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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세상에 이런 일이

이혼 후 밤늦게 돌아다니는 여자들만 골라 살해한 나이트클럽 웨이터

■ 기획·최미선 기자(tiger@donga.com) ■ 글·김순희(여성동아 리포터) ■ 사진·중랑경찰서 제공

2002. 11. 15

“나이트클럽 찾는 주부들, 밤 늦게 돌아다니는 여자들 다 죽이고 싶었습니다” 나이트클럽 웨이터 출신인 30대 남자가 아내에 대한 배신감과 여자들에 대한 적개심으로 한밤중에 거리를 다니던 여성들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나이트클럽에 드나드는 주부들이 부킹을 통해 쉽게 낯선 남자를 만나고 주저 없이 2차까지 동행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여자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다”고 범행동기를 밝힌 그는 경찰 조사에서 “밤 늦게 돌아다니는 여자들을 더 많이 죽여서 사회와 여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고 밝혀 충격을 던져주었다. 한밤에 일어난 살인사건의 전말과 이 사건을 통해 들여다본 성인나이트클럽의 ‘묻지마 부킹’ 실태를 집중 취재했다.

이혼 후 밤늦게 돌아다니는 여자들만 골라 살해한 나이트클럽 웨이터

이씨는 자정이 넘어 돌아다니는 여자들은 다 바람피우는 여자들이라고 생각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밤늦게 돌아다니는 여자들은 다 죽이고 싶었습니다. 30명 정도는 죽이려고 맘먹었는데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듣기만 해도 소름이 돋을 말을 태연히 내뱉은 이모씨(33). 서울 중랑경찰서는 지난 9월27일 여자에 대한 배신감으로 길에서 만난 ‘불특정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이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9월24일. 오전 1시20분께 서울 중랑구 상봉2동 놀이터. 놀이터 구석진 곳에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던 송모양(19)에게 이씨는 “잠깐 얘기 좀 하자”면서 다가갔다. 그런 이씨를 피해 송양이 놀이터를 빠져나가려는 순간 이씨는 일면식도 없는 송양에게 다짜고짜 흉기를 휘둘렀다. 흉기에 찔린 송양은 30m 떨어진 집까지 기어가 도움을 청했지만 결국 숨지고 말았다.
이씨의 ‘이유 없는’ 살인행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송양을 살해한 그는 서울 강북구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유유히 돌아가 피 묻은 옷을 갈아입은 후 또 다른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늦은 밤에 길거리를 배회하면서 범행대상을 물색하곤 했다는 것. 송양을 살해하고 사흘후인 9월27일 오전 1시경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서 이씨는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정모씨(28·여)를 흉기로 찔러 중태에 빠뜨렸다.
이씨가 경찰에 검거된 것은 두번째 범행을 저지른 직후였다. 경찰은 송양 살해사건의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살해사건 현장에서 잠복근무중 손에 피를 흘리면서 돌아다니는 이씨를 붙잡아 조사한 끝에 송양을 살해하고 정씨를 중태에 빠뜨린 사실뿐만 아니라 지난 9월20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빈집에 들어가 범행하려 한 사실을 자백받았다.
