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백억원대의 주식을 가진 ‘벤처업계의 신데렐라’ 이수영씨(39)와 어깨 아래 전신마비라는 중증장애를 딛고 미국 뉴욕시 부장검사에 올라 국민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던 재미교포 정범진씨(37). 두 사람이 지난 9월27일 하와이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은 지난 2002년 봄, 정 검사의 인생역정을 소개한 방송 프로그램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은 이씨가 미국으로 찾아가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사랑이 싹텄고,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결혼을 약속했다. 당초 두 사람은 올 4월 결혼할 예정이었지만 이씨가 ‘이젠’이란 회사를 세우고 새로운 인터넷사업을 준비하면서 가을로 결혼식을 미뤘다.
“사이트 오픈 준비가 마무리된 데다 추석 연휴를 이용해 결혼식을 하는 게 가족들에게도 부담이 적을 것 같아 그날로 잡았어요.”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의 얼굴에선 미소가 멈출 줄 몰랐다. 연신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에서 새색시의 행복이 가득 묻어났다. 그의 손엔 정 검사가 프러포즈를 하며 건넨 다이아몬드반지와 결혼식 때 나눠 낀 커플링이 나란히 끼어져 있었다.
빨리 2세 갖기 위해 노력할 예정
지난 2월 만났을 때 그는 “결혼식을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면서 하는 것도 좋겠지만 우리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외형에 신경쓰기보다 내실 있게 하고 싶다”고 했었다. 그 말처럼 두 사람은 미국 뉴욕과 서울의 중간 지점이라 할 수 있는 하와이의 한 해변가 야외 결혼식장에서 양가 가족들만 참석한 가운데 소박하게 치렀다고 한다.
“저는 사실 주례 없이 결혼식을 하려고 했어요. 주례사 보다는 서로 자기의 마음을 시에 담아 주고받는 것이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미국에선 자격을 갖춘 사람이 결혼식을 주관했다는 사인을 해서 법원에 제출해야 혼인이 법적 효력을 가지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신부님을 주례로 모셨어요.”
결혼식은 1시간여 만에 끝났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양가의 가족들이 하와이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떠나는 날까지 열흘간이 이들 부부에겐 내내 결혼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결혼은 두 사람이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가족들과의 결합이기도 하잖아요. 특히 정 검사는 몸이 불편해서 항상 주위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해요. 시집 식구들은 도와주는 게 익숙하지만 우리 가족은 남편의 장애를 머릿속으로만 이해하지 실제 뭘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지 경험해본 적이 없잖아요.”
그가 말하는 내실 있는 결혼식이란 친정 식구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정 검사를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지를 직접 체험해보는 기회를 갖는 것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친정 식구들은 닷새간 함께 머물면서 시집 식구들의 조언을 받아가며 휠체어를 들어 옮겨도 보고, 밀어도 보는 등 정 검사를 도와주는 법을 하나하나 체험한 후 돌아갔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많이 친해졌다고.
결혼식이 끝난 후에도 양가 식구들과 함께 지냈다면 한번뿐인 신혼여행을 따로 가지 못했다는 것인데, 아쉬움이 남지 않을까.
“단둘이 있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죠(웃음). 하지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많아 우리 둘만의 신혼여행은 불가능해요. 양가 모두 우리 부부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려고 노력은 했지만 워낙 그분들을 부를 일이 많아서…. 그래도 식구들이 같이 있으니까 신혼여행을 왔다는 느낌이 안 들어 친정 식구들은 먼저 보내고 시집 식구들과 조금 더 있으면서 신혼여행 온 것 같은 기분을 조금 내다가 돌아왔어요(웃음).”
이수영·정범진씨의 결혼식 모습.
그는 하와이가 아닌 다른 곳으로 여행을 하려고 해도 정 검사가 움직이는 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시설을 갖춘 곳이 없었다고 했다.
“하와이가 어느 정도로 잘 갖춰져 있냐 하면, 한국에선 장애인이 집 밖에만 나가도 불편하잖아요. 그런데 하와이는 바다 위를 나는 수상스포츠가 있어요. 우리들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정 검사가 하겠다고 했을 때 과연 가능할까 싶었어요. 수상스포츠를 즐기려면 배를 몇 번씩 갈아타야 하는데도 정 검사가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시설이 갖춰져 있었어요.”
두 사람은 모두 파란 많은 인생을 살았다. 정 검사는 워싱턴법대를 다니던 대학 2학년 때 교통사고로 어깨 아래가 모두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는 장애인이 되었다. 자칫 인생을 포기할 수도 있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그는 희망을 잃지 않고 공부를 계속, 뉴욕 최연소 부장검사에 오르는 신화를 이루었다. 무용을 전공하던 이씨도 미국유학중 이혼의 아픔을 겪은 뒤 전공과는 전혀 다른 분야인 인터넷사업에 뛰어들어 맨손으로 ‘웹젠 신화’를 창조했다.
