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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어린이의 꿈을 담는다

‘어린이 그림 1백만점으로 만든 꿈의 다리’ 준비 작업중인 재미 설치미술가 강익중

■ 기획·구미화 기자 ■ 글·장옥경‘자유기고가’ ■ 사진·김성남 기자

2004. 10. 11

3인치의 작은 그림들로 작품을 만든다고 해서 ‘3인치 작가’로 불리는 재미 설치미술가 강익중씨. 어린이들의 그림을 모아 작품 활동을 해온 그가 이번엔 남북통일과 평화에의 염원을 담은 ‘꿈의 다리’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지난 9월 고국을 찾은 그를 만나 임진강 위에 어린이 그림으로 만든 다리를 놓아 남북을 잇겠다는 그의 야심 찬 계획에 관해 들어봤다.

‘어린이 그림 1백만점으로 만든 꿈의 다리’  준비 작업중인 재미 설치미술가 강익중

“우리나라는 지구상에 남아 있는 마지막 분단국가입니다. 작은 나라지만 분단의 아픔을 겪었기에 세계평화를 위한 백신을 생산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한국인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20년째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설치미술가 강익중씨(44)는 지난 9월12일부터 나흘간 일산 호수공원에 남북의 화합과 세계평화에의 염원을 담은 ‘꿈의 달’을 띄웠다. ‘꿈의 달’은 세계 어린이 그림 12만5천 장을 이어 붙인 지름 15m짜리 초대형 구체. 9월18일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만난 그는 먼저 자신이 남북화합과 세계평화를 강조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84년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뉴욕으로 건너가 플랫인스티튜트에서 수학한 그는 가로 세로 7.62cm의 ‘3인치’짜리 미니 그림을 모아 대형 설치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94년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백남준과 함께 ‘멀티플다이얼로그전’을 열었고, 97년 베네치아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참가해 특별상을 수상했다. 99년엔 독일의 루드비히 미술관에서 선정하는 ‘20세기 미술작가 1백20명’에 포함되는 등 세계적인 예술가로 명성을 얻고 있다.
강익중씨가 3인치 그림 작업을 시작한 건 20여 년 전. 미국 유학 첫해 그는 뉴욕에서 하루에 12시간씩 잡일을 했다고 한다. 그림을 그릴 시간이 없어 주머니 속에 작은 캔버스를 만들어 넣고 다니며 지하철 안에서 틈틈이 작업을 했는데, 이것이 지금 그를 있게 한 3인치 작품의 시작이라고. 객차 안의 군상, 외워야 할 영어단어, 눈에 띄는 문자나 기호 등 그의 하루가 작은 캔버스에 다양한 이미지들로 옮겨졌다. 그런 다양한 이미지들을 융합해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만들어가던 그는 세네갈을 여행한 뒤로 작품에 세계의 평화와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강렬한 메시지를 담기 시작했다.
“친구를 통해 세네갈의 역사를 들었어요. 아프리카 서쪽에 위치해 있는 이 나라는 수십 년 전 프랑스 식민지와 영국 식민지로 나뉜 뒤로 지금은 같은 나라 사람인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고 했어요. 처음엔 속으로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하며 웃었는데, 돌아오며 생각해보니 그게 바로 우리의 모습이었어요.”
남북한 잇는 ‘꿈의 다리’ 통해 통일 이미지 만들고 싶어
99년 12월, 그는 경기도 파주의 헤이리 아트밸리에서 자원봉사자 1천 명과 함께 꽁꽁 언 땅을 파서 600m의 비닐하우스를 짓고 ‘10만의 꿈’ 전을 기획했다. ‘10만의 꿈’은 아직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남북한 초·중·고교생 10만 명의 그림을 모아 전시회를 열 계획이었는데, 북한 어린이들의 그림을 받을 수 없었던 것. 결국 전시 공간 절반은 ‘기다림의 벽’으로 남겨둔 채 남한 어린이 그림 5만 점만 전시했다.
2001년에는 참여 대상을 확대시켜 1백41개국에서 보내온 3만4천여 점의 어린이 그림을 모아 만든 설치작품 ‘놀라운 세상’을 뉴욕의 UN본부에 전시했다.
“(실시간으로 3인치짜리 그림을 올릴 수 있는 디지털미술관) ‘놀라운 세상’ 웹사이트(www.amazedworld.com)를 통해 ‘나의 꿈’ ‘나의 미래’를 주제로 전 세계 어린이들의 그림을 모았어요. 2001년 9월11일 UN본부 로비에서 오픈 행사를 갖기로 했는데 그날 뉴욕의 다운타운에서 9·11 테러가 일어났죠.”

