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161cm, 몸무게 94kg의 진모씨(25·여)는 66사이즈의 원피스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 꿈이었다. 대학교 졸업식 날, 한껏 멋을 부린 친구들 틈에서 몸에 맞는 정장이 없어 면바지에 헐렁한 티셔츠 차림으로 사각모를 썼던 그는 아무도 몰래 눈물을 흘렸다. 대학 졸업 후 잠시 직장생활을 한 진씨는 ‘위절제술을 통해 살을 뺄 수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지난해 말 서울 강남의 한 외과병원을 찾았다. 상담 후 수술을 결심한 진씨는 지난 2월9일 신종 비만치료 시술인 베리아트릭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복통과 호흡곤란 등을 호소하다 20여 일 만에 싸늘한 시신으로 변했다.
배를 절개하지 않고 내시경 등을 통해 위나 소장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인 베리아트릭 수술은 몸 속으로 흡수되는 음식물의 양을 줄여 살을 빼는 난치성 고도비만의 치료법으로 알려져 있다. 고도비만은 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눈 수치인 체질량지수가 35 이상인 경우를 말한다.
진씨의 사망 이후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진씨의 사망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부검을 의뢰했다. 지난 5월5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베리아트릭 수술을 받은 뒤 숨진 진씨의 부검 소견서에서 “진씨의 사망 원인은 수술 인접부위의 복막염, 패혈증 및 장기 손상”이라며 수술이 사망원인과 무관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과수는 “베리아트릭은 새로운 수술법이기 때문에 의료과실 여부와의 정확한 상관관계를 파악하기는 어렵다”며 전문의료기관에 자문할 것을 경찰에 권고했다.
진씨가 다이어트를 처음 시작한 것은 중학교 때부터. 그는 대학교 입학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다이어트를 시작했지만 체중계의 눈금은 90kg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고 결국 수술대에 몸을 맡겼다.
“어머니도 뚱뚱해서 평생 동안 다이어트를 하고 살았어요. 동생은 평소 살이 찐 것에 대해 크게 비관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그동안 안 해본 다이어트가 없다고 할 만큼 이것저것 다 시도해봤죠. 그때마다 겨우 3~4kg이 빠질까? 몸무게는 더 이상 줄지 않았어요. 수술 후 요요현상 없이 30kg 이상 빠진다고 하니까 수술을 결심한 거죠.”
진씨 언니(33)의 말이다. 초등학교 저학년때부터 살이 찌기 시작한 진씨가 수술을 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치자 가족들은 선뜻 동의했다. 살이 빠질 수만 있다면, 그래서 또래의 ‘아가씨’들처럼 살아갈 수만 있다면 수술비 1천5백여 만원쯤이야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만으로 고민하고 고통받는 사람은 진씨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성인여성의 ‘대부분’은 다이어트를 한 경험을 갖고 있을 정도. 30대 후반의 나이에도 20대 몸매를 과시하고 있는 ‘몸짱 아줌마’ 정다연씨의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것도 날씬한 몸매에 대한 부러움 때문이다.
비만은 무서운 질병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4월17부터 22일까지 개최된 제 57차 총회에서 다이어트에 대한 가이드라인의 초안을 발표했다. 세계보건기구가 국제간 협약을 통해 가이드라인을 제정한 것은 금연협약에 이어 두번째다. 이번 가이드라인의 핵심은 식탁에서 지방과 설탕, 소금을 줄이자는 것이다. 이들 식품은 비만을 조장하고 성인병을 유발하는 주범이라는 것. 세계보건기구가 팔을 걷어붙이고 비만의 확산을 막기 위해 나선 것은 비만이 인류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공기업체에 다니면서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던 김모씨(24·여). 163cm의 키에 몸무게 85kg 정도였던 그는 살을 빼겠다는 일념 하나로 지난해 5월 진씨와 같은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김씨 역시 수술 후 복통 등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종합병원에서 두 차례에 걸쳐 재수술을 받고 7개월 동안 입원치료를 받은 뒤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김씨는 수술 뒤 위 봉합부위 사이로 빠져나온 음식물이 몸 안에서 썩어 복막염이 생겼던 것으로 드러났다.
진씨의 사인과 김씨의 수술 후 부작용과 관련해 수술을 집도한 의사측은 “현재 경찰이 국과수의 의견을 받아들여 대한의사협회 등 전문기관에 자문한 뒤 국과수 부검 결과와 종합해 수술이 진씨의 사망 원인이 되었는지에 대해 결론을 내릴 방침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아직 수술과 사망의 인과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라고 주장했다.
국내 유명 제약업체의 한 간부는 “부작용이 없는 다이어트의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회사는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지난해 2월 초 성형외과에서 한 20대 후반의 여성이 허벅지와 복부의 지방흡입술을 받다가 호흡곤란과 심장이상으로 사망한 일이 발생했다. 지방흡입술은 몸의 특정한 부위에 지방이 과다하게 축적됐을 때 그 부위의 지방을 제거해 균형 있는 몸매를 만드는 미용수술. 아름다운 몸매를 갖기 위해 심사숙고를 한 끝에 지방흡입술을 받은 이 여성 앞에는 평소 그리던 예쁜 원피스 대신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0대 초·중·고 여학생의 경우 5명 가운데 2명꼴로 다이어트를 시도해본 적이 있고 그 가운데 상당수가 요요현상, 건강 악화, 체중 증가 등의 부작용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누구나 살을 빼려고 노력하는데도 비만 또는 과체중 인구가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에 따르면 “원칙을 지키지 않고 편법에만 관심을 갖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살을 빼는 길은 운동과 소식뿐이며, 따라서 살을 빼려면 절제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
다이어트를 위한 각종 시술을 하기에 앞서 전문가의 조언을 곱씹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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