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8월이면 2018년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강원도 평창의 작은 마을, 계촌은 음악으로 물든다. 계촌초등학교 오케스트라를 중심으로 한 ‘계촌마을 클래식 거리축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2011년부터 동생이자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69) 씨와 함께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첼리스트 정명화(73) 씨는 이 소박한 음악 축제에 연주자로, 또 학생들의 멘토로 참여하고 있다.
계촌마을 축제는 한국예술종합학교와 현대차 정몽구 재단이 2015년 시작한 ‘예술세상 마을 프로젝트’에서 비롯됐다. 예술세상 마을 프로젝트는 예술계의 거장들을 중심으로 농산어촌의 작은 마을에서 주민, 예술 동호인들이 함께 어우러져 축제에 참여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의 일상 속에 문화의 가치가 확산되도록 하는 사업이다.
계촌초등학교 학생들은 1학년 때 예비 단원으로 시작해 바이올린 기초를 닦은 뒤 3학년부터 바이올린, 첼로, 더블베이스, 클라리넷, 플루트 등을 선택해 집중적으로 배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생들이 정기적으로 학교를 방문해 레슨을 진행하고, 축제 기간에는 거장들이 직접 참가하는 마스터클래스도 열린다. 올여름 정명화 씨는 7월 26일부터 8월 7일까지 평창대관령음악제를 이끈 데 이어, 10일 ‘2017 평창 스페셜 뮤직&아트 페스티벌’ 개막 공연, 독일 ‘드레스덴 음악제’에 이르기까지 빠듯한 일정 속에서도 계촌마을 축제(8월 18~20일)에 참석해 훌륭한 연주를 들려줬다. 이처럼 계촌마을 축제에 애정을 갖는 이유는, 음악이 아이들의 삶을 행복하게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마을 아이들 모두가 악기를 배워 연주하면서 오케스트라로 하모니를 이룬다는 것은 특별하죠. 이런 계촌마을 같은 모델이 전국에 확대되면 좋겠어요. 저는 어렸을 적, 지금은 대도시로 변한 경기도 고양에 큰아버지가 살고 있어서 자주 갔었거든요. 당시 잠자리, 물고기, 메뚜기도 잡고 밤에는 별도 보면서 지냈는데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란 것이 음악에 많이 도움이 됐어요.”
“어릴 때 경화와는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죠. 경화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 같아요. 음악이나 인생의 모든 면에서 서로에게 좋은 의논자였고, 평론가였고, 격려자였죠. 명훈이도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저희에게 도움을 많이 줬어요. 동생들 자랑이 아니라 정말 경화와 명훈이는 최고의 연주자예요. 제가 얼마나 존경하는데요. 어머니는 어떻게 이렇게 뛰어난 아이들을 낳았는지 궁금하기도 해요.”
‘정명화 정경화 정명훈 남매’하면 자연스럽게 ‘정트리오’가 떠오른다. 정트리오는 1968년 정명화 씨가 정명훈 씨의 피아노 반주로 세계적인 클래식 음악 매니지먼트사인 ‘컬럼비아아트’ 오디션에 참가한 것을 계기로 결성됐다. 오디션에서 그와 정명훈의 2중주를 들은 컬럼비아아트는 정경화까지 합류한 ‘정트리오’를 제안했고 이후 1980년대 말까지 미국에서 순회공연을 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그 뒤로는 각자의 일정이 너무 바빠 자주 모이지 못했다. 정트리오의 마지막 공연은 2011년 어머니 고 이원숙 씨 추모 연주회였다.
“제가 첼로를 그만두기 전에 꼭 한번 다시 뭉쳐야죠. 어디서 연주를 할지 고민 중입니다. 연주회를 여는 것은 무리이고 축제 같은 곳에서 한 곡 정도 연주는 가능할 것 같아요. 동생들과 이야기를 해봐야겠지만요.”