‘어린이 그림 1백만점으로 만든 꿈의 다리’  준비 작업중인 재미 설치미술가 강익중

결국 오프닝 행사는 취소됐지만 전 세계 어린이들의 꿈과 미래를 담아 세계평화를 염원한 그의 작품은 9·11 테러로 더욱 의미를 갖게 됐다.
그는 어린이들의 작은 그림 하나하나가 세상을 보는 창문인 동시에 세상을 구성하는 벽돌이라고 말한다. 그 작은 창문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귀를 기울이면 세계 각지의 어린이들이 처한 현실과 소망을 엿볼 수 있기 때문.
“아프리카의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병원에서 한 어린이가 그림을 그려 보냈어요. 에이즈에 걸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꿈을 펼쳐 보인 그림을 보고 가슴이 찡했죠. 함경도에 계신 할머니에게 보내는 한국 어린이의 그림도 있고, 한 아프가니스탄 어린이는 부르카로 얼굴을 가린 아프가니스탄 여성을 그려놓고 UN이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인권에 무관심하다는 내용의 글을 보내기도 했어요.”
이렇듯 세계 각지의 어린이들이 속속 그림을 보내왔지만 그는 아직까지 북한 어린이들의 그림을 받아보지 못했다. 때문에 그는 어린이 그림 프로젝트의 종착역은 ‘꿈의 다리’라고 말한다. 남북을 가르는 임진강 위로 세계 어린이들이 그려 보낸 그림 1백만 점을 전시하는 ‘꿈의 다리’를 만들겠다는 것. 그가 구상하는 ‘꿈의 다리’는 임진강의 남쪽과 북쪽에 각각 2개씩 4개의 기둥을 세우고, 강한 와이어로 남쪽과 북쪽의 기둥을 하나씩 연결한 뒤 그 위에 커튼 형식으로 아이들의 그림을 거는 것. 그는 ‘꿈의 다리’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세계 최초의 ‘떠 있는 미술관’이자 남북을 잇는 ‘희망의 다리’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어린이 그림 1백만점으로 만든 꿈의 다리’  준비 작업중인 재미 설치미술가 강익중

강익중씨가 가상으로 표현한 ‘꿈의 다리’(왼쪽사진)와 지난 9월 일산 호수공원 하늘을 장식했던 ‘꿈의 달’.


“‘꿈의 다리’를 통해 통일 이미지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아이들 그림 하나하나가 꿈의 다리를 이루는 벽돌이 되는 거죠. 역사적 사명인 평화통일을 어린이들이 미리 준비한다고 할까요.”
그러나 이 프로젝트가 언제쯤 실현될지는 아직까지 미지수. 그는 “북한의 협조가 있어야 하는 일이라 정확한 시기를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남과 북이 화합하기 위해서는 존경과 이해가 바탕이 된 교류가 계속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강익중씨는 남한과 북한 어린이들의 꿈과 미래가 담긴 그림을 기다리고 있다. ‘꿈의 다리’ 프로젝트 참여를 희망하는 어린이는 디지털 미술관 ‘놀라운 세상(www.amazedworld. com)’을 통해 그림을 올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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