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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윤유선 여자의 품격

EDITOR 김지은

2020. 01. 28

연기 경력 46년 차.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아역 배우에서 이제는 단 한시도 팬들의 곁을 떠나지 않은 이 시대의 진짜 언니로 자리매김 했다. 배우 윤유선의 일과 사랑 그리고 가족 이야기.

배우 윤유선(51)을 만나기 전 그가 출연 중인 연극 ‘여자만세2’를 보기 위해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을 찾았다. 2층 구석까지 객석을 가득 채운 무대, 평일 낮 시간대인 것이 무색할 만큼 객석 점유율도, 관객 호응도도 최고였다. 배우 양희경의 춤사위에 환호성을 지르며 어깨춤을 들썩이던 관객들은 윤유선의 절규와 함께 극이 클라이맥스에 다다르자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며 오열했다. 관객과 배우가 순식간에 하나의 감정선으로 똘똘 뭉칠 수 있다는 것. 카메라 앞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짜릿한 희열일 것이다. 그것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중견 배우들을 무대로 끌어들인 연극의 힘 아닐까. 

“어릴 땐 정말 뭣 모르고 연기를 했죠. 그냥 현장을 돌아다니는 게 즐거워서, 그 재미에 빠져 있었던 거 같아요. 지금도 저는 제 일이 너무 좋고 즐거워요. 연기라는 게 그만큼 매력 있다는 뜻이겠죠.” 

그를 만나기 전 검색창을 열어 필모그래피를 살펴보았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끝없이 이어지는 작품 목록들. 1974년 데뷔작 영화 ‘만나야 할 사람’부터 지금 하고 있는 연극 ‘여자만세2’까지 얼핏 봐도 1백 개는 훌쩍 넘어 보인다. 언젠가 한 번쯤은 쉬고 싶을 때도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공백기 한 번 없이 이렇게나 열심히 일했을까 싶었다. 

“저도 슬럼프 같은 게 있었죠. 특히 20대 후반에, 많이 지쳤던 거 같아요. ‘내가 정말 잘하고 있는 게 맞나, 이 길이 정말 내 길인가’ 너무 어릴 때부터 쭉 한길만 걸어오다 보니 나를 제대로 돌아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 거예요. 다들 예쁘다, 예쁘다 그러니 그냥 그런 줄로만 알고 해왔지 정작 제 내면에는 연기에 대한 애착도 열정도 없었거든요.”

“이래서 다들 은퇴를 하나 봐요”

1998년 MBC 일요 아침 드라마 ‘사랑밖엔 난 몰라’에 출연하던 때였다. 김영옥, 이순재, 윤여정, 전광렬, 김현주, 강성연, 최화정, 손지창, 김호진 등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총출동하는 인기 드라마였는데, 뭐가 문제였는지 마음은 삐딱선만 타고 도대체 흥이 나지 않았다. 



“선생님, 연기가 너무 안 돼요. 재미가 없어요. 이래서 다들 은퇴를 하나 봐요.” 

하늘 같은 선배들 앞에 주저앉아 울상을 지었다. 

“그런데도 어느 하나 저를 내치거나 밀어내는 분이 없었어요. 김영옥 선생님도, 이순재 선생님도, 윤여정 선생님도 정말 따뜻하게 제 손을 잡고 이끌어주셨죠. 심지어 윤여정 선생님은 저한테 먼저 ‘녹화 들어가기 전에 나랑 한번 맞춰볼까?’ 하시더니 매번 눈을 맞추고 저랑 친구처럼 대본 연습을 해주셨어요. 제가 도망치려 할 때마다 ‘너 이럴 때 떠나면 다시 못 돌아온다’ 하시면서요. 이순재 선생님은 저를 보고 ‘한마디씩 옹알이를 하다가 이제야 제대로 말을 하려고 그렇게 힘이 드는 거야’라며 다독여주셨어요. 얼마나 큰 힘이 되었게요. 그렇게 힘든 시기를 지나고 나니 그제야 제가 다시 보이더라고요. 제 평생의 은인들이시죠.” 

그는 최근 몇 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연극 무대에 오를 정도로 연기에 열정을 보이고 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동안에는 아무래도 한껏 집중하기 어려웠던 ‘일’에 새로운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주인공을 서포트해주는 역할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이 친구들을 잘 도와줄 수 있을까 고민하곤 해요. 제가 선생님들께 받았던 만큼 저도 후배들에게 잘해주고 싶은데, 사실 요즘 어린 친구들은 연기를 너무 잘해서 ‘어우, 얘들 왜 이렇게 잘하지?’ 그런 마음이 들기도 해요. 하하.”

