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그가 담담한 모습으로 법정을 나서고 있다.
“피고인 이도행 무죄!” 지난 2월26일, 대법원 재판정. 사건을 맡은 대법원 1부 재판부는 치과의사인 아내와 딸을 목 졸라 살해하고 불을 지른 혐의로 95년 9월 구속 기소됐던 외과의사 이도행씨(41)에 대한 재상고심에서 무죄를 확정했다. 재판정에선 낮은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유죄를 인정할 직접증거가 없고, 가장 중요한 간접증거인 사망시각 역시 분명치 않다”며 “나머지 간접증거를 모두 종합해봐도 유죄를 뒷받침한다고 볼 수 없다”고 무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이로써 96년 1심에서 사형, 같은 해 2심에서 무죄, 98년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 판정, 2001년 서울고법에서 다시 무죄를 선고받으며 삶과 죽음의 길을 오갔던 그는 다섯번의 재판 끝에 살인 누명을 벗게 됐다.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우울증과 임파선 암으로 인해 고생하시다 지난달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셨으면 좋았을 텐데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법정에서 나오며 깊게 한숨을 쉬는 그에게 취재진이 밝은 표정을 지어보라고 하자 그는 “아직 풀린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라는 한마디와 함께 말문을 닫아버렸다.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은 95년 6월12일 서울 은평구 불광동 이도행씨의 아파트에서 당시 치과의사이던 부인 최수희씨와 한살 난 딸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부터 시작됐다.
6월12일 오전 8시20분 은평구 불광동 M아파트 708호에서 흰 연기가 새어나왔다. 8시45분 연기를 본 경비원은 인터폰으로 연락해도 응답이 없자 9시7분 철제 방범창을 뜯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서 화재가 난 것을 확인한 경비원이 소방서에 연락, 진화를 끝낸 때가 9시35분. 최씨 모녀의 시체가 목욕탕 욕조에서 발견된 것은 그로부터 5분후였다.
아랫입술 안쪽의 타박상과 왼쪽 두번째 손가락 손톱에 혈흔이 남아있는 최씨의 목에는 끈으로 졸린 자국이 선명했다. 상의는 벗겨지고 팬티도 무릎 아래까지 내려와 있었다. 딸 역시 외상은 없지만 끈으로 목을 졸렸다.
안방에 있는 최씨 가방에는 현금과 수표 등 51만8천원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방을 뒤진 흔적도 없었다. 현관문 보조자물쇠는 안전장치가 풀려진 상태. 안방에 난 불은 처음 발화지점인 장롱 일부와 의류, 천장 벽지 등 일부만을 태웠을 뿐 크게 번지지 않았다.
사건이 아침에 발견됐다는 것과 도난품이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당시 이 사건은 원한에 의한 것이거나 부부간의 불화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검찰과 경찰은 우선 남편인 외과의사 이도행씨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사건 당일 그는 오전 7시쯤 집을 나와 오전 8시5분쯤 서울 양천구 신월동의 병원에 도착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모녀의 사망 시각이 오전 7시 이전이냐, 아니면 그 뒤냐가 최대 쟁점이 됐다.
검찰의 주장은 아내와 가정불화가 있었던 그가 사건 당일 새벽 아내와 딸을 살해하고, 오전 7시 출근 직전 장롱에 불을 질렀다는 것. 시체의 굳은 정도(시강)나 시체에 생기는 반점(시반) 등을 고려할 때 사망 시각은 오전 7시 이전으로 추정된다는 국내 법의학자들의 소견을 증거로 냈다. 또한 밀폐된 방안의 장롱 속 옷가지에 불을 붙이면 밖에서 연기가 발견될 때까지 두시간 이상 걸린다며, 그가 오전 7시 이전 부인과 딸을 살해한 뒤 출근한 이후에 불이 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장롱에 불을 질렀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변호인 측의 반대 주장도 만만치 않았다. 스위스의 저명한 법의학 교수를 국내 법정에 세워 “시반과 시강으로 사망 시간을 추정하는 것은 오차 범위가 넓다. 사망 시간이 오전 7시 이후일 가능성이 있다”는 반론을 제시한 것. 또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발화 시간을 재연한 검찰 측과는 달리 1천8백만원을 들여 실제 아파트 모형을 만들어놓고 화재 실험을 한 결과, 불을 놓은 지 5∼6분 뒤에 밖에서 연기가 보이는 것을 증명해냈다. 이를 인정하면 그가 집을 나간 뒤에 다른 사람이 불을 질렀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95년 6월,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 용의자로 구속될 당시의 이도행씨.
