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12년 만에 스크린 신고식을 치른 탤런트 곽진영(33). 그가 요즘 영화 개봉을 앞두고 마음고생이 적지 않다. 데뷔 후 처음 주연으로 캐스팅된 영화 ‘주글래 살래’(감독 김두영)가 영상물등급위원회의 1차심의 결과 제한상영가 등급판정을 받았기 때문. 영화법 개정에 따라 신설된 제한상영가 등급은 일반상영가와 달리, 제한상영관에서만 개봉이 가능한 영화를 가리킨다. 아직 제한상영관이 부재한 우리의 현실에서 이 판정은 곧 실질적인 개봉 불가를 의미한다.
“영화 촬영 하루 전날 출연이 결정됐어요. 그 바람에 하고 있던 치아 교정기까지 빼고 바로 촬영장으로 나갔죠. 아침 6시부터 다음날 9시까지 강행군을 하면서 찍은 첫 영화인데,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다니 너무 안타까웠어요.”
곽진영이 주연을 맡은 영화 ‘주글래 살래’는 국내 최연소 감독으로 영화계에 돌풍을 일으켰던 최야성 감독이 제작한 작품. 신세대 탤런트 김승현이 남자 주인공을 맡았고, 최근 누드집으로 화제가 됐던 탤런트 성현아, KBS 드라마 ‘파랑새는 있다’에서 차력사로 출연했던 탤런트 박남현 등이 함께 출연했다. 곽진영이 맡은 역은 연변 출신 미용실 보조원 옥란. 70년대 액션스타 브루스 리를 동경하는 중국음식점 배달원 소룡이 연변 출신 미용실 보조원 옥란을 동네 건달들의 위협과 유혹에서 구해낸다는 줄거리로 ‘코믹액션영화’를 표방하고 있다.
그동안 TV 드라마에만 출연해왔던 그이니만큼 첫 스크린 데뷔작인 ‘주글래 살래’에 대한 애착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그는 사실감 있는 연기를 위해 연변 출신 아주머니를 찾아가, 직접 연변 말투를 교습받기도 했다고. 그러나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더 어려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폭력신이 많아 촬영하는 내내 육체적인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
“유난히 맞는 장면이 많아서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주로 (박)남현 오빠한테 맞는 장면이 많았는데 오빠가 차력을 해서 손 힘이 정말 세거든요. 진흙탕에서 오빠한테 심하게 맞는 장면을 찍고 나서는 그날 하루 종일 입에 고인 흙탕물을 뱉어내야 했어요. 온몸에 든 멍이 일주일이 지나도 가시질 않더라고요. 그러니 강간당하는 장면은 그 고생을 말할 필요도 없죠.”
이토록 고생해서 찍었건만 너무 리얼한 연기를 펼친 탓일까.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진흙탕에서 매맞는 장면을 비롯해 자위행위를 한 뒤 정액을 피자에 뿌려 건달패들에게 먹이는 장면 등의 폭력성과 선정성을 문제삼아 1차심의에서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렸다. 다행히 문제의 ‘피자 장면’을 부분 삭제하는 조건으로 18세 이상 상영가 판정을 받아냈지만, 그동안 마음고생이 컸던 건 물론이다.
곽진영은 영화 ‘주글래 살래’에서 순수한 연변처녀 역을 맡아 온 몸을 내던지는 연기 열정을 보였다.
지난 91년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곽진영. 그는 MBC 인기 주말극 ‘아들과 딸’에서 ‘종말이’ 역할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면서 동기생 중 가장 먼저 주목받는 신인으로 급부상했다. 그와 공채 동기는 한석규, 박철, 감우성 등. 하지만 너무 이른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서였을까. 그후 10여년이 지나도록 그는 ‘종말이’에 갇혀 있어야 했다. ‘이미지 변신’이 관건인 연기자에게는 치명적인 일이었다.
“아직도 제 이름 앞에는 ‘종말이’가 따라다녀요. 천방지축 이십대도 아니고 이젠 제 나이도 서른이 넘었는데 말이죠. 이젠 아픔도 열정도 제대로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늘 같은 역할만 들어오니 답답하더라고요. 그게 싫어서 부지런히 다이어트도 하고 치아도 교정했던 거예요.”
통통하고 앳된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루 4시간을 헬스와 골프에 꼬박 매달리며 54kg의 체중을 46kg으로 감량했다. 2001년 SBS 드라마 ‘그래도 사랑해’에서 부잣집 외동딸 영선 역할을 맡아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는가 싶을 즈음 다른 문제가 또 발생했다. 눈 성형수술이 화근이었다.
“원래 속으로 얇게 진 쌍꺼풀이었어요. 그 눈이 귀여운 인상을 강조하는 것 같아서 쌍꺼풀 수술을 받았는데 그게 그만 부작용이 생긴 거예요. 한동안 바깥 출입도 못했고, 그러다보니 우울증까지 걸리더군요. 후유증이 보통 큰 게 아니었죠.”
성형수술 후유증으로 공백기가 길어지면서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해졌다. 전남 여수 출신인 그는 연예계에 데뷔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면서 일찍이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했던 상태.
“어느날 통장을 찍어보니까 잔고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때 처음으로 엄마한테 손벌려서 용돈을 받았어요. 간간이 홈쇼핑 TV 등에 출연해 생활비를 벌기도 했지만, 가능하면 가지고 있는 돈을 아껴 쓰려고 노력했어요. 벌써 백화점에 안 간 지도 몇년째인지 몰라요.”
그러는 사이 원치 않는 스캔들도 터졌다. 탤런트 이병헌과의 염문설이 그것. 그는 “다 지나간 얘기가 왜 이제야 나오는지 모르겠다. 그냥 신인시절, 좋은 친구였을 뿐”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둘은 방송국에서 신인연기상을 받으면서 서로 얼굴을 익혔고, 잡지 표지사진을 찍게 되면서 친해졌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이병헌은 군입대 문제나 CF 계약 문제 등을 그와 의논하고, 그도 이병헌의 작품을 모니터해주거나 시골에서 올라온 김치나 젓갈 등을 나눠주며 스스럼없는 친구 사이로 지냈다는 것.
“사귄 것도 아니고, 언약식을 한 사이도 아니에요. 스캔들 기사 때문에 그 쪽(이병헌)과는 도리어 사이가 안 좋아졌어요. 지금은 연락처도 모르고, 더는 그와 연관되는 것도 싫어요.”
얼마전 KBS 드라마 ‘장희빈’에서 장옥정을 유혹하는 궁녀 시영 역을 맡았던 곽진영. “다가올 봄에 새로운 드라마로 안방극장을 찾을 것 같다”고 귀띔한 그는 다음과 같은 씩씩한 말로 앞으로의 각오를 대신했다.
“작년에 (장)서희가 연기대상을 받을 때 그랬잖아요. 자신의 성공이 조연배우들에게 희망이 됐으면 좋겠다고. 그말 듣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어요. 앞으로 죽을 때까지 연기할 건데, 그 사이에 종말이 같은 역할이 제게 오지 않으리란 법이 없잖아요. 주어지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인내할 줄 안다면 분명히 좋은 결과가 찾아와 줄 거라 믿어요.”
‘제2의 연기인생’ 출발선상에 서 있는 그가 자신의 말처럼 지난 상처를 훌훌 털어버리고 앞으로만 전력질주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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