“그래도 서희처럼은 못 살아요”

이번 작품에서 그는 남편과 사별한 후 모진 홀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순종적인 여자 ‘최서희’를 연기한다. 며느리의 재산까지 탕진하고 둘째 아들네로 갔다가 거기서는 도저히 못 살겠다며 다시 짐을 싸들고 들어온 시어머니에게 그는 매 끼니마다 새 밥을 해 따뜻한 밥상을 올린다. 생계를 잇기 위해 밤새 미싱을 돌리면서도 사회에서 차별받는 딸을 동동거리며 안타까이 쓰다듬는다. 어린 시절 그를 버리고 떠난 엄마를 크게 원망하지도 못한다. 되짚어보면 윤유선에게 이런 ‘바보 같은’ 역할은 연기가 아니라 윤유선이란 사람 자체가 그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잘 어울려서, 사람들은 종종 윤유선의 성격과 가치관을 오해하곤 한다. 그런 그의 별명이 한때 ‘윤다르크’였다니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사실 이건 옳지 않잖아요. 어머니 세대의 희생과 인내를 폄하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그 시대에는 누구나 그래야 하는 줄 알기도 했고, 또 그분들이 감사하게도 그렇게 많은 희생을 해오셨기에 우리가 이렇게 잘 자랄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니까요. ‘여자만세2’도 그분들의 희생과 사랑에 대해 감사하고 격려하는 작품이거든요. 가족을 위한 어머니의 희생은 여전히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 세대는 그분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고,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희생과 인내를 감당하며 살아가는 거라 생각해요.” 

‘윤다르크’,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입바른 소리를 선배 배우들에게 잘도 해대는 성격을 보고 개그우먼 이영자가 지어준 별명이다. 스스로도 해야 할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무조건 참고 못 하는 성격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아무리 친구처럼 오래된 사이라 해도 감히 배우 윤여정에게 ‘선생님, 그건 아닌 거 같아요’라고 솔직당당하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지금도 그의 솔직함은 가족, 친구, 지인들과의 관계를 매끄럽게 지속시켜주는 윤활제 역할을 한다. 사실 그는 한 번도 시집살이를 해본 적이 없다. 결혼 전 남편이 ‘그래도 일 년 정도는 시부모와 함께 살다가 분가를 하는 게 어떠냐’ 했을 때 단박에 ‘No’를 선언한 전력도 있다. 그래놓고도 지금껏 누구보다 시댁 식구들과 사이좋게 잘 지낸다. 때때로 여행도 같이 다니고 소소한 일상도 곧잘 공유한다. 

“결혼 전에 시댁에 인사를 드리러 갔는데 손위 시누이가 저를 처음 보시자마자 막 웃으시면서 ‘같이 살기 싫다 그랬다며?’ 하시는 거예요. 제가 망설이지도 않고 ‘싫다’고 해버린 게 너무 귀엽고 재미있으셨대요. 솔직히 매일 한결같은 모습으로 잘할 자신이 없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만나 잘하는 건 할 수 있지만 저도 사람인데 어떻게 매일매일 잘해요. 그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이야기한 거였고,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인 거 같아요. 어른들께서 흔쾌히 ‘그러면 너희끼리 예쁘게 잘 살아보아라’ 하셨거든요. 저도 덕분에 더 잘할 수 있게 되었죠.” 

좋은 것은 좋고 싫은 것은 싫다,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이고 이것은 이러저러해서 못 할 것 같다, 자기가 가진 생각과 능력치를 솔직담백하게 꺼내놓을 수 있는 것은 그가 가진 장점 중 하나다. 그래도 누구 하나 그를 되바라진 사람이라 생각지 않는다. 자신이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빠르게 인정하고 정중하게 용서를 구하는 쿨한 면 때문일 수도 있고. 아주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 틈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몸에 밴 태도, 가령 상대에게 기분 나쁘지 않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줄 아는 처세 같은 것도 이유가 되겠다. 어쨌거나 입바른 소리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자기 잘못을 깔끔하게 인정하는 것이니 그는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다.

“예쁘다 그런다고 진짜로 그런 줄 알면 안 돼”

윤유선은 연극 ‘여자만세2’에서 순종적인 며느리 서희를 연기한다.

윤유선은 연극 ‘여자만세2’에서 순종적인 며느리 서희를 연기한다.

