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 작고, 대통령 낙선, 장모 작고 등 지난 1년여 동안 연이어 시련을 겪은 이회창(68) 전 한나라당 총재가 오랜만에 경사를 맞았다. 둘째아들 수연씨(37)가 결혼식을 올린 것.
수연씨가 10월중에 결혼식을 올린다는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나온 것은 지난 9월부터였다. 하지만 옥인동측에서는 “아무것도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당시 이 전총재측은 정치활동과 맞물려 극도로 조심을 하는 분위기였다. 더욱이 지난 대선 당시 한나라당에 SK비자금이 유입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결혼식은 일주일 전까지도 시간과 장소가 비밀에 부쳐질 정도였다. 그래서 기자들 사이에선 이 전총재가 혜화동성당에 다녔던 사실을 근거로 혜화동성당에서 치러질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았지만, 결혼식은 10월25일 오후 성북동성당에서 거행되었다.
결혼식 당일, 이회창 전총재는 부인 한인옥 여사와 함께 오후 1시경부터 성당 입구에서 여느 혼주들처럼 신랑과 함께 하객들을 맞았다. 그러나 SK비자금 문제 때문인지 다소 표정이 무거웠고 “감사하다”는 말 이외엔 극도로 말을 아꼈다. 한인옥 여사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가까운 친척들이 축하의 말을 건넬 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오후 2시 정각, 이수연씨가 입장을 하며 예식이 시작되었다. 그는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씩씩하게 걸어들어갔는데, 얼굴이 전보다 핼쑥해 보였다. 뒤이어 신부가 입장할 차례가 되었지만 신부 아버지가 친척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늦는 바람에 잠시 웃음이 일기도 했다.
이날 결혼 미사는 서울대교구 보좌주교인 김운회 루까 주교가 직접 집전을 했는데, 김주교는 “두 사람이 서로 상대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마음으로 살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에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살겠다”고 맹세했다.
이 전총재 내외는 혼인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가족좌석 맨 앞줄에 장남 정연씨 부부와 나란히 앉아 엄숙하고 조촐한 분위기 속에서 예식을 지켜봤다. 이 전총재는 혼인 미사가 끝난 뒤 양가 가족을 대표해 하객들에게 “아직 젊고 철없는 젊은이들이 앞으로 큰 실수 없이 정직하고 화목하게 가정을 이뤄 사회에 봉사하면서 살도록 잘 지켜봐달라”고 인사했다.
결혼식엔 양가 가족과 친지, 신랑 신부의 친구, 정치인 등 2백여명이 몰려들어 작은 성당을 가득 메웠다. 정치인으로는 노무현 대통령을 대신해 축하인사를 전한 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을 비롯해 박관용 국회의장,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 서청원 전대표, 홍사덕 총무, 김덕룡 하순봉 이규택 윤여준 안택수 오세훈 의원 등 한나라당 소속 의원 30여명과 손학규 경기도지사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한편, 이 전총재는 예식이 끝난 후 기자들의 질문에 한마디 언급도 없이 승용차에 올라 옥인동 자택으로 향했다. 한인옥 여사 역시 축하의 인사를 건네는 기자에게 미소를 지으며 “감사하다. 섭섭한 마음보다는 착한 며느리를 맞아들인다는 사실에 흐뭇하기만 하다”는 소감 이외엔 말을 아꼈다. 옥인동측뿐 아니라 신부의 가족, 친구들까지 신부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사생활이라며 끝까지 함구했다.
결혼식이 끝난 후 가족사진을 촬영하는 모습.
신부 최윤주씨(27)는 할아버지가 대한스위스화학 창업자인 사업가 집안 출신이다. 대한스위스화학은 염료를 생산하는 영남지역의 건실한 중견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는 최씨의 큰아버지가 가업을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으며 아버지 최인식씨는 대한스위스화학에 공식 직함이 없는 상태다.
2남1녀 중 둘째인 최윤주씨는 중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고등학교와 보스턴 인근에 있는 브랜다이스대학을 졸업한 재원. 두 사람은 중매로 만났지만 2년 넘게 연애를 하다 백년가약을 맺었다. 지난 대선 직후 수연씨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최씨가 자주 찾아가 위로를 해주면서부터 두 사람의 사이가 급격하게 가까워졌다고 한다. 또한 이 전총재와 한여사도 며느리에 대해 무척 흡족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식장에서 만난 최씨의 동생에게 신랑 수연씨에 대한 인상을 묻자 “아버지는 매형이 정이 많아 보이고, 친근감이 있어 보인다며 흡족해한다”고 전했다. 그는 수연씨가 결혼 날짜를 잡은 후 자주 저녁을 먹으러 집으로 놀러 왔으며 처가 식구들과 정을 돈독히 쌓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사나흘 일정으로 동남아의 푸켓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는데, 신혼여행 일정이 짧은 것은 수연씨가 회사에서 하고 있는 프로젝트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혼살림은 동부이촌동에 있는 수연씨의 아파트에서 시작했는데 수연씨의 아파트는 40평대로 부모님의 도움 없이 직접 직장생활을 하며 모은 전세자금으로 마련했다고 한다.
동국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수연씨는 직장생활을 잠깐 하다 미국 유학을 떠났으며 보스턴대학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은 뒤 귀국, 현재 외국계 컨설팅 회사인 액센추어에서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한편, 두 사람은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를 맞추지 않고 빌려 입는 등 결혼식을 검소하게 준비한 것으로 확인돼 눈길을 끌었다. 이명순웨딩드레스(강남구 청담동 소재)에 따르면 결혼식 한달 전쯤 최씨가 찾아와 웨딩스레스를 대여했다고 한다. 이명순웨딩드레스는 탤런트 이요원의 웨딩드레스를 제작해 화제가 되었던 곳.
이명순씨는 “이회창 전총재 집안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아 나도 결혼식 당일에 알고 놀랐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최씨가 자신의 숍을 찾은 것은 한달 전쯤. 처음엔 누구의 소개로 왔는지도 몰랐는데, 두번째 왔을 때 함께 온 후배가 고객이었던 것을 알고 그의 소개로 찾아왔구나 추측했을 뿐이라고 한다.
“무척 저렴하게 옷을 대여했어요. 최씨가 할머니와 함께 왔는데, 어른께 잘하더라고요. 그래서 보기가 좋았던데다, 어찌나 할머니가 값을 깎으시던지(웃음), 어른이 깎자고 하는데 깎아드려야지 어쩌겠어요.”
수연씨는 회사일이 바빠서인지 결혼식 일주일 전에 와서 턱시도를 골랐는데, 무척 안목이 있는 멋쟁이였다고. 이씨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디자인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으며 정통예복 스타일의 모닝코트는 그가 직접 고른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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