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스포츠 뉴스 사상 최초로 여성 단독 MC가 된 채진(25). ‘뉴페이스’인 줄 알았는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얼굴이다. 알고 보니 97년 미스월드유니버시티 출신으로 2000년 m.net 공채 7기 VJ로 연예계에 데뷔한 뒤 SBS ‘모닝와이드‘ ‘화제집중‘ MBC ‘무비플러스‘ 등 각종 프로그램에서 리포터와 MC로 활약해왔다.
올해로 방송경력 3년째, 그러나 그동안 방송을 한 것보다 방송을 쉰 기간이 더 많다. 그럴만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던 걸까. 그 질문에 그의 표정이 단숨에 어두워진다.
2001년 8월말, 그해 여름을 채진은 잊지 못한다. 2남2녀 중 장녀인 그는 어느날 군대에 간 남동생 창균으로부터 불길한 예감의 소식을 듣게 된다. 갑자기 아프다는 것이었다. 키 187cm에 몸무게 80kg의 건장한 체격을 가진 남동생이 아프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당시 창균은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간호장교가 집으로 전화를 해, 울면서 암이라는 거예요. 순간 남동생이 너무 불쌍했어요. 나이도 어리고 앞길이 창창한 아인데 암이라니요. 솔직히 저희 집은 어릴 적부터 가난했어요. 어머니, 아버지가 일하러 새벽에 나가시면 제가 남동생 도시락을 싸주었죠. 집이 가난하니까 좋은 반찬은 못해주고 값싼 소시지, 참치통조림으로 반찬을 만들어준 기억이 나는데, 그때 잘 못 먹어서 그런 병에 걸렸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병원에선 6개월을 넘기기가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그 말을 믿지 않았다고 한다. ‘아니다, 절대 아니다. 창균이는 살 수 있다. 수술하면 금세 회복할 수 있다…’라고 믿었고 그래서 수술을 강행했다는 채진.
물론 남동생한테는 암이라는 사실을 철저히 숨겼다. 어머니, 아버지한테도 사실대로 말하면 충격을 받아서 쓰러질까봐 위암 초기라고 속였다. 그것이 그토록 잘못한 일이었을까. 이후 가족들이 그 사실을 알고는 무척 그를 원망했다.
“창균이가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저한테 화를 내더라고요. ‘암인 걸 다 알고 있다’면서 연기하지 말라고요. ‘난 죽는 게 하나도 무섭지 않다’며 ‘단지 짜증나는 것은 몸을 마음대로 못 움직이는 것뿐’이라고 했어요. 수술하고 항암치료를 받은 뒤로 부작용이 어찌나 심했는지 남동생이 자주 다리가 마비되는 느낌이라고 고통을 호소해왔어요. 제발 항암제를 안 맞게 해달라고 누나인 나한테까지 애원을 할 때면… 마음이 너무 아팠죠….”
주체할 수 없이 그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채진은 말하다 말고 흐느꼈다.
2002년 2월19일, 남동생 창균은 안타깝게도 숨지고 말았다. 스물 한살의 나이에 한번 피지도 못하고 죽은 것이 창균이도 원통했는지 죽을 때 눈을 뜨고 죽었다. 오죽 가슴에 한이 맺혔으면 그랬을까.
“저는 방송하느라 남동생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어요. 연락을 받고 급히 병원에 도착했더니 30분 전에 이미 떠났다는 거예요. 미안했죠. 제 자신이 한심스럽고 못나게 느껴졌어요.
솔직히 창균이는 누나인 내가 자신의 병에 대해 말해주지 않고 숨겼다는 것을 알고는 저를 무척이나 미워했어요. 병원에도 못 가게 하고, 간혹 가면 빨리 가라고 소리소리 질렀죠. 그러던 창균이가 세상을 뜨기 이틀 전에 저를 찾는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즉시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의식이 막 끊어지려고 하는 찰라에서 간신히 눈을 뜨고는 이러는 거예요. ‘보고 싶어서…’라고요. 옆에 서 있던 언니가 울면서 말을 하더군요. 창균이가 떠나기 전에 네 마음을 풀어주고 가나 보다….”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남동생이 죽은 후 방송도 중단했다. 죄책감 때문이었다. ‘이까짓 방송하려고 남동생이 죽을 때 임종도 못 지켰나…’ 생각하면 마음이 괴로웠다. 그 때문이었을까.
