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피성 피부염 치료제 ‘락티케어’와 여드름 치료제인 ‘스티바’, 두피질환 치료제인 ‘타메드’ 등 피부질환제로 유명한 (주)한국스티펠의 권선주 사장(57)은 나이 마흔에 공채로 CEO가 돼 18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장수 CEO다. 한국에 진출한 다국적 제약회사 중에는 최장수 기록. 그가 86년, 한국스티펠과 인연을 맺기 전까지 전업주부였다는 점에서 이 같은 기록은 더욱 눈길을 끈다.
서울대 약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전임강사로 활동하던 그는 현재 서울대 의대 교수로 재직중인 남편과 함께 미국 암센터에서 3년간 연구활동을 할 기회를 잡았다. 당시 막내아들이 생후 10개월이었지만 그는 시집에 아이를 맡기고 미국행을 감행했다.
그렇게 3년간의 연구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훌쩍 자라 네살이 된 아들은 엄마 아빠를 알아보지 못했다. 떨어져 지낸 기간을 생각하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그는 아이가 엄마 아빠도 못 알아보는 현실이 안타깝고, 아이에게 못다한 사랑을 주고 싶어 집에 들어앉았다. 동창회 등 외부 모임에도 일절 참석하지 않으며 마치 ‘은둔자’처럼 생활했다. 그렇다고 미국 유학까지 다녀오며 쌓아놓은 실력을 그대로 묵힐 수는 없었다. 그는 집에서 아이들하고 지내면서도 ‘타임’지를 챙겨 읽으며 미국에서 갈고 닦은 영어실력을 사장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공부한 걸 묵혀둘 수는 없죠. 큰 재목이 돼서 사회로부터 받은 만큼 다시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언제든 기회가 생기면 뛰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죠.”
그는 하루 세시간씩 ‘엄마의 시간’을 확보했다. 아이들과 점심을 먹고 난 뒤부터 저녁식사를 준비하기 전까지 3시간 동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만의 시간을 가진 것. 그는 안방에 큰상을 펴놓고 앉아 영어 공부를 하고, 관심 분야의 책도 읽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도 미리 과자가 어디에 있는지, 음료수는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고는 그 시간 동안만은 엄마에게 부탁하지 말고 스스로 알아서 하라고 잘 얘길 했죠.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찾아 해결하는 습관이 들면서 독립심도 저절로 길러지더라고요. 또 엄마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도 그림책을 들고 와 옆에 앉아 공부를 하기도 하고요.”
전업주부로 살면서도 하루 3시간은 자기계발의 시간 가져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기회를 위해 준비하고 있던 그는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인 86년 독일계 다국적 제약사인 스티펠사가 한국에 진출하며 CEO를 공개 채용한다는 내용의 공고문을 보고 이력서를 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해본 것 외에 직장생활을 한 적이 없지만 자신이 수년간 공부한 약학과 관련된 일이기에 일단 도전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제약업계에서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대거 몰렸음은 불 보듯 훤하다.
“면접 때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어요(웃음). 단 사람을 가르치는 능력과 정직하다는 점에선 누구보다 자신 있다고 말했죠. 경영 지식이 없지만 가르쳐주면 잘할 자신 있다, 무엇보다 뭔가 해보고자 하는 야망이 있다고요. 그리고 남편이 교수인데다 두 아이의 엄마이니 회사 공금을 횡령할 일은 없을 거라고 했죠(웃음). 외국인들 눈엔 아무 경력도 없는 제가 신선했던 모양이에요.”
마침내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스티펠 한국지사의 첫 CEO가 됐지만 역시 기업을 이끌어가는 건 쉽지 않았다. 더욱이 91년, 스티펠 한국법인을 설립하기 전까지 권사장은 당시 스티펠 제품의 판매를 담당한 현대약품에서 지급하는 로열티로만 회사를 꾸려나가야 했다. 결국 회사 살림이 윤택해지기 위해선 현대약품에서 더 많은 스티펠 제품을 파는 수밖에 없었고, 권사장은 직접 제품을 들고 병원을 찾아다니며 홍보에 나섰다.
권선주 사장은 자신의 성공비결로 부지런함을 꼽았다.
“그때만 해도 피부질환 제품들에 스테로이드제 함량이 높았어요. 반면 스티펠 제품은 상대적으로 스테로이드 함량이 낮고, 순수 원료를 사용한 제품들이 많았죠. 그래서 의사들을 만나 ‘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할 때 스테로이드제 함량이 높은 제품을 선생님의 자녀에게 처방할 수 있겠냐’며 아이들을 위해서도 스테로이드 함량이 낮은 제품을 써야 한다고 설득했죠.”
그의 이런 적극적인 경영에 힘입어 한국스티펠은 매출 1백50억원의 알짜 기업이 됐다. 전세계에 40여개 자회사를 두고 있는 스티펠 본사에서 권사장의 경영 스타일을 확산시키기 위한 ‘선주 클로닝(복제)’ 방식을 검토중일 만큼 그는 성공적인 경영인으로 자리매김했다.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그는 가정과 회사 어느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한쪽에서 거둔 결실마저 수포로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다른 사람보다 두배 부지런히 살았다고 자부한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계셨지만 아이들이 학교 다니는 동안 도시락은 제가 쌌어요. 여러가지 반찬이 정성스럽게 담겨 있는 도시락만으로도 엄마의 사랑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도시락을 4개씩 쌀 때도 있었어요.”
그는 일단 아침에 집을 나서면 집안일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회사일만 생각한다고 한다. 또한 17년간 본사에서 온 손님을 접대해야 할 때를 제외하고는 가족들과 저녁식사하는 것을 철칙으로 세웠다. 회사를 나서는 순간 회사일을 잊어버리는 건 물론이다. 그 결과 가정과 회사가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려 돌아가 그는 가정에서도 남부럽지 않은 결과를 얻었다. 두 남매 모두 무난히 서울대에 들어갔고, 막내아들은 경영학과 재학중 사법고시에 합격하기도 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한글도 가르치지 않았어요. 초등학교에 입학한 큰아이가 다른 친구들이 한글을 다 깨우친 걸 보고 돌아와 한글을 가르쳐달라고 떼를 쓰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앉혀놓고 가르쳤더니 금세 익히더군요. 가르치지 않았기에 아이의 알고 싶은 욕구가 강했던 거죠.”
그는 전업주부로 지내는 동안에도 우산이며 준비물을 아이들 스스로 챙기도록 했다. 간혹 준비물을 빼먹는 날이 있어도 절대 학교로 쫓아간 적이 없다고 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걸 부모가 다 챙겨준다고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오후에 비가 온다고 했는데 우산을 챙기지 않았다면 비를 맞고 오면서 다음엔 꼭 우산을 챙겨야겠다는 깨달음을 얻는 거죠.”
그는 이제 자녀들이 다 장성해 앞으로는 정열의 80%를 일에 집중시킬 생각이라고 한다. 매출 목표를 달성해 많은 세금을 내는 것으로 사회에 공헌하고, 직원 복리후생에 많은 투자를 할 계획이라고. 그리고 나머지 20%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 투자해 운동으로 건강을 챙기고 여행으로 마음을 넉넉하게 할 계획인 것. 그는 가정과 회사 어느 한쪽도 소홀히 하지 않으며 숨차게 달려온 결과 얻을 수 있었던 여유이기에 더욱 값지게 쓸 생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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