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0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암(癌)중모색-희망의 밤’ 현장. 나란히 계단을 오르는 조성모(27)와 그의 어머니는 무슨 재미난 이야기라도 나누는지 함박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장한 아들’을 대동하고 나타난 어머니의 표정엔 자랑스러움과 대견함이 하나 가득. 그러나 취재진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자 깜짝 놀란 어머니는 아들만 남겨둔 채 행사장으로 도망치듯 사라졌다.
“어머니는 한번도 매스컴에 나온 적이 없어요. 평소에도 ‘아들이 가수지, 내가 가수냐’며 누구 앞에 나서는 걸 싫어하세요. 아마 이렇게 취재진이 많은 걸 아셨다면 안 오셨을 걸요.”
“엄마, 엄마. 같이 가”를 외치던 아들 조성모의 해명.
이날 행사는 대한암학회가 주최한 것으로, 암 극복에 힘쓰고 있는 학자와 교수들을 초청해 위로하는 자리. 그는 이 자리에서 암학회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암 투병을 하는 어머니를 보며 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어요. 발병 원인에서 민간치료법까지 지금은 어느 정도 박사가 됐죠. 암이 국내 사망원인 1위이긴 하지만 조기에 발견하고 제대로 치료만 받으면 충분히 극복 가능한 질병이에요. 무엇보다도 가족들의 관심과 정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의 어머니는 지난 2000년 3월 췌장암 초기 판정을 받은 후 수술, 지금까지도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당시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어머니 간병에 매달렸으며 수술 직후인 2001년에는 암 투병중인 어머니를 위해 헌정시집 ‘내 안의 깊은 울림’을 바치기도 했다.
“얼마전 정기검진을 했는데 많이 좋아지셨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완쾌된 것이 아니어서 늘 조심하고 있죠.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항암치료를 받고 계신 어머니를 보면서 암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알게 됐어요. 제가 나서서 암환자와 가족들에게 암 극복의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어느 자리든 찾아갈 겁니다.”
이날 그는 학회 관계자와 암환자들을 위해 작은 콘서트를 열었다. 노래 ‘가시나무’를 부르다 어머니를 바라보며 목이 메이는 듯했던 그는 팝송 ‘플라이 투 더 문’을 부를 때는 마치 어머니 앞에서 재롱을 피우는 꼬마처럼 경쾌한 춤을 선보이기도 했다.
“언론에 나가는 게 쑥스럽다”는 어머니를 설득해 이뤄진 인터뷰. 평소 방송에서 뛰어난 말솜씨를 보여준 조성모의 끼가 어디서 나왔는지 짐작이 갈 만큼 어머니 또한 재치가 넘쳤다.
“성모가 가수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어려서부터 기타를 두드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에 ‘쟤가 가수가 되려고 저러나, 왜 저렇게 소리를 질러’ 하며 시끄러워서 안방문을 닫곤 했죠. 그런데 이렇게 큰 가수가 돼서 엄마도 기쁘게 하고 좋은 일도 하네요. 제 아들이지만 참 대견해요.”
“아들도 미남이지만 어머니도 미인이시다”고 했더니 얼굴이 빨개지는 어머니. 아들이 대신 대답에 나섰다.
“사진을 보면 처녀 때는 더 미인이셨어요. 동네에 나가면 따라오는 남자가 한둘이 아니었다고 하던데, 하하.”
어머니에게 암 선고가 내려진 것은 지난 2000년 3월. 당시 2집 앨범을 내고 한창 활동중이던 그에겐 청천벽력이었다. 자신을 낳은 상태에서 지금의 아버지와 재혼, 이부(異父) 형들까지 키우며 고생을 한 어머니. 1·2집 앨범의 연이은 히트로 ‘이젠 좀 숨돌릴 틈이 생겼다’ 싶었는데 예상치 않은 시련이 닥친 것이다.
