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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제2의 정순신 아들 막으려면… 박상수 변호사 “학폭 재판서 ‘피해자 발언권’ 시급”

박상수 학교폭력전문 변호사 인터뷰

이경은 기자

2023. 03. 31

“난 이래도 아무 일이 없고, 넌 그래도 아무 일이 없으니까.”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학교폭력 가해자 연진은 피해자 동은에게 이렇게 말한다. 드라마 속 일만은 아니다. 박상수 변호사에게 학폭 가해자들이 어떻게 피해자를 무력화하는지, 법의 사각지대에 대해 들었다. 



2022년 연예계를 휩쓴 ‘스쿨 미투’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학교폭력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2월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이 학교폭력 가해자였음이 드러나면서다. 정 변호사의 아들은 사법적 사각지대를 이용한 ‘시간 끌기’ 꼼수를 썼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대중의 공분을 샀다.

시간 끌기는 가해학생의 입시나 졸업을 위해 학교폭력위원회(학폭위) 처분 시행 시점을 미루는 것이다. 가해학생 측이 교육청을 상대로 불복 소송을 진행하고 집행정지 신청을 내는 식이다. 실제 정 변호사의 아들도 2018년 3월 전학 처분을 받았지만 피해자와 함께 학교를 다니다 2019년 2월이 돼서야 서울 반포고로 전학을 갔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중화된 편법으로 학폭위 처분은 무력화됐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화제를 모은 박상수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전 부협회장·법률사무소 선율). 그를 만나 학교폭력의 현주소를 들었다. 박 변호사는 최근 5년간 학교폭력 현장서 피해학생 측 법률대리인을 주로 맡았다.

학폭위 처분을 지연하는 사례가 흔해졌다고요.

교내 자치로 처리되던 학교폭력 문제를 제도화하자는 취지로 2004년 학교폭력예방법이 제정됐습니다. 이에 따라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교육청에서 학폭위가 열립니다. 하지만 학폭위에서 내린 처분은 결국 교육청의 처분입니다. 처분받은 당사자가 행정부에 소송을 내 시행을 지연시키거나 막을 수 있게 된 겁니다. 10년 전쯤 행정심판을 건너뛰어도 되게끔 제도가 바뀌면서 이젠 대부분 처분을 받으면 바로 처분청에 행정소송을 내요. 그러다 보니 학교폭력 사안을 블루오션으로 생각한 변호사들이 이 시장에 대거 진입하면서 결국 편법까지 동원되는 상황입니다. 고관대작 후보자 자제가 입길에 올라 알려지긴 했지만 시간 끌기는 아주 대중화된 방법이에요.



학교폭력 문제가 법정으로 간 거네요.

사안 각각을 법리로 따지면 고소가 가능하단 걸 깨닫고 이를 활용하고 있는 겁니다. 과도기적 부작용이죠. 가해학생이 피해 사실을 알린 피해학생을 사실적시명예훼손죄로, 학폭위에 사건을 넘긴 교사는 무고죄로 고소하는 일도 있습니다. 이 경우 피해자와 교사가 되레 위축될 수밖에 없죠. 현재 학교폭력은 방치돼 있습니다. 현실을 아무도 건드리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요. 이대로 가다간 ‘교실 붕괴’로 이어질까 우려됩니다.

가해학생 절반은 ‘시간 끌기’ 성공

박상수 변호사는 “가해자 엄벌주의 보다 피해자의 목소리가 개선되도록 절차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박상수 변호사는 “가해자 엄벌주의 보다 피해자의 목소리가 개선되도록 절차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시간 끌기가 일반화됐다”는 박 변호사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의 ‘불복절차 관련 학교폭력 집행정지 신청 건수 및 인용 건수’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 8월 말까지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을 모두 합쳐 가해자가 낸 집행정지 1405건 중 813건(57.9%)이 인정됐다. 집행정지를 신청한 가해학생 절반 이상이 처분 시행을 미루는 데 성공한 셈이다.

목적은 졸업인가요.

가해자가 퇴학 처분을 받았다면 소송 지연 전략으로 졸업을 시키는 게 목적이죠. 집행정지를 받아 처분이 기재되지 않은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를 입시에 활용하기도 하고요. 오죽하면 “시간을 끌어 가해학생이 졸업만 하면 성공보수를 받는다”는 말이 변호사 사이서 돕니다. 길어야 중고등학교 졸업은 3년이면 되니까요.