채진은 완전히 술꾼으로 살았다. 매일 밤마다 술을 마셨고 술을 마시지 않은 날에는 괴로워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는 심각한 상태까지 이르렀다.
“창균이는 착한 아이였어요. 고등학교 때도 점심값을 모아서 누나인 내게 꽃도 사주고 양말도 선물해주는 심성이 고운 아이였죠. 그럴 정도로 저를 잘 따랐기 때문에 내가 자신의 병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숨겼다는 사실에 더 화를 냈던 것인지도 몰라요. 제딴에는 서운했겠죠. 지금도 창균이를 생각하면… 보고 싶어요….”
남동생이 죽은 후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질 때의 느낌과 혈육하고 헤어질 때의 느낌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은 가슴이 찡해도 한으로 남지 않지만 혈육과의 이별은 달랐다. 세월이 흘러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슬픔으로 남았다.
하지만 그래도 죽은 사람만 불쌍하지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산다고 하지 않던가. 채진도 그랬다. 남동생의 죽음으로 방황을 했지만 오래 가지는 않았다. 마냥 슬픔으로 세월을 보낼 순 없었기 때문이다. 창균이를 위해서도 이렇게 매일 술만 마시고 폐인처럼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자신의 몸부터 추스렸다.
그리고 그 무렵 SBS측으로부터 리포터 제의를 받았다. IOC 위원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단독으로 인터뷰를 따내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지난 3월에는 TV 스포츠 뉴스 사상 최초로 여성 MC를 맡게 됐다. SBS ‘스포츠 와이드‘에서 단독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 것이다.
제작진은 “국내 TV 스포츠 뉴스에서 여성 단독 MC가 등장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면서 “우리도 모험이라고 생각하지만 방송가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죽은 남동생이 제게 선물을 해준 것이라고 생각해요. TV 스포츠 뉴스 사상 최초로 여성이 단독 MC를 본다는 것은 파격적이거든요. 더구나 제가 앵커 출신도 아닌데 스포츠 뉴스를 맡긴다는 것이 방송국의 입장에서는 대단한 모험이었을 거예요. 죽은 남동생이 선물을 해줬다는 말밖에는 제가 MC로 발탁된 이유를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네요.”
지난 3월3일 첫방송을 하던 날, 그는 남동생이 죽은 이후 처음으로 한번 크게 웃었다고 한다. ‘창균아, 네가 좋아했던 스포츠 뉴스를 누나가 진행한다. 저 하늘에서 너도 봐라’ 하고 속으로 말하기도 했다. 우울했던 그의 인생이 봄날의 햇살처럼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날 방송이 나간 뒤 인터넷 게시판에는 ‘참신하다’ ‘새롭다’라는 글들이 올라왔다. ‘옷차림이 그게 뭐냐, 너무 정신없는 분위기였다’는 비판적인 평도 있었지만 이는 극히 소수였다. 대체로 좋았다는 반응이다. 일단은 성공한 셈이다.
“이제는 슬픔을 추스릴 수 있는 힘이 생겼어요. 남동생이 죽은 뒤 학교도 휴학을 했는데 이제는 공부도 다시 시작했고요, 예전처럼 남동생의 사진을 펼쳐놓고 우는 일도 없어요. 제가 방황을 했던 만큼 더 열심히 살려고 해요.”
스포츠뉴스 여성 진행자를 맡고부턴 모든 스포츠 신문은 다 본다는 채진, 이제는 어느 정도 해박한 지식을 갖게 됐다. 처음 방송을 시작하기 전만 해도 복싱이 몇회까지 하는 줄도 몰랐던 그가 지금은 어려운 스포츠 용어까지 꿸 정도의 실력이 된 것이다. 그 덕에 4월부터는 생방송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한다. 그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요즘은 인생이란 것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요. 언젠가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었는데 제목과는 달리 인생의 어두운 면만 보여주잖아요. 남동생이 죽었을 때 마치 제가 처한 현실이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와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행복의 조건도 그런 게 아닐까요. 부모 형제가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사는 것, 그게 행복인 것 같아요.”
스포츠뉴스 여성 MC를 맡고부터는 운동도 하고 싶다고 한다. 최근에는 광고출연 제의도 여기저기서 들어오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스포츠 뉴스 전문 MC가 되는 것. 이를 위해 부단히 노력할 생각이다.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채진, 그에게 이제 밝은 날만 남아있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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