이번 작품을 하는 내내 윤유선이 떠올린 것은 4년 전 세상을 떠난 엄마였다. 누구에게나 엄마에 대한 애틋함과 그리움은 있겠지만, 윤유선이 연기하는 최서희의 모습은 그의 엄마를 너무나도 쏙 빼닮아 속이 타고 아프다. 

“예전에 전원주 선생님께서 저를 며느리 삼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했는데 그게 제가 아닌 저희 엄마를 보고 하신 말씀이셨대요. 그만큼 저희 엄마를 좋아하셨거든요. 전원주 선생님만이 아니라 저와 작품을 같이 하시는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저희 엄마를 좋아하셨어요. 엄마는 참고 또 참고 침묵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으셨고, 그러면서도 궂은일에는 몸을 사리지 않고 남보다 먼저 나서서 묵묵히 해내곤 하셨죠. 그 시대 어머니들의 표상 같은 모습이었달까요. 선생님들이 저를 예쁘게 잘 봐주신 건 모두 저희 엄마 덕분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를 며느리 삼고 싶어 한 사람이 어디 전원주 한 사람뿐이랴. 배우 사미자도 KBS 2TV 퀴즈 프로그램 ‘1대 100’에 출연해 “윤유선에게 우리 아들 만나볼 생각 없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모르긴 몰라도 아들 가진 엄마세대 배우라면 누구나 한 번쯤 탐냈을 만큼 윤유선은 참 많이도 사랑받고 지냈다. 

어린 시절 윤유선의 일상은 ‘예쁘다’는 말로 점철되어 있었다. 얼굴만 예쁜 것이 아니라 하는 짓도 잔망스럽고 참 예뻤다. 그런데도 어린 나이부터 연예계에 뛰어들어 인기를 얻은 스타들이 홍역처럼 치르곤 하는 ‘공주과’의 ‘연예인병’ 같은 건 없었던 듯하다. 

“엄마가 늘 그러셨거든요. 사람들이 예쁘다, 예쁘다 한다고 정말로 그런 줄 알면 안 된다고.” 

그 예쁜 딸에게 ‘예쁘다’는 말 대신 겸손을 가르친 엄마의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대신 ‘나는 네가 참 좋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그러고는 어차피 죽으면 썩고 없어질 몸뚱이, 아끼지 말고 쓰라고 하셨어요. 어딜 가서든 얄밉게 몸 사리며 쏙 빠지지 말고 헌신하라는 말씀이셨죠.” 

‘시대가 달라졌다’지만 그래도 그는 엄마가 꼭꼭 눌러 담아준 삶의 자양분을 엄마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차곡차곡 잘 꺼내어 쓰고 있다. 결혼 전부터 사회봉사 활동에 열심이던 그는 결혼 후에도 국내외를 오가며 다양한 봉사와 후원 활동을 이어왔다. 지난해에는 다운증후군을 앓는 장애인들과 함께 CGNTV 드라마 ‘고고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오히려 저 혼자 하려면 쉽지 않았을 거예요. 제가 하는 일이 대중들에게 많이 노출되는 일이라 감사하게도 기회가 많았던 거죠. 종교 생활을 하다 보니 교회분들과 함께할 기회도 많고요. 몰랐으면 모를까 기회가 자꾸 오는데 어떻게 모른 척, 안 할 수가 있겠어요. 그렇게 기회가 닿을 때마다 찾아가다 보면 자연스레 거기에 녹아들고, 또 그런 과정이 좋아지기도 하면서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마음이 들고 그래요.” 

유난히 굴곡 많은 연예계에서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지금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에는 가족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은 유학을 가 있지만 두 아이가 자랄 때는 온 가족이 함께 수영장도 가고 스키장도 종종 다녔다. 스케이트장 같은 데 가면 주로 엄마들은 벤치에, 아이들만 장내에서 신이 나지만 윤유선네 가족은 그럴 일이 없었다. ‘의외로’ 동적인 활동을 좋아하는 터라 때로는 아이들보다 엄마가 더 신나게 얼음 위를 달리곤 했기 때문이다. 