집행정지가 결정되면 학교폭력 사항이 학생부에 기재되지 않나요.

현 교육부 지침상 집행정지 신청이 인용되면 학폭위 1〜3호 처분은 학생부에 기재하지 않도록 돼 있습니다. 하지만 4〜9호 처분은 기재해야 합니다. 학교 현장에 이 부분이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은 게 문제입니다. 4〜9호 처분을 받은 가해자와 그 부모, 법률대리인이 “애 인생 망칠 거냐”며 학교를 겁박해 이를 삭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피해학생이 대응할 방법은 없나요.

학폭위 이후 행정소송 절차에서는 없습니다. 더 큰 문제는 행정소송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학교를 다닌다는 거죠. 가해학생이 피해학생에게 ‘해봐야 안 된다’는 식으로 조롱하고 비웃기도 합니다.

법정서 소외되는 피해자 목소리

해맑음센터 내 학생들이 활동하는 모습.

해맑음센터 내 학생들이 활동하는 모습.

가해자 측이 행정소송을 제기해 처분을 미루는 동안 피해학생의 이야기는 들을 수 없다. 처분 받은 가해학생과 처분청인 교육청만 소송의 양 당사자로 참여해 피해자는 완전히 배제되기 때문이다. 박 변호사는 “가해자가 교육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는지조차 몰랐던 피해자가 많다”고 말했다.

가해학생이 교육청을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 피해학생은 개입할 수 없다는 건가요.

법제화 과정에서 학교폭력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반적인 행정쟁송 절차를 그대로 행정법에 포함시켰기 때문입니다. 법의 사각지대인 셈이죠. 집행정지나 불복 소송에 피해자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으니 여러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가해자 쪽만 소송에 참여하다 보니 가해자에게 유리한 온정주의적 판결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해학생의 불복 인용 비율이 날로 높아지는 이유죠.

피해자가 뒤늦게 처분 지연 사실을 알게 되면 충격이 클 듯합니다.

성범죄 학교폭력을 저지른 가해 남학생이 학폭위로부터 퇴학 처분을 받았음에도 행정소송으로 시간을 끌어 졸업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한참 뒤 대법원에 가서야 소송이 기각되고 퇴학 처분 유효 판결이 내려졌지만 가해학생이 이미 졸업해 처분이 무효화됐죠. 피해학생은 극단적 선택을 한 이후였고요.

가해학생의 각종 편법으로 교육청 선에서 해결법을 찾지 못한 피해학생은 대개 형사소송으로 눈을 돌린다. 하지만 박 변호사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건 이쪽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가해학생이 촉법소년(10〜13세)이거나 교화 필요성이 강조되는 사건의 범죄소년(14〜18세)인 경우 재판은 법원 소년부로 송치되는데, 여기서도 가해학생 측만 법정에 서기 때문이다.

법원 소년부 판결도 가해자에게 온정적인가요.

소년 재판에서도 송치된 가해자와 그의 보호자, 가해자 측 변호인만 개입하니 판사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판사 앞에서 가해학생이 반성하고, 부모도 간절히 호소하고, 변호인은 이 모든 걸 법리적으로 뒷받침하면 판사는 가해학생에게 온정적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겠죠. 설령 소년사건이 아닌 형사사건으로 간다 해도 실형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집니다.

행정소송부터 형사소송까지 줄곧 피해자가 제외되는데요.

애초에 법이 그래요. 피해자 부모들은 하나같이 “법은 왜 가해자를 수 겹으로 감싸면서 피해자는 말 한마디도 못 하게 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립니다. 행정소송과 소년법상 보호처분에서 피해자 진술을 반드시 듣도록 하고, 피해자 대리인을 두도록 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한 이유예요. 이 이야기를 몇 년째 하고 있지만 개선되지 않는 실정입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해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함은 아닌지요.

