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 11층 사는 보라 엄마 말야. 글쎄 그 얼굴이 다 뜯어고친 얼굴이래요. 어제 여고 동창모임에 갔는데 내 친구가 보라 엄마 중학 동창이더라고. 여고 졸업하자마자 눈이랑 코랑 다 수술한 거래. 아유, 그러면서 어쩜 성형수술한 연예인들만 보면 ‘어머어머, 얼굴에 칼 대는 게 무섭지도 않나’ 하고 내숭을 떨었나 몰라.”
“박부장 이혼했다는 거 몰랐지? 나도 어제 우연히 만난 박부장 처제한테 들었어. 지난달에 도장 찍고 부인이랑 갈라섰다는 거야. 그런데 어쩜 그렇게 감쪽같이 표정 하나 안 변하고 회사에 잘 다니지? 대단한 사람이야, 정말.”
남의 비밀을 듣거나 말하는 것처럼 짜릿한 즐거움을 주는 게 있을까. 목소리를 낮추며 은밀히 대화를 나누다 보면 침이 꼴딱 넘어가고 코가 발룸발룸해지며 뇌 어느 부분에선가 자극 호르몬이 뿜어나오는 것 같다. 그 어떤 지적이고 생활에 유익한 정보를 들어도 이런 반응이 일어나진 않는데 말이다.
특히 남들은 잘 모르는 사실, 혹은 나와 관련된 사람의 전혀 다른 모습이나 과거사를 나만 알게 될 때는 마치 대단한 쾌거(?)를 이룬 양 뿌듯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은밀한 비밀을 나만 꼬옥 간직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정보화 시대에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널리널리 퍼뜨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낀다. 나 같은 이들 덕분에 세상엔 숱한 ‘카더라 통신’과 ‘뒷담화(談話)’가 회자된다. 요즘은 은밀하게 귓속말로 “너한테만 말인데”라고 전해줄 필요도 없다. 인터넷엔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이들의 비화를 속속들이 털어놓는 손길이 분주하다. 어디 말뿐인가, 지금 모습이 되리라곤 상상하기 힘든 못생긴 학창시절의 사진, 전화 목소리까지 다 떠돌아다닌다.
그런데 남의 이야기, 연예인 스캔들, 정치 비사, 재계 뒷이야기 등등을 좋아하는 호사가인 나도 요즘은 제대로 소화를 못하고 질려버릴 지경이다. 곳곳에서 너무나 많이 터져나오는 폭로전쟁 때문이다.
최근에는 한때 부부였던 가수 길은정과 편승엽의 기자회견과 고소 사건, 댄스그룹 샵의 두 여성멤버들의 폭행사건과 해체가 연일 스포츠지와 연예정보 프로그램을 뜨겁게 달궜다. 연예계만이 아니라 정계에선 병풍사건과 더불어 대통령의 노벨상 로비사건까지 하루도 ‘폭로’가 빠지는 날이 없다.
시사월간지 기자에 따르면 정권 말기가 되자 마치 대하소설처럼 두둑한 자료와 문건을 갖고 나타나 “이제야 말할 수 있다”를 외치는 이들이 너무 많고 “내 입만 열면” 하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아 앞으로 1년간 기사거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한다. 또 어느 검사를 만났더니 우리나라는 진짜 폭로 공화국이라고 했다. 각종 투서와 폭로 문건이 1년에 10만건 이상 올라온단다. 시간과 열정은 둘째 치고라도 투서에 사용되는 그 종이며 인지대만 해도 얼마나 국력낭비인가.
나는 직업이 기자이기 때문에 세상에 돌아다니는 소문을 확인해 진실을 밝힐 의무가 있고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줘야 한다는 의식도 있지만 이젠 ‘알고 싶지 않을 권리’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처음엔 나도 흥미진진해서 친구들과 이런 수다를 떨었다.
“편승엽이랑 길은정은 도대체 누가 더 나쁜 거야?” “단체로 선글라스 끼고 나타난 여자들은 또 누구야? 한명은 아주 돈이 많다던데….” “김대업이란 사람은 녹음이 취미였나봐. 그런데 그 사람이 겨우 마흔살밖에 안됐다니 나이를 속인 게 아닌가?” “아니, 정말 노벨상도 로비가 통한다구? 그럼 미인계도 통할까? 음, 나도 언젠가 노벨상 탈 가능성이 있겠군.”
훌륭한 사람들의 숨겨진 진실 알려주는 ‘아름다운 폭로’가 많아져야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짜증이 나고 두렵기까지 하다. 과연 우리가 꼭 그런 사실을 알아야 할까, 그리고 뭐가 진실이란 말인가. 진실이라 한들 그걸 안다고 우리의 삶이 얼마나 더 풍요로워지는 걸까. 그렇게 신문과 방송에 나와 미주알고주알 들추는 게 진솔하고 정의로운 것일까.