가족이 늘 함께 무언가를 하는 자체가 너무 즐겁고 행복했기에 윤유선은 결혼 후에도 지치지 않고 꾸준히 일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결혼 전에, 주변 사람들은 물론 기자분들도 많이 물으시더라고요. 결혼한 후에도 일을 계속 할 거냐, 남편에게 ‘허락’은 받았느냐. 그게 20여 년 전이니까, 그때만 해도 여자가 결혼하고도 일을 계속하려면 남편의 ‘허락’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사람들이 그런 얘길 하더라’ 했더니 남편이 막 웃더라고요. 그건 본인이 결정할 일이 아니냐고요. 남편은 각자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본인은 공부를 잘해서 지금의 일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들이 자기보다 못하다고는 생각지 않더라고요. 저처럼 공부는 잘하지 못했어도 연기를 좋아하고 성실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존중해주는 쪽이죠. 그런 점에서 저희 부부는 생각이 잘 통해요. 아이들에게도 공부보단 각자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찾을 수 있도록 격려하는 편이죠.” 

아이들 스스로 무얼 좋아하는지 깨닫게 될 때까지 기다리는 건 생각보다 상당한 인내를 필요로 한다. 어느 날은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 피아노 학원에 다니겠다고 했다가 금세 마음이 변해 바이올린을 사달라 떼를 쓴다. 어린 시절의 윤유선도 정말로 좋아한 연기 생활 말고는 이것저것 간만 보다 때려치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엄마는 그걸 다 참고 기다려주셨어요. 심지어 제가 잘하지도 못하는 성악을 해보겠다며 성악으로 입시 준비를 했을 때도 ‘안 된다’는 말씀을 한 번도 안 하셨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이가 없어요. 엄마도 귀가 있는데, 딱 들으면 ‘내 딸이 노래에는 재능이 없구나’ 아셨을 텐데 어떻게 매일 그 괴로운 노랫소리를 다 참고 견디시면서, 제가 대학에 떨어져 재수를 생각할 때까지 기다리셨을까요. 제가 재수를 해야 하나 망설이는 걸 보고서야 ‘네가 제일 잘하고 좋아하는 걸 공부해보면 어떻겠냐’며 연기 전공으로 대학에 가는 걸 권유하셨죠.” 

엄마만큼은 못 할 것 같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기다리고 또 격려하는 부모가 되고 싶다. 그런 점에서도 그는 남편과 죽이 잘 맞다. 윤유선에게 남편 이성호 판사는 근엄하고 무섭기만 할 것이라 생각했던 법조인에 대한 선입견을 완전히 깨준 사람이다. 사고의 폭이 유연하고 유머러스한 남자, 세상에서 가장 든든하고 멋진 버팀목이다.

“윤유선 언니처럼 예쁘게 나이 들고 싶어요”

‘여전히 너무 예쁘다’는 칭찬에 그는 연신 손사래를 쳤다. 관리도 잘 못 하는 편이고, ‘몸짱’ ‘방부제 미모’ 이런 걸 추구하는 편도 아니란다. 예전에는 마사지도 더러 받으러 다녔는데, 흰머리가 생기고부턴 염색하러 다니느라 마사지까지 받으러 가기엔 시간이 너무 빠듯해진 것도 관리를 예전만큼 못 하는 이유라 했다. 남들 다 한다니 가끔 피부과를 가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바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가벼운 레이저 시술 정도가 전부다. 

“지금도 여전히 과한 건 무서워요.” 

그래도 게으르게 산다는 느낌을 갖는 건 싫어서 일부러라도 많이 걸으려 애쓴다. 동선이 한 시간 남짓 되는 거리는 조금 일찍 나서서 슬렁슬렁 걷는다. 남편이랑 손잡고 산에 가는 것도 종종 있는 일이다. 

“제가 지금 50대라 그런가, 50대는 진짜 예쁠 수가 없는 나이인 거 같아요. 차라리 60, 70 넘은 분들 중에는 ‘예쁜 할머니’들도 있고, 그런 분들 뵈면 참 예쁘게 늙었다, 곱게 나이 드셨다 싶은데 50대는 그냥 중년의 끄트머리니까, 중년의 나이 중에서는 제일 경쟁력 없잖아요. 이제는 그냥 나이가 들었다는 걸 인정하고 내려놓아야 하는 거 같아요. 하하.” 

많은 선배 배우들이 ‘며느리 삼고 싶어 하던’ 소녀 윤유선은 이제 ‘예쁘다’는 말에 담긴 묵직한 의미도 헤아릴 줄 아는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그가 10년 후, 20년 후 거울 앞에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대중에게 그는 분명 ‘참 예쁜 할머니’ ‘곱게 나이 드셨구나’ 생각될 것 같다. 지금도 그는 ‘저 언니처럼 나이 들어갔으면’ 생각하게 만드는, 충분히 멋지고 아름다운 50대다.

기획 김명희 기자 사진 지호영 기자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예술의전당 장소협조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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