“경찰에 안 잡혔으면 닥치는 대로 다 죽이려고 했다니까요. 그냥, 밤 늦게 돌아다니는 여자들은 다 죽이고 싶었어요. 자정이 넘어서 돌아다니는 여자들 치고 가정을 제대로 지키는 사람들이 있는지, 올바른 행동을 하고 사는 여자들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다들 딴 데 정신 팔고 사는 여자들이라고 보면 틀림없어요. 더 자세하게 말하면 바람을 피운다고 보면 틀림없어요.”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낯선 남자 품에 안겨 2차 가는 주부들 보니 치가 떨렸다”
172cm 정도의 키에 평범한 인상의 소유자인 이씨는 여자들에 대해 극도의 불신감을 드러냈다. 이씨는 경찰 조사과정에서 수 차례에 걸쳐 “더 죽이지 못하고 잡힌 게 원통할 뿐”이라고 털어놓아 수사를 담당한 경찰관조차 혀를 내둘렀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친 이씨는 20대 초반부터 유흥업소 종업원으로 일했다. 주로 서울 성북구 유흥가 일대와 중랑구 면목동·상봉동의 나이트클럽에서 일한 그는 “여자에 대한 적개심의 발단은 나이트클럽에 찾아오는 여성들을 지켜보면서 생겨났다”고 경찰에서 밝혔다.
“나이트클럽에 오는 여자들은 아가씨나 아줌마나 할 것 없이 다들 낯선 남자들하고 한바탕 놀려고 와요. 옛날에도 부킹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요즘 나이트클럽을 찾는 여성들의 목적은 춤추고 노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아예 부킹을 통해 남자를 만나려고 작정을 하고 온다니까요. 요즘에는 여자들이 잘생기고 맘에 맞는 남자들을 골라서 놀아요. (여자들은) 부킹을 시켜준 이후에 남자가 맘에 들지 않으면 곧바로 다른 테이블로 옮겨요. (남자들은) 자기 와이프가 밖에 나가 외간남자와 할 짓 못할 짓 다 하면서 놀고 있는데 그것을 모르는 건지, 알고도 모르는 척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여자들, 특히 주부들이 노는 걸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어요.”
이씨는 주부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특히 나이트클럽에 드나드는 주부는 결코 평범한 주부가 아니라는 것. 나이트클럽에서 낯선 남자와 놀면서도 남편이나 아이들로부터 전화를 받으면 조용한 곳으로 옮겨 “○○네 집인데. 조금만 있다가 들어갈게”라며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하는 주부들을 보면서 이씨는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요즘은 남편에게 들키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주부들이 의외로 많다”는 이씨는 “나이트클럽에서 놀고 자정 이전에만 집에 들어가면 남편이 의심의 눈길을 보내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도 꽤 있었다”고 했다.
나이트클럽은 다른 유흥업소에 비해 영업시간이 비교적 빠른 편에 속한다. 오후 6시에 문을 여는 나이트클럽이 밤 8∼11시가 되면 절정에 이르는 이유도 대부분의 여성손님이 저녁식사 후 집에서 나와 나이트클럽에서 놀다가 자정을 전후해 집에 들어가려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모습을 지켜보면서 요즘 남자들은 불쌍한 존재인 것 같다는 게 이씨의 생각이다. 남자는 자식과 가족을 부양하느라 밖에 나가서 뼈 빠지게 일하는데 주부들이 유흥업소에 와서 노는 것을 보면 가관이라는 것. 여자들은 맥주를 시키는 남자들보다 룸에서 비싼 양주를 마시는 남자들과의 부킹을 선호할 뿐만 아니라 룸에 들어가서도 느낌이 통하는 남자가 아니다 싶으면 곧바로 다른 남자와 부킹시켜 달라고 요구한다고 한다.

