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4인용 식탁’에서 전지현(22)은 이렇게 말한다. “제가 일찍 결혼한 탓에….” 아이를 잃고 별거중인 주부 역을 맡기에 전지현은 어쩌면 너무 젊은지 모른다. 또한 너무 발랄하거나 경쾌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지 모른다. 때문에 극중에서 ‘일찍 결혼한 주부’라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붙여주어야만 했던 것이리라. 그렇다면 왜 하필 전지현이었을까? 박신양(35)과의 밸런스를 생각해도 나이 차이가 너무 큰데…. 이수연 감독은 전지현을 캐스팅한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의 카리스마가 필요했다”고.
연예인 C양, A양 등 이니셜 기사가 남발되는 요즘, 사람들은 묻는다. 근데 “A가 왜 톱스타야?”하고. 그럴 때마다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어디까지 톱스타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관객 동원 몇백만 이상이 되는 영화배우면 톱스타인가? 히트 영화 3개 이상은 가지고 있어야 톱스타인가? 아니면 고액의 개런티를 받고 CF에 나와야 진정한 톱스타라고 할 수 있을까?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톱스타는 처음부터 톱스타였다. 한 CF에 나와 테크노 댄스를 추며 머리를 흔들던 전지현은 이미 ‘전지현 신드롬’이란 말을 낳은 톱스타였다. 톱스타를 톱스타이게 하는 힘, 그것을 사람들은 ‘카리스마’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홀로 지내고 싶어 한달간 샌프란시스코로 어학연수 다녀와
“‘엽기적인 그녀’가 성공을 거두고 나니까 사람들이 다 저에게 그런 이미지를 요구했어요. 연기자로서 이미지가 고정되면 안좋겠다는 생각에 다른 역을 하고 싶었지만 묘하게도 제게 들어오는 시나리오가 다 한 색깔이더라고요. 그런데 ‘4인용 식탁’은 캐릭터도 새롭고 인물 설정이 매력적이었어요. 전혀 새로운 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선택했어요.”
결혼을 앞둔 인테리어 디자이너 정원(박신양)은 어느날 지하철 안에서 졸다 마지막 역에서 눈을 뜬다. 부랴부랴 내린 그는 텅 빈 지하철에 멍하니 마주 앉은 두 아이를 발견한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어머니에게 독살당해 지하철에 버려진 아이들. 그리고 그 이후 그가 새로 마련한 신혼집 식탁에는 아이들의 귀신이 자꾸 나타난다. 환각을 이겨내려 몸부림치던 중 그는 정신과 치료를 받는 여자 연을 만난다. 대로변에서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기면증을 앓고 있는 연은 그의 앞에서 의식을 잃고, 그는 연을 자신의 집안에 데려다 눕힌다. 의식을 차린 연은 그 집을 떠나며 그에게 말한다.
“식탁에서 자고 있는 아이들 눕히셔야겠어요.”
연이 자신처럼 귀신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정원은 그가 자신의 공포를 풀어줄 것이라 직감한다. 절박한 심정으로 연에게 접근한 정원은 자신의 과거에 얽힌 무서운 비밀을 알고 더 큰 혼란에 빠진다.
무당의 딸, 타인의 과거를 들여다보고 귀신을 볼 수 있는 능력, 일찍 결혼해 아이를 낳지만 저주받은 능력 탓에 아이를 잃게 되는 여자 ‘연’이 바로 전지현의 배역이다.
“일부러 첫 시사 때까지 영화를 보지 않았어요. 제가 어떻게 연기했는지 철저하게 관객 입장에서 보고 싶었거든요. 제가 연기 변신에 성공했는지는 관객이 판단해주겠죠. 연이라는 인물 자체가 일상 공간에서 마주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역을 소화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어요. 제 상상세계에서 인물을 만들어내고 제 상상세계에서 만든 느낌으로 연기한 거죠. 아무도 공감해주지 않는 세계를 혼자 보고 느끼는 주인공 ‘연’이 가졌을 외로움을 함께 느끼고, 그 감정을 삭여서 표현하는 게 특히 힘들었어요.”
전지현은 지난 2년 동안 영화에도, 드라마에도 출연하지 않았지만 연간 50억원의 수익을 기록하며 연예인 인기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는 러프 필름(O.K 컷만 골라 시나리오의 순서대로 잘라놓은 초벌편집 상태의 필름)조차 보지 않은 채 기자 시사에 참석했다. 영화를 본 후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만족해요.” 많은 비판적인 영화평 속에서도 그에 대한 혹평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그건 그만의 만족은 아닌 듯싶다. 적어도 2시간 남짓 영화를 보는 동안,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을 다시 보고 있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으니까.
그는 지난 6월 미국 샌프란시코로 한달간 어학 연수를 다녀왔다. 연수도 연수지만 철저히 혼자 있고 싶은 욕심에 세운 계획이었다고 한다. 강남의 8학군에서 어려움 없이 자라 중학교 3학년 무렵부터 연예계 생활을 시작한 그는 자신을 보수적이고 순종적인 ‘범생이’라고 표현한다. 실제로 그는 화면에 비치는 이미지와 달리 무뚝뚝하고 내성적이며 온순하다. 그런 그에게 모처럼의 홀로서기는 여러가지로 많은 의미가 있었던 듯싶다.
언제까지 누가 자신을 돌봐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그는 아파트를 세내 혼자 밥을 짓고 빨래를 하며 지냈다. 그렇게 자기 스스로 주변 일들을 챙길 때마다 묘한 희열을 느꼈다고 한다. 매니저가 운전하는 차만 타다가 자신이 직접 지도를 보며 명소를 찾아다니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앞으로 어떤 역을 할지 아직 계획이 없어요. 이번 역도 원래 저한테 주어진 것이 아니었거든요(웃음). 어떤 모습이든 ‘열심히 하는 전지현’이란 소리 들을 겁니다.”
‘엽기발랄’한 ‘막춤’의 이미지가 너무 강했던 탓에 항상 ‘신세대 엽기걸’로 불렸던 전지현은 이제 배우로서 새로운 세계를 열 수 있을 듯싶다. 단 네편의 영화로 한국 영화계를 이끄는 영화배우 베스트 10에 꼽히는 성장을 보여준 그가 앞으로 어떤 연기 세계를 보여줄지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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