“첫날밤에 정 검사가 그러더군요. 자기는 오랫동안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사는 순간을 기다려왔다고. 우리는 그동안 많이 힘들었기 때문에 앞으로 행복하게 잘살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요. 우린 앞으로 잘할 수 있다는 생각만 하며 살자고 하는데 그 말이 참 가슴에 와 닿았어요.”
결혼 전 정 검사가 2세를 낳을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했던 말이 떠올라 “‘우리는 잘할 수 있다’는 말에 2세 계획도 포함되었냐”고 하자 “노력은 해야죠” 하며 밝게 웃었다.
“시부모님이 2세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세요. 빨리 아이를 낳기를 바라시죠. 많은 노력을 할 생각이에요. 하지만 저나 정 검사나 가족이란 게 꼭 혈연으로만 이루어져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정신적으로 기대고 사랑하고 사랑받는 관계가 진정한 가족인 거잖아요. 빨리 아이를 가지면 좋겠지만 100% 장담할 수는 없는 거니까 입양의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어요.”
결혼식에 아들 참석 못해 안타까워
두 사람은 당분간 월말부부로 지낼 계획이다. 당장 이씨가 미국으로 터전을 옮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정 검사가 한국에 들어와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한동안은 월말마다 이씨가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갈 생각이라고 한다.
“빨리 뉴욕에 신혼집을 구했으면 좋겠는데, 제약이 참 많더라고요. 제가 돈을 빼돌리는 것도 아니고 투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실제 미국에서 생활할 집을 제 이름으로 사는 게 합법적으로는 불가능한 거예요.”
정 검사에게 돈을 보내 정 검사 이름으로 집을 사면 되지 않느냐고 하자 그러면 부부간에도 증여한 것이 되어 높은 세금이 부과된다고 한다. 더구나 그가 5백억원대 주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법에 묶여 내년 5월까진 주식을 처분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반면, 서울 집은 정 검사와의 결혼을 염두에 두고 구입한 것이기 때문에 정 검사가 한국에 와도 크게 불편할 것은 없다고 한다. 그래도 불편한 점이 없도록 더 손을 보고 싶은데 형편이 여의치 않아 마음이 아프다고.
몇 달 전 그에게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세계 최초로 인간 배아복제와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 난치병 치료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서울대 황우석 교수(52)가 미국 뉴욕에서 정 검사를 만난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 걸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 황 박사는 인간 배아복제와 줄기세포 배양 등을 통해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장애를 치료하는 연구에 정 검사를 사전 임상실험하고 싶다고 제안했고, 정 검사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씨는 앞으로 몇 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실험이 성공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시작한 그이지만 마음 한쪽에 아픈 구석이 남아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누구보다도 가장 그를 축복해주어야 할 아들 임군(16)이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혼으로 알려졌던 이씨에게 아들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건 지난 6월. 대학 재학 중 결혼해 임군을 낳은 그는 아이를 시집에 맡겨놓은 채 미국 유학을 떠났다 전 남편과 이혼했다. 임군은 지금까지 전 시집에서 키워왔다.
이 사실은 전 남편의 지인이 인터넷을 통해 폭로한 후 한 주간신문에 기사화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시집 쪽에선 이씨가 아들을 외면한 채 처녀행세를 했다고 비난하며 이제라도 사죄하고 적절한 보상을 하라고 주장한 반면, 이씨는 자신이 아이를 외면한 게 아니라 시집 측에서 아이를 보내주지 않고, 강제로 만나지 못하게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이수영 사장은 인터넷에 글을 올린 사람과 주간신문을 상대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해 조사가 진행중이다.
“결혼식을 하면서도 아이가 참석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에 안타까웠어요. 저와 아이는 살면서 아이의 졸업식 입학식 생일 추석 크리스마스…, 그런 행복한 순간들을 한번도 함께 누리지 못했어요. 아이도 커서 그게 아쉬운 부분으로 남을 거예요.”
그가 아이에게 연락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고등학생인 임군은 충분히 먼저 이씨에게 전화를 할 수 있는 나이다. 하지만 아이에게 전화가 온 적이 없다고 한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아이의 마음을 저는 충분히 이해해요. 자신을 키워주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생각을 해야 하니까요. 아이가 빨리 자라 성인이 되어 스스로 판단해 찾아오길 바랄 뿐이죠.”
그는 정 검사도 임군과 관련한 상황을 잘 알고 있으며 임군이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을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올해, 정 검사와 결혼하는 인생의 큰 기쁨과 밝히고 싶지 않았던 개인사가 공개되는 아픔을 함께 겪은 이수영 사장. 이제 새로운 포털사이트 이젠을 오픈하며 또 다른 신화를 만들려고 하는 그에게 앞으로는 좋은 일만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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