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주부 쓰에마쓰 노리코씨(29)는 부산 KBS와 PSB 등에서 리포터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온 남편 김영열씨(32)와 지난 2000년 결혼해 한국으로 건너왔다. 그는 일본의 겨울하면 영화 ‘러브레터’를 떠올리는 한국인들이 많은데 실제로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홋카이도의 오타루는 1년에 6개월 정도 폭설과 추위가 계속되는 지역이라고 말한다.
“겨울이 되면 홋카이도 곳곳에서 눈과 얼음을 주제로 한 축제가 열려요. 그 중에서 매년 2월 초에 1주일간 열리는 삿포로의 눈축제가 가장 유명하죠. 삿포로 시내 4곳에서 동시에 열리는데 오도리 공원에서 열리는 어마어마한 눈과 얼음 조각 전시회가 가장 볼만해요.”
삿포로의 눈축제는 일본 최대의 축제이자 브라질의 리우 축제, 독일 뮌헨의 옥토버 축제와 함께 세계 3대 축제 가운데 하나로 꼽힐 정도로 유명하다. 이 축제는 삿포로 시민들이 춥고 긴 겨울을 즐겁게 보내자는 의미로 1950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일본인들이 쌀쌀한 날씨에 따뜻하게 보내는 방법 중 하나는 따끈한 국물 요리를 먹는 것. 일본의 국물 요리는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 특징이다. 노리코씨는 다섯 가지 미각 중 어떤 미각을 자극하는 맛인지 알 수 없는 아리송한 맛이 바로 일본 요리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국물 요리의 대표격은 바로 우동. 버섯을 넣어 만든 싯포쿠 우동과 유부를 달게 졸여 넣은 기쓰네 우동 등을 즐겨 먹는데 다시마, 멸치, 가다랭이포 등을 넣어 우린 담백한 국물에 우동면을 넣어 만든다. 우동은 워낙 일반화되어 있어 겨울 뿐 아니라 사계절 내내 즐겨 먹는 음식이라고.
“겨울에 가정에서 가장 많이 먹는 요리는 ‘나베’라고 하는 냄비 요리예요. 냄비 안에 재료를 넣고 끓이면서 먹는 국물 요리를 모두 나베라고 하는데 우리가 자주 먹는 샤브샤브도 나베의 일종이죠.”
단편영화에 일본인 역으로 출연했다는 노리코씨가 일본 전통 연극인 가부키 역으로 분장한 후 촬영한 사진(위). 지난 겨울 일본의 절을 찾았다가 전통 복장을 입은 사람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맨 왼쪽이 남편 김영열씨(아래).
나베 맛을 내는 데는 무엇보다 국물과 소스가 중요하다. 저마다 국물과 소스 내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집집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다고. 요즘 일본인들이 가장 즐겨 먹는 요리는 일본식 김치를 넣고 끓여 먹는 김치나베. 다시마물에 버섯, 야채 등 원하는 재료를 넣고 끓이다가 김치를 넣고 만드는데 감칠맛이 나면서도 뒷맛이 개운해 즐겨 먹는다고. 김치나베는 워낙 인기가 좋아 일반 슈퍼마켓에서 재료를 따로 포장해서 판매한다. 우리나라에서 찌개 재료만 포장해 파는 것과 같은 식인데 손질할 필요 없이 사다가 바로 끓이면 되기 때문에 젊은 주부들이 선호한다고. 이외에도 다시마물에 연두부를 넣고 살짝 끓인 다음 간장에 찍어 먹는 두부 요리도 가정에서 즐겨 먹는다고 한다. 집에 있는 재료로 간단하게 만들 수 있고 맛도 좋아 자주 해먹는다.
난방기구인 코다쓰에 둘러앉아 담소 나누며 겨울밤 보내는 일본인들
우리나라에 대표적인 난방시설로 온돌이 있다면 일본에는 ‘코다쓰’가 있다. 대부분의 일본 가정에서 히터와 함께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테이블 안쪽에 전열기가 달려 있어 겨울 내내 온기를 내주는 난방기구를 말한다. 다른 계절에는 일반 테이블로 사용하다가 겨울이 되면 두꺼운 이불을 뒤집어 씌워 테이블 아래로 나오는 열을 이용한다고.
“원래 전통 코다쓰는 ‘호리코다쓰’라고 불리는데 마루 바닥에 구멍을 뚫은 다음 거기에 화로를 놓고 이불을 뒤집어 씌워 사용했어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노바다야키라는 일식 선술집처럼 뚫려 있는 바닥에 다리를 집어넣고 그 위에 담요를 덮어 몸을 따뜻하게 하는 난방기구예요.”