거창한 폭로사건이 아니라도 세상의 숱한 범죄나 가슴 아픈 일들이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며 밝히고 겁주는 것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무슨 양의 비디오 등도 일종의 영상폭로물이고, “가족에게 알리겠다”는 제비족들의 협박은 아직도 단골범죄 리스트에 올라있다.
조영남은 한 스포츠지의 컬럼에 “길은정·편승엽 사건은 나같이 여자관계가 복잡한 남자에겐 반면교사의 역할을 해줬지만 나와 관계한 모든 여자들이 검정 선글라스를 쓰고 나타나 ‘사기꾼 조영남은 물러나라’고 외치는 상상을 하면 끔찍하다’는 글을 썼다.
나야 파란만장한 질곡의 삶을 살지도 않았고 내가 조신해서가 아니라 온 세상 남자들이 날 안전하게 보호해줘서 충격적 폭로를 당할 일은 별로 없다. 하지만 기억력이 좋은 내 동창들이 상상력까지 덧붙여서 “유인경은 학교 다닐 때 굉장히 지저분했다”거나 “그때도 정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 등등의 이야기를 할지도 모른다.
얼마 전 내가 출연하는 KBS 라디오이란 프로의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청취자 게시판에 “유인경 기자의 진상을 폭로한다”는 글이 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남의 돈을 떼어먹지도 않았고, 호스트바 출입도 아직 못했고, 심지어 길거리에서 노상방뇨를 한 적도 없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사연을 읽어보기도 전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런데 내용을 보니 “한 모임에서 유인경 기자를 만나보았는데 매우 소탈하며 나중에 책이랑 CD선물까지 줘서 고마웠다. 앞으로 팬이 되겠다”라는 내용이었다. 휴우~ 안도의 숨을 내쉬긴 했지만 정말 죄 짓고 살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두려운 건 내 가족의 폭로다. 언니나 오빠들의 어린시절 증언도 걱정되지만 내 딸과 그 아범이 입을 열면.
“우리 엄마는요, 얼마나 정리정돈을 안하냐면요…” “제 입으로 엄마를 이렇게 말하는 게 좀 그렇지만 어느 땐 정말 저 분이 마흔살 넘은 분인가 의심이 들만큼 유치할 때가 많아요” “우리 마누라는 밖에선 잘난척하지만 집에 오면 거의 백치 수준입니다. 글이나 방송으로 숱하게 제 욕을 합디다만 사실 나야말로 마누라 흉을 보자면…”
이젠 누굴 음해하기 위한 폭로보다는, 정말 착하고 훌륭한 사람들의 진실을 널리널리 알리는 아름다운 폭로가 많았으면 좋겠다.
“박부장 이혼했다는 거 몰랐지? 나도 어제 우연히 만난 박부장 처제한테 들었어. 지난달에 도장 찍고 부인이랑 갈라섰다는 거야. 그런데 어쩜 그렇게 감쪽같이 표정 하나 안 변하고 회사에 잘 다니지? 대단한 사람이야, 정말.”
남의 비밀을 듣거나 말하는 것처럼 짜릿한 즐거움을 주는 게 있을까. 목소리를 낮추며 은밀히 대화를 나누다 보면 침이 꼴딱 넘어가고 코가 발룸발룸해지며 뇌 어느 부분에선가 자극 호르몬이 뿜어나오는 것 같다. 그 어떤 지적이고 생활에 유익한 정보를 들어도 이런 반응이 일어나진 않는데 말이다.
특히 남들은 잘 모르는 사실, 혹은 나와 관련된 사람의 전혀 다른 모습이나 과거사를 나만 알게 될 때는 마치 대단한 쾌거(?)를 이룬 양 뿌듯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은밀한 비밀을 나만 꼬옥 간직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정보화 시대에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널리널리 퍼뜨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낀다. 나 같은 이들 덕분에 세상엔 숱한 ‘카더라 통신’과 ‘뒷담화(談話)’가 회자된다. 요즘은 은밀하게 귓속말로 “너한테만 말인데”라고 전해줄 필요도 없다. 인터넷엔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이들의 비화를 속속들이 털어놓는 손길이 분주하다. 어디 말뿐인가, 지금 모습이 되리라곤 상상하기 힘든 못생긴 학창시절의 사진, 전화 목소리까지 다 떠돌아다닌다.