당시 검찰이 주장한 살해 동기는 가정불화. 그가 연애 때와는 달리 결혼 후 아내와 불화관계에 있었고, 이후 아내의 불륜 사실 등을 알고서 격분한 나머지 아내와 딸을 살해했다는 것이다. 또한 당시 병원 개원을 앞둔 그가 누나를 사무장으로 채용하는 문제로 아내와 심하게 다투었다는 것도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그와 변호인 측은 이를 전면 부인했다. 사무장 채용에 대한 문제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결정이 난 상태였고, 사건이 일어나기 2주 전 온 가족이 장모와 함께 괌 여행을 다녀올 만큼 부부관계에는 별문제가 없었다는 것. 또한 아내의 불륜 사실도 경찰 조사과정에서야 알았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아무런 증거 없이 자신을 범인으로 몰기 위해 여러가지 정황을 끼워 맞추고 있다고 항변했다.
문제는 그를 범인으로 확증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 살인에 이용된 도구만 보더라도 지문이나 머리카락 하나 발견되지 않았고, 살인동기 역시 분명치 않았다. 이 때문에 간접증거와 정황만으로 재판을 하다보니 재판부마다 다른 판결을 내리는 일이 발생했고, ‘한국판 OJ 심슨 사건’으로 불리며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아내와 딸을 잔인하게 살해한 범인이라는 누명을 쓴 채 살아야 했던 그의 생활은 어떠했을까? 최근 대형병원에 취직을 했다는 그는 인터뷰를 요청하는 전화통화에서 완곡하게 거부의사를 밝혔다.
“이젠 진범이 잡혔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제가 억울하게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 잘못된 수사관행, 법 제도를 비판하고 싶지만 더는 사람들의 눈앞에 제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습니다.”
그의 숙부와 사건을 담당했던 덕수합동법률의 김형태 변호사에 따르면 그는 그동안 심한 대인공포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병원 운영은커녕 사람들과 눈을 맞추지 못할 정도였다고. 취직도 하지 않고 연락도 없이 전국을 떠돌며 지내왔다. 가끔 모습을 나타낼 때도 “차라리 나를 죽여달라”며 괴로운 마음을 열어보이곤 했다.
그를 위해 3년전에는 의사·신부·연예인 등 80∼90여명이 참가한 ‘이도행을 위한 모임’까지 만들어졌다. 지난해 4월에는 김수환 추기경이 혜화동 성당에서 이도행을 위한 미사를 올리기도 했다.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후 주변에서는 다시 외과의사로 일하며 그동안 발달한 의료 기술을 따라잡으라고 충고하기도 하고 병원에 투자할 테니 개업하라고 권하기도 했지만, 자포자기 심정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그는 대신 4∼5년 전부터 외국인 노동자 무료 진료소에서 봉사활동을 해왔다고 한다.
사건을 처음 접할 때부터 자신에게 불리한 대목도 거침없이 진술하는 그의 태도를 보고 무죄를 확신했다는 김형태 변호사는 “법원이 증거가 없어서 무죄를 선고한 것이 아니라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준 것으로, 열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명의 무고한 죄인을 만들지 말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이 확인된 것”이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형폐지운동과 법의학의 문제점을 지적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대법원의 무죄 판결로 사건의 진상은 미궁에 빠질 공산이 커졌다. 진실을 아는 사람은 최씨 모녀가 유일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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