그렇게 보긴 어려워요. 피해자를 별도로 불러 이야기를 듣거나 대리인을 두면 되니까요. 성범죄도 과거엔 같은 이유로 문제가 많았어요. 형사사건에서 첫 수사 당시 피해자 진술 이후 재판 단계에 들어서면 피해자가 목소리를 낼 방법이 없었죠. 그러다 보니 성범죄자에게 온정적 형벌이 나왔고요. 하지만 지난 몇 년간의 노력을 통해 지금은 형사재판에서 피해자 진술권과 피해자 대리인 제도 모두 보장돼 있어요. 피해자가 직접 판사 앞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거죠. 피해자 대리인을 선임하기 힘든 이들에겐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를 통해 국선변호사를 선임해주기도 합니다.

학교폭력 관련 재판에도 이러한 제도가 절실합니다. 가해자도 국민이니 재판청구권 등 기본권을 제한할 방법은 없습니다. 다만 피해자도 발언권과 징계권을 보장받아야 해요. 성범죄 사건에서 선례가 있어 논의만 한다면 충분히 도입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피해자 학습권 침해받지 않을 선택지 줘야

처분에 대한 법정다툼이 격화되는 동안 피해자가 설 곳은 있을까. 학교폭력이 접수되고 그 즉시 시행되는 분리 기간(가해자·피해자 각각 3일씩 최대 6일)이 지나면 둘은 다시 같은 학교를 다녀야 한다. 피해자는 자연스레 자퇴나 전학을 고민한다. 박 변호사는 피해자가 학습권을 침해받지 않을 방법으로 피해자 위탁 교육기관 확대를 강조한다. 피해자 위탁 교육기관은 피해자가 학교 대신 갈 수 있는 기숙학교로 교원자격증이 있는 교사가 이들을 전담해 교육 및 법률적·정서적 지원을 해주는 곳이다. 이곳에서 피해자는 가해자와 분리돼 수업일수를 채울 수 있어 학교 졸업도 가능하다.

기관 현황은 어떤가요.

전국에 대전 ‘해맑음센터’ 하나가 있어요. 이마저도 오래된 건물이라 붕괴 위험이 있어 센터를 옮겨야 하는 상황이고요. 얼마 전 교육부 장관이 해맑음센터를 서울의 폐교로 옮기는 데 동의했는데 서울시교육감이 반대하고 나섰어요. 외진 지역으로 이전되면 제주, 강원 등 전국 각지에서 오는 피해학생을 받기 어려워질까 걱정입니다.

수 자체가 턱없이 부족하네요.

‘위(Wee) 센터’나 ‘위드위 센터’ 등 상담 센터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상담 센터와 피해자 위탁 교육기관은 달라요. 피해학생이 사건이 발생한 학교를 그대로 다니면서 상담만 센터에서 받거든요. 학교폭력 문제의 최고 해결책은 분리입니다. 해맑음센터같이 학습권을 보장해주면서 가해자와 분리된 공간이 생겨야 해요. 위 센터의 경우는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이 같은 건물에서 상담을 받아요. 교육부에선 오가는 시간을 별도로 하고 마주치지 않게끔 하라지만 이 자체가 말이 안 됩니다.

기관 추가 설립은 가능한 상황인가요.

교육부에서 해낼 여력은 분명 됩니다. 전국 각지, 심지어 서울에도 폐교가 있으니 공간은 충분하죠. 신규 임용 선생님이 많아 발령이 안 될 정도라 하니 인적 자원도 확보되고요. 학생 수가 줄어드는 상황에 예산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마음만 먹으면 피해자들이 교육과정에서 피해 보는 걸 막는 정책을 얼마든지 실행할 수 있죠. 당장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요.

최근 정부 당국에서 제시한 ‘학교폭력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 즉 가해자 엄벌주의가 당장은 속 시원한 사이다 해결책처럼 들려도 실상은 전혀 아닙니다. 엄벌주의로 갈수록 앞서 말씀드린 행정소송은 지금보다 많아질 테고 법적 분쟁도 광범위해질 겁니다. 집행정지를 신청하고 불복 소송하면 어떤 엄벌도 다시 무력화되겠죠. 결국 피해자를 지원하고 소송 과정에서 피해자의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절차를 개선하는 게 학교폭력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이라는 걸 기억해주세요.

#학교폭력 #시간끌기 #학교폭력피해자치유센터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사진제공 박상수 해맑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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