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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데드 맨 워킹> 실제 주인공 헬렌 프리진 수녀

“종신형은 희망을 의미하지만 사형은 곧 절망이에요”

■ 글·이지은 기자(smiley@donga.com) ■ 사진·김형우 기자

2002. 12. 17

사형제도를 비판한 영화 <데드 맨 워킹>의 원작자이자 실제 주인공인 사형제 폐지운동가 헬렌 프리진 수녀가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초청으로 지난 11월1일 방한했다. 그는 “종신형은 희망을 의미하지만 사형은 곧 절망”이라며 “한국이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나라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사형수 5명의 ‘영적안내자’로 활동해온 그가 주장하는 사형제도를 폐지시켜야 하는 이유.

영화  실제 주인공 헬렌 프리진 수녀
“데드 맨 워킹(Dead man walking)!” 영화 <데드 맨 워킹(Dead man walking)>의 마지막 장면에서 사형수가 사형장으로 향할 때 집행관은 이렇게 소리친다. 사형수는 곧 양팔이 묶인 채 침대에 누워 죽음을 기다린다. 서서히 죽어가는 사형수와 그 사형수가 잔인하게 살인한 피해자들이 죽어가는 장면이 교차된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사형제도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또 다른 형태의 살인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의 원작자이자 실제 주인공인 헬렌 프리진 수녀(64)가 사형제도 폐지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지난 11월1일 방한했다.
헬렌 수녀는 81년 미국 루이지애나에서 2년간 10대 남녀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패트릭 소니어의 ‘영적안내자’가 된 후 처형장면을 직접 목격하면서 사형제 폐지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후 15년 동안 사형수 5명의 영적안내자가 됐고 전세계를 다니며 사형제도의 부당성을 알리고 있다. 그는 패트릭 소니어와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저서 <데드 맨 워킹 - 미국 사형제도에 대한 목격담>을 출간해 미국 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96년 숀팬과 수전 서랜던이 주연한 동명의 영화가 만들어지면서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사형제도가 범죄 억제의 효과가 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며 “종신형은 희망을 의미하지만 사형, 즉 죽음은 절망”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헬렌 프리진 수녀와의 일문일답.
-한국에 온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의 사형제도 폐지 운동에 도움을 주기 위해 한국에 왔다. 한국에 오면서 일제시대와 민주화 투쟁 등 한국의 역사에 대해 들었다. 그런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한국인들은 사형제도가 얼마나 불합리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것인지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국이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나라가 되길 바란다.”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76년 미국에서 사형제가 부활된 이후 지금까지 8백여명이 처형을 당했는데, 이중 1백2명이 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형수의 98%는 빈민층이었고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도 상당수다. 부자들은 범죄를 일으켜도 유능한 변호사를 통해 유리한 판결을 받을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판검사들도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큰 부담 없이 사형을 구형하고 판결을 내린다. 한편 사형제가 범죄억제의 효과가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미국은 사형제도가 존속함에도 불구하고 범죄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무엇보다도 사람의 목숨을 주관하는 건 하느님이지 사람이 아니라는 점에서 사형제도는 폐지돼야 한다. 사형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또 다른 형태의 살인이다. 따라서 감형을 전제로 하지 않는 종신형 등으로 사형제도를 대체해야 한다.”

영화  실제 주인공 헬렌 프리진 수녀

그는 사형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또 다른 형태의 살인이라고 강조했다.

-사형수의 입장에서 보면 감형 없는 종신형이 더 잔인할 수 있지 않은가.
“내가 만난 대부분의 사형수는 살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감옥에 있더라도 살 수 있다면 그것 자체에 감사했다. 삶을 누린다는 것과 삶의 기회조차 없어지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산다는 건 자신의 잘못에 대해 참회하고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희생자 가족들의 생각은 어떤가.
“희생자 가족들을 만나보면 의외로 처벌이나 보복을 원하지 않는다. 사실 가해자의 죽음을 눈앞에서 본다고 해서 그들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필요한 상담을 해주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의료 지원을 해주고 직업 등을 소개해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희생자 가족들 중에서 가장 잊혀지지 않는 경우는?
“처음 영적안내를 했던 패트릭 소니어는 데이트 중이던 남녀를 잔인하게 살해했다. 그런데 죽은 남자의 아버지를 보면서 예수님이 말한 용서가 어떤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아들이 무참히 살해됐고 아내까지 정신적 충격과 증오로 숨질 뻔했는데도 그는 결국 패트릭을 용서했고 나와 함께 ‘패트릭을 사형시켜서는 안된다’는 캠페인을 벌였다. 비록 자신의 아들을 죽이기는 했지만 패트릭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잃게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5명 사형수들의 영적안내를 했는데, 영적안내를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최소 2년에서 10년 정도 영적안내를 하면서 느낀 것은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고 참회했으며 이기적이었던 마음이 점점 이타적으로 변해갔다. 밤마다 성경 위에 손을 올려놓고 희생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기도했던 패트릭은 어느날 내게 ‘하느님이 나와 함께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또 사형 집행 전 자기의 물품을 모두 동료들에게 나눠줬다. 두번째 영적안내를 했던 윌리는 자신의 죄를 전혀 참회하지 않았던 사람이지만 죽기 직전 ‘나의 죽음을 통해서 희생자 가족들이 조금이나마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영적안내를 한 5명의 사형수들이 천국에 갔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그건 하느님의 섭리이기 때문에 내가 뭐라고 말할 수 없다(웃음). 하지만 모두 참회의 과정을 통해 천국에 갈 기회는 얻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지금 한 사형수의 영적안내를 6년간 하고 있는데, 이 사람은 사형제도로 희생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다음해 가을쯤 <데드 맨 워킹 두번째 이야기>를 출간할 예정이다. 이 책에는 죄가 없었지만 사형제도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한 두명의 사형수의 이야기를 담을 것이다. 지난해 터키가 사형제도를 폐지함으로써 현재 1백5개 나라가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다. 이제 사형제 폐지는 세계적인 추세다. 지금처럼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사형제 폐지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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