한국에 시집 와 5년째 살고 있는 노리코씨. 그는 날씨가 쌀쌀할 때면 일본의 따끈한 냄비요리 ‘나베’와 난방기구인 ‘코다쓰’가 생각난다고 한다.
노리코씨는 일본의 옛말 중에 ‘코다쓰에 다리를 넣고 있으면 귀신도 잠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코다쓰는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고 한다. 날씨가 추워지면 가족들이 코다쓰에 둘러앉아 귤을 까먹으면서 담소를 나누는 것이 일본 가정의 겨울 풍경이라고. 요즘은 이런 전통 방식의 호리코다쓰 대신 전기 코다쓰를 많이 사용한다. 우리가 아랫목에 얽힌 추억을 기억하듯 일본인들도 호리코다쓰에 얽힌 추억을 그리워하고 있다고.
노리코씨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성격, 문화적인 차이가 이런 것에서도 은근히 묻어난다고 말한다. 한국인들은 금세 뜨거워지고 펄펄 끓는 온돌을 사용하는 반면 일본인들은 천천히 따뜻해지고 그 은근함이 오래 가는 코다쓰를 사용한다는 것.
“화끈한 걸 좋아하는 한국인은 솔직하면서 자기 주장이 강하고 타인에게 쉽게 마음을 여는 것 같아요. 반면 은근한 것을 즐기는 일본인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타인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편이죠. 한국인들은 친해지면 서로 허물없이 대하잖아요. 그런데 일본에서는 아주 친한 친구 사이라도 어느 정도 예의를 갖춰요. 인간관계가 끊어질까 봐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거죠.”
일본인들에게 온천은 일상생활의 일부분
일본은 ‘온천의 천국’이라고 할 만큼 온천의 수가 많으며, 작은 시골마을에도 온천 시설이 갖추어져 있을 정도로 온천욕이 발달해 있다. 특히 노천탕과 히노키탕은 일본을 대표할 만큼 인기가 높다. 예전에는 남녀 혼탕이 많았지만 지금은 거의 없어지고 남탕과 여탕으로 구분되어 있거나 가족탕으로 바뀌었다고.
“노천탕의 매력은 자연경관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는 거예요. 하얀 눈 속에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정말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아요. 특히 밤에 즐기는 노천 온천이야말로 노천탕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죠.”
또 삼림욕 효과가 있어 요즘 각광받는 히노키탕은 수백 년 된 편백나무 원목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히노키탕에 몸을 담그면 나무에서 나오는 히노키타오르 성분이 피부 미용과 살균 효과를 주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준다.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풍기는 일본풍 소품들은 일본에서 가져오거나 가족에게 선물받은 것들이다.<br>① 일본풍의 프린트가 새겨진 패브릭으로 만든 소품들. <br>② 막대기 모양의 자개 장식품은 기모노를 입을 때 머리를 장식하는 ‘간자시’로 성인식 때 머리에 꽂았던 것이라고.<br>③ 위쪽의 인형은 기후현을 상징하는 ‘사르보보’라는 캐릭터로 건강과 다산을 의미한다. 아래쪽의 갈고리 모양의 장식품은 복을 불러들인다는 의미를 지녔다고. 모두 노리코씨 친정어머니의 선물.
노리코씨는 일본인들은 유명한 온천을 굳이 찾아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소규모라도 각 지역마다 온천이 있기 때문.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중 목욕탕이나 찜질방을 가듯 일본인들 역시 집 근처에 있는 온천을 찾아간다고 한다. 온천욕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찾는다고. 또 온천에서 가족, 친지 모임을 갖거나 회사 동료들과 함께 온천을 방문하기도 한다. 일본인들에게 온천은 휴식을 위한 여행이 아닌 그냥 일상생활이나 마찬가지라고.
“다른 지역에 사는 친척들이 오는 날에는 함께 모여서 온천에 가서 자고 와요. 1박을 하면 함께 나오는 코스 요리를 먹으면서 하루를 보내죠.”