첼로는 현을 누를 때 힘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악기 중에서도 특히 체력 소모가 많은 편이다. 70세를 넘겨서 세계를 무대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첼리스트는 정명화 씨를 포함해 손에 꼽을 정도다.
“제 연주가 스스로의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할 때 그만둘 겁니다. 최근 슈베르트를 연주했는데 마음속으로 ‘이번이 마지막 아닐까’ 하고 생각했어요. 3, 4년 전부터 연주하는 곡들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공연해요. 이미 힘들어서 못 하는 곡들도 있어요. 슬프기보다는 좀 서운하죠. 그래도 축복받으면서 여기까지 왔으니 연주를 그만두더라도 아쉬움은 크게 없을 것 같아요.”
그녀는 첼로를 선택한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삶도 마찬가지다.
“후회되거나 아쉬운 순간은 없어요. 한 남자의 아내로서, 두 딸의 엄마로서, 첼리스트로서 1인 3역을 해야 했기 때문에 하루하루 할 일에 순번을 매겨가면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어요. 다만 남편이 뒷전으로 밀린 적이 많아서, 그 점은 좀 미안해요. 그래도 지금까지 잘 도와줘서 제가 이만큼 올 수 있었죠. 많은 분들께 사랑과 도움을 받은 만큼 젊은 음악가들을 돕는 것이 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러지 않으면 저는 벌 받아요.”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사람’을 꼽았다.
“사람의 인연이 소중해요. 아무리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도 배울 것이 있어요. 선생님이든 동료든 친구든, 주위 사람들에게 많이 배우고 칭찬을 해주세요. 바보가 아닌 이상 누구든 자신의 단점은 스스로가 잘 알고 있거든요. 상대방을 존경하면서 배우는 자세를 갖추고, 칭찬에 인색하지 않다면 인연은 따라오게 돼 있어요.”
사진제공 예술세상 마을 프로젝트 위드컬쳐 디자인 이지은
계촌마을 축제는 한국예술종합학교와 현대차 정몽구 재단이 2015년 시작한 ‘예술세상 마을 프로젝트’에서 비롯됐다. 예술세상 마을 프로젝트는 예술계의 거장들을 중심으로 농산어촌의 작은 마을에서 주민, 예술 동호인들이 함께 어우러져 축제에 참여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의 일상 속에 문화의 가치가 확산되도록 하는 사업이다.
계촌초등학교 학생들은 1학년 때 예비 단원으로 시작해 바이올린 기초를 닦은 뒤 3학년부터 바이올린, 첼로, 더블베이스, 클라리넷, 플루트 등을 선택해 집중적으로 배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생들이 정기적으로 학교를 방문해 레슨을 진행하고, 축제 기간에는 거장들이 직접 참가하는 마스터클래스도 열린다. 올여름 정명화 씨는 7월 26일부터 8월 7일까지 평창대관령음악제를 이끈 데 이어, 10일 ‘2017 평창 스페셜 뮤직&아트 페스티벌’ 개막 공연, 독일 ‘드레스덴 음악제’에 이르기까지 빠듯한 일정 속에서도 계촌마을 축제(8월 18~20일)에 참석해 훌륭한 연주를 들려줬다. 이처럼 계촌마을 축제에 애정을 갖는 이유는, 음악이 아이들의 삶을 행복하게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마을 아이들 모두가 악기를 배워 연주하면서 오케스트라로 하모니를 이룬다는 것은 특별하죠. 이런 계촌마을 같은 모델이 전국에 확대되면 좋겠어요. 저는 어렸을 적, 지금은 대도시로 변한 경기도 고양에 큰아버지가 살고 있어서 자주 갔었거든요. 당시 잠자리, 물고기, 메뚜기도 잡고 밤에는 별도 보면서 지냈는데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란 것이 음악에 많이 도움이 됐어요.”