그런데 남의 이야기, 연예인 스캔들, 정치 비사, 재계 뒷이야기 등등을 좋아하는 호사가인 나도 요즘은 제대로 소화를 못하고 질려버릴 지경이다. 곳곳에서 너무나 많이 터져나오는 폭로전쟁 때문이다.
최근에는 한때 부부였던 가수 길은정과 편승엽의 기자회견과 고소 사건, 댄스그룹 샵의 두 여성멤버들의 폭행사건과 해체가 연일 스포츠지와 연예정보 프로그램을 뜨겁게 달궜다. 연예계만이 아니라 정계에선 병풍사건과 더불어 대통령의 노벨상 로비사건까지 하루도 ‘폭로’가 빠지는 날이 없다.
시사월간지 기자에 따르면 정권 말기가 되자 마치 대하소설처럼 두둑한 자료와 문건을 갖고 나타나 “이제야 말할 수 있다”를 외치는 이들이 너무 많고 “내 입만 열면” 하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아 앞으로 1년간 기사거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한다. 또 어느 검사를 만났더니 우리나라는 진짜 폭로 공화국이라고 했다. 각종 투서와 폭로 문건이 1년에 10만건 이상 올라온단다. 시간과 열정은 둘째 치고라도 투서에 사용되는 그 종이며 인지대만 해도 얼마나 국력낭비인가.
나는 직업이 기자이기 때문에 세상에 돌아다니는 소문을 확인해 진실을 밝힐 의무가 있고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줘야 한다는 의식도 있지만 이젠 ‘알고 싶지 않을 권리’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처음엔 나도 흥미진진해서 친구들과 이런 수다를 떨었다.
“편승엽이랑 길은정은 도대체 누가 더 나쁜 거야?” “단체로 선글라스 끼고 나타난 여자들은 또 누구야? 한명은 아주 돈이 많다던데….” “김대업이란 사람은 녹음이 취미였나봐. 그런데 그 사람이 겨우 마흔살밖에 안됐다니 나이를 속인 게 아닌가?” “아니, 정말 노벨상도 로비가 통한다구? 그럼 미인계도 통할까? 음, 나도 언젠가 노벨상 탈 가능성이 있겠군.”
훌륭한 사람들의 숨겨진 진실 알려주는 ‘아름다운 폭로’가 많아져야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짜증이 나고 두렵기까지 하다. 과연 우리가 꼭 그런 사실을 알아야 할까, 그리고 뭐가 진실이란 말인가. 진실이라 한들 그걸 안다고 우리의 삶이 얼마나 더 풍요로워지는 걸까. 그렇게 신문과 방송에 나와 미주알고주알 들추는 게 진솔하고 정의로운 것일까.
거창한 폭로사건이 아니라도 세상의 숱한 범죄나 가슴 아픈 일들이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며 밝히고 겁주는 것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무슨 양의 비디오 등도 일종의 영상폭로물이고, “가족에게 알리겠다”는 제비족들의 협박은 아직도 단골범죄 리스트에 올라있다.
조영남은 한 스포츠지의 컬럼에 “길은정·편승엽 사건은 나같이 여자관계가 복잡한 남자에겐 반면교사의 역할을 해줬지만 나와 관계한 모든 여자들이 검정 선글라스를 쓰고 나타나 ‘사기꾼 조영남은 물러나라’고 외치는 상상을 하면 끔찍하다’는 글을 썼다.
나야 파란만장한 질곡의 삶을 살지도 않았고 내가 조신해서가 아니라 온 세상 남자들이 날 안전하게 보호해줘서 충격적 폭로를 당할 일은 별로 없다. 하지만 기억력이 좋은 내 동창들이 상상력까지 덧붙여서 “유인경은 학교 다닐 때 굉장히 지저분했다”거나 “그때도 정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 등등의 이야기를 할지도 모른다.
얼마 전 내가 출연하는 KBS 라디오
하지만 무엇보다 두려운 건 내 가족의 폭로다. 언니나 오빠들의 어린시절 증언도 걱정되지만 내 딸과 그 아범이 입을 열면.
“우리 엄마는요, 얼마나 정리정돈을 안하냐면요…” “제 입으로 엄마를 이렇게 말하는 게 좀 그렇지만 어느 땐 정말 저 분이 마흔살 넘은 분인가 의심이 들만큼 유치할 때가 많아요” “우리 마누라는 밖에선 잘난척하지만 집에 오면 거의 백치 수준입니다. 글이나 방송으로 숱하게 제 욕을 합디다만 사실 나야말로 마누라 흉을 보자면…”
이젠 누굴 음해하기 위한 폭로보다는, 정말 착하고 훌륭한 사람들의 진실을 널리널리 알리는 아름다운 폭로가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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