이씨가 말하는 ‘부킹’이란 다름 아닌 ‘묻지마 부킹’. 나이트클럽에서 성행하고 있는 이른바 ‘묻지마 부킹’은 옆자리에 앉은 남녀 손님들끼리 자연스럽게 합석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로 업소의 웨이터를 통해 이뤄진다. 부킹은 대부분 남자손님들이 먼저 제의해온다. “아무 여자나 머릿수 맞춰서 해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 맘에 드는 여자들이 눈에 띌 경우 ‘저기 저 팀으로 해달라’고 지정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손님들의 요청이 있기 전에 웨이터가 알아서 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여성이건 남성이건 성인나이트클럽을 찾는 손님들의 대다수가 부킹을 목적으로 오기 때문이라는 것.
성인나이트클럽의 주고객층은 여성의 경우 가끔 20대도 눈에 띄지만 30∼40대 주부가 대부분이다. 남성들은 주로 30∼50대의 자영업자와 직장인으로 유부남이 대부분. 성인나이트클럽에 주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공짜로’ 술과 남자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부킹을 제의하는 남자들이 여성들의 술값을 계산해주는 것이 관례처럼 통한다. 여성들은 돈 한푼 내지 않고 재미를 보며 남성들은 단란주점이나 룸살롱을 찾을 때보다 훨씬 싼값에 여성들과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나이트클럽이라는 것.
이씨는 웨이터 입장인 자신은 ‘먹고 살기’ 위해서 부킹을 시켜주지만 처음 만난 남녀가 거리낌없이 노는 모습만큼은 눈에 거슬렸다고 한다. 야한 농담을 주고받는 것은 기본이고 아무렇지도 않게 낯선 남자의 품에 안기고 별 죄의식 없이 2차까지 나가는 것을 보면서 ‘세상에 믿을 여자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성인나이트클럽에서 부킹으로 만난 남녀관계가 성관계를 의미하는 ‘2차’로 이어지는 확률은 꽤 높은 편이라고 한다. 나이트클럽에 찾아오는 여자손님들은 부킹을 통해 남성들과 재미있게 ‘놀자’는 생각뿐만 아니라 ‘2차’까지 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오는 경우가 많아 상대 남성들의 2차 제의를 쉽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성인나이트클럽 인근에는 많은 모텔이 우후죽순처럼 서 있다. 인천시 계양구 계산동 일대에는 현재 7개의 성인나이트클럽 주변에 20여개의 모텔이 자리잡고 있다. 일산 신도시의 경우도 러브호텔이 급격히 늘기 시작한 것은 성인나이트클럽의 번창과 무관하지 않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맞아떨어져 특히 성인나이트클럽 주변의 모텔이 성업중이라고 한다.
현재 성인나이트클럽은 전국적으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 서울의 영등포 청량리역 신림사거리, 인천의 간석동 계산지구 송도, 그리고 일산 신도시 백석동 주엽동, 안양 인덕원사거리, 시흥시 월곶 일대 등 수도권을 비롯해 부산의 연산동 로터리, 울산의 공업탑 로터리 주변, 광주 동구의 대인동과 북구 운암동 주변이 ‘묻지마 부킹’의 천국으로 불린다.
서울 중랑경찰서 이재현 형사(48·강력5반장)는 “불심검문중 이씨를 검거하지 못했다면 피해자가 더 많이 발생했을 것”이라면서 “이씨의 범행시간이 모두 자정을 넘긴 이후였고 경찰조사과정에서 ‘밤늦게 돌아다니는 여자들을 더 많이 죽여서 사회와 뭇 여성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는 게 이씨가 밝힌 범행목적이라는 점이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수사를 하다 보면 나이트클럽 등 유흥업소를 자주 찾게 되는데 이씨의 주장처럼 유흥업소에 드나드는 주부들이 많다는 데 놀랐고, 노는 문화도 생각보다 퇴폐적이다”라고 털어놓았다.
이씨는 자신이 일하고 있는 나이트클럽에 손님으로 찾아온 여섯살 연하의 A씨와 결혼해 다섯살 난 딸을 뒀다. 결혼생활 내내 이씨의 머릿속에는 ‘세상에는 정상적인 여자가 없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아내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단정지었다고 한다.
그런 이씨의 사고방식으로 인해 여자에 대한 적개심을 품고 있는 남자와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생각한 A씨는 이씨에게 이혼을 요청, 지난 8월2일 협의 이혼했다. 이씨는 이혼 직후 다섯살 난 딸은 부모에게 맡기고 자신은 보증금 3백만원에 월 30만원 짜리 허름한 사글셋방을 얻어 생활하던 중 범행을 저질렀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최주연씨(36·강남 연정신과의원 원장)는 “이씨가 나이트클럽 등 유흥업소에서 일하면서 만난 여성들의 태도를 보고 여자들에 대해 적개심을 품었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것보다는 이혼으로 인한 정신적인 충격이 여자에 대한 적개심을 높이는 데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여성이 이혼하면 정신적인 충격을 견디는 게 어렵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남자가 받는 충격도 적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성격과 여러가지 처한 상황에 따라 정신적인 충격을 견뎌내는 강도가 다르기는 하지만 보편적으로 남성들이 이혼 후에 더 많이 힘들어하는 편입니다. 남자에게 이혼은 단순히 아내와만 헤어지는 게 아니라 대부분 자식에게도 버림받고 친척들과도 원만하지 못한 생활로 이어지고 직장생활 등 사회생활을 하는 데도 적잖이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아내의 잘못으로 인해 이혼했다 하더라도 사회적인 분위기가 ‘남자가 잘못해서 아내에게 버림받았다’는 의식이 팽배해 남자가 이혼으로 인해 겪은 정신적인 충격을 이겨내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최원장은 “이씨의 경우 어린 시절의 성장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주변의 여성들이 이씨의 여성관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전문적인 상담을 통해 원인을 알아봐야 하지만 이씨 자신이 ‘범행동기가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여성들의 행태 때문이다’고 주장한 이면에는 이혼으로 인해 ‘여자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정신적인 충격이 여성에 대한 적개심에 불을 당기는 역할을 했고 범행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씨의 비뚤어진 증오심과 피해의식이 어이없는 살인극을 불러일으켰지만 나이트클럽에서 웨이터로 일한 이씨가 유흥업소 현장에서 보고 느낀 여성, 특히 주부들에 대한 불신이 이 사건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을 묵과해서는 안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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