음악은 삶의 행복
정명화 씨는 1969년 지휘자 주빈 메타가 이끄는 LA 필하모닉과의 협연을 계기로 프로 연주자에 데뷔했다. 첼로를 처음 손에 잡은 건 열한 살 되던 해였으니, 60년 넘는 여정을 첼로와 함께해온 셈이다. 동생인 정경화 씨와 지휘자 정명훈(64) 씨는 그의 음악과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다. 함께 음악을 하면서 때로는 서로에게 의지를 하고 도움을 주며 지금까지 활동을 해왔다.“어릴 때 경화와는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죠. 경화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 같아요. 음악이나 인생의 모든 면에서 서로에게 좋은 의논자였고, 평론가였고, 격려자였죠. 명훈이도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저희에게 도움을 많이 줬어요. 동생들 자랑이 아니라 정말 경화와 명훈이는 최고의 연주자예요. 제가 얼마나 존경하는데요. 어머니는 어떻게 이렇게 뛰어난 아이들을 낳았는지 궁금하기도 해요.”
‘정명화 정경화 정명훈 남매’하면 자연스럽게 ‘정트리오’가 떠오른다. 정트리오는 1968년 정명화 씨가 정명훈 씨의 피아노 반주로 세계적인 클래식 음악 매니지먼트사인 ‘컬럼비아아트’ 오디션에 참가한 것을 계기로 결성됐다. 오디션에서 그와 정명훈의 2중주를 들은 컬럼비아아트는 정경화까지 합류한 ‘정트리오’를 제안했고 이후 1980년대 말까지 미국에서 순회공연을 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그 뒤로는 각자의 일정이 너무 바빠 자주 모이지 못했다. 정트리오의 마지막 공연은 2011년 어머니 고 이원숙 씨 추모 연주회였다.
“제가 첼로를 그만두기 전에 꼭 한번 다시 뭉쳐야죠. 어디서 연주를 할지 고민 중입니다. 연주회를 여는 것은 무리이고 축제 같은 곳에서 한 곡 정도 연주는 가능할 것 같아요. 동생들과 이야기를 해봐야겠지만요.”
첼로는 현을 누를 때 힘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악기 중에서도 특히 체력 소모가 많은 편이다. 70세를 넘겨서 세계를 무대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첼리스트는 정명화 씨를 포함해 손에 꼽을 정도다.
“제 연주가 스스로의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할 때 그만둘 겁니다. 최근 슈베르트를 연주했는데 마음속으로 ‘이번이 마지막 아닐까’ 하고 생각했어요. 3, 4년 전부터 연주하는 곡들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공연해요. 이미 힘들어서 못 하는 곡들도 있어요. 슬프기보다는 좀 서운하죠. 그래도 축복받으면서 여기까지 왔으니 연주를 그만두더라도 아쉬움은 크게 없을 것 같아요.”
그녀는 첼로를 선택한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삶도 마찬가지다.
“후회되거나 아쉬운 순간은 없어요. 한 남자의 아내로서, 두 딸의 엄마로서, 첼리스트로서 1인 3역을 해야 했기 때문에 하루하루 할 일에 순번을 매겨가면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어요. 다만 남편이 뒷전으로 밀린 적이 많아서, 그 점은 좀 미안해요. 그래도 지금까지 잘 도와줘서 제가 이만큼 올 수 있었죠. 많은 분들께 사랑과 도움을 받은 만큼 젊은 음악가들을 돕는 것이 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러지 않으면 저는 벌 받아요.”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사람’을 꼽았다.
“사람의 인연이 소중해요. 아무리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도 배울 것이 있어요. 선생님이든 동료든 친구든, 주위 사람들에게 많이 배우고 칭찬을 해주세요. 바보가 아닌 이상 누구든 자신의 단점은 스스로가 잘 알고 있거든요. 상대방을 존경하면서 배우는 자세를 갖추고, 칭찬에 인색하지 않다면 인연은 따라오게 돼 있어요.”
사진제공 예술세상 마을 프로젝트 위드컬쳐 디자인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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