“사실 어려서부터 어머니 말씀을 잘 듣는 착한 아들은 아니었어요. 말썽을 많이 부려 매도 많이 맞았죠. 재혼이기 때문에, 아버지가 다른 형제가 있기 때문에 어머니는 저를 더 엄하게 키우려고 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늘 어머니는 제겐 넘을 수 없는 벽 같은 존재였고, 무서운 사람이었죠. 하지만 암 선고가 내려지고 병색이 완연한 모습을 보니 어머니는 너무도 작은 사람이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어머니가 작아 보이더군요.”
그는 2년의 공백기간을 거쳤지만 5집 앨범 ‘가인’의 성공으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청개구리처럼 말을 안 들어 늘 어머니 가슴만 아프게 했던 그.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이었지만 그는 어머니의 암 선고로 인해 자신이 철든 것 같다고 한다. 마냥 곁에서 지켜봐줄 것만 같았던 어머니를 이젠 자신이 보살펴드려야 할 때라고 생각한 것이다.
“당시 아버지께서 저희 형제들을 다 모아놓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요. ‘너희들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를 아느냐. 나도 엄마를 따라가겠다’고 하셨죠.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지만 그땐 그 말씀이, 또 그런 상황이 너무나 슬펐어요.”
철든 아들 덕분에 병이 낫고 있다는 어머니의 말과는 달리 그는 모든 공을 아버지에게 돌렸다.
“저희 부모님은 서로 너무도 끔찍이 아끼시는 분들이에요. 아버지는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내내 간이 침대에서 주무시며 병간호를 하셨죠. 그리고 매일 기도를 하셨어요. 아마 아버지의 그런 정성과 기도 때문에 어머니가 이렇게 좋아지신 것 같아요.”
“그런 남편이니 다시 태어나도 결혼하시겠네요?” 했더니 돌아오는 어머니의 재치 있는 대답.
“글쎄요. 아이들 아빠는 그렇게 하겠지만 전 좀 생각해봐야겠는데요, 하하. 사람이 워낙 착해서…. 아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전 아들보다도 남편이 더 좋아요. 제게 너무 잘해주어서 늘 감사하고 있어요.”
그는 얼마전 이사를 했다고 한다. 그전에 살던 집이 도로와 가까워 늘 소음에 시달렸는데 그게 어머니에게 좋지 않다고 판단, 공기 좋은 산자락 밑으로 옮겼다고.
조성모의 부모. 뒤편에서 조용히 앉아있던 아버지는 “성모가 좋은 일을 많이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년간 어머니의 병간호와 함께 심한 마음고생을 해야만 했다. 1∼3집 앨범이 연달아 밀리언셀러가 되면서 확고히 자리를 잡는가 싶었는데 4집의 반응이 예상보다 좋지 않자 극심한 슬럼프에 빠진 것. 게다가 소속사를 옮기면서 소송에 걸리는 등 악재가 겹쳤다.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나는 아직도 스물 한두 살에 머물러 있구나. 이젠 변해야 할 때다’ 하고요. 지금까지의 여성스럽고 가녀린 이미지를 떨쳐버리려고 창법도 기교보다는 힘 있는 쪽으로 바꾸었어요.”
결과는 대박. 음반시장이 불황을 겪고 있지만 5집 앨범은 이미 50만장 이상 팔리며 그의 ‘스타성’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가창력 있는 국민가수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조성모. 어머니는 가수가 아닌 아들 조성모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
“일하는 거나 집에서나 지금도 잘하고 있어서 더 바랄 게 없어요. 한가지 욕심이 있다면 좀 듬직해졌으면 하는 거죠. 이젠 결혼할 때도 됐는데 나이 값을 해야지.”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 그가 반색을 하며 거든다.
“요즘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빨리 결혼해서 어머니가 집안일을 안하시게 해드렸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아무도 시집오려고 하지 않을지 모르겠네. 하지만 집안일은 아내에게 맡기고 어머니를 좀 쉬시게 했으면 해요.”
“좋은 계획이라도 있냐?”고 묻자 “여자만 있으면 다 된다”고 대답. 어머니까지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 좀 시켜달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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