온천탕 밖에는 바로 무대가 있어 연극이나 가부키, 가수 공연 등을 관람할 수 있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공연 시간을 체크했다가 시간이 되면 탕에서 나와 음식을 먹으면서 공연을 보고 공연이 끝나면 다시 탕으로 들어간다고. 온천을 방문하면 꼭 먹는 것이 바로 달걀. 마실 수 있는 온천수에 달걀을 넣어두면 바로 끓어오르면서 달걀 반숙이 되는데 노인들이 특히 좋아한다. 또 노천온천을 하면서 정종을 마시는 것도 온천에서 볼 수 있는 색다른 풍경이라고.
일본인들에게 온천욕은 생활의 일부분일 정도로 친숙한 습관 중 하나라고 한다. 가족이 모이면 집 근처의 온천장을 찾아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를 푼다고.
집안에서 목욕을 하는 것 또한 일본인들에게 중요한 하루 일과 중 하나.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가 몸에 쌓인 피로를 풀고 몸을 따뜻하게 해 숙면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
“일본의 가정집들은 난방시설이 열악한 편이에요. 코다쓰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겨울을 나기에는 실내가 너무 추워요. 그래서 밤에는 목욕으로 몸을 데워야만 따뜻하게 잠들 수 있어요.”
좀더 따뜻하게 목욕하고 싶은 사람들은 ‘센토’라는 대중 목욕탕을 이용하기도 한다. 이곳은 오후 3시 정도에 문을 열어 밤 12시쯤에 닫는데 많은 일본인들이 학교나 직장이 끝난 후 들러서 목욕을 하고 가기 때문이라고.
일본인들이 목욕을 즐기는 방식은 뜨거운 물에 목까지 몸을 푹 담그는 것. 따라서 깊이가 낮은 욕조나 샤워기가 있는 서구식 욕실은 좋아하지 않는다. 일본의 호텔이나 새로 지은 아파트를 제외하고는 일반 가정에 서구식 욕조의 보급률은 매우 낮은 편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글 수 있는 일본식 깊은 목욕통인 ‘고에몬부로’식 욕조를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욕조는 목욕물의 온도를 뜨겁게 유지하기 위해 식으면 다시 따뜻하게 데우는 기능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물을 한 번 받아놓으면 욕조 내에서 다시 데워 가족이 돌아가면서 그 물에서 목욕을 한다. 욕조에서는 몸을 따뜻하게 데우기만 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이용해도 물이 깨끗하다고 한다. 마지막 사람까지 씻고 나면 그 물은 세탁기에 연결해 빨래를 할 때 사용한다.
노리코씨는 손님이 찾아왔을 때를 제외하면 집안의 제일 윗사람부터 목욕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한다. 집을 옮겨 새로 이사를 하거나 목욕탕을 수리했을 때도 그 집안에서 가장 나이 많은 어른이 먼저 목욕탕을 사용한다고. 일본인들은 이렇게 하면 그 어른이 장수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집에 손님이 방문하면 보통 목욕을 권하는 것이 일본인들의 생활 방식이에요. 특히 추운 겨울날의 목욕은 일본인들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습관 중 하나죠.”
냄비 요리
‘나베’라 불리는 냄비 요리는 다시마물에 야채, 해산물, 육류 등을 넣고 끓여서 소스를 찍어 먹는 요리. 다시마물에 간장, 청주를 넣고 끓이다가 배추, 버섯, 당근, 대파 등의 야채를 넣고 두부, 돼지고기, 쇠고기, 굴, 새우 등 원하는 재료를 넣고 끓인다. 여기에 간장, 생강, 다진 파, 가다랭이포를 볶아 만든 소스에 나베 국물을 섞어서 익힌 재료를 찍어 먹는다.
오뎅 요리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인 오뎅 요리는 다시마물에 간장, 곤약, 무, 어묵 등을 넣고 끓여 먹는다. 여기에 쇠고기 연골 부위인 스지나 돼지고기를 넣어 끓여 먹거나 어묵을 겨자나 일본 된장에 찍어 먹기도 한다. 또 찐 달걀을 오뎅 국물에 넣어 간장물이 배어들면 꺼내서 먹는 것도 오뎅 요리의 별미.
스키야키
고기를 먼저 볶은 후 그 위에 국물을 재료가 잠길 정도로 자작하게 부어 끓이면서 먹는 요리다. 팬에 기름을 두른 다음 고기를 굽듯이 살짝 볶으면서 국물을 붓고 배추, 버섯 등 야채를 넣어 볶듯이 끓여 먹는다. 야채는 아주 살짝만 익혀 소스 대신 달걀 푼 물을 찍어 먹는데 부드러운 맛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동면을 넣어 소스에 볶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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