에 한번 꺾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50대가 되면 또 한번 어딘가 자신이 약해지고 있구나 하는 걸 느낀다”는 말도 덧붙였다.
“여자들은 매월 달거리를 하니까 귀찮잖아요. 왜 남자들은 안 하고 여자들만 하나 싶고, 여름 되면 더 짜증나고요. 또 생리통이 병적으로 심한 사람도 있잖아요. 전 그렇게 심한 편이 아니었는데도 짜증날 때가 있었어요. 그때 어머니께서 ‘그런 소리 말라’며 ‘그때가 건강한 거다. 그거 떨어지고 나면 완전 몸이 달라지고 다리 힘이 빠진다’고 말씀하셨죠. 그런데 정확히 53세가 되면서 달거리가 딱 없어지더니 어머니 말씀대로 다리 힘이 빠지는 게 확연히 느껴지더라고요. 그래도 전 갱년기를 힘들지 않게 넘겼어요. 대본 외우고, 촬영하고,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다 보니 잡생각이 들 겨를이 없었어요. 화면에 자주 비치는 사람은 정말 부지런하고 대단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이에요. 자기만의 마인드컨트롤을 잘하는 사람이죠.”
물론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에게도 슬픈 일이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나이 들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기에 그는 “운명의 날이 왔을 때 잠든 것처럼 편안히 갔으면 하고 바랄 뿐”이라며 “나이듦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나이 들면 많은 부분 양보가 되고 마음이 넓어져요. 나이듦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는 자세만 되면요. 지금도 30~40대로 돌아가는 건 좋은데 10~20대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철이 없어 실수를 연발하고, 그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되는 시기니까요.”
그에게 “어려서 철이 들었을 것 같다”고 말을 건네자 “너무 일찍 철이 들어 그게 좀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한다. 천성적으로 남을 많이 배려하는 성격이라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 든든하고 믿음직스런 딸이었지만 그런 세심한 배려가 상대방을 불편하게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것.
“요즘 젊은이들은 필요 이상으로 배려해주면 간섭이라 여기고 피곤하게 생각하죠. 그래서 그런 면을 자제하고 싶어도 천성이라 어쩔 수가 없어요. 우리가 무심코 잊어가는 정서들이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도로에 가래침을 뱉는 것 같은 무질서한 행위, 공동체보다는 자기 생각만 하는 개의주의적인 행동을 볼 때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말이 떠오르면서 눈살을 찌푸리게 되지요. 반면 이렇게 등산을 하며 나뭇잎에 대롱대롱 맺혀 있는 이슬을 보면 괜스레 기분이 상쾌하고 좋아져요.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들이죠. 그래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과 즐겁게 하는 것들을 낱낱이 써서 책으로 엮어볼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어요.”
그는 책임감이 투철하고 뭐든 하면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대신 조금 폐쇄적이고 사교적이지 못한 게 흠. 사회생활을 잘하려면 모르는 사람과도 마음을 열고 자유롭게 대화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연기자라는 직업을 가지면서 학창시절에는 없던 폐쇄적인 성격이 생겼다고 한다.
“일단 눈에 띄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니까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요. 저에 관한 좋은 얘기든, 나쁜 얘기든 다른 사람이 내 얘기를 하는 게 싫어요. 그러다 보니 아예 사람들 눈에 안 띄려고 자꾸 문을 닫게 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는 꺼리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사석에서 따로 만나면 드라마 속 엄마 이상으로 정도 많고 털털한 본모습을 보여주죠.”
등산을 함께하며 지켜본 그는 어떤 잘못을 해도 다 이해하고 감싸줄 것 같은 어머니의 모습 그 자체다. 하지만 한없이 평온하고 넉넉해 보이는 그도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있는데 그때는 잠으로 푼다고 한다.
“한숨 자고 나면 마음도 가뿐하고 느슨해지거든요. 몸도 건강해야 하지만 마음의 건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40대가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는 말처럼 젊을 때부터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하면서 자기를 다스리지 못한 사람은 나이 들어 편안하고 좋은 인상을 가질 수 없어요.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파인 노인이라도 마음을 잘 다스린 사람과 그러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분명 있어요.”
Dream & Future ▼ “우리나라의 정서, 정신이 깃든 작품 두어개쯤 남기고 싶어요”
30대 후반에 드라마 ‘사랑의 굴레’로 톱스타 반열에 오른 그는 “당시 극중에서 너무 신경질적인 역할을 하다보니 혹여 주름이 생길까 걱정됐다”면서 “얼굴에 주름지지 않게 하려고 거울을 보면서 자주 웃고, 잠 들기 직전에는 일부러 좋은 생각을 하며 잤다”고 회고했다.
“할머니들은 주무시면서 주름진 얼굴을 자꾸 찡그리시더라고요. 그게 좋아보이지 않아서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얼굴을 펴려고 좋은 생각을 하면서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자죠.”
그렇다면 20년 후 그가 꿈꾸는 할머니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오래전부터 노후에는 제주도 고향에 내려가 살겠다는 결심을 해온 그는 “이 손이 호화로운 생활을 해서 농사짓기는 힘들 것 같고, 고향에서 제 손으로 청소할 수 있는 조그마한 공간에서 유유자적 황혼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내 연기 인생에 우리나라의 전통과 정서, 풍광, 정신이 깃든 작품을 두어 개쯤 남기고 싶다”는 연기자로서의 소망도 밝혔다.
“그간의 출연작 가운데 ‘춤추는 가얏고’가 그런 작품이 아닌가 싶어요. 예인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여서 배우라면 누구나 욕심을 낼 만한 작품이죠. 흔치 않은 소재를 다룬 특별한 작품이라 사실 제 실력으로는 그 역할을 감히 해낼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세 번이나 정중히 출연을 고사했는데 많은 분이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셔서 큰 힘이 됐어요.”
쉬고 있는 요즘도 그를 섭외하려는 드라마와 영화가 줄을 잇고 있는데 그는 가을쯤 일일연속극에 들어갈까, 대작이라 할 만한 다른 작품에 들어갈까 고민 중이라고 한다. 50대 중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드라마나 영화 주인공을 도맡으며 후배들에게는 존경스러운 선배로, 대중에게는 믿음이 가는 연기자로 인기와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그에게 “행복한 배우인 거 같다”고 말하자 입가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감사해요. 일이 바쁠 때는 힘들지만 이 나이까지 계속 일할 수 있으니 정말 행복한 배우죠. 그래서 감독이 이렇게 하라고 하면 군말 않고 ‘네’ 해요. 앞으로도 늘 그렇게 감사하면서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할 거예요. 떠날 때 후회나 